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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이주노동자와 이주활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이야기
참(도서출판) | 부모님 |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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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외국인도 사람이다”*






이주노동자의 한국 사회 유입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1980년대 한국은 연 10%대의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임금도 대폭 상승하였다. 외형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모습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동남아시아 등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는 노동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이주노동자는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주로 가사도우미와 단순노무자로 취업을 했다. 이후 30여 년 동안 이주노동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오늘날 제조업, 농축산업, 건설업, 어업, 서비스업을 비롯하여 한국의 산업과 경제에서 이주노동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노동의 이주가 발생한 것은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고학력화,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저숙련 인력난이 심해진 한국 사회는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3D 업종에서 일할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이주노동자는 임금이 낮고 일자리도 부족한 자기 나라를 떠나 생존을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낯선 한국을 찾아오게 되었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노동의 이주가 발생했지만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는 따뜻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는 산업 현장에서 동료로 일하고 지역 사회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지만 많은 경우 멸시와 혐오, 차별과 인권침해에 시달리면서 죽음과 절망, 고통과 억울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주노동자의 유입은 제도의 변화와 함께 진행되었다. 노동 이주에 관한 제도가 없던 시절 이주노동자는 주로 브로커를 통해 단기 비자로 입국하여 미등록 체류 상태로 일을 했다. 기업의 인력 수요가 커지면서 1991년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연수생 유입 규모는 적었다. 이어서 1994년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산업연수생제도)가 시행되었고 연수생 신분의 이주노동자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업연수생제도는 ‘현대판 노예제’라 불릴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산업연수생제도는 국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연수생에게 선진 기술을 가르쳐 국가 간 상호 협력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은 연수생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고 노예처럼 일만 시켰다. 연수생에게는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았고 여권과 통장 압류, 폭언과 폭행, 외출 금지, 임금 미지급과 같은 인권침해가 일상적으로 발생했다.
그런 상황에서 연수생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이탈이었다. 그들은 노예와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업장을 이탈하였고 미등록 상태로 다른 사업장에 취업했다. 사업장 이탈이 급증하면서 2002~2003년에는 미등록 체류율이 80%에 달했다.
이탈과 함께 투쟁도 일어났다. 1994년 14명의 산재 피해 이주노동자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강당에서 한 달 가까이 농성을 하였다. 농성 참가자 중에는 산재로 뼈가 부러져 병원에 누워 있는데 사장이 경찰을 데리고 와 강제 출국시키려고 해서 도망친 연수생도 있었고,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잘렸는데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공장에서 쫓겨난 연수생도 있었다. 농성의 결과로 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도 산재보상을 3년 전까지 소급해서 적용한다는 발표를 했다.
1995년에는 네팔 산업연수생 13명이 명동성당 입구에서 몸에 쇠사슬을 감고 열흘 동안 천막농성을 했다. 농성장에는 “때리지 마세요”, “우리에게 월급을 주세요”, “여권을 돌려주세요”, “강제노동 중단하라,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 투쟁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반향을 일으켰고 그 결과 정부는 산업연수생에게 산재보험·의료보험과 최저임금제를 적용하고 폭행 금지를 비롯하여 근로기준법 8개 조항을 적용하는 등의 개선책을 발표하였다.
이후에도 연수제도 철폐,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 중지와 전면합법화 등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의 투쟁이 이어졌다. 2002년에는 77일간의 명동성당 농성 투쟁이 있었고, 2003~2004년에는 380일간의 명동성당 농성 투쟁이 있었다. 이러한 투쟁을 바탕으로 2005년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이 설립되었다.
한편 이주노동자가 증가하고 그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도 등장했다. 지원단체는 이주노동자의 투쟁 과정에 함께 하였으며 이주노동자의 인권·노동권 보장을 위한 입법 활동도 전개하였다.
이처럼 이주노동자의 이탈과 투쟁 그리고 지원단체의 활동이 이어지면서 산업연수생제도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그 대안으로 2000년에 2+1 연수취업제(연수 2년+취업 1년)가 시행되고 2002년에는 1+2 연수취업제가 시행되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였다. 결국 2003년에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이 제정되고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이주노동자의 처지는 이전보다 나아졌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에게는 노동법이 적용되었고 신분증 압류와 같은 인권침해도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고용을 허가하는 제도여서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이는 노동허가를 받아 입국한 이주노동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사업장에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노동허가제와 대비된다. 특히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을 매우 제한하고 있어서 이주노동자를 실질적인 강제노동 상태에 처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에도 임금체불, 산재 처리 기피, 열악한 작업환경과 숙소, 폭언과 폭행 같은 인권침해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차별적인 시선과 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처지가 수없이 보도되었고 2007년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를 비롯하여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사건도 많았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실태조사보고서를 다수 발간하였고 개별 이주활동가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주노조와 다수의 이주민 공동체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한국의 지원단체들도 헌신적인 지원·연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으며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과 태도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차별과 인권침해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주노동자 관련 언론보도에는 멸시와 혐오를 드러낸 댓글이 넘쳐난다.

이 책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실상을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주요 내용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 차별과 인권침해 관련 사례이며, 모두 열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인터뷰 다섯 편, 사건사례 두 편, 법률사례 두 편, 활동정리 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용허가제 제조업 비자(E-9-1)로 한국에 온 스리랑카 출신의 이주노동자 야갓은 경북 칠곡에 있는 목재공장에서 일을 하다 산재를 당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하라고 했지만 한국말이 서툰데다 목발까지 짚고 다니는 야갓을 사업주는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야갓은 수술을 하지 못했다. 억울하고 답답한 야갓은 차민다 성서공단노동조합(성서노조) 부위원장과 상담을 하고 성서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야갓은 성서노조와 이주단체의 도움을 받으며 투쟁을 했고 그 결과 사업주의 사과를 받아내고 사업장 이동을 이뤄냈다. 야갓은 노조가 있으면 힘이 많이 된다고 말한다.
고용허가제 농업 비자(E-9-3)로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노동자 파즐라(가명)는 대구의 한 영농조합법인에서 농산물을 포장하는 일을 하다 산재를 당했다. 작업 중 사업주의 실수로 산재가 발생했으나 사업주는 거짓말을 할 것을 요구했다. 산재 발생 전에는 돈을 빌려줄 정도로 사업주와 사이가 좋았던 파즐라는 산재 발생 이후 사업주의 거짓에 근거한 소송제기와 산재 치료 등으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민인 임소현은 이주민 의료 지원을 위해 통역번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의료지원사업 담당 병원인 대구의료원 등에서 이주노동자를 위해 상담과 통역을 하면서 겪은 여러 사례를 들려준다. 환자는 너무 많고 예산은 적어서 고통받는 이주노동자에게 임소현의 헌신적인 활동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대구이주민선교센터에서 상담 간사로 활동하게 된 쩐티빅한은 20여 년 동안 자신이 경험한 일을 들려준다. 임금체불, 산재, 성폭력, 이혼 등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겪는 일을 다 겪었다는 쩐티빅한은 자신이 맡았던 여러 가지 상담 사례를 들려주면서 여성이고 외국인이어서 무시당하고 차별받았다고 토로한다.
선원이주노동자 상담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는 오세용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경주센터의 활동과 선원이주노동자의 실상을 세세하게 들려준다. 특히 산업연수생제도가 고용허가제로 바뀌었지만 20톤 이상 선박에서 일하는 선원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산업연수생제도와 다를 바 없는 외국인선원제(선원취업제) 하에서 고통받고 있음을 밝힌다.
대경이주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을 지낸 최선희 활동가는 두 개의 사건사례를 들려준다. 하나는 경북 군위에 있는 종돈사업장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 두 명의 질식 사망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경북 영천에 있는 양파농장 인력공급업체에서 임금 대신 종이쿠폰을 준 임금체불 사건이다. 두 사건의 발생과 경과 그리고 대경이주연대회의의 대응 활동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주민을 위해 법률지원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박정민 변호사는 두 건의 법률사례를 소개한다. 하나는 영덕에 있는 오징어 가공업체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 네 명의 질식 사망 사건을 다루고 있고, 다른 하나는 이주어선원 재해보상의 부당함을 다루고 있다. 오세용 소장의 인터뷰에서도 다루어진 이주어선원 재해보상에 있어서의 차별 문제는 현재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인 중요한 사안이다.
마지막 열 번째 글은 대구·경북지역의 이주운동연대체인 대구이주공대위와 대경이주연대회의의 초기(2004~2007) 활동을 개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자료 부족 등의 이유로 2007년 이후 대경이주연대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정리하지 못했다. 이후 다른 기회를 통해 정리될 수 있길 바란다.

이 책은 이주노동자와 이주활동가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섯 편의 인터뷰는 녹취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녹취 내용을 재정리한 것이지만 가급적 말투를 그대로 옮겨서 인터뷰 당사자의 의도나 감정이 잘 드러나도록 했다. 사건사례와 법률사례 역시 최선희, 박정민 두 사람이 직접 경험한 일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했다.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이주노동자와 이주활동가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잘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는 위험하고 더럽고 힘들어서 한국인 노동자가 일하기 싫어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노동력이 부족한 한국의 농촌과 어촌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을 견디며 우리네 밥상을 책임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 경제를 가장 밑바닥에서 떠받치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들이 하는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 사회가 들어주길 기대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수없이 냈다. 이주노동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반드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1995년 1월 네팔 산업연수생 13명이 서울 명동성당 입구에서 몸에 쇠사슬을 감고 천막농성을 하면서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내걸었다. 그들은 농성을 시작하면서 “저희들은 비록 가난한 나라에서 왔지만 그래서 한국에서 노예처럼 당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인간존재 그 자체는 가난하지 않습니다.”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1970년 11월, 명동성당에서 걸어서 30여 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스물두 살의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을 했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의 근대화, 산업화 정책에 따라 한국은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기계처럼 일하며 희생된 노동자가 있었다. 1996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랑했지만 그 이면에는 노예처럼 일하며 고통받는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2004년 4월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침구류 공장에서 일하던 서른두 살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카이사르 후세인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후세인은 1999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고 2002년부터는 미등록 상태로 일을 하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망하기 전 후세인은 강제 추방 단속으로 인력이 부족해져 두세 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감당하며 하루 열네 시간 이상의 노동을 견뎌야 했고, 집진기와 환풍기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먼지와 솜털이 날리는 열악한 작업장에서 일을 했다. 또한 강제 단속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쓰러질 당시 임금이 5개월이나 체불되어 있었다.
사망 20일 뒤에 치러진 장례식에서 평소 후세인과 가장 친했던 이주노동자는 추모사를 통해 “외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한국에 오지만, 그들은 죽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다시 고향으로 행복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라며 슬퍼했다.
후세인이 사망하고 20일도 지나지 않아 서른네 살의 중국인 이주노동자 정유홍이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정유홍은 대구에 있는 컴퓨터자수 업체에서 주간 12시간, 야간 13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고용안정센터에 세 차례나 찾아가 사업장 이동을 요구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다.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사업주는 벌금 3천만 원을 내고 가야 한다며 협박을 했다.
정유홍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제가 집에 가고 싶습니다. 회사 사장님이 돈 주지 않습니다. 노동부에 가서도 해결 못했습니다. 외국인도 사람이다. 왜 일을 했는데 사장은 돈을 안 주는가. 나는 돈이 없어 집에 못 간다. 방법이 없어 죽음을 택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호소한 네팔 이주노동자와 “외국인도 사람이다.”라는 유서를 남긴 정유홍. 이들의 목소리는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의 일면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인권 의식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를 고발하고 있다. 동시에 이주노동자의 절박한 심정과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어떻게 대우받고 싶은지를 말해준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 사회는 아직 이주노동자의 목소리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자신들을 단순히 노동력 상품으로 보지 말고 사람으로 보고 사람으로 대우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호소가 이윤과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초래한 불평등 문제의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그동안 숱하게 외쳤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들려드리고자 한다.

들리나요? 들리나요!

2022년 11월 8일

생명평화아시아 이사 손영호

  목차

노조가 있으면 힘이 돼요

산재사고 나고 너무 힘들었어요

환자는 너무 많고 예산은 적어요

여자이고 외국인이어서 무시당하고 차별받았어요

살아서도 차별, 다쳐서도 죽어서도 차별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임금 대신 종이쿠폰을 주다

이주노동자 4명의 안타까운 죽음

이주어선원 재해보상의 부당함

대구이주공대위와 대경이주연대회의: 200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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