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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2
지동설의 제창과 상극적인 우주론들
동아시아 | 부모님 |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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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일찍이 유럽에서 천문학과 우주론이 공존했던 것은,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리는 수학적 천문학이 자연학적 우주론에 종속했고 그 큰 틀로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논한 이원적 세계로 수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이론은 지금까지의 우주론과 천문학이 유지했던 상하관계에 전환을 강요할 터였다. 제2권에서는 코페르니쿠스가 일으킨 지동설이 등장한 이래 상극적인 우주론들이 나타난 유럽의 16세기, 즉 이원론에서 일원론으로 세계관이 이행해 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의 과학 발전상 및 세계관의 역사를 논의한다.

  출판사 리뷰

“왜 유럽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을 잇는
서구 근대과학이 탄생한 과정을 풍요롭게 그려낸 역작

거장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근대과학 탄생사 완결편, 제2권 발간

서유럽 정신세계의 급변, 16세기 과학과 세계관의 역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제창 그리고 상극적인 우주론들

일찍이 유럽에서 천문학과 우주론이 공존했던 것은,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리는 수학적 천문학이 자연학적 우주론에 종속했고 그 큰 틀로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논한 이원적 세계로 수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이론은 지금까지의 우주론과 천문학이 유지했던 상하관계에 전환을 강요할 터였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제2권에서는 코페르니쿠스가 일으킨 지동설이 등장한 이래 상극적인 우주론들이 나타난 유럽의 16세기, 즉 이원론에서 일원론으로 세계관이 이행해 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의 과학 발전상 및 세계관의 역사를 논의한다.

코페르니쿠스가 유럽의 세계관에 던진 화두와 한계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표명하여 지구 중심의 세계상에서 태양 중심의 세계상으로 전환한 점뿐 아니라 지구를 행성 대열에 포함시킴으로써 태양계를 체계화하고 세계의 일원화 개념을 정립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요컨대 지동설은 그때까지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과 우주론 전체의 기본적인 틀, 즉 지상세계와 천상세계가 다른 종류의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서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전제에 근본적으로 저촉되었다. 따라서 천문학이 지동설을 올바른 태양계상으로 주장한 것은 하위에 있던 수학적 천문학이 상위에 있던 철학적 자연학의 원리를 부정하는 일이었으며, 학문의 서열을 전도해 버린 사건이었다. 동시에 무겁고 비활성적이라고 여겨졌던 지구를 운동하게 하는 자연학적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자신은 이러한 의의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 일생의 대작으로 1543년 출판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이하 『회전론』)는 천문학의 전환점에 위치하기는 했지만,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자연학의 개념으로 기술되었다. 이러한 한계를 넘은 것이 첫 번째로 16세기 후반 크리스토프 로스먼과 티코 브라헤가 주장한 강체천구설의 파기였으며, 두 번째로 17세기 초두 케플러가 주장한 타원운동과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즉 행성 운동의 원형성과 일정성을 포기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지지한 학자들
코페르니쿠스의 『회전론』 출판 직후에 그의 지동설에 찬성의 뜻을 표명한 레티쿠스, 가서, 겜마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단순한 수학적 가정으로서가 아니라 우주론적 진리로 이해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제자 레티쿠스(Rheticus)는 지동설 해설서인 『제1해설』을 발간하면서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책 출간을 끌어내고자 했다. 아킬레스 가서(Achilles Gasser)는 레티쿠스의 『제1해설』 제2판을 출간하면서 자신도 이에 찬동한다고 표명했으나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한편 네덜란드에 거주하던 의사이자 수학자, 천문학자인 겜마 프리시우스(Gemma Frisius)는 간단하고 정확하게 일식을 관측하는 방법을 담은 『천문학의 자막대』를 출간했으며 삼각측량 등 수학과 지도학 등에 걸쳐 큰 성과를 남겼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와 교류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이나, 1545년 이후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지지하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신학적 세계관의 대응
가톨릭 측에서는, 신학자 조바니 마리아 토로사니만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의 위험성을 제기했을 뿐 대체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무관심했다.
한편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레티쿠스와 가서가 예외적으로 코페르니쿠스주의자였을 뿐, 대부분 코페르니쿠스의 『회전론』 출판 후 거의 4반세기 동안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우주론적·자연학적 함의에는 눈을 감고 그 수학적 측면만을 연구했다. 예컨대 마르틴 루터 그리고 열렬한 루터파 목사였던 안드레아스 오시안더에게는 신학의 우월이 중심 문제였고, 함께 신학의 하위에 놓인 철학과 천문학의 서열은 관심 밖에 있었다. 이렇게 원리적이고 중요한 자연학상의 이 문제는 우선 방치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수학적 이론만을 중시하는 특유의 해석으로 진행되었다.

독일에서의 천문학 및 수학 교육의 발전
또한 독일에서는 종교개혁에 동반된 교육개혁이 일어나면서, 인문주의자 멜란히톤의 영향하에 천문학은 종교개혁 교육전략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 되었다.. 동시에 수학 교육도 중시되었다. 이에 따라 그간 박식한 전문학자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었고, 베텐베르크대학을 비롯한 독일의 많은 대학에서 유럽의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교육이 이루어졌다. 다만 멜란히톤도 신학적 세계관을 우선순위에 두고 철학과 신앙을 준별하고자 했으며, 천문학이나 점성술 등을 신의 계획에 준해 만들어진 법칙으로 이해하였다.
이렇듯 서유럽의 16세기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등장으로 세계관에 큰 화두가 던져진 이래 신학적 세계관이 이를 방어하면서도 한편으로 과학의 발전을 추동한, 정신세계가 급변한 시기였다고 하겠다.

왜 유럽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
서구 근대과학 탄생사 시리즈의 완결편, 제2권 발간

16세기는 소위 ‘14~15세기의 르네상스’와 ‘17세기의 과학혁명’에 끼인 골짜기처럼 여겨지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문화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지식 세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한 점이다. 대학의 아카데미즘과 거리가 멀고 문자문화의 세계에서 소외되었던 직인(職人)과 기술자, 예술가나 외과의, 상인이나 뱃사람들이 생산·유통이나 각종 직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습득하고 축적한 경험 지식이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효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까지 대학에서 가르치던 중세 스콜라학에 대치하는 것이었으며, 고대 문예의 부활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했던 후기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운동마저도 뛰어넘는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원제: 世界の見方の転換, 2014)은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의 저자이자, 일본 차세대 노벨상 수상자로 불리는 거장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가 쓴 서구 근대과학 탄생사 3부작 중 완결편인 마지막 제3부이다. 참고로, 『과학의 탄생』(원제: 磁力と重力の発見, 2003)은 국내에 2005년에 번역·출간되었고, 『16세기 문화혁명』(원제: 一六世紀文化革命,2007)은 2010년에 번역·출간되었다.
책은 15세기 중기부터 17세기까지, 북방의 인문주의 운동과 종교개혁을 배경으로 하여 중부 유럽을 무대로 한 세기 반에 걸쳐 전개된 천문학과 지리학, 즉 ‘세계 인식의 부활과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저자의 전작인 『16세기 문화혁명』을 보완하는 의미로, 16세기 문화혁명과 나란히 진행됐던 천문학 개혁의 전말을 추적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왜 그리고 어떻게 서구 근대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탐색은,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역작들인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과 함께 3부작을 이루는 이 책으로 완결된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은 전작들과 달리 국내에는 세 권으로 분권되어 출간되며, 2019년에 제1권이 출간된 데 이어 제2권이 2022년에 전격 번역·출간되었다.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의 저자
거장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누구인가

저자는 총 3부작의 긴 여정을 통해 서구에서 과학이 탄생한 과정을 풍요롭게 그려냈다. 저자가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근대과학사 3부작을 저술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독특한 이력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과학사가, 자연철학자, 교육자이자 전 도쿄대 전공투(全共鬪) 의장이었다. 안보투쟁이 한창이던 1960년에 도쿄대학교에 진학하여, 베트남반전회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도쿄대 전공투 의장을 맡아 도쿄대 투쟁을 이끌었던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 1969년 야스다 강당 공방전에 앞서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아 지하에 잠복했으나, 같은 해 9월 히비야공원에서 열린 전국 전공투연합결성대회에서 체포되었다.
1960년대의 급격한 경제 발전과 함께 정치·사회적으로 요동치는 상황을 직접 체험한 저자는 ‘일본 사회가 사실 근대화를 경험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었고, 과학도 출신인 만큼 이와 관련해 ‘왜 유럽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재야 학자로서 그가 걸어온 연구의 발자취로 이어져, 1970년대에는 주로 물리학과 철학에 관련된 번역서, 1980년대부터 2010년 초반까지는 과학사 연구서, 그리고 2010년대에는 근현대 일본 과학기술사회를 비판한 평론서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과학사가인 저자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에서 중요한 함의를 읽어내는 통찰력뿐만 아니라 각 시대에 등장한 이론 체계를 수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수학적·물리학적 지식을 겸비한다는 데 있다. 이 책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에서는 주제에 따라 두 요소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내면서 이러한 장점이 특히 잘 드러난다. 15세기까지 사변적인 학문의 세계와 경험적인 기술의 세계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경험적인 기술의 세계는 육체적이고 천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이후 학자 집단과 직인이 서로 접근하면서 일어난 ‘16세기 문화혁명’을 통해 학문과 기술의 융화가 일어났으며, 이것이 17세기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과학과 사회를 바라보는 기존의 여러 편견에서 벗어나, 학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뜻깊은 경험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생업을 병행하면서도 지킨 극한의 학문적 성실성, 과학과 사회에 관한 깊은 성찰과 시민의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저자의 저술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요컨대 지구의 운동이라는 관념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시대 이래 코페르니쿠스의 시대까지 ‘우습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것은 『회전론』에서 태양의 정지와 지구의 운동을 기술할 때 “따라서 우리는 다음[지구의 공전]을 인정해도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코페르니쿠스의 말에서 인상적으로 표명되어 있다. 실제로 신학적인 이단 혐의를 우려했었다면 ‘부끄럽’다는 표현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론을 공표하기를 오랜 세월에 걸쳐 주저한 코페르니쿠스가 무엇보다도 걱정하고 두려워한 것은, 성서를 방패로 삼은 고상한 교의에 기반을 둔 교회의 사문이나 견책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이론의 ‘신기함과 부조리’가 일반 상식이나 통설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_ 제5장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겜마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급소, 즉 행성 궤도의 크기를 관측치로부터 유도하는 데 성공하여 태양-행성 간의 거리에 관해 ‘보다 풍부한 지식(amplior cognition)’을 만들어 내며 행성의 충과 근일점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한 것 등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겜마는 바로 코페르니쿠스가 태양계를 단순히 행성 궤도를 뭉뚱그려 놓은 것으로서가 아니라 한 체계system로서 파악하고, 그때까지는 ‘사실의 지식’일 뿐이었던 행성 운동의 제2의 부등성의 특징을 ‘근거의 지식’으로 전환시킨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_ 제6장 초기 코페르니쿠스주의자들

오시안더에게도 루터에게도 오컴과 마찬가지로 지식과 신앙은 다른 것이며 장 제르송이 말했듯이 이성으로 신앙적인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무익한 호기심’으로서 징계 받아야 했다.
열렬한 루터파인 오시안더는 지동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한 가설로서 인정했으며 그 이상 그 진리성을 묻지 않는다는(물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중략) 종교가인 오시안더나 루터에게는 신학의 우월만이 문제였고, 함께 신학의 하위에 놓인 철학과 천문학의 서열은 관심 밖에 있었다. 이렇게 원리적이고 중요한 자연학상의 이 문제는 우선 방치되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우주론적 측면을 무시하고 그 수학적 이론만을 중시하는 특유의 해석으로 진행되었다.
_ 제7장 불가지론과 상대론

  작가 소개

지은이 : 야마모토 요시타카
과학사가, 자연철학자, 교육자, 전 도쿄대 전공투 의장.1941년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안보투쟁이 한창이던 1960년에 도쿄(東京)대학교 이학부 물리학과에 진학하여, 1964년 졸업 후 같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입자물리학을 전공했다. 동학들 사이에서 수재로 촉망받던 그는 박사과정 3년 차에 베트남반전회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도쿄대 전공투(全共鬪) 의장을 맡아 도쿄대 투쟁을 이끌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1969년 야스다 강당 공방전에 앞서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아 지하에 잠복했으나, 같은 해 9월 히비야공원에서 열린 전국 전공투연합결성대회에서 체포되었다.‘지식인의 자기부정’을 외쳤던 그는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학자로서 보장된 대학을 떠나 다시 제도권 학계로 돌아가지 않았다. 1970년 초중반에는 도쿄대 지진연구소의 임시직원 투쟁에 참여하거나 후지쓰 우주개발연구단의 2차 하청 업체에서 근무하기도 했는데, 이때 천체역학을 공부하거나 철학서를 번역하며 과학사가, 자연철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유명 대학입시학원인 순다이(駿台)예비학교에서 물리강사로 재직하며 재야에서 연구와 집필을 계속했다.‘왜 유럽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한 그의 긴 여정은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이라는 근대과학 탄생사 3부작 시리즈의 완결로 결실을 맺었다. 이 작업은 전공투 시절 품었던 ‘일본 사회가 근대화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는데, 공교롭게도 2011년 본서 집필 중 후쿠시마에서 전대미문의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저자는 이를 계기로 일본 과학기술사회에 대한 비판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등의 집필과 강연을 이어가 일본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목차

제5장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태양계의 체계화와 세계의 일원화
1.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생애와 배경
2. 코페르니쿠스 개혁을 끌어낸 것
3. 행성계의 조화와 질서
4. 분점의 세차와 1년의 정의를 둘러싸고
5. 등화점(이퀀트)을 둘러싸고
6. 소주전원 모델의 도입
7. 코페르니쿠스의 궤도 결정
8. 행성 이론적 측면에서 본 코페르니쿠스 개혁의 실상
9. 이원적 세계와 그 해체
10.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의 난항
11. 코페르니쿠스의 자연학

제6장 초기 코페르니쿠스주의자들 ―레티쿠스, 가서, 겜마
1. 레티쿠스와 페트레이우스
2. 레티쿠스의 『제1해설』
3. 우주의 크기를 둘러싸고
4. 아킬레스 가서
5. 겜마 프리시우스
6. 경도결정법을 둘러싸고
7. 삼각측량과 겜마의 학문 방법
8. 『회전론』 출판 전후
9.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으로 경도되다
10. 학문 간의 서열을 둘러싸고

제7장 불가지론과 상대론 ―오시안더와 루터
1. 『회전론』의 익명의 서문 「독자에게」
2. 「독자에게」를 둘러싸고
3. 안드레아스 오시안더
4. 상대성과 불가지론
5. 종말론과 연대학
6. 루터와 코페르니쿠스
7. 루터의 과학과 신학

제8장 종교개혁과 수학적 천문학의 발전 ―멜란히톤 서클
1. 종교개혁과 대학개혁
2. 멜란히톤의 교육개혁
3. 멜란히톤과 천문학 교육
4. 멜란히톤 개혁과 수학 교육
5. 독일 점성술의 번성
6. 멜란히톤과 점성술
7. 멜란히톤과 코페르니쿠스
8. 에라스무스 라인홀트
9. 포이처와 그 제자들
10. ‘비텐베르크 해석’을 둘러싸고

부록 B 코페르니쿠스 『회전론』의 행성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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