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서미애의 수필집 『두 개의 지팡이』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희망, 그리고 윤리를 섬세하게 꿰어낸다. 감정의 고백을 넘어, 인간 존재의 존엄과 공동체의 윤리를 탐색하는 문학적 여정을 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장애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피어나는 긍정과 도전을 문장으로 승화시킨다. 지팡이라는 상징을 통해 실존적 고통과 의지를 드러내고, 가족과의 갈등과 사랑을 통해 세대 간의 윤리적 대화를 이끌어낸다. 이 책은 장애인으로서 느끼는 피해의식이나 자기연민이 아닌, 존재의 당당함과 사랑의 윤리를 담고 있다.옆에 세워 놓은 내 지팡이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친구들의 장난에 부러지고 싸움판에 흉기가 되어 부러지기도 했다. 미끄러운 눈길과 질척거리는 빗길에 함께 넘어지기도 하며 온갖 수난으로 내 삶을 잘 지탱해 준 지팡이는 이제 나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장애를 비관하며 주저앉아 울지 않았고, 편견의 눈동자가 벌처럼 쏘는 세상 속에서 더디고 힘들지만 쉬지 않고 걸었다. 외롭고 고독하고 또한 고통과 아픔과 시련의 길이었지만, 슬기롭게 헤쳐 왔다고 생각하는 나는 지금 행복하다.비록 내 등에 한 번 업어 키우지는 못했지만, 내 젖을 먹고 자란 두 딸은 장애인인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절룩거리는 모습이 보기 싫어 상가 유리창조차 쳐다보지 않던 내가 당당하게 나를 거울에 비춰보기도 한다. 내 존재의 가치가 가장 빛나는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며, 나는 이제 내 곁에서 항상 나를 지탱해 준 지팡이처럼,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또 한집안의 며느리로서 내 가족의 지팡이가 되었다.공연이 끝나고, 질박하게 살아온 두 여인인 등 굽은 시어머니와 절룩거리는 며느리가 공연장을 빠져나온다.“덕분에 구경 잘 혔다.”빼놓지 않는 어머님의 인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두 개의 지팡이가 정답다.- <두 개의 지팡이 > 중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모유 수유를 하면 유방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말도 헛말인가. 두 딸 모두 모유를 먹였기에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걸까. 뜻밖의 발병에 어안이 벙벙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던가. 생각해 보면 나는 스트레스를 그리 받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웬만한 일은 툴툴 털어버리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소모적인 논쟁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늘 활기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매사에 적극적이라 내 소식에 주위 사람이 더 놀랐다.흔히 먹고살 만하면 병에 든다고 한다. 그만큼 살기에 바빠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증거일 테다. 나 또한 그런가. 돌아보니 참 열심히 살았다. 장애와 맞서고 나 자신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나와의 싸움을 끝없이 했다. 기우뚱 걷는 내 모습에 좌절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고,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느라 손에서 일을 놓아본 적도 없다. 그 덕분에 생활이 조금씩 나아져 그토록 열망하던 공부의 꿈을 이루고, 생각지도 않던 문학인이 되기도 했다. 두 딸도 때맞춰 제 짝을 찾아 떠났으니, 인생의 숙제를 다 마친 듯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대로 별일 없이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고난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몸의 경고 > 중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은 공부하다 말고 “나는 대학교에 가면 꼭 장학금을 받을 거야”라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옆에 있던 제 언니가 “야! 네가 장학금 타면 세상에 장학금 못 받을 사람 하나도 없겠다.”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야 꼭 받을 거야”라며 더욱 입을 앙다물었다.이유가 뭐냐고 물어도 고개만 살랑살랑 가로저었다. 나중에야 아이는 엄마에게 전동휠체어를 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기가 대학교에 갈 즈음엔 엄마의 나이가 많아 다리에 힘이 더 빠져 못 걸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동휠체어를 사주기 위해 장학금을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작 열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저 기특하고 대견하기만 했다. 엄마의 장애를 부끄러워할 수도 있으련만, 친구에게 당당하게 소개하고, 제 생일에는 오히려 엄마 아빠에게 고맙다며 선물을 사 오기도 한다.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이거 네가 넣어 둔 거지?” 하며 초록 봉투를 내밀었다. 아이가 피식 웃는다. 바삐, 또 열심히 살아도 형편은 늘 소금쟁이처럼 그 자리를 맴돌아 제대로 해 준 것도 없건만, 이처럼 엄마를 먼저 챙기고 이해하는 딸 덕분에 또 감동받는다. 그렇지만 이 돈은 쉽게 쓰지 못할 것 같다. 초록 봉투에 담긴 딸의 마음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그 자리에 다시 넣어 두기로 한다.- <초록 봉투의 비밀 >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서미애
1962년 경북 청도 남성현에서 태어났다.만학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2010년 선수필 가을호로 등단하여 목우수필 문학회, 선수필작가회 동인,(사)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제17회 장애인문학상 당선, 제14회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금상,제11회 중랑사이버신춘문예 금상, 제1회 시안,하늘에 닿는 편지 쓰기 대상,제3회 지하철 에피소드 공모전 우수상, 제9회,제11회 우정사업본부 전국편지쓰기 대회 장려상, 2014년 방송통신대학교 총장배<문연>학술·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고,서울문화재단 장애인예술인 창작지원금을 받아 출간하게 되었다.
목차
┃책을 내며┃
┃추천사┃ 삶을 꿰어 문장으로 피워낸 존재의 기록 정목일
1부 꿈꾸는 가방
우산을 쓰다
귀여운 짝궁둥이
꿈꾸는 가방
목련에 전하는 말
믿음을 파는 두부장수
목걸이
폐지 줍는 여자
지도 위를 걷다
따뜻한 마음과의 동승
실크로드를 읽고
영월, 그 세 번째 사랑
2부 두 개의 지팡이
엄마 바보야
돌감나무
두 개의 지팡이
야쿠르트 아주머니
구두를 고치며
도서관의 하루
졸업
요리하는 남자
몸의 경고
친정 가는 길
3부 끝나지 않은 사랑
봄을 훔친 날
소망탑
책이 준 행복
도전 인생
장미가 있는 저녁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랑
어느 가수의 안타까운 선택
산불
복지 사회
다시, 동심으로
한 글자 차이로
4부 은종나무 아래에서
초록 봉투의 비밀
떠돌이 공부
네 성적에 잠이 오냐?
행복한 미역국
주꾸미 샤부샤부에 행복이 풍덩
냄새나는 양말이 전하는 행복
은종나무 아래에서 당신께
오월로 가신 아버지께
글 벗 최성록 님께
김만년 작가님께
존경하는 정상규 선생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