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일제강점기 천도교의 교육 활동을 통해 조선 민족운동의 한 축을 조명한다. 천도교 교리강습소와 도일 유학생을 중심으로 1910년부터 1934년까지 청년·농민·여성·노동·교육·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된 민족운동에 천도교의 교육이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무단 통치와 문화 통치 속에서도 천도교는 신앙과 교육을 결합해 민족의식과 자주성을 길러냈다.
천도교는 동학의 정신을 계승해 근대적 종교 조직으로 발전하며, 교리강습소를 통한 비정규 교육과 도일 유학생 양성을 통해 지식인 계층을 형성했다. 이들은 귀국 후 언론과 교육, 출판 등 각계에서 활동하며 민족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다졌다. 특히 일본 유학 중 발간된 『동학지광』은 그들의 사상적 실천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책은 교리강습소의 운영과 유학생 활동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천도교 교육이 민족운동의 사상적·조직적 동력으로 작용했음을 밝힌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일제강점기 천도교의 교육 활동에 주목하고 천도교가 전개한 민족운동에서 교육 활동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 고찰한다. 구체적으로는 천도교 교리강습소와 도일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1910년부터 1934년까지 청년·농민·여성·노동·교육·언론 및 출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전개된 민족운동에 있어 천도교의 교육 활동이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
주지하듯이,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1910년부터 식민지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대한제국의 주권 전반이 박탈되었고, 이후 일본은 1910년대에 헌병 경찰을 통한 ‘무단 통치’를, 1920년대에는 이른바 ‘문화 통치’를, 1930년대부터 광복을 맞는 1945년까지는 ‘민족 말살 통치’를 시행하며 조선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수탈과 민족 말살을 자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 조선에서는 각계각층에서 민족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으며, 조선의 민족 종교인 천도교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천도교는 1860년 동학에서 시작하여 1905년에 ‘천도교’라는 종교 단체로 조직을 개편하였고, 대한제국 시기부터 국가 주권 회복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다. 동학의 3대 지도자였던 손병희는 1902년부터 1905년까지 일본에 체류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도일 유학생을 파견하였으며, 1906년부터는 국내에서 교육과 출판·인쇄 사업에 착수했다. 이후 천도교는 1910년대에 교육 사업에 주력하며 1919년에는 3·1운동을 주도하였고, 1920년대에 이르자 천도교 청년 조직이 중심이 되어 유학 사업과 함께 신문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농민 및 농촌, 노동 분야에도 시선을 돌려 민족운동의 범위를 확장하였으며, 이후 1934년 오심당 사건으로 천도교 청년 조직의 활동이 종언을 고하기까지 민족운동을 이어갔다.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천도교는 1910년대에 교육을 보급하기 위해 교리강습소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교리강습소는 경술국치 이전인 1908년부터 설립이 추진되었으며, 1910년대에 전국 각지에 설립된 교육 시설이었다. 주지하듯이, 1910년대에는 조선총독부의 ‘무단 통치’로 인해 조선의 정치·외교는 물론이고 문화와 교육까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사립학교령(1908년, 칙령 제62호)을 통해 공교육을 통제하는 동시에 서당 규칙(1918년, 조선총독부령 제18호) 등을 통해 민간 교육 시설마저 철저히 탄압했다. 그러나 천도교의 교리강습소는 통제와 탄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1910년대에 ‘비정규 교육 시설’로써 운영되었다.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실력양성론에 입각한 독립운동을 추진하였고 이에 따라 1910년대에 비해 교육열이 높아지고 취학률이 증가하였다. 또한 조선총독부의 교육 정책이 변화하며 조선교육령이 개정되고, 조선인의 유학 기회가 늘어나면서 학업의 최종 단계를 외국에서 마치기 위해 유학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천도교 역시 청년 교인들을 유학생으로 외국에 파견하였다.
천도교 도일 유학생(이하, ‘천도교 유학생’)은 천도교 청년 조직의 일원이었기에 그들의 사상과 지식은 조직 운영에 반영되었고, 이는 천도교 민족운동의 방향성을 이끄는 토대가 되었다. 당시 도일 유학생들은 학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이는 천도교 유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천도교 청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민족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여름방학을 이용해 국내 각지에서 순회 강연을 열고, 때로는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함으로써 당시 사회에 대한 의견이나 사상을 공유했다. 뿐만 아니라 천도교의 교리와 사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천도교 유학생이 유학지인 일본에서 잡지 『동학지광』을 발간한 것은 주목할 만한 활동 중 하나이다. 또 이들은, 유학 중에는 물론 귀국 후에도 순회 강연의 강사로 활약하는 한편, 신문사나 출판사에서 근무하거나 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조선 사회의 미래를 위한 활동을 펼쳐 나아갔다. 이러한 방식으로 천도교 유학생이 일원 또는 간부로 참여한 천도교 청년 조직은 다양한 민족운동을 주도하였다. 청년·농민·여성·아동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천도교의 민족운동이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이에 이 책에서는 천도교의 교리강습소와 천도교 유학생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일제강점기 조선의 민족운동에서 천도교 교육 활동의 의미를 규명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는다.
-서장 中-
작가 소개
지은이 : 성지윤
한성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히토츠바시대학교 대학원 사회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제강점기 천도교와 민족운동이며 「1910년대 천도교 교리강습소의 교육활동」(『역사와교육학회』 제33호, 2021), 「손병희의 일본 망명과 개화사상의 형성 ―손병희의 『준비시대』를 중심으로―」(『동학학회』 제59호, 2021), 「1920~1930년대 천도교 도일 유학생의 현실인식」(『동학학회』 제67호, 2023) 등의 논문을 통해 천도교의 교육활동과 도일 유학생의 사상적 전개를 연구하였다. 현재 평택대학교 일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학농민혁명의 디지털 서사 콘텐츠화 가능성에 대한 일고찰」(『동학학회』 제75호, 2025) 등의 연구를 통해 역사 서사의 디지털 콘텐츠화를 통한 공공 역사 연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목차
서장
제1부 일제강점기 천도교의 교육 활동
제1장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과 천도교 청년조직
제1절 일제강점기의 민족운동과 교육 상황
제2절 천도교의 교육 활동과 교리 및 사상
제3절 천도교 청년조직의 교육 활동
소결
제2장 천도교 교리강습소
제1절 천도교 교리강습소 개관
제2절 천도교 교리강습소의 운영체계
제3절 천도교 교리강습소의 운영실태
소결
제2부 일제강점기 천도교 도일 유학생
제3장 천도교의 유학생 파견
제1절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상황
제2절 천도교의 유학생 파견과 유학 생활
제3절 도쿄에서의 천도교 유학생의 활동
소결
제4장 천도교 유학생의 현실인식
제1절 민족운동의 논리와 사회·교육에 대한 인식
제2절 농촌·농민 및 노동자에 대한 인식
제3절 사회주의·자본주의에 대한 인식
제4절 종교에 대한 인식
소결
제5장 천도교 유학생의 활동내용
제1절 천도교 유학생의 교육 활동
제2절 천도교 유학생의 개인 행적
소결
종장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