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조지 오웰 『1984』, 한국어 번역 개정판 출간
“우리가 읽어 온 『1984』는 정말 오웰의 『1984』일까?”
<타임> 선정 현대 100대 영문소설,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BBC> 선정 반드시 읽어야 할
책, <하버드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책, <서울대>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 모두
『1984』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조지 오웰의 고전 『1984』가 새로운 번역 개정판으로 독자를 만난다. 이번 새움출판사의 움라우트
시리즈에 속하게 되는 이번 개정판은 기존에 널리 알려진 “전제주의 디스토피아 소설,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결말”이라는 통념을 넘어, 작품의 진정한 메시지를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조지 오웰의 마지막 작품인 『1984』는 전세계 65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천만 부가 팔렸고, 국내에도 여러 판본이 출간되어 있다. 그럼에도 실제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독자들은 얼마나 될까? 『1984』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4년보다 35년 전인 1949년 출간되었다. 소련 공산주의를 빗댄,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를 3대 강령으로 내세운 당이 지배하는 세계를 그렸다. ‘빅 브라더’라는 가공인물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감시당하고 통제된다는 게 주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는 소설의 도입부에 작가가 달아 놓은 주(注)를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가 본문에 단 유일한 각주로 ‘신어(Newspeak)’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어는 오세아니아의 공식 언어였다. 그 구조와 어원학에 관한 설명은 보유(補遺, APPENDIX)를 보라.”
아마 누군가는 이 ‘보유’를 관심 갖고 볼 테고,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신어의 원리’라는 제목이 붙은 이 ‘보유’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사실은 작품을 제대로 읽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자 이정서는 ‘친절한 번역’이라는 말 아래 일어나는 기존 번역들의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의역에 대한 문제의식을 주창해 왔다. 그의 새로운 번역서인 이번 『1984』 역시 작가의 문체를 고스란히 담아낸 ‘직역’을 통해 본래 『1984』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섬세한 번역 위에서 마침내 『1984』는 ‘빅 브라더의 세계 지배를 암울한 결말로 그린 작품’을 넘어, ‘빅 브라더의 세계를 이겨 낸 이후의 이야기’임이 드러나게 된 셈이다.
나아가 이 소설은 끝까지 서로를 배신하지 않으려 사력을 다했던 윈스턴과 그의 연인 줄리아를 통해, 음울한 현실에서도 ‘최후의 인간’이고자 했던 사람들,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으로 남는 것’이 목적이었던 연인의 애틋한 마음을 담은 소설로도 깊이 각인된다.
『1984』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둡고 암울한 결말의 소설이 아니다
마침내 원형을 회복한 완전한 『1984』를 만나다!
■ 왜 다시 『1984』인가오웰의 『1984』는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판매된 20세기 대표 고전이다.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빅 브라더의 세계 지배”로 끝나는 암울한 소설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역자는 이러한 인식이 작품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어의 원리 (The Principles of Newspeak)」는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오웰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보유(補遺)’**다. 이 부분이 일관되게 과거시제로 쓰여 있다는 사실은, 빅 브라더의 전체주의가 결국 실패했음을 암시한다. 오웰은 주인공 윈스턴의 패배로 소설을 끝맺지만, 동시에 보유를 통해 사회와 도덕적 질서가 회복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 토머스 핀천이 말한 『1984』의 결말현대 문학의 거장 토머스 핀천은 『1984』의 결말을 두고 “상상할 수 있었던 만큼 어두운 결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는 소설 본문까지만 읽은 경우에 한정된 해석이다. 작품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마지막 보유가 드러내는 반전과 오웰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역자는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1984』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 번역의 문제와 이번 개정판역자는 기존 한국어 번역들이 「신어의 원리」를 현재시제로 옮김으로써, 오웰이 남긴 결정적 암시를 왜곡했다고 지적한다. 이번 개정판은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아, 오웰이 원래 의도한 구조와 메시지를 충실히 살려냈다.
“문학작품은 단순히 줄거리를 읽는 일이 아니다. 번역자의 선택 하나가 원작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역자 서문 중에서)
■ 지금, 다시 『1984』를 읽어야 하는 이유역자는 초판 출간 이후 지난 5년 동안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며, 『1984』가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가진 텍스트임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권력의 사유화, 왜곡된 언론 보도, 민주주의의 후퇴와 국민적 저항까지, 우리는 여전히 오웰이 예견한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다.
“2025년, 최첨단 AI 시대, 그것도 민주국가에서 어떻게 그런 국가적 비극이 가능했던 것일까? 그 시기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 작품, 『1984』였다.” (역자 서문 중에서)
그렇지만 기이하게도, 그것은 완전히 끝은 아니다. 우리는 페이지를 넘겨, 일종의 비평적 에세이처럼 보이는 ‘신어의 원리’가 덧붙여진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처음에, 각주의 방식으로, 책의 맨 뒤로 돌아가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기억한다. 어떤 독자들은 이것을 하고, 어떤 이들은 하지 않는다 - 우리는 그것을 오늘날의 하이퍼텍스트의 초기 예로 볼 수도 있다.
1948년에, 이 마지막 부분은 미국 이달의 책 클럽(Book-of-the-Month Club)에게 충분히 성가신 것이어서, 그들은 이 책이 받아들여지는 조건으로, 이매뉴얼 골드스타인의 책에서 인용된 장들과 함께 「신어의 원리」가 잘려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미국 판매에서 적어도 4만 파운드를 잃을 처지였지만, 오웰은 수정을 거부하고 그의 대리인에게 말했다.
“한 권의 책은 균형 잡힌 구조로 세워져 있고, 전체를 다시 짜 맞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여기저기서 단순히 큰 덩어리를 떼어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내 작품이 일정한 지점을 넘어서 엉망이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고, 또한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지도 의심스럽습니다.”
3주 후 이달의 책 클럽은 물러섰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이토록 격정적이고, 폭력적이며, 어두운 소설을 학문적인 부록처럼 보이는 것으로 끝내는가?
그 답은 단순히 문법에 있을지도 모른다. 첫 문장부터, 「신어의 원리」는 일관되게 과거시제로 쓰여 있다. 마치 신어가 문자 그대로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1984년 이후의 역사 속 어떤 부분을 암시하는 것처럼 - 마치 어떤 면에서 이 부분의 익명 저자가, 신어가 그 시대에 그 본질이었던 정치 체제에 대해 이제는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그 에세이를 쓰는 데 사용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신어 이전의 영어이다. 신어는 2050년까지 일반화될 예정이었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듯하다, 승리는 고사하고. 표준 영어에 내재된 오랜 인문주의적 사고방식은 계속되어 왔고, 살아남았으며, 궁극적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대변하는 사회와 도덕적 질서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회복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이 토머스 핀천의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좀 길지만 매우 중요한 내용이므로 원문과 함께 그대로 인용한다.
But strangely, it is not quite the end. We turn the page to find appended what seems to be some kind of critical essay, "The Principles of Newspeak". We remember that at the beginning, we were given the option, by way of a footnote, to turn to the back of the book and read it. Some readers do this, and some don't - we might see it nowadays as an early example of hypertext. Back in 1948, this final section apparently bothered the American Book-of-the-Month Club enough for them to demand that it be cut, along with the chapters quoted from Emmanuel Goldstein's book, as a condition of acceptance by the club. Though he stood to lose at least 40,000 in American sales, Orwell refused to make the changes, telling his agent, "A book is built up as a balanced structure and one cannot simply remove large chunks here and there unless one is ready to recast the whole thing . . . I really cannot allow my work to be mucked about beyond a certain point, and I doubt whether it even pays in the long run." Three weeks later the BOMC relented, but the question remains, why end a novel as passionate, violent and dark as this one with what appears to be a scholarly appendix?
The answer may lie in simple grammar. From its first sentence, "The Principles of Newspeak" is written consistently in the past tense, as if to suggest some later piece of history, post-1984, in which Newspeak has become literally a thing of the past - as if in some way the anonymous author of this piece is by now free to discuss, critically and objectively, the political system of which Newspeak was, in its time, the essence. Moreover, it is our own pre-Newspeak English language that is being used to write the essay. Newspeak was supposed to have become general by 2050, and yet it appears that it did not last that long, let alone triumph, that the ancient humanistic ways of thinking inherent in standard English have persisted, survived, and ultimately prevailed, and that perhaps the social and moral order it speaks for has even, somehow, been restored.
4월의 밝고 추운 날, 시계는 열세 번을 치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그 말을 보자 살고 싶은 욕망이 그 안에 솟구쳤고, 사소한 위험의 감수 따위가 갑자기 어리석게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