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00년대 초반 정책 용어로 등장한 ‘돌봄’은 고령화와 핵가족화 속에서 필요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누구나 필요하지만 누구도 맡기 싫은 일’처럼 취급된다. 자녀 돌봄도 예외가 아니어서 초등 학원이 사실상 돌봄 기능을 대신하고, 정권 변화 때마다 학교 돌봄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며 ‘돌봄은 교육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선 긋기 역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누가 맡을 것인가’만을 두고 논쟁하는 사이 정작 놓쳐 온 물음이 있다. 돌봄이란 무엇이며 하루 종일 촘촘한 돌봄을 받는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커지는 현실적 중요성 속에서 아이들의 돌봄과 우리의 돌봄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를 담아 오늘의 돌봄 인식과 구조를 되짚는 의미 있는 시도를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2000년대 초반, ‘돌봄’이라는 일상적이면서도 다소 추상적인 말이 정책 용어가 되어 우리 사회 전반에 등장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고령화, 핵가족화 같은 사회 변화로 돌봄의 필요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돌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모순적이다.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다들 하고 싶지 않은’ 허드렛일처럼 여기며 사람들은 누군가를 돌보느라 보내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자녀 돌봄도 예외가 아니다. 초등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은 사실상 돌봄 기능을 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의 돌봄을 둘러싸고 논란도 일어난다. 학교로 돌봄 요구가 쏟아지면서 교사들은 ‘돌봄은 교육의 영역이 아니’라고 선을 긋기도 한다. 이 돌봄을 ‘누가 맡을 것인가’를 두고 요란하게 논쟁하는 사이 놓친 질문이 있다. 돌봄이란 무엇일까. 하루 종일 촘촘한 ‘돌봄’을 받고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돌봄, 우리의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놀이가 무목적성과 자발성, 아동 주도성을 가진 것이라면, 이들의 일과는 목적이 뚜렷하고 성인에 의해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으며 아동은 수동적 학습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정확히 그 반대편에 있다. 문제는 이렇게 촘촘한 초등학생의 스케줄이 맞벌이 양육자의 어쩔 수 없는 돌봄 공백이나 과열된 학습 경쟁으로 인한 ‘학원 뺑뺑이’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 양육자들이 예체능 교육과 각종 체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여하튼 입시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 남들이 시키니까 나도 시켜야 한다는 불안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녀가 다른 이와 차별화된 존재가 되도록 돕는 일이 ‘단독성들의 사회’에 필수적이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_ 초등 돌봄에 침투한 ‘잔인한 낙관’ (이설기)
초등 교사들이 학교 돌봄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 시간 동안 안전사고 등의 책임이 전적으로 교사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교사들은 악성 민원이나 아동학대 신고에 시달릴 확률이 높아진다. (...) 이런 학교의 현실에서 교사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정규 수업을 늘리자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교사들이 사기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새롭게 열심히 해볼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교사들을 존중하지 않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 문
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학교 안으로 들어온 돌봄 문제를 쉽게 풀어갈 수 없을 것이다. _ 학교 안으로 들어온 돌봄, 어떻게 풀어갈까 (홍인기)
돌봄을 시간 단위의 서비스로 이해하면, 아이는 어느 장소든 그저 맡겨졌다가 데려가는 존재로 축소된다. 여기저기 ‘맡겨지는’ 존재가 된 아이들은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이 데려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 관리나 안전 확보가 아니라 아이의 신호에 응답하고 아이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성장을 돕는 행위다. (...) ‘관계적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좋은 돌봄이란 돌봄받는 이의 요구와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돌봄은 온전하다 말할 수 없다. _ 좋은 돌봄의 조건 (장희숙)
목차
엮은이의 말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_ 장희숙
1부_ 교육과 돌봄, 그 경계에서
맞벌이 시대의 돌봄_ 안유림
초등 돌봄에 침투한 ‘잔인한 낙관’_ 이설기
교육과 돌봄을 통합한 독일 전일제학교_ 이수자
‘어린이식당’이라는 돌봄공동체_ 편집실
학교 안으로 들어온 돌봄, 어떻게 풀어갈까_ 홍인기
좋은 돌봄의 조건_ 장희숙
2부_ 돌봄사회로 가는 길
한국 사회는 돌봄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_ 송민이
‘효녀 되기’를 거부함_ 홍재희
가족과 성별을 넘어 돌봄을 재구성하기_ 추주희
AI가 우리를 돌볼 수 있을까_ 유경아
돌봄이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것_ 밀턴 마이어로프
자기 돌봄의 또 다른 이름, 자립_ 김다희
또 하나의 창
중학생이 말하는 청소년 극우화의 원인과 대처법_ 서부건
특별 기고
트럼프 시대, 미국의 대안학교와 홈스쿨링 운동의 현주소_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세상 읽기
한국 기독교의 보수화와 기독교대안학교_ 현병호
교사 일기
아이들은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랍니다_ 차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