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경남에서 활동 중인 박영민 소설가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소설집 『빅 마마』를 창연산문선 12번으로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단편소설 「소리 없는 아우성」 외 단편소설 6편, 중편소설 「빅 마마」,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2편, 단편소설 7편 등 총 9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출판사 리뷰
경남에서 활동 중인 박영민 소설가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소설집 『빅 마마』를 창연산문선 12번으로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단편소설 「소리 없는 아우성」 외 단편소설 6편, 중편소설 「빅 마마」,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2편, 단편소설 7편 등 총 9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그리고 문학평론가인 강난경 소설가의 해설 ‘인간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파헤치다’가 실려 있다. 강난경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이번 박영민 작가의 소설집은 7편의 단편과 2편의 중편으로 구성되었다. 단편의 특징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한 장면의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이라면 중편은 조금 더 깊이 있는 인물 묘사와 사건 전개로 한 사람의 변화나 한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박영민 작가는 그동안 주로 단편을 써오면서 사회의 아웃사이드로 불리는 인간 삶의 한계점에 서 있는 이들을 다루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가 모르거나, 또는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던 헐벗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적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작품들로 평가된다.”라고 말했다.
[서평]
모두가 깜깜한 절망의 상태에서 끝난다면 무슨 재미로 문학과 예술을 돌아보겠는가? 현실이 비록 어렵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흙탕물 연못에도 청순한 연꽃잎 하나 정도는 띄워놓아야 언젠가는 깨끗한 연꽃이 피리라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번 소설집에 소개된 작품 외에도 평소 박영민 작가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으로 그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평하라면 ‘소리 없이 전진하는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주위에 많은 작가들이 처음에는 소설가라고 떠들다가도 어느 날부터 조용해지는 경우를 제법 보았다. 이렇게 박영민 작가처럼 물고 늘어지는 작가는 드물다. 연년이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 발표가 늘어나는 것에 더해 글 쓰는 방식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것은 독서를 많이 하고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깊은 생각을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무쪼록 오랫동안 좋은 작가로 남기 바란다.
- 강난경(문학평론가·소설가)
인간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파헤치다
강난경(문학평론가·소설가)
이번 박영민 작가의 소설집은 7편의 단편과 2편의 중편으로 구성되었다. 단편의 특징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한 장면의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이라면 중편은 조금 더 깊이 있는 인물 묘사와 사건 전개로 한 사람의 변화나 한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박영민 작가는 그동안 주로 단편을 써오면서 사회의 아웃사이드로 불리는 인간 삶의 한계점에 서 있는 이들을 다루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가 모르거나, 또는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던 헐벗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적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작품들로 평가된다.
이번에 발표한 작품 가운데 단편부터 순서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있다. 현대 들어 직업병 가운데 전자파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면서 그들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도 언론 등을 통해 점차 커지고 있으나 제대로 보상이 이루어지고 치료받았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정하지 않았나 싶다. 이 소설의 주인공 ‘그’는 육십 대 후반으로 이단에 빠진 아내와 이혼했고, 다니던 전자 부품 중소기업에서 전자파로 인해 이름도 알 수 없는 병으로 퇴직하고 혼자 외롭게 살고 있다. 입사 8개월 만에 신체의 이상 증세로 그만둔 회사여서 전자 부품 제조로 인한 병이라는 추측만 할 뿐 직장이나 병원에서 증명할 방법이 없어 치료비조차 받아내기 어려웠고 다른 직장을 구하지도 못해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다 보니 생활비조차 힘에 버거울 정도다. 혼자 사는 집에서 전자제품을 몸 가까이 두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자니까 TV, 냉장고, 전기밥통, 스마트폰 등 생활필수품에 가까운 전자제품들을 가까이 두지 않고 살려니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십 대 아들이 있지만, 직업이 시원찮아서 결혼도 하지 못하고 객지에서 혼자 살고 있으니 도움을 바라지만 금전적인 문제는 말조차 꺼내기 어렵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다시 통증이나 불면증이 심해져서 걱정이 많았는데 과거 조카가 회사에 다니면서 전자파 피해를 당했다는 동네 슈퍼주인 김 씨로부터 근처 사우나 건물 옥상에 근래 들어 이동통신 3사가 통신 중계기를 설치했는데 그것이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망설이다가 사우나 건물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로 소설은 끝난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원인을 안다고 하더라도 힘없는 소시민이 대기업을 이길 수 있을까? 설령 그가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그들은 눈도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사회를 비춰 주는 거울이다. 달리 말하면 잘못된 것들을 알리고 고발하는 고발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시도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건전한 사회라면 상식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부패한 사회라면 아무리 이의를 제기하고 고발을 거듭해도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작가는 누구나 어렵다고 생각하더라도 아직은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을까? 그들이 오롯이 바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편 「바람은 숲에 머물지 않는다」에서 주인공 성진은 과거 알콜 중독으로 치료받았던 적이 있다. 다행스럽게 치료가 잘 마무리되어서 사회로 복귀하고 직장에도 다니게 된다. 과거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주위에서는 누구라도 그가 알콜 중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성진은 직장에 다니면서부터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통한다.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 직원들을 챙기며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사의 차를 대리운전하는 모습도 보여주기도 한다. 성진의 어머니는 알콜 중독의 아들 때문에 속을 태웠고 술을 끊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지만, 결과를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성진은 취직한 지 1년이 지날 무렵부터 눈이 침침해 지면서 머리가 아프고 눈도 빠질 듯 해서 진통제를 먹고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과거 알콜로 인한 증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더 불안한지도 모른다. 시간을 내어 병원에 다녀오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날도 직장에서는 회식이 있었지만,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2차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팀장의 차를 집까지 몰아주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뜻밖의 행동을 보인다. 늦은 시간 주변의 상가에서 소주를 사고 빈 생수통에 옮겨 담아 집으로 가져와 혼자 마시기 시작한다. 술이 들어가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자기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생각하며 TV 화면에 나오는 가수를 따라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소설은 끝난다.
주인공은 알콜 중독이 재발했으며 이 사실을 숨기고 직장에서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모두가 바쁜 일상으로 자신조차 들여다볼 여유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판단을 유보하고 현실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실상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산다고 하기보다는 환경이나 분위기에 동조되거나 휩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철저히 개별화된 존재들이다. 중요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책임은 결국 자신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를 댄다면 마약중독보다도 알콜 중독 재발이 더 높다는 말도 있다. 이유 중 하나는 마약은 돈이 많이 들고 구하기도 어렵지만, 알콜은 천지에 깔려있고 값도 싸다는 것이다. 살면서 노름 중독이거나 알콜 중독 등 중독에 빠지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정상이란 말이 붙어야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사람답게 산다는 말이 대수롭지 않게 들리면서도 그렇게 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다음은 단편 「길 끝에 서다」이다. 남편은 경찰이었지만 금품수수로 퇴직 후 일용직으로 전전하다가 다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고립을 자처하게 되고 결국 술만 찾다가 알콜중독자가 되어 전문병원에 강제 수용하기에 이른다. 남편이 경찰에 몸담고 있는 이상 쉽게 불의와 타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의가 아니더라도 어떤 잘못된 여지를 남기게 되면 나중에는 변명의 기회조차 어려울 수 있다. 여기서 보듯 한 가정이 일시에 허물어질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는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어 혼자 산다. 외지에서 공장을 다니던 아들은 기계에 손이 절단되어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왔으나 그동안 사귀던 보육원 출신 여성과 결혼하겠다고 말하면서 어머니와 작별을 고한다. 이후 연락하겠다던 아들은 전화조차 없고, 외톨이가 된 아내에게 어느 날 주민센터로부터 아들이 회사에서 사고 이후 보상금을 수령 했으며, 동시에 어머니의 기초생활 수급 자격도 탈락되었음을 알린다.
아내는 이웃으로부터 남편 복은 없지만 아들 복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그만큼 착하고 성실했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사고로 인한 보상금을 움켜쥐고 여자와 함께 어머니를 떠났다. 결과적으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는 어머니 자신이다. 더구나 자신의 육신조차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병든 남편까지 책임져야 하는 길 끝에 서게 되었다. 이제 어머니는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까? 그 방법이 남아있기는 할까? 부부관계도 그렇고 부자지간도 인정사정이 없어진 지 오래다. 혈연관계를 말할 때 흔히 쓰는 물보다 진하다는 피도 이제는 얼어붙어서 인간이 냉혈동물이 된 것은 아닐까?
다음은 단편 「이룰 수 없는 약속」이다. 남편은 과거 농기구 하청 업체 사장이었다. 그러나 화재로 공장을 잃고, 중고 1톤 트럭으로 과일 장사를 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을 도와서 다시 공장을 세우겠다는 약속을 굳게 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전문적인 개인 기술이 없는 그녀는 파트타임 마트 계산원으로 시작했으나 수입이 적으므로 일이 많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딸이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내는 미대를 보내기 위해 비싼 학원에 등록시키면서 밤이 늦도록 일하게 된다. 그러나 딸은 제 아빠에게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면서 엄마의 뜻대로 어떤 형식이나 틀에 맞춰서 그림을 그리니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즘 엄마가 늦게 들어오기도 하고 이튿날까지 술이 깨지 않아 아침밥도 챙겨주지 않는 날이 많다고 했다. 남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아내를 믿었으므로 밖에서 늦게까지 일하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묻기는 어려웠다. 그로부터 얼마 뒤 불안했던 생각은 현실이 되어 남편 앞에 나타났다. 아파트 입구 편의점 주인에 의해 그간 늦은 밤마다 외제 승용차에서 아내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결과를 독자들에게 넘긴다. 그 가정이 파탄이 날지, 크게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가고 다시 새출발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 제목이 ‘이룰 수 없는 약속’이라고 했으니, 부부는 갈라설 가능성이 높고 딸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대를 포기할 것이다. 제목을 ‘약속’이라고 했더라면 일부 독자는 그 가정이 어려움을 딛고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 단란했던 가정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흔들리는 과정이 안타깝다.
다음의 작품 제목은 「운명」이다. 주인공인 대학생 혜진은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새 부인을 들이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작정 가출을 결심한다. 갈 곳이 없던 그녀는 같은 과 친구 숙소로 들어간다. 그러나 혜진은 휴학했기 때문에 학교 개학하는 시기에 친구의 숙소에 같이 있을 수가 없어 궁리 끝에 채팅으로 만난 혼자 사는 남자 집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바다가 가까운 시골집을 얻어, 취직하려고 공부하는 사람으로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활비를 버는 상태였다. 남자는 친누나의 요청으로 요양원에서 임종을 기다리는 어머니 면회를 가게 되는데 혜진도 동행한다. 어머니 병문안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누나가 따라 나와서 혜진에게 남자와 결혼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다. 혜진은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 신이 허락한 운명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 고꾸라지면서 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혜진은 신경성 실신 증세로 기절한 것이다. 심신이 미약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병이다. 혜진은 새엄마가 싫다는 이유로 성급하게 집을 나왔고, 채팅 3개월의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다는 것도 정상적으로 볼 수 없다. 그냥 그대로 눌러앉아 살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상황을 끝내야 하는 것인지 어떤 각오도 없는 것 같다. 대학까지 다닌 성년으로 뚜렷한 인생관도 없이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에 일말의 동정심도 얻기 어렵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운명론을 주장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운명론은 사전적으로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 운명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같은 처지에 놓여있더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사람의 일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말했다는 ‘운명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가 생각난다. 작가는 결국 운명이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단편 「혼자 하는 놀이」는 주인공 남편의 1인칭 소설이다. 나는 직장에서 정년을 맞아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등 대사증후군 증상이 나타나고 뒤이어 우울증까지 겹치게 된다. 대인기피증이 오면서 바깥출입도 힘든 상태에서 유일한 소일거리였던 노인복지관 출입조차 어려워지자, 집에서 유일한 말동무인 아내에게 의지하려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내는 남편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지만, 잦은 외출이 이어지면서 남편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우울증은 더욱 깊어진다. 아내는 문화센터나 단체 모임에 나가면서 자신의 삶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지만, 남편은 상대적으로 삶의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 그즈음 아파트 상가에서 부동산을 하는 교회 장로를 만나게 되고 그의 인도를 받아 가까스로 교회를 다니게 되지만 장로는 암으로 딸네 집에서 항암치료를 받던 아내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내가 죽자마자 사귀던 여자와 집과 가게를 정리하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대에 있어서 결혼하고 부부로 살지만 여러 가지 사유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서류상으로만 부부로 남아있는 가정도 더러 있을 것이다. 특히 젊어서는 자녀와 함께 가정을 이루어가지만 나이가 들고 자녀가 출가하고 나면 부부간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많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노후에는 자녀들이 떠나버리고 부부 모두 외로움을 겪게 된다. 빈둥지 증후군을 겪을 때 비로소 부부의 진정한 사랑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하지만 평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내세우며 서로에게 소홀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부는 끝까지 서로를 보살피고 함께 해야 할 반려자가 아닌가? 사회가 남존여비의 잘못된 사상이 무너지고 남녀 평등의 사회로 변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부부간의 사랑이 아니겠는가? 특히 부부 한쪽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더욱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묻고 있다.
단편 마지막 작품은 「흔들리는 성」이다. 줄거리는 한 가정에 딸아이와 함께 맞벌이 부부가 살고 있다. 아이는 취학 전이라 외할머니가 돌봐주고 있다. 부부는 사랑뿐 아니라 미움까지도 함께하는 애증(愛憎)의 단계를 거치며 세월이 갈수록 더 단단해져야 하지만 아이 외할머니의 눈치 때문인지 정작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넘길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부부 사이에도 거리가 벌어져서 이제 거의 남남처럼 지내고 있다. 남편은 남편대로 선배의 직장에 스카우트되어 일에 매달려 있으며 아내 역시 어린이집에서 부족한 교사 충원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원장으로 인해 일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남편은 눈에 이상이 오면서 비문증을 겪게 되는데 심리적 원인이 큰 것으로 보인다. 비문증은 이들 부부에게 있어 소원했던 관계를 개선할 기회로 보였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들 부부는 날이 갈수록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갇혀 지내다 보니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어느 날 이대로 견디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무언가 결정을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평소와 같이 아침 출근길에 같이 차에 올라 시외로 향한다. 그리고 과거 산길에서 만났던 사찰에 들러 지난 과거를 회상하면서 서로를 돌아보게 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렵게 남편이 과거 자신이 어렸을 때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가 철길에서 열차에 부딪혀 돌아가신 이야기를 꺼낸다. 아버지를 유독 따랐던 그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충격에서 오랫동안 헤어 나올 수 없었고 나중에는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조차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아내를 만나 애를 낳고 가정까지 이룬 지금도 그에게 사랑이란 두려운 존재로 남아있다. 바쁜 업무에 더해 원인을 알 수 없는 비문증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오래전 돌아가신 그래서 이제는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아버지를 꿈에서 만나기도 했다고 말한다. 근래 들어 아내가 힘들게 지내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제야 냉랭했던 아내의 마음이 돌아서게 된다. 진작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털어놓고 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지만, 이제라도 부부는 오해가 풀리면서 서로 손을 잡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건들 가운데 소통 부족이 원인이 된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이 모이는 곳 어디서나 소통이 필요하다. 우리는 타인과는 소통을 통해 각자의 필요를 채워가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과는 소통을 소홀히 할 경우가 많다.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알아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같이 살지만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섣불리 눈에 띄지 않는 심리적인 부분을 파고드는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번에는 중편소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중편소설 「빅 마마」에서는 남편을 일찍 여위고 1남 3녀를 억척같이 키워낸 손정희 여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거 6·25전쟁으로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평범하지 않은 것은 어렵고 힘든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녀들을 키워냈다는 것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손 여사에게는 1남 3녀가 있다. 장녀 미란을 비롯하여 둘째 미영, 셋째 미혜, 그리고 막내아들 창우가 있다. 막내아들 창우가 결혼 20주년을 앞둔 시점이니 손 여사는 늙고 병들어 노쇠한 가운데 시골에서 혼자 살기가 어려워지자, 자녀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된다.
손 여사는 과거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학교에서는 해외연수까지 제안할 정도로 인재이기도 했지만,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일찍 결혼하게 된다. 남편은 당시 잘 나가던 지방신문 기자였는데 아내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못된 짓을 일삼다가 당시 사회악 일소를 위한 불량 사범 일제 단속에 걸려 교도소에 수감 되었다가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게 된다. 이후 부모의 재산으로 사업을 벌이지만 실패를 거듭하다가 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는다. 그때 막내 창우가 4살이었다. 그로부터 시작된 손 여사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킨 이후까지 계속되었다. 돈 없고 힘없는 과부의 몸으로 네 자녀를 출가시키기까지 어떻게 살았을지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손 여사는 이미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손발이 저리고 눈이 침침해진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치매까지 더해져서 혼자 시골에서 지내기는 어려웠지만 누구도 모실 만한 처지가 되지 못하자 가족회의를 거쳐 요양병원으로 옮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 여사는 정신이 흐려지고 시력도 급격히 나빠지면서 당뇨 합병증인 족부궤양으로 심하면 발을 절단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즈음 손 여사가 큰딸에게 전화를 걸어 요새 네 아버지가 자주 꿈에 보인다면서 이제 만날 때가 된 것 같은데 내가 더 정신이 나가기 전에 집에 가서 정리를 좀 해야겠다고 한다. 이참에 수의도 장만하고 영정 사진도 찍어야겠다고 한다. 다시 가족회의가 열리고 병원의 허락을 받아 하룻밤 시골집에 모시기로 한다. 미리 수의를 장만하고 사진사를 불러 영정 사진을 찍으면서 손주들까지 모두가 함께 단체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리고 날을 잡아 병원에서 집으로 모시고 와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셋째 딸 미혜 남편은 과거 뮤지션이었으나, 지금은 부부가 치킨 가게를 하고 있어 주말에는 주문이 밀려 시간을 빼기 어려웠으나 손 여사가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 미혜 부부가 차량에 치킨과 닭백숙을 싣고 나타난다. 장사는 쉬기로 했으며 어머니와 참석한 이들의 음식을 준비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혜 남편이 그동안 시간 날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며 작곡했다면서 기타를 치면서 잔잔하게 노래를 들려준다. 마루와 마당에서 그들은 음악을 들으며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고 가족의 형태가 다변화되는 시대에 다시 곱씹어 볼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아직도 유교 사상이 일상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우리로서는 사회질서의 핵심 가치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할 때다. 특히 부모와 자녀의 유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손정희 여사의 삶은 빅 마마로서 자녀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자녀들 역시 그런 어머니의 삶에서 깨달은 것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중편의 마지막 작품은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이다.
한 교회가 반듯하게 반석 위에 서기까지를 생각하면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생각나게 한다. 참 어렵고도 힘든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눈물 없이는 교회를 세울 수가 없다. 목회자 한 사람도 그냥 되는 수가 없다. 윤재구 목사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을 하고 도회지의 좋은 자리를 미련 없이 버리고 어렵게 개척한 샛별교회가 주 무대다. 교회는 3년을 넘기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교회 차량을 운행하던 신주영 집사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윤 목사는 주일 낮 예배 후 임원 회의를 소집하여 사고를 알리고 해결 방안을 의논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젊은 아들은 아버지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입원하면서 진단 결과에 따른 장기간의 치료와 가해자의 보상 등을 주장하면서 언성을 높인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현실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성경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평소 샛별교회 교인들의 일상이 소개된다. 크리스천은 주일이면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신앙심을 키워가지만 정작 신앙을 실천하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 또는 자신의 사업체가 된다. 일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앙 정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장애인을 고용한 지류회사 영업부장 강진수 집사, 과거 전자제품 대리점을 하면서 재정부장을 맡았던 최수찬 장로, 그는 대장암을 극복했던 과거가 있다. 아버지의 중풍으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요양보호사인 나영미 권사, 자녀를 갖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태어난 신주영 집사, 그는 회사 자금을 횡령하는 등 어머니를 힘들게 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정신을 차렸다. 부동산을 하는 최수찬 장로 등이 등장하면서 평소 생활에서 신앙심을 알 수 있는 각자의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다.
각자의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획일화할 수 없다. 성경 해석의 다양성도 그렇지만, 살아온 방식이나 영적 체험 여부도 한몫하고 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개인적 경험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공통된 신앙을 중심으로 연합을 추구하는 성도들은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를 두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작가는 개인의 신앙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총 9개 중단편을 모두 읽었다. 단편 7편은 읽고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대개가 암담한 현실에서 마무리되어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앞일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중편 두 작품은 마무리가 산뜻하다. 출연자들의 인간미가 엿보이고 앞으로 더욱 밝아질 것으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해피앤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소설의 줄거리가 어둡게 끝나더라도 다시 밝아질 길을 조금이라도 열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쓰고, 꿈도 꾸지, 모두가 깜깜한 절망의 상태에서 끝난다면 무슨 재미로 문학과 예술을 돌아보겠는가? 현실이 비록 어렵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흙탕물 연못에도 청순한 연꽃잎 하나 정도는 띄워놓아야 언젠가는 깨끗한 연꽃이 피리라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번 소설집에 소개된 작품 외에도 평소 박영민 작가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으로 그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평하라면 ‘소리 없이 전진하는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주위에 많은 작가들이 처음에는 소설가라고 떠들다가도 어느 날부터 조용해지는 경우를 제법 보았다. 이렇게 박영민 작가처럼 물고 늘어지는 작가는 드물다. 연년이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 발표가 늘어나는 것에 더해 글 쓰는 방식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것은 독서를 많이 하고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깊은 생각을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무쪼록 오랫동안 좋은 작가로 남기 바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영민
경남 마산 출생. 2016년 9월 계간지 《코스모스문학》에 단편소설 「거미집」으로 등단. 경남문인협회, 경남소설가협회, 마산문인협회 회원 산문집 『밤 배가 머물렀던 자리』 (2015), 소설집 『낮달, 하늘에서 길을 잃다』 (2022), 『빅 마마』 (2025)
목차
■작가의 말6
단편소설
소리 없는 아우성10
바람은 숲에 머물지 않는다24
길 끝에 서다36
이룰 수 없는 약속54
운명(運命)70
혼자하는 놀이89
흔들리는 성(城)105
중편소설
빅 마마120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190
■작품 해설
인간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파헤치다261
- 강난경(문학평론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