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슬프고 충격적인 소식이 너무 많아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던 2014년도 어느덧 마지막입니다. 누군가에겐 평생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모진 기억은 무심하게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우리에게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미 피로하고 진부해진 고통과 상처들은 우리 사회의 정의와 희망이 얼마나 희미해지고 나약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이미 일어난 사고 앞에서 우리는 모두 절망하고 갈등했으며, 서로를 비판하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능을 경험했습니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누군가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노력과 돈이 낭비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정의로운가요? 진정한 ‘우리’를 위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책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인디고잉> 45호에는 포기하지 않고 정의의 편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매 순간 가장 적절한 윤리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목회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말합니다. 우리가 맞서야 하는 것은 부패한 강자나 타락한 권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만족하거나 지치고 포기하여 제 역할을 다하지 않는 무수한 우리의 무책임입니다.
고통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 이해하거나 나아지길 소망하는 것은 쉽지만, 그 곁에 남아서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욕심과 냉소, 무관심을 무너뜨리고 이 세계에 생명에 대한 존중과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도록 애쓰는 일만이 고통들에 응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인디고잉> 45호 “끝까지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에는 여성 교육의 꿈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최연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이야기가 담긴 『나는 말랄라』, 사라져 가는 소중한 꿈의 이야기 『그 꿈들』, 학교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증언하는 『학교의 슬픔』, 현재의 문제를 역사와 국제적 관계를 통해 이해하도록 돕는 『르몽드 인문학』 등을 읽고 “말하지 못한, 그 꿈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삶”, “Who is Next 말랄라”. “진실을 향한 용기” 등의 기사를 담았습니다. 인디고 서원에서 공부했던 2015년 수능 만점자 이동헌 학생의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인문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의미 있는 발언도 함께 실었습니다.
1964년 한 잡지의 창간사에는 “국민에게 뜻을 발표할 입이 있고 막힌 가슴을 대변할 양심의 소리가 있을 때 악의 독재자도 결코 부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먼 과거의 의지는 오늘날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당장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 이상으로 끝끝내 진실과 정의의 편에서 정복당하지 않을 힘을 길러내는 것, 새로운 세대의 양심이 되어 정의로운 이들을 결코 고독하게 하지 않는 것. 바라건대 저버리지 마시고 이 길을 함께 걸어주시길 바랍니다.
청소년 칼럼
포기하지 않는 삶
성지민(18세)
학교에서 큰 행사를 치렀다. 전교 학생회장과 부회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친구 선거 유세를 도와주었고, 참모 대표 참관인으로 선거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관할 수 있었다. 선거하기 전부터 공정하게 잘 치러질까 걱정이 많았던 때문인지 후보들, 참관인들 모두 다 열심히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선거는 매우 공정하게 이루어졌고, 결과도 바로 그 자리에서 학생선거관리위원들이 개표한 결과로 나왔다. “우리 학교가 웬일이지?”하며 의외로 공정하게 치러진 선거에 마음이 참 좋았다.
그런데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선거 2주 전, 수능이 끝난 3학년 선배가 모든 선생님들 책상에 편지를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그 선배는 익명으로, 이번에도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지 않으면 교육청에 신고할 것이라고 선생님들께 경고했다. 학생부장 선생님께서는 학생회를 불러, ‘쓸데없는 영웅 심리에 휩싸여서 이런 일을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누구인지만 알면 대학이라도 떨어지게 만들고 싶은데 찾을 방법이 없다. 너희도 이런 일을 하면 징계를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처음 한 선배가 그런 편지를 썼다는 것을 듣고 그 용기에 감동했지만, 뒤이어 학생부장 선생님의 말을 전해 들으니 머리가 멍해진 기분이었다. 도대체 ‘공정함’을 요구하는 것이 왜 쓸데없는 영웅 심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마치 그 편지가 없었더라면 공정하지 않게 선거를 할 것이라는 듯이 들렸다. ‘이런 학교에서 내가 무엇을 배운다고 아침 7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있지?’라는 회의감이 제일 크게 느껴졌다.
이번 선거뿐만 아니라, 학교에 있다 보면 내가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공부를 나보다 열심히 하지 않은 친구가 시험을 잘 치면 기분이 꿍해져서 친구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지 못할 때나, 다 같이 청소하는데 책을 들고 다른 곳으로 가 공부를 하려는 아이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못할 때나, 시험기간에 남이 나보다 못 치기를 바랄 때 내가, 우리들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진다. 마치 내가 한 마리의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학교에 있다 보면, 내가 평소에 생각해오던 가치들과 동떨어져 있는 나의 삶을 볼 때가 많다. 상황이 절망스럽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도 많다. 어떨 때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종종 든다. 하지만 학교에서, 스스로 나를 ‘괴물’로 만들어 가는 이 현실에서 2년 동안 생활하며 생각한 것이 있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삶’은 중요한 것이라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났을 때 끝까지 내 힘으로 풀어보려고 끙끙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 또 현재 내 모습에 떳떳이 살아갈 수 있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짜증 나는 상황에서 ‘이럴 수밖에 없었어’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독일의 목회자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의 핍박으로 갇힌 감옥에서 쓴 『옥중서간』에서 “끝까지 서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아이티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있는 의사 폴 파머는 합리성만을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고 답한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서로 무능하다고 비판하고 갈등에 지쳐버려 결국 강자 앞에 무너지거나 스스로 포기한다. 하지만 진짜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기꺼이 비이성적이고 고집불통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도전하고, 용감하게 계속 걸어가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폴 파머는 자신이 ‘희망의 편에 끝까지 서 있는 사람’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말했다. 나 또한 다가오는 19살을 ‘나’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떳떳이 살아가고 싶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나의 정의로운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면, 결국에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나의 개인적, 일상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2014년이 이미 다 가버렸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모두가 같이 생각해야 할 문제들도 역시 포기하지 않겠다. 그것까지가 내가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R통신
말하지 못한, 그 꿈들
정리 최지민(15세), 김상원(22세)
국어사전에 ‘꿈’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또는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같은 단어이지만 갖고 있는 뜻의 차이는 아주 크지요. 세상 사람들이 꿈을 하나씩만 갖고 있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약 70억 개의 꿈들이 존재합니다. 소박한 것부터 거창한 것까지 꿈들은 실현 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때때로는 헛된 기대나 공상이기도 합니다.
박기범 작가의 그림동화 『그 꿈들』에는 이라크 전쟁 당시 포화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아이부터 그저 가족과 다시 함께 살고 싶은 할아버지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들의 꿈에 대해 듣는 일은 뉴스를 통해 폭탄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는 것보다 훨씬 생생하게 전쟁의 참혹함과 악랄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한편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현실적인 꿈을 꾸라고 말합니다. 대학에 진학하여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일은 우리나라 청소년에게 모두가 권하는 이상적인 미래입니다. 어린아이가 “전 커서 대통령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흐뭇해 하던 어른들은 다 어디 가고, 평범한 삶이나 꿈꾸라며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 “대학이나 갈 수 있겠냐”며 한심해 합니다.
누군가에겐 꿈이 크고 멋진 상상의 세계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당장의 배고픔이고 누구나 누려야 하는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꿈들은 너무나 멀리 있어 말하지도 못한 채 사라져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 세상엔 꿈을 말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걸까요?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또 이 꿈들이 이뤄질 수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이들의 꿈은 과연 무엇일지 상상해보았습니다.
목차
★꿈꾸지 않는 자는 청년이 아니다
청소년 칼럼 포기하지 않는 삶 · 성지민
I’m dreaming 동화 같은 세상? 동화보다 좋은 세상! · 성지민
시가 내게로 왔다 우리는 모두 꽃이야 · 박경민
한 줄 사전 훌륭한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입니까?· 최지민
★나를 만나다
나를 찾아가다 인류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요? · 박진영, 김상원, 정다은
학교의 슬픔 이름 되찾기 · 김은비
영원한 소년 화석의 온기, 과학의 온기 · 윤신영
내가 만난 영원한 소년 자유롭고 책임 있는 삶 · 김상원
박용준의 아포리즘 복잡하게 말해줘 · 박용준
★세계와 소통하다
R통신 말하지 못한, 그 꿈들 · 최지민, 김상원
우리는 어떻게 세계를 바꿀 것인가? · 김상원
끝까지 희망에 책임지는 세대 · 인디고 연구소 InK
S통신 Who Is Next 말랄라? · 조은서, 이혜진
사서함 B612호 사랑은 돌고 돈다 · 브라이언 파머
★행복한 책읽기
인디고, 책을 말하다 문학이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 박진영, 이창희, 한희주, 김상원
키워드, 시대와 소통하다 학교를 바꾸는 우리들의 시선 · 김기환, 김은비, 박경민, 성지민, 정성엽
제75회 주제와 변주 세계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일 · 김상원
시詩, 말言의 사원寺에서 즐겁게 소통하기, 그 서른두 번째 이야기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은 ‘너’ · 정은귀
학교의 추억 대표이사 · 설흔
PAPERS 왜 나쁜 일들이 벌어질까? · 김광민
모아이가 이스터 섬 씨족들에게 · 강민지
INDIGO+ing 45호 함께 읽은 책들
★더불어 실천하다
2014 정세청세 내년에도 정세청세 하나요? · 이혜진
에코토피아 뉴스 저토록 단단한 고요 · 김수연
월드체인징 어떤 세제를 사용하는 것이 친환경적일까요? · 한희주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저는 2015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았습니다 · 이동헌
어리숙한 수상소감 · 노순택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디고 시네마 파라디소 진실을 향한 용기 · 박경민, 윤시운
영혼을 바라보는 창 쎈 바람이 붑니다 · 임종진
공감 능력 키우기 살레의 꿈 · 최지민
인디고 정원에서 기찻길에서 · 유진재
인디고 러브레터 바라건대 버리지 말고 끝내 아껴주세요 · 이윤영
인디고 서원 책소식
<인디고잉> 기자 편집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