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대곡집》은 대곡 성운의 문집이다. 이 《역주 대곡집》은 상현서원에서 간행한 《대곡집》 3책을 충실히 번역하여 원문과 함께 싣고, 《대곡집》에 포함되지 못했던 성운 관련 글 17편을 추가하였다. 아울러 대곡과 관련한 유적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성운1497년(연산군 3) 서울에서 태어났다. 자는 건숙, 호는 대곡·허부·삼산병인이고, 본관은 창녕이다. 모친의 권유로 1531년(중종 26)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응시하여 모두 합격하여 성균관에 선발되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곧 집으로 돌아왔고, 이후 1542년(중종 37)에 조정 대신들의 추천으로 사직서 참봉 등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출판사 리뷰
《대곡집(大谷集)》은 대곡(大谷) 성운(成運)의 문집이다. 이 《역주 대곡집(譯註 大谷集)》은 상현서원에서 간행한 《대곡집(大谷集)》 3책을 충실히 번역하여 원문과 함께 싣고, 《대곡집》에 포함되지 못했던 성운 관련 글 17편을 추가하였다. 아울러 대곡과 관련한 유적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성운(成運)1497년(연산군 3) 서울에서 태어났다. 자는 건숙(健叔), 호는 대곡(大谷)·허부(虛父)·삼산병인(三山病人)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모친의 권유로 1531년(중종 26)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응시하여 모두 합격하여 성균관에 선발되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곧 집으로 돌아왔고, 이후 1542년(중종 37)에 조정 대신들의 추천으로 사직서 참봉 등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545년(명종 즉위년) 중형 성우(成遇)가 을사사화로 화를 입은 이후에는 과거를 포기하고 처향(妻鄕)인 보은 종곡(鍾谷)에 내려와 대곡서실(大谷書室)을 짓고 평생을 이곳에 은거하였다. 성운은 일생의 대부분을 보은땅에 은거하면서 학문 활동을 하였고, 조식(曺植)·이지함(李之)·성제원(成悌元)·서경덕(徐敬德) 등과 깊은 교분을 쌓으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성운의 학풍은 성리학자로서의 마음의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고 있으나, 은일적(隱逸的)·노장적(老壯的)인 경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성운은 당대 및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온화하고 엄정하게 처사의 입지를 지킨 전형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저자의 시문은 1596년(선조 29) 저자의 문인이며 처질(妻姪)로 시양자(侍養子)가 된 김가기(金可幾)가 유고를 수집하여 간행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아들이자 상현서원 5대 원장 김덕민(金德民)이 1603년 충청도관찰사 유근(柳根)의 도움으로 3권 1책의 목판본 《대곡집》을 간행하였다.
《대곡집》은 본집 3권과 사제문(賜祭文)을 합하여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유근의 서문이 있으며, 권상(卷上)은 시, 권중(卷中)은 시와 잡저, 권하(卷下)는 갈명·제문이다. 권상에는 240여 수의 시가 시체의 구분 없이 실려 있다. 권중에는 오언장편 2수와 잡저가 실려 있다. 권하에는 갈명 4편과 제문 3편이다. 권미에는 부록으로 1597년 6월 선조가 대곡의 상중(喪中)에 내린 사제문이 실려 있다.
이 《역주 대곡집》은 단순한 문집 번역서를 넘어 조선조 대표 사림의 한 분인 대곡 성운의 사상과 생애 및 정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보은 지역 선비문화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성운
1497년(연산군3)~1579년(선조12).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숙(健叔), 호는 대곡(大谷)이다. 조식(曺植), 서경덕(徐敬德), 이지함(李之菡) 등과 교유하였다. 1531년(중종26)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연이은 사화(士禍)에 낙담하고 보은(報恩)의 종곡(鍾谷)에 은거하였다. 그 뒤로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태도를 견지하여 산림처사(山林處士)의 전형으로 꼽힌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목차
‘역주 대곡집’을 엮으며
大谷集
<序>
大谷集 卷之上
<詩>
大谷集 卷之中
<詩>
<雜著>
大谷集 卷之下
<碣銘>
<祭文>
<賜祭文>
附錄
<大谷의 詩>
<行狀 외>
대곡 관련 유적
1. 모현암
2. 대곡 성운 묘소 및 묘갈
3. 상현서원
4. 금화서원
5. 물계서원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