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라임 청소년 문학 54권. ‘페미니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청소년 소설이다. 교내에서 일어난 은밀한 성추행과 SNS상의 괴롭힘이 학폭으로 둔갑하여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렸다.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성차별주의적 편견을 조목조목 짚어 내는 것은 물론이고 페미니즘의 정의, 양상, 그리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과 갈등까지 착실하게 담아냈다. 이와 함께 세상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세상의 모든 차별과 편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해 준다. 혐오와 대립이 아니라 평등과 공존을 향해 생각의 가지를 뻗게 해 주는,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이다.
출판사 리뷰
학교와 SNS상에서 악의적인 괴롭힘을 당한 아멜린이
오히려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 전학을 간다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_뻔뻔하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진짜 가해자, 폴
“너무나 수치스러워서 차마 다 말하지 못했어.”
_정당방위가 학폭으로 둔갑한 사건의 피해자, 아멜린
“불의를 보고 분노만 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어. 행동해야 해.”
_사건의 실체를 알고 진실을 파헤치는 신문 동아리 기자, 라셸
세상의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차별에 당당히 맞서며
자기 삶의 주도권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묵직한 돌직구!
혐오와 갈등의 시대에 전하는 화해과 공존에 대한 이야기
페미니즘……, 한 단어에 이토록 많은 오해와 첨예한 갈등이 담긴 적이 있을까?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 궁극적으로 성 평등을 주장하는 이론이 어쩌다 혐오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걸까?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주의나 남성 혐오주의로 인식하는 남성 청소년의 비율이 30% 정도나 된다고 한다. 성 평등에 대한 인식 또한 남성과 여성의 격차가 심화되는 추세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페미니즘을 정쟁에 이용하여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어른들의 행태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이 입고 있는 모양새다. 그릇된 선입견과 혐오 표현으로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이 단어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 코로나 19로 인해 정치경제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는 이때,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다.
《할 말 있어요》는 이러한 ‘페미니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청소년 소설이다. 교내에서 일어난 은밀한 성추행과 SNS상의 괴롭힘이 학폭으로 둔갑하여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렸다.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성차별주의적 편견을 조목조목 짚어 내는 것은 물론이고 페미니즘의 정의, 양상, 그리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과 갈등까지 착실하게 담아냈다. 이와 함께 세상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세상의 모든 차별과 편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해 준다. 혐오와 대립이 아니라 평등과 공존을 향해 생각의 가지를 뻗게 해 주는,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러한 불의에 결코 동의해서는 안 됩니다!”
분노한 소녀들,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다!
지루한 학교 신문 동아리에서 별 의욕 없이 기자로 활동 중이던 모범생 라셸은 어느 날, 절친 마르탱으로부터 특종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공공연하게 질 나쁜 행동을 하던 남학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아멜린이 정당방위로 한 행동 때문에 선도 위원회에 학폭 사건으로 회부된 것도 모자라 전학 처분을 받았다는 것! 라셸은 분개하며 아멜린에게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인터뷰를 제안한다. 그리고 아멜린과의 만남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완전히 뒤바뀐 사건의 실체를 알고 강렬한 분노에 휩싸인다.
라셸은 학교 측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업 거부 운동’이라는 대담한 아이디어를 추진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아이들은 이를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기회 정도로 생각하며 도무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 여기며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도 학술 동아리를 휘어잡고 있는 마농을 필두로 한 여학생들이 동참하면서 라셸의 운동은 점차 활기를 띤다. 그들은 아멜린의 사건은 물론이고 그동안 학교 측의 성차별적인 대우에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기에 이를 공론화하고 바로잡기 위해 힘을 모은 것이다. 일부 선생님과 급식실 조리사들의 동참으로 반짝 힘을 얻었던 수업 거부 운동은 결국 학교 측의 압력으로 중지되고 만다.
이에 마농은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관철시키기 위해 주말 동안 학교를 점거할 계획을 세운다.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는 것을 꺼리던 라셸은 가해자인 폴이 반성은커녕 자기가 피해자인 듯이 구는 모습에 심사가 뒤틀려 점거 농성에 동참하게 된다. 이들의 학교 점거 농성은 사람들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온라인에서 회자되며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학교 측은 이들과의 협상이 무산되자 점거 농성을 끝낸다는 명목으로 경찰을 투입하고, 이 과정에서 라셸은 클라라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잘못도 없이 과하게 제압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라셸 무리의 운동이 맥없이 끝나려는 순간, 학생들의 비폭력 시위에 경찰을 동원한 학교 측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분위기가 반전되는데…….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변화를 만들어 갈 테니까.”
《할 말 있어요》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정도가 다른 다양한 아이들의 입장을 현실적으로 보여 준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생각이라고 주장하는 입장, 무엇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막연히 두려워하며 꺼리는 입장, 서로 반대되는 의견 모두 타당한 구석이 있는 듯해 매번 생각이 바뀌는 입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삶 속에 녹여 내어 행동하는 입장 등…….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생각이 누구와 비슷한지, 어디쯤에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 또한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찬찬히 들여다보며 탐색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주인공인 라셸은 독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공감과 몰입이 수월하다. 대학 입시와 엄마와의 갈등이 가장 큰 고민거리인 평범한 여고생으로, 딱히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드높인 적도 없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의식도 없다. 또 여성으로서 (아직은, 혹은 다행히도) 차별받거나 희롱당한 적 없고, ‘이 세상 여성들이 겪는 일의 절반도 채 알지 못하’기에 여성 운동에 앞장설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라셸은 아멜린이 겪은 끔찍한 사건과 전학 처분이 부당하다는 생각에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고서 진실을 밝히고자 앞장서며 놀라우리만치 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건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모순적인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다가 마침내 자신에 대한 의심을 떨치고 단단하게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와 용기를 선사한다. 또한 라셸을 비롯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고 밀어붙이기보다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수정하고 보완하며 주관을 다듬고 정립해 가는데, 이런 유연한 태도와 건강한 토론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롤 모델이 될 것이다.
《할 말 있어요》는 페미니즘, 세상의 선입견, 일상과 무의식중에 녹아 있는 차별을 둘러싼 여러 질문에 사려 깊은 대답을 전하고자 애쓰는 소설이다. 첨예한 이슈를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오해를 바로잡는 한편, 남들이 내뱉는 혐오의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한 토대 위에 세운 굳건한 주관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힘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와 함께 타인과의 연대야말로 우리의 힘이며, 작게나마 승리하는 경험의 축적이 사람을 얼마나 눈부시게 성장하는지를 뜨거운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수업 거부 운동
올랭프 드 구주 고등학교의 여학생들은 학교 측으로부터 공공연하게 남학생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에 부글부글 끓는 중이다. 신문 동아리에서 기자 활동을 하고 있는 라셸은 절친 마르탱으로부터 이러한 부당한 대우에 기름을 붓는 특종거리를 전해 듣는다. 동급생인 아멜린이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해 정당방위를 행사했는데, 오히려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되어 전학 조치를 받았다는 것이다. 라셸은 아멜린을 설득해 인터뷰를 하고, 그 자리에서 아멜린이 당한 끔찍하고 악의적인 괴롭힘과 추행의 전말을 알게 된다. 분개한 라셸은 학교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수업 거부 운동’을 추진하지만, 상황이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난감해한다.
“이것 봐! 라셸, 네 수업 거부 운동의 결과를 보라고!”
마농의 외침이 군중을 들썩이게 했지만 나는 여전히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운동장에는 수백 명의 여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놀랍게도 남학생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뒤쪽에는 선생님들과 행정실 직원들이 서 있었고, 교장 선생님도 팔짱을 낀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마농에게 슬쩍 물었다.
“소란을 피웠지. 진실 찾기, 그리고 여성 연대를 강조하면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동영상을 찍어서 아멜린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쳤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알려 줘야지. 아멜린은 진실을 쟁취하게 될 테니까.
분위기는 대체로 얌전했다. 예상과 달리, 선생님들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도, 마농도 교무실로 불려 가지 않았다. 우리의 행동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학생들은 자기가 왜 여기 모여 있는지 알지 못했고, 오전에 자유 시간을 선물 받은 것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뭔가 마뜩지 않았다. 나는 마르탱의 손에서 메가폰을 가로챈 뒤, 어느새 우리의 연단이 된 동상 받침대 중앙으로 나갔다.
“주목해 줘!”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수업을 하지 않아서 좋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 자리에 왜 모였는지는 알아야 해. 월요일 저녁에 열린 선도 위원회에서 2학년 아멜린 브리양이 전학 처분을 받았어. 성추행에 맞서기 위해 방어를 했기 때문이지. 이 문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아멜린을 괴롭힌 남학생은 자유롭게 학교를 활보하는데, 아멜린만 징계를 받는 건 너무나 부당하니까!”
맥박이 빨라지면서 심장이 요동쳤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쓰라린 패배의 뒷맛
마농을 비롯한 소수의 여학생들이 운동에 동참해 힘을 실어 주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관심이 없거나 흥밋거리로 생각할 뿐이라 라셸은 기운이 쪽 빠진다. 패배감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던 그때, 몇몇 선생님들과 급식실 조리사들의 지지와 동참으로 운동은 활기를 띠며 전환점을 맞이한다. 침묵과 무시로 일관하던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제의가 온 것이다. 아이들을 대표해 마농과 라셸이 면담에 나서지만 학교 측과는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할 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도 못하고 수업 거부 운동 또한 막을 내리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학교 일이 화제에 올라 부모님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자 라셸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나는 너무너무 화가 난 나머지, 학교 생활 기록부에 미칠 영향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맞받아칠 뻔했다.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교장 선생님이 이토록 꽉 막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정의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 마농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그러고는 내 손목을 잡아끌어 교장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처음에는 마농의 반응에 크게 실망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애라도 침착함을 유지한 것이 그렇듯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쓰라린 패배였다. 고개를 들어 세상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분노와 증오를 봇물처럼 마구 쏟아 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공격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게다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연설로 우리를 설득하려 들다니. 말도 안 돼. 악! 짜증 나.”
마농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뜻 후회하는 빛이 스치는 듯도 했다.
“마농, 잠깐만! 너도 교장 선생님이랑 같은 생각인 거야?”
나는 목이 메어 간신히 물었다.
“아니! 당연히 아니야. 근데…….”
“넌 우리가 수업 거부 운동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마농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마농이 나를 놓아 버린다면, 더는 그 누구도 나를 따르지 않을 터였다. 이 운동은 내가 시작했지만, 얼굴이 가장 많이 알려진 건 마농이었다. 마농이 앞에 나서서 호소했고, 그 결과 많은 여학생들이 수업 거부에 동참했다. 그런데 지금 마농이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이로써 교장 선생님이 승리를 거둔 셈이다!
잠시 후, 마농이 입을 열었다.
“너, 나 믿을 수 있어?”
“잘 모르겠어. 너를 알게 된 게 기껏해야 어제부터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 그런데 그걸 실현하려면 일단 이 운동을 멈춰야 해. 생각을 정리해 봐야 해서 당장 말해 줄 수는 없지만, 내 직감으로는 그게 먹힐 것 같아. 내 생각을 따라 줘야 해, 라셸. 부탁이야.”
분노한 소녀들
라셸은 자신이 주도한 운동이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의기소침해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 학교에서 이방인처럼 떠돌던 중, 마농과 아이들을 다시 만나 학교 점거 계획에 대해 듣게 된다.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고 싶지 않아 거절하려는 찰나, 이 사건의 가해자인 폴이 반성은커녕 뻔뻔하게 피해자인 듯이 구는 모습을 보고는 심사가 뒤틀려 충동적으로 점거 농성에 참여하게 된다.
금요일 밤, 학교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담장을 넘은 아이들은 신문 동아리 방에 캠프를 마련한다. 마르탱을 동참시키는 것을 두고 아이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저마다 점거 농성에 참여한 이유를 고백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결속력을 다지며 더욱 끈끈해진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비판이 쏟아지는 와중에 학교 측과의 협상이 최종 결렬되며 다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는데…….
“라셸, 괜찮아?”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게 반응을 하면 왜냐고 물을 테니까. 나는 그 질문에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클라라가 옆으로 와서 앉았다.
“음,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
클라라의 말에 한숨을 쉬고는 얼마 전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을 꺼냈다.
“넌 여기에 왜 왔어? 그러니까 내 말은…… 왜 학교를 점거하러 온 거냐고.”
“이 학교가 싫어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클라라의 대답은 충분하지 않았다. 클라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알겠다. 너, 성명서 쓸 때 우리가 아멜린 생각을 안 해서 화가 난 거지?”
“아멜린을 위해서 수업 거부 운동을 시작한 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학교를 점거한 이유가 제각각이잖아. 치마를 입으려고, 평등을 위해서, 가부장제에 반대해서…….”
순간 클라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이유들이 너의 이유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야?”
“꼭 그렇다는 건 아닌데, 너무 분산된 거 아닌가 해서. 개인적인 투쟁을 백번 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하나의 투쟁에 집중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잖아.”
“그래, 네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네 마음이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
“왜 동의하지 않는데?”
“우리 모두가 너처럼 아멜린 문제 때문이라면 여기에 이렇게 모이지 않았을 거야. 그 문제는 우리에게 그만큼 큰 영향을 주진 않았으니까. 자신과 연관된 문제여야 행동할 수 있거든. 우린 똑같은 경험을 하며 살지 않았어. 그러니까 같은 이유로 페미니스트가 된 게 아니라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중략)
“그러니까 우리 둘 다 학교 점거를 계속하면 돼. 물론 서로 다른 이유를 위해서지. 너한텐 너의 투쟁이 있고, 나한테는 나의 투쟁이 있고, 마농에게는 그 애의 투쟁이 있는 거야. 네 투쟁을 하자고 내 투쟁을 막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알겠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내가 지독하게 이기적이었다는 걸 아주 친절하게 알려 주네?”
클라라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지 않아.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를 대변하려고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거야. 단지…… 네가 모르는 것들이 있는 것뿐이지. 괜찮아, 조금씩 배우면 되니까. 어디까지나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클라라는 이렇게 말하며 내게 윙크를 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일라나 캉탱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가족 공용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한 뒤,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 방데로 돌아가 청소년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종횡무진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지은 책으로 《조르주, 세상과 나》《제퍼슨의 세계》 등이 있다.
목차
피해자 vs. 가해자
수업 거부 운동
열정과 체념 사이
쓰라린 패배의 뒷맛
뻔뻔한 녀석
한밤중에 학교로
비밀 작전
분노한 소녀들
뜻밖의 고백 타임
내가 있어야 할 곳
지원군과 방해꾼
슬픈 미소
운명의 시간
위험한 경고
불시에 벌어진 일
엄마와 딸
실낱같은 희망
최후의 반격
심각한 질문
정당한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