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낮은산 청소년문학 키큰나무 시리즈 21권. <열일곱 살의 털> 이후 13년 만에 출간하는 김해원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김해원 작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을 마주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과 그 삶의 무늬를 꾹꾹 눌러썼다.
<나는 무늬>는 세상이 멋대로 부르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스스로 아름다운 무늬를 새기는 이들의 이야기다. 청소년 노동, 가정 폭력, 아동 학대 등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을 이야기로 불러온 작가는 살아남은 이들이 눈물을 닦고 난 뒤 할 수 있는 일을 보여 주는 데 힘을 쏟는다.
이 이야기는 왜 타인을 위해 함께 울어 주는가, 왜 남의 일에 나서는가, 왜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가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쓰이지 않은,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채워진 이 이야기를 만난 독자들에게 ‘무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름이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그날 밤, 이 행성에서 두 존재가 소멸했다
두 존재의 갑작스러운 소멸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중심에 열여덟 살 문희가 있다. 일곱 살 때 겪은 비극적인 사건에서 살아남은 아이, 할머니와 살았던 노란 대문 집에서 자주 행복해서 슬펐던 아이, 문희는 할머니 품 안에서 아득하게 먼 곳에 있는 경이로운 존재에 몰두하는 걸로 현실에서 한 발짝 비켜 선 채 살아왔다.
기린이 잎을 뜯어 먹으면 가스를 내보내는 우산아카시아, 뜨거운 사막 위를 빠르게 달리는 사하라은개미,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왔다는 5만 그루의 사시나무까지, 과학 잡지에 나오는 다양한 동식물의 놀라운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는 문희의 목소리로 재생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우주의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진리를 이해한다고 해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소멸이 이 행성에는 너무도 많은 탓이다.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병원에서 문희는 그날 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토바이 사고로 응급실로 실려 와 열일곱 살로 삶을 마감한 그 아이가 문희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겨우 열일곱이래. 열일곱 살에 삶이 끝날 줄은 아마 몰랐을 거야.”
파란패딩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사고 난 아이가 아는 애야?”
질문의 순서가 잘못되었다. 우선 나를 아느냐고 물어야 했는데 첫 질문을 건너뛰고 말았다.
- 본문 35쪽
오토바이 사고를 목격하고 병원까지 따라온 윤지윤과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할머니 옆 병상에 있던 오사강, 그리고 문희는 병원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그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가자, 우리가 이진형의 진실을 찾아 주자
족발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진형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족발집 사장은 오토바이를 몰래 타고 나가서 사고가 났다며, 이진형을 오토바이 도둑을 몰고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문희와 친구들은 이 사고에 의문을 품고, 사고가 난 그날 이진형의 행적을 추적한다.
“죽은 사람은 자신을 지킬 수 없어. 죽으면 세상 사람들이 지어 준 이름으로 남게 되니까.
오토바이 도둑, 너무 아프잖아.” - 본문 98쪽
“너무 아프잖아”라는 말에서 시작된 ‘이진형 사고 진실 찾기’는 우리 안에서 연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타인의 고통을 무심히 넘기지 않고 함께 마음 아파하는 아이들, 타인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서로 돕기 시작한다. 성적에 대한 압박과 엄마의 폭력에 시달리는 윤지윤, 태권도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씩씩하게 사는 오사강, 그리고 지울 수 없는 학대의 상처를 지닌 문희까지. 그저 ‘동네 누나들’이었던 이 아이들은 이진형을 위해 힘을 모으고 함께하는 시간을 쌓으며 ‘좋은 친구들’이 된다.
따뜻함을 느껴야 비로소 추웠음을 안다
청소년 노동, 가정 폭력, 아동 학대 등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을 이야기로 불러온 김해원 작가는 살아남은 이들이 눈물을 닦고 난 뒤 할 수 있는 일을 보여 주는 데 힘을 쏟는다. 이 이야기는 왜 타인을 위해 함께 울어 주는가, 왜 남의 일에 나서는가, 왜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가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다.
슬픔도 절망도 끝이 없는 이 행성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면, 모두가 나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곳이 곧 지옥일 것이다. 그곳에서 빠져 나오려면 다른 이의 손을 잡아야 한다. 나의 지옥이 익숙해지면, 남의 지옥도 당연한 것이 되니까. 그 전에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울음을 참고 있었다. 우리가 한 일은 동생을 잃은,
가족을 잃은 이들과 함께 울어 주는 거였는지 모른다. - 본문 276쪽
서로의 손을 잡은 문희와 친구들은 따뜻함을 느낀다. 그동안 저마다 얼마나 추운 곳에서 혼자 떨고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이진형을 위해 함께 울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썼던 시간은 결국 스스로를 구하는 시간이었다.
날마다 절망하며 체념하는 대신, 헛된 희망과 기대를 품는 대신, 행동하고 저항하는 쪽을 선택한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미래를 본다. 이야기에서 이렇게 또 위안을 얻는다.
패딩을 입지 않고도 하나도 춥지 않았는데, 후드 점퍼를 입으니 따뜻했다. 따뜻함을 느껴야 비로소 추웠음을 안다.
“공조라고 할 건 없고. 그냥 확인해 보고 싶었어. 누명을 썼어도 말할 수가 없잖아. 죽은 사람은 자신을 지킬 수 없어. 죽으면 세상 사람들이 지어 준 이름으로 남게 되니까. 오토바이 도둑, 너무 아프잖아.”
할머니의 장하다는 대단하거나 훌륭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장하다는 손녀가 어설프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할머니의 감탄사다. 나는 그 감탄사를 들으면서 내가 정말 장하게 크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해원
어릴 적부터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다가 그만 이야기 짓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은 이야기로는 『열일곱 살의 털』 『오월의 달리기』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나는 그냥 나예요』 『고래 벽화』 등이 있습니다.
목차
소멸
기억
작당
일탈
뿌리
친구2
큰나무
더듬이
노란 대문
실마리
CCTV
9시 43분
체념
저항
진군
일곱 살
자국
수세미
바이킹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