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1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또 한 권의 역작!
“용기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아”
타인을 위한 용기, 편견에 맞서는 용기에 관하여―
“누군가를 위해 진정한 용기를 내본 적이 있는가?”
상자 속 잠자는 ‘진실’을 아토피 치료를 위해 산골 이다학교로 전학을 간 벼리는 어느 날 우연히 엄마의 눈에 띈 은사리 폐가로 이사 준비를 하게 된다. 집을 수리하던 중 벼리는 지붕이 내려앉은 작은방에서 오래된 붉은 무늬 상자와 낡은 가죽 구두를 발견한다.
“이 집에 살던 열일곱 살 난 딸이 죽었단다.”
은사리 폐가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된 벼리는, 괴롭힘 당하던 태규를 도와준 이후 학교에서 겉돌던 세나와 함께 상자를 열어본다. 그들은 상자 속에서 다이어리와 시화집, 피노키오 인형을 발견하고 상자의 주인이 이 집에 살았던 죽은 열일곱 살 ‘강여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 사람이 죽고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났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니. 아무도 벌받은 사람이 없었다니.”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누군가의 비밀, 끝나지 않은 상처를 치유하려는 아이들의 이야기.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폭력을 멈추는 것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나설 수 있는 용기다‘학폭 미투’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지금, 많은 이들이 피해자들의 폭로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고 있다. 학교 폭력을 그저 ‘해프닝’으로 여기던 과거의 시각에서 벗어나, 폭력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옅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조금이나마 피해자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시대가 된 건지도 모른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선영이 『시간을 파는 상점』으로부터 1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엄마의 소망이 담긴 전원주택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학폭 미투 이야기를 수려한 문장에 담아 청소년소설을 출간했다. 작가는 단순히 ‘나쁜 이는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메시지에서 벗어나, ‘용기’에 관해 말한다. 학교에 떠도는 헛소문을 듣고도 전학생이라는 불안한 위치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했던 벼리, 괴롭힘 당하는 태규를 도와주었다가 겉돌게 되어 졸업하기만을 기다리던 세나,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타인을 위한 용기를 배우고 과거 속에 묻혀 있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들은 ‘나는 누군가를 위해 진정한 용기를 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수많은 눈이 외면하고 침묵할 때 폭력은 더욱 거세지고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작은 목소리일지라도 누군가 용기를 낸다면 그 용기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폭력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창작 노트에서
열일곱 강여울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곳이자 엄마가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상처가 투영된 은사리 폐가. 다소 어둡고 아픈 이야기를 흰 꽃이 가득한 집이 포근하게 감싸 안아준다. 극복하지 못한 상처가 잠든 공간이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한 힐링의 공간으로 변하는 모습에서 김선영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미 지옥과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거나 버텨온 누군가에게, 또는 타인을 위해 나서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가진 이에게 『붉은 무늬 상자』는 위로와 같은 시간을 선사한다.
목덜미와 얼굴에 생긴 붉은 반점과 하얀 거스러미, 건조함으로 피부가 온통 발작처럼 일어날 때 아이들은 내 물건조차 스치는 것을 싫어했다. 마치 병을 옮기는 고약한 바이러스 취급당하는 기분이었다.
“옮기는 거 아니거든.”
내가 단호하게 말해도 아이들은 슬금슬금 피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슬퍼하지는 않았다.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혼자 놀 수 있는 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썼기 때문이다. 실은 끊임없는 자기 세뇌를 한 결과이다. 아이들의 그런 반응을 되도록 모른 척하려고 애쓴 결과물이기도 하다. 아이가 참 밝다는 말을 엄마도 나도 많이 들었다. 그 속뜻에는 ‘그런 몹쓸 병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밝을 수가 있어요?’라는 반문이 들어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엄마는 내가 과장되게 밝은 척하려는 것도 알고 있다. 때론 척이라는 것도 나름 노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노력이 먹힌 건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가 가장 우려한 것은 그런 분위기 속에 내가 집중적으로 시선을 받으며 대인기피증 내지 우울감을 앓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벼리야, 사실은 말이야.”
엄마는 상자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나는 카메라를 내리고 말없이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엄마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나 싶어서 긴장되었다.
“이 집에 살던 열일곱 살 난 딸이 죽었단다.”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드세게 쿵덕거렸다.
“헉.”
“오래전 일이야.”
엄마는 시효가 지난 일이니 그렇게 놀랄 것 없다는 뜻으로 덧붙였다. 그런 뒤 말없이 연신 상자를 쓰다듬었다.
“허얼, 정말? 그걸 알고도 이 집을? 누구한테 들었어?”
“이장님이.”
“왜? 왜 죽었대?”
그 순간 왜 심장이 툭 내려앉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늘 속에 있던 세나의 얼굴이 훅 겹쳐왔다. 갑자기 세나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이 집에서 죽은 열일곱 살 난 딸과 세나가 왜 동일시되는지 모르겠다. 상자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구두가 더욱 유난하게 보였다.
“그런 것까지는 자세히 얘기 안 하고. 이장님이 이 집을 결정하는 데 문제가 되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솔직히 얘기해주는 게 외려 문제가 안 될 것 같았어.”
“엄마는 그런 게 문제가 안 돼?”
이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선득함을 잊을 수가 없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아이, 그거하고는 다르잖아.”
“그게 뭐가 문제 삼을 일이야? 엄마는 그래서 더 결정하기 쉬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