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참, 홍 지관은 왜 여태 얼굴을 보이지 않느냐?”
비로소 정질이 홍경래를 지목했다. 예측한 것처럼 매사냥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의심 많은 그가 사또 형을 대신해서 다복동 금점의 실상을 파악하러 온 것임이 분명했다.
“계시옵니다만 몸에 열이 있어서 출입을 삼가실 따름입니다.”
당황 않고 총각이 사정을 설명했다.
“가서 일러라. 상것들만 내보내지 말고 웬만하면 나오시어 수인사나 나누자고. 지관이 천하 명궁이란 소문도 익히 들었다고 전하게.”
정질이 빳빳이 고개를 쳐든 채 활터의 정자에 오르는 것을 보고 총각이 홍경래의 처소로 뛰어갔다.
“나더러 나오라지?”
예측했다는 듯이 의관을 갖추며 경래가 물었다.
“무슨 꿍꿍이속일까요?”
곁에 있던 우군칙이 홍경래를 쳐다봤다.
“꿩고기 나눠 먹자는 소리밖에 더 하겠습니까?”
“돈은 여기 총각에게 맡기겠습니다. 넉넉히 찔러주도록 하지요.”
“냉면도 한 상 차리지요.”
경래가 군칙을 마주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가산 군수 정시는 특히 악랄하게 세금을 거둬들이고 공사를 많이 벌려서 백성들로부터 불만을 많이 샀다. 홍경래와 함께 거사를 꾸미는 데 앞장선 이희저의 뒤를 캐며 그로부터 돈을 받아내는데 크게 재미를 붙인 듯했다. 중국을 오가는 사신을 따라다니는 역졸 출신의 이희저는 사신들 몰래 하는 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 다복동에 광산을 세우고 인부들을 끌어모으는 자금 대부분도 이희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런 이희저를 군수 정시가 꼼짝 못 하게 옥죄고 있으니 봉기군의 거사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선천 부사 김익순은 벌써 군교 최영길을 감옥에 잡아넣었다. 최영길은 봉기군에서 홍경래 다음 자리를 차지하는 우군칙의 사람이었다. 우군칙을 통해 뭔가 큰일을 꾸민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기에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실토할 것이 별로 없었다.
홍경래가 이끄는 봉기군의 본거지가 바로 이 원수봉 아래에 있었다. 산기슭 여기저기 굴을 뚫어 금 캐는 광산의 흉내를 냈지만, 이는 눈속임이요 실제로는 봉기군의 집결지며 군사 훈련장이었다. 광꾼으로 위장한 군사들은 이곳저곳에 흩어진 초가에서 단체로 숙식하면서 맡은 바 일을 했다. 강으로 실려 온 곡식을 옮겨 굴속에 숨기는 일부터 임시로 만든 대장간에서 칼과 창을 만드는 일까지 모두 광꾼들의 몫이었다.
운산 촛대봉에 있던 금점을 다복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은 3년 전(1807년)부터였다. 촛대봉 광꾼 20여 명이 먼저 와서 광산을 파고 인부들이 묵을 움집들을 만들었다. 지지부진하던 광산 공사는 재작년(1809년) 여름 50명이 넘는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수봉 아래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밭을 만들고 개울물을 막아 수차를 세우고 금싸라기를 찾아내는 부곽까지 만들면서 차츰 금점의 모습을 갖추어 갔던 것이다.
홍경래와 우군칙이 이곳 다복동을 봉기군의 본거지로 정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군사들을 숨기기 좋다는 점만은 아니었다. 대령강이 곁에 있어서 육지로 바다로 사람과 물자의 내왕이 편리하다는 이점 외에도 교통이 좋아서 안주, 평양으로 군사를 진군시키기 쉽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군사가 내달리면 하루 안에 평양성을 점령할 수 있고 또 하루를 더 달리면 서울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학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1950년 경상북도 경산시 출생경향신문 신춘문예 단편 소설 「폐광」 당선, 문단 등단한국일보사 장편소설 공모 「서북풍」 당선장편소설 『고변』 제22회 동리문학상 수상우송정보대학, 우송대학교 교수, 고려대문인회 회장, 한국작가교수회 부회장 등 역임현재 중국 남경효장대학 명예교수, 한중백주문화교류협회장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그물의 눈』, 『손님』, 『식구들의 세월』 등산문집 『시가 있는 간이역』장편소설 『서북풍』, 『안개울음』, 『역류』, 『화담명월』, 『고변』, 미륵을 기다리며』, 등중국 관련서 『중국백주기행』, 『니하오 난징』
목차
머리말 7
1. 꿈꾸는 다복동 11
2. 떨쳐 일어나다 53
3. 정주성을 지켜라! 109
소설 홍경래 해설 139
홍경래 연보 147
소설 홍경래를 전후한 한국사 연표 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