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17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정성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이 시인동네 시인선 206으로 출간되었다. 정성환의 시편들은 간결하면서도 따뜻하다. 더러 만해(卍海)를 떠올리게 하는 단순한 어법 속에 자신만의 명쾌한 진실을 설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가난한 기다림의 시학
2017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정성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이 시인동네 시인선 206으로 출간되었다. 정성환의 시편들은 간결하면서도 따뜻하다. 더러 만해(卍海)를 떠올리게 하는 단순한 어법 속에 자신만의 명쾌한 진실을 설하고 있다. 찬찬히 읽어보면 포즈로서의 진실이 아니라 오랜 자기성찰에서 비롯된 삶의 더께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더께가 상처를 덮고 새살을 틔워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낮과 밤은 내가 미쳐서 생기는 것이라더군
당신 쪽 향하고 있을 때 비로소 낮 되고
당신 반대편에 있을 때 깜깜한 밤 되는 것이라는데
자꾸만 자꾸만 당신 환하게 떠올랐다는 것은
하늘 가리는 어둠 깊어도 그대 향해 뒤척이며
밤새 자전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움 멈추지 않았다는 것
내가 당신에게 미쳐서
밤낮으로 돌고 돌았던 것이라더군
― 「자전」 전문
서투른 모과 향 펄펄 끓어오를 때 몰랐다
누군가 오래오래 바라보며 살아가는 거
모과나무 움터오는 숨소리에 온몸 가려울 때도 몰랐다
나 토해내고 너 받아내는 거
한 획으로 떨어져도 쪼개지지 않는 모과 보고도 알지 못했다
하루 종일 흐트러지지 않게 너 생각하는 거
반가(半跏)한 자세로 꿈쩍없이 풀밭에 앉아 있는 금동 모과상
어쩌면 모과는 생을 건너갈 때
빼꼭한 잎 일심일심(一心一心) 세면서
삐뚤빼뚤 금강경 한 구절이라도 새기고 있었는지 몰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 위해
일보일배(一步一拜)의 순례길 걸어온 금동 모과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빛으로 타들어 가는 것쯤
끝이 아니어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겠다
― 「금동 모과상(木瓜像)」 전문
사람 마음처럼 나무도 걸어서 천릿길 갑니다
서귀포 표선면 녹산로 눈부신 벚나무도
춘삼월에 닷새를 걸어
부산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까지 오는 걸 봅니다
봄은 짧아도 인연은 길어
비워도 비워도
버릴 수 없는 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서둘러 피었다가 쉽게 가버리더라도
나무가 품고 있는 꽃이
그대 다시 불러오니
불 꺼진 마음에 모처럼 불을 켭니다
나무에서 나무까지
제주에서 물고 온 별들 걸어두면
사람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다 지나갈 거라고
흐드러진 향기로 상처를 씻습니다
―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성환
부산에서 태어나 2017년 《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당신이라는 이름의 꽃말』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기아자동차 홍보실을 거쳐 현재 영산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목차
제1부
자전13/금동 모과상(木瓜像)14/나를 위한 기도16/아이스 아메리카노18/노동의 경전19/시를 읽었다20/시래기 다발22/심장이 뛰는 이유24/밑줄25/꽃들의 세계26/나침반28/책갈피30/돌탑32/상실의 기술33/부끄러움에 대하여34/너를 위한 기도36
제2부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39/사람이 따뜻한 이유40/봄42/아내는 해녀44/정년퇴직45/사랑을 이겨내는 일46/꿈48/사월 이맘때50/화양연화51/배교52/사랑 설명서54/마음을 사용하다55/벚꽃엔딩56/당신을 기다립니다58/꽃과 돈60
제3부
가을 저녁의 시(詩)63/어떤 하루64/상처도 꽃이 된다65/하루만 산다면66/그림자69/꼭 그만큼70/언제나 처음처럼72/추분(秋分)73/누구나 살아나는 자리74/뻔한 거짓말76/플랜 B77/슬픔의 총량78/쉬운 사람80/스팸 문자81/보이저호(號)82
제4부
시련이 힘이다85/2월 진화론86/비보호 좌회전87/영도다리가 되고 싶었다88/뭐가 그리 대수냐90/불의 꽃91/나물 털털이를 먹다가92/제자리걸음94/섬95/황혼의 로맨스96/동백 꽃말98/그랬으면 좋겠다100/여름 꽃밭101/해몽102/사랑한다는 것103/입104
해설 우대식(시인)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