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라틴어 수업』 저자 한동일이 사제의 신분을 내려놓은 이후
성경 속에서 마주한 그 자신과 우리의 모습들 스테디셀러 『라틴어 수업』 저자이자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한국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변호사로 잘 알려진 한동일 작가는 과거 가톨릭교회의 사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 사제이기보다 학자로 지내왔으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2021년, 저자는 긴 고민 끝에 21년간 유지해왔던 사제직을 내려놓았다. 이번 신작은 그가 일반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다시 한번 성경을 들여다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글로 옮긴 것이다.
저자는 성경에 대해 “성경은 기원전 1천 년경으로부터 기원후 2세기에 이르는 동안에 기록된 책이며, 특정 종교의 경전이기 이전에 인간과 공동체, 사회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문헌 자로서 성경 속 이야기는 특정 종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와 우리, 인간 사회를 위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성경 속의 예수와 제자들, 여러 인물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라고 고백한다. 그가 마음에 담은 성경 구절과 그와 함께 풀어낸 이야기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닿아 있다.
“저는 이제 일반인의 삶을 살면서 나 자신이 변할 의지가 없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합니다. 오랜 시간 쉬는 것도 잊은 채 숨 가쁘게 뛰어왔던 제가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살피며 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것을 의식하며 저는 오늘도 느리고 더딘 걸음을 내딛습니다.” (202쪽)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오늘을 버티는 우리에게
성경 속 그가 전하는 위로와 격려 1장에 담긴 서른세 개의 성경 구절과 이야기는 한동일 작가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며 지난날과 오늘을 바라본 이야기이다. 그는 여러 다른 저서에서 밝혔듯이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못했고, 로마 유학길에 올라 합격률이 5~6%밖에 안 되는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시험을 준비할 때도, 2021년 천주교의 사제직을 내려놓을 때도, 그 이후 일반인으로서 다시 낯선 세상과 마주할 때도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렇게 방황하던 순간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마태 26, 38),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 50)라고 괴로워하던 예수에게서 위로를 얻었다고 말한다. 성경 속 예수가 한낱 인간인 자신과 마찬가지로 방황하고 힘들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방황을 거듭하며 좌절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 때 제 마음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는 이 성경 구절은 참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도 나처럼 ‘죽도록(ad mortem)’ 괴롭고 아팠구나 하는 사실이, 이 문장이 수많은 시간 저를 위로해주었지요” (36쪽)
그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인 베드로를 바라보며 그가 시련과 실패, 잘못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성찰했던 인간임을,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성경 속 예수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본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화해하고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찾아 전한다.
“실패는 지나갔다고 해서 지나간 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봅니다. 지나가면서 흔적을 남기지요. 그 흔적을 상처로 받아들일지 성장으로 받아들이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124쪽)
힘 있는 이들의 말이 넘쳐나지만 닿지 않는 세상에서
시대와 경계를 뛰어넘어 전해지는 목소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2장에 담은 20개의 구절은 신앙 공동체와 교회,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문을 여는 첫번째 구절은 “일어나 가자”(마태 26, 46)인데, 그는 여기에서 2장의 근간이 되는 ‘연결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1999년 야곱의 우물을 방문했던 때, 관리자가 아픈 아들을 데리고 남성이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그 부자를 쫓아내는 모습을 목격한다. 저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성경에서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박해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인간이 서로를 구분 짓고 경계하는 모습이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한탄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우물의 관리자가 종교보다 아들을 낫게 하고 싶은 한 아버지의 고통을 먼저 보았다면, 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연결 지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저자 한동일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된 고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 역시 제 외로움과 고통에서 눈을 들어 타인의 외로움, 아픔을 보려는 그 순간부터 저의 외로움과 아픔의 방의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며 이만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확인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듣고 이해하며 제 마음에 동질감과 공감이 일어나 그와 연결된 내 아픔이 서서히 함께 조금씩 치유되었던 겁니다.” (181쪽)
저자에 따르면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는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희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3, 12) 구절을 통해 예수가 하고자 했던 말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쉼이 필요한 이유가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인 ‘하심(下心)’에 있다. 그는 요한복음 속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통해서는 수치심 가득한 한 인간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에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된다고도 짚는다.
여기에서 나아가 “산 위에 자리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마태 5, 14),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마르 9, 50) 구절을 통해서는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교회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돌아봐야 함을 이야기한다.
힘 있는 자들의 말이 넘쳐나지만 사람들 마음에 가 닿지 않고, 작은 변화조차 일으키지 못하는 때, 한동일 작가의 이번 신간은 미천한 출신의 청년 예수의 말이 왜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생각해보게 한다.
어쩌면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봉헌물은 ‘매일 매 순간 결심한 것들에 대한 반복된 실패’일 거라고요.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시편 51, 19)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만을 신에게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런 저를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제 지극한 부끄러움과 인간적인 약점, 미성숙함만 내보일 수밖에 없는 제가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나는 강하다’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쓴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예수의 모습에서, 그가 인간처럼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 50) 하고 탄식하는 모습에서 예수가 인간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라는 사실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한낱 인간인 저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도 나처럼 번뇌하고 방황하고 힘들어한다는 점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도 우리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약함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저는 그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