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사계절 1318 문고 시리즈 86권. 권위 있는 프랑스 아동청소년문학상인 소르시에르 상 수상작으로, <마에스트로>, <구멍 난 기억>, <153일의 겨울>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 청소년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자비에-로랑 쁘띠의 작품이다. 전 세계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를 사려 깊은 문학적 성찰로 이끌어 내는 작가의 면모는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작가는 소설 속 전쟁을 ‘어떤’ 전쟁인지 구체화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의 보편적인 고통과 비극을 더욱 치밀하게 담아낸다.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임에도 작품 곳곳에는 건강하고 밝은 기운이 스며들어 있는데, 이는 오스카와 이웃집 소녀 마르카가 함께 노래를 만들며 마음속 상처를 극복해 가는 순수한 로맨스 덕분일 것이다.
열여덟 제레미에게 ‘군대’는 일상의 아주 작은 변화였다. 제레미는 군대에 다녀오면 ‘잉여’로 지낸 지난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전쟁에 참가하면서, 제레미의 삶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남아 있는 가족에게도 전에 없는 갈등과 상처가 돋아난다. 동생 오스카는 전쟁의 한가운데 놓인 제레미 소식을 이메일로 전해 듣고는 형을 향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노래로 치유해 가는데….
출판사 리뷰
열여덟 제레미에게 ‘군대’는 일상의 아주 작은 변화였다. 제레미는 군대에 다녀오면 ‘잉여’로 지낸 지난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전쟁에 참가하면서, 제레미의 삶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남아 있는 가족에게도 전에 없는 갈등과 상처가 돋아난다. 동생 오스카는 전쟁의 한가운데 놓인 제레미 소식을 이메일로 전해 듣고는 형을 향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노래로 치유해 가는데…….
『마에스트로』, 『구멍 난 기억』, 『153일의 겨울』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 청소년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자비에-로랑 쁘띠의 신작이다. 전 세계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를 사려 깊은 문학적 성찰로 이끌어 내는 작가의 면모는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전쟁’이지만, 작가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에서 한발 비껴간다. 소설 속 전쟁을 ‘어떤’ 전쟁인지 구체화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의 보편적인 고통과 비극을 더욱 치밀하게 담아낸 것.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임에도 작품 곳곳에는 건강하고 밝은 기운이 스며들어 있는데, 이는 오스카와 이웃집 소녀 마르카가 함께 노래를 만들며 마음속 상처를 극복해 가는 순수한 로맨스 덕분일 것이다. 『제레미, 오늘도 무사히』(Be Safe)는 권위 있는 프랑스 아동청소년문학상인 소르시에르 상(Prix Sorcieres)을 받았다. 사계절1318문고 여든여섯 번째 책.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묵직한 감동의 서사
2013년, 대한민국에 떠오르는 화두 중 하나는 ‘진짜 사나이’다. 이는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진짜’인지 아닌지 방점을 찍는 기준에 ‘군대’가 놓여 있다. ‘연예병사’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인 행위가 드러나고 고위층 인사와 그 자녀들의 숱한 병역 비리가 재조명되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가 다시금 민감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우리에게 ‘군대’는 일생 동안 한 번은 겪어야 할 통과의례에 가깝다. ‘진짜’ 남자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좌표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군대에 관련한 이슈는 날카롭게 우리 사회를 파고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프랑스나 미국 등 외국의 경우는 우리와 다르다. 진로를 결정하는 선택지 중의 하나로 ‘군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군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나 삶의 가치관이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벅찬 포부를 품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잘하는 게 없어 시간을 벌고자 군 입대를 결심한 사람도 있을 터. 군대가 의무가 아닌 선택인 만큼 자발적인 결정에서 비롯된다면 다행이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은 게 국제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2003년, 미국과 영국 등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이라크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라는 작전명 아래, 수많은 젊은이들이 결연한 의지를 품고 어느 날 갑자기 군대에 갔다.
그들이 그렇게 군인이 된 까닭은, ‘진짜 사나이’가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가는 젊은이들에게 ‘지금껏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고 ‘국가와 국민, 나아가 전 세계를 구해 낼’ 멋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듯했다. 그러나 국가는 군대라는 수단을 앞세워 그들을 ‘정치적 도구’로 희생시켰다. 이라크의 자유를 위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에 선뜻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보기 좋은 명분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전쟁의 실질적인 목적이 이라크의 원유를 확보하고,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한 미국의 정치적 돌파구였다는 이면의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진짜 사나이’를 꿈꾼 수많은 청춘은 자신의 꿈과 삶의 가치, 희망을 모조리 잃어버린 뒤에야 깨닫고 만다, 자신들은 그저 국가가 원한 ‘삐에로’였음을.
『제레미, 오늘도 무사히』의 주인공 제레미도 마찬가지다. 록 스타를 꿈꾸는 제레미는 얼마 전 학교를 그만두었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공부에 영 취미가 없었다. 제레미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창고에서 기타를 치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잘하는 건 더더욱 없는 열여덟 살 청춘에게 ‘군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태껏 ‘단 한 번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제레미는 쉽게 군 입대를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때로,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스울 만큼 간단하게 정리되기도 하니까.
이 책의 작가 자비에-로랑 쁘띠는 이라크전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 설정을 통해 얼떨결에 군대에 간 십대 소년이 맞닥뜨린 암담한 전쟁의 현실과 그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과 상처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야기는 동생 오스카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이메일을 통해 제레미가 머문 ‘그곳’과 오스카가 살고 있는 ‘이곳’ 사이를 이어가는 입체적인 서사, 오스카와 이웃집 소녀 마르카가 함께 노래를 만들며 사랑을 키워 가는 과정,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과거가 밝혀지고, 다소 파격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현실성을 바탕으로 탄탄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 준다. 그리고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진한 감동으로 그려 낸다.
내가 꿈꾸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여기서 벌어지는 엿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제레미가 군 입대를 결정하고 집을 떠나기까지 2주도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진행되었고, 마을에 사는 제레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마치 당장에라도 지구를 구해 낼 것처럼.
학교를 그만두고 일거리도 찾지 못한 채로 빈둥거리며 지내는 열여덟 살 제레미에게 ‘군대’는 특별한 기회였다. 객지에서 4년만 고생하면 그 후에는 부와 명예를 누리며 지금보다 멋지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유독 아빠가 불같이 화를 냈다. 아빠는 제레미에게 수차례 이야기했다. 군대에 가면 지금과는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일을 겪을 거라고……. 그러나 제레미는 확고했다. 자신은 그저, 군대에 가서 다리 건설 일을 할 뿐이라고 말이다. 누군가를 쏘거나 죽이거나 전쟁 따위에 참가하는 일은 없다고, 제레미는 그렇게 말하고 집을 떠났다.
동생 오스카에게는 이 모든 변화가 당황스럽기만 하다. 왜 아니겠는가. 16년간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며 살았던 형이 갑자기 군대에 가 버렸다. 세계적 록 스타를 꿈꾸며 같이 기타를 치던 형이 군인이 되다니.
오스카에게 형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다. 공허함을 달랠 수 있는 건 음악이지만 형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기타 연습 역시 의미가 없다. 제레미의 기타는 주인을 잃고 창고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 사는 마르카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마르카는 오스카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 제레미와 함께 군대에 간 제프 형의 여동생이다.
“너 혼자서 연주해?”
“어쩔 수 없잖아. 제레미가 없으니까.”
마르카는 기타로 다가가 입김으로 먼지를 불어 댔다.
“쳐 봐도 돼?”
“너 기타 칠 줄 알아?”
“조금.”
마르카는 조율을 한 다음 제레미라면 연주하지 못했을 일련의 화음들을 연속적으로 짚어 냈다. 그러고는 그녀답지 않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본문 46쪽)
오스카는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당최 믿을 수가 없다. 오스카는 남몰래 마르카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마르카가 기타를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른다는 걸 꿈에도 몰랐던 거다. 심지어 이 매력적인 여자아이는 너무도 태연하게 오스카에게 제안을 한다. 괜찮다면 같이 연주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오스카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얼마 후 제레미가 첫 휴가를 나오고, 모처럼 가족은 축제라도 열린 듯 화기애애하다. 그러나 제레미가 특전대에 배치된 사실을 전하면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아빠의 분노는 말할 것도 없다. 제레미가 군대에 간 이후 아빠는 늘 분노에 가득 찬 사람처럼 표정이 좋지 않다. 예전보다 말수도 더 줄었고, ‘자동차 수리공’이라는 직업을 증명해 내야 할 숙제라도 있는 것처럼 차 밑에서 종일 시간을 보낸다.
오스카는 요즘 들어 부쩍 이상한 아빠가 의아하기만 한데, 제레미는 눈치도 없이 군대에 전해오는 ‘전설의 명사수’ 이야기를 꺼낸다. 베트남전 당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저격수의 이름이 ‘프랭크 오닐’, 아빠와 동명이인이라는 것이다. 아빠는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겼지만, 그날 밤 제레미와 오스카는 아빠의 비밀스러운 과거를 찾아내고야 만다.
손으로 승리의 브이 자를 표시한 젊은 병사들 사이에 담배를 입에 문 전투복 차림의 아빠가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사진 속 아빠의 두 다리가 멀쩡하다는 점이다. 그때까지 나는 늘 아빠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열여섯 혹은 열일곱 살 때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몇 장을 넘기니 아빠가 사격장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눈을 가늠자에 대고 있었다. 그 옆 사진에는 한 무리의 군인들이 총을 발아래 내려놓은 채 차렷 자세를 하고 있었다. (본문 57-58쪽)
아빠의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아주 분명한 진실이 창고 뒤에 감춰 놓은 공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빠는 대체 왜 자신의 과거를 숨겨온 것일까, 일생을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오스카의 머릿속에는 풀리지 않는 복잡한 의문이 가득하고, 제레미는 휴가가 끝나 다시 군대에 복귀한다.
아빠에 대한 두려움과 형을 향한 그리움이 사무칠수록 오스카는 더욱더 음악에 몰두한다. 오스카와 마르카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기타 연주를 하고 더 나아가 노래를 짓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작곡을 제대로 배워 본 적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풋풋하고 신선한 음악이 가능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첫 앨범을 만들어 낸다.
마르카가 얼마나 멋진 아이인지, 그들이 함께 만든 첫 앨범에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노래들이 담겨 있는지, 요즘 아빠의 상태는 어떤지……. 오스카는 제레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한 가득이다.
군인이 된 제레미의 소식은 언제나 간단명료한데, 지금 막 오스카가 전해들은 얘기는 귀를 의심하고 싶을 만큼 충격적이다. 파견 명령서를 받아 부대가 있는 ‘그곳’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제레미뿐 아니라 제프나 레옹 등 마을에 사는 형 친구들 대부분이 전쟁터로 간다, 갑작스레 군대로 간 그날처럼.
‘그곳’에 간 제레미는 엄마 아빠에게 형식적인 안부 편지를 보내온다. 편지 내용으로만 본다면 휴가를 떠난 듯 평화롭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제레미는 오스카에게 보내는 비밀 이메일을 통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끔찍한 실상을 털어놓는다.
사실 이곳에서는 모두가 극도로 긴장해 있어. 그걸 아는 데 열흘도 걸리지 않았어. (중략) 여기서 모든 사람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오늘도 무사히’, ‘조심해’, ‘신중해’야. 그게 아침 인사나 저녁 인사를 대신하는 거지. 그냥 심심하면 ‘오늘도 무사히’라고 말하는 것 같아.
엄마 아빠한테는 모두가 시간에 맞추기 위해 빨리 식사를 한다고 썼는데 그건 거짓말이야. 진짜 이유는 식당 한복판, 우리 코앞에서 폭탄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야. (본문 118-119쪽)
아빠의 숨겨진 과거에 형의 고통스러운 비밀까지 감당해야 하는 오스카. 마르카가 곁에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마르카도 오스카만큼 힘든 일을 겪고 있다. 얼마 전 마르카 오빠인 제프가 ‘그곳’에서 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쳤는데, 피치 못할 경우에는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오스카는 마르카와 함께 노래를 몇 곡 더 만들기로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군인이 되어 전쟁이 벌어지는 ‘그곳’으로 떠난 이들이 겪는 좌절과 비극, ‘여기’에 남은 자신들이 겪는 그리움과 깊은 안타까움을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했기에.
마침 학교에서는 학기 말 ‘장기 자랑의 밤’ 행사가 열리고, 두 사람은 ‘M&O’라는 그럴듯한 그룹 이름까지 지어 무대에 오른다. M&O의 마지막 곡은 [오늘도 무사히]. ‘저는 곧 돌아갈 거예요.’라는 후렴구가 나즈막이 울려 퍼지며, 오스카와 마르카는 성공리에 데뷔 공연을 마친다.
장기 자랑 행사가 끝난 며칠 뒤, 오스카의 컴퓨터에는 제레미에게 온 또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다. 비록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부상을 당해서라도 끔찍한 ‘그곳’을 벗어나게 된 할 제프가 부럽기까지 하다는 제레미. 지옥과도 같은 ‘그곳’에서의 생활로 인해 이성을 잃어버리고 만 스스로를 두려워하기에 이른다. 사람을 사람일 수 없게 만드는 ‘그곳’, 언제 어디에서 폭발할지 모르는 이유 없는 분노로 가득 찬 ‘그곳’.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그곳’. 오스카는 형의 비밀 이메일을 읽어 내려가던 중 등 뒤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깜짝 놀라고 만다.
아빠는 소리 없이 계단을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성하지 않은 다리로. 대단하다.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다른 메일들도 이것처럼 끔찍하냐?”
아빠가 다시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께 비밀로 하라고 제레미가 부탁했어요. 걱정 끼쳐 드리기 싫다고.”
“아빠한텐 보여 줘.”
“하지만 형과 약속했는데.”
“이제 내가 알아 버렸잖니. 감춘다고 달라질 게 있어?” (본문 176쪽)
제레미의 ‘진실’을 함께 나눈 것을 계기로, 오스카와 아빠는 미처 하지 못했던 대화를 시작한다. 아빠는 오스카에게 그동안 과거를 숨기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그제야 비로소 마음속에 고였던 깊은 숨을 토해 낸다.
어느덧 제레미가 ‘그곳’으로 간 지 6개월이 지나고, 학년 말 콘서트가 다가온다. 오스카와 마르카, M&O은 축제 당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무사히 마쳐 다시 한 번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를 얻는다. 무대 뒤로 내려온 오스카는 빗속을 걸어오는 제레미를 발견하는데…….
제레미는 영영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집에서 잠시 머물고는 또다시 ‘그곳’으로 떠나게 될까? 이제, 제레미가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차례다.
이것은 지구 건너편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가까이 겪고 느낀 쓰라린 현실
그동안 전쟁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수없이 많았음에도, 『제레미, 오늘도 무사히』가 주는 감동은 좀 더 특별하고 단단하다. 아마도 작품의 배경이 과거가 아닌 현재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이 책은 이라크전 탈영병의 이야기에 도움을 얻어 쓰여 졌다. 전쟁이 일어났던 과거를 되돌아보며 사라지지 않는 기억과의 싸움을 벌여온 그간의 작품들과 달리, 『제레미, 오늘도 무사히』는 지금 여기, 지구 건너편 수많은 젊은이들이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삶의 기록을 대신한다.
그러나 지구 건너편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엔, 우리가 겪은 과거의 상처를 외면할 수 없다.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피난을 온 할아버지,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아버지, 아프가니스탄 파병 용사였던 친인척, 그리고 스무 살 넘어 군대에 가게 될 아들까지……. 우리에게 ‘전쟁’은 직접 겪은 현실이자 대를 이어온 뼈아픈 가족사이다. 그 누구도 전쟁과 무관하다고 쉽게 단언할 수 없기에, 우리 사회 전반에는 전쟁을 둘러싼 불안과 두려움의 정서가 깔려 있다.
우리는 전쟁의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이기도 하다. 고국에서 벌어진 끔찍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지만, 타지에서는 군의 명령 아래 무참한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전쟁은 그 수단과 목적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매우 이기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전쟁’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소설은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다. 제레미는 18년 전 아빠가 겪은 전쟁의 상처를 똑같이 겪게 되었지만, 그 굴레를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베트남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며 살아온 아빠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향이다.
작가는 제레미의 선택이 군대나 나라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처절하고 절실한 선택일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힘 있게, 제레미의 ‘용기’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자비에 로랑 쁘띠
1956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철학을 전공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교장을 지냈으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책에 대한 열정으로 1994년 두 편의 추리 소설을 써서 출간하였다. 1996년과 2009년에 《흑단 같은 콜로르벨》과 《제레미, 오늘도 무사히》로 프랑스의 아동·청소년 문학상인 소르시에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가 되었다. 그동안 쓴 책으로《바보 같은 내 심장》 《구멍 난 기억》 《153일의 겨울》 《마에스트로》 《센베노, 아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