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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들 2
더모던 | 부모님 |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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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빈센트의 편지가 처음 출간되었던 1914년으로부터 110년이 흐른 2024년 더모던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글 전문을 한글로 완역한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들》을 출간했다. ‘갈리마르 판본’처럼 모든 편지를 최대한 연대기순으로 배열했고, 여전히 부정확한 날짜들도 ‘네덜란드 반고흐 뮤지엄 아카이브’(vangoghletters.org)를 참고해 표기해주려고 했다.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되도록, 문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부연설명들을 자세히 달았고, ‘광기, 고독, 열정’ 등의 프레임을 걷어내고 ‘민얼굴의 빈센트 반 고흐’를 마주하는 책이 되게 하려고 애썼다.

  출판사 리뷰

“정말 놀라운 책이 될 거예요.
빈센트 형님이 얼마나 깊이 사색했는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켜냈는지 보여줄 수만 있다면요.”
_ 1890년 9월 8일, 테오가 어머니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비운의 천재화가’ 형 빈센트와 미술상 동생 테오,
형제가 평생에 걸쳐 주고받은 다정하고도 격정적인 편지들을 한글로 완역하다!

1914년 테오의 미망인 ‘요안나 봉어르’가 정리해서 처음 출간한 이후,
테오의 아들이 보강한 『빈센트 반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판』을 거쳐
새롭게 발견되고 연구된 글까지 추가해, 800여 통의 편지 전문을 실었다


1914년, 네덜란드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글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편집자는 테오 반 고흐의 미망인인 요안나 반 고흐 봉어르. 이 책의 출간을 제안했던 남편이 미처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인 1891년 세상을 떠나자, 요안나는 홀로 편지들을 정리하고 연구했다. 출간에 24년이나 걸렸던 이유는, 대다수의 편지에 날짜가 없어서 방대한 분량을 정리하는 데 애를 먹은 탓도 있지만, ‘빈센트가 인생을 바쳐서 그려낸 그림들이 정당한 평가(칭송)을 받기도 전에 그의 생각(성격)부터 주목을 받는 건 옳지 않다’는 요안나의 소신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안나는 빈센트의 전시회부터 개최해서 화가로서 인정받게 한 후에 편지글을 출간했다.

1953년, 네덜란드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판』이 4권으로 출간되었다. 이 기념비적 판본의 출간을 이끈 이는 테오와 요안나의 아들이자 동명의 조카인 빈센트 빌럼 반 고흐. 빈센트가 <꽃 피는 아몬드나무>를 그려서 선물했다던 바로 그 조카다. 그는 어머니가 완성한 책을 토대로, 편지지 원본에 끄적여져 있는 데생(그림)과 메모까지 스캔을 떠서 담았고, 이후 새롭게 발견된 편지들과 관련 인물들의 기고문까지 꼼꼼하게 모아서 실었다. 이후 1958년에 2권짜리 재편집본도 나왔다.

1960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빈센트 반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판>을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3권짜리 전집으로 출간했다.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가, 비록 출생은 네덜란드 쥔더르트지만, 파리에서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아를에서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낸 끝에 오베르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자국에 이렇게 중요한 예술가에 대한 자료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반성과 경애의 표현이었다. 다만, <100주년 기념판>이 수신인이 테오가 아닌(라파르트, 에밀 베르나르, 빌레미나) 편지들을 뒤에 따로 모아서 수록했다면, ‘갈리마르판 서간집’은 모든 편지를 연대기적인 순으로 분류해 수록했고, 이후 새롭게 발견된 7통도 더 추가했다(37a, 39b, 514a, 553b, 558a, 559a, 614a).

빈센트의 편지가 처음 출간되었던 1914년으로부터 110년이 흐른 2024년 더모던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글 전문을 한글로 완역한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들》을 출간했다. ‘갈리마르 판본’처럼 모든 편지를 최대한 연대기순으로 배열했고, 여전히 부정확한 날짜들도 ‘네덜란드 반고흐 뮤지엄 아카이브’(vangoghletters.org)를 참고해 표기해주려고 했다.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되도록, 문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부연설명들을 자세히 달았고, ‘광기, 고독, 열정’ 등의 프레임을 걷어내고 ‘민얼굴의 빈센트 반 고흐’를 마주하는 책이 되게 하려고 애썼다.

생전에는 그림을 단 1점밖에 팔지 못했는데
죽어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된 빈센트 반 고흐,
스스로 자기 그림의 큐레이터이자 도슨트가 되어 설명해주는 듯한 상세한 뒷이야기들


빈센트 반 고흐는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화가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살아생전에는 작품을 900여 점이나 쉴 새 없이 그렸어도 단 1점밖에 팔지 못한 무명화가였다. 죽기 반년쯤 전에 친구의 누이가 <붉은 포도밭>을 사준 것이 전부였다. 10년 동안 그림에 매진했지만, 얼굴도 ‘못생기게 그리고’ 색도 ‘이상하게 칠하는’ 괴팍하고 무능력한 화가로 취급받았다. 그런 빈센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곁을 지켜준 것은 4살 터울의 동생 테오뿐이었다. 둘 다 비슷한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화랑에서 일을 시작했기에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이 평생 이어졌다.
빈센트는 긴 방황 끝에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인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그림 연습에 매진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자 후원자인 동생 테오에게 엄청난 분량의 편지를 자주 썼는데, 특히나 그림을 그리는 전 과정을 자세하게 적었다. 지금 어떤 습작을 훈련 중인지, 그림의 대상은 어떻게 선정했는지, 어떤 기법으로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 어떤 지점에서 왜 실패했고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무슨 액자에 어떤 조명을 설치해서 감상할 것인지 등등, 마치 스스로가 자기 그림의 큐레이터이자 도슨트가 된 듯이 상세히 설명해서, 오늘날 우리가 반 고흐의 그림을 더 정확하고 깊이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 의미에서 형제간의 편지글이지만,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화가 본인이 직접 설명하는 임파스토 기법(덩어리처럼 두껍게 칠하는 채색), 보색대비, 데생의 원칙, 자연을 그리는 이유 등을 듣고 나면 ‘못생기고 이상하게’ 보였던 그림들의 의미가 깊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의 3개국어로
미술(예술), 종교, 문학 등등 다방면에 걸쳐 쏟아내는 인문학적 고뇌
죽을 때까지 이해받지 못했던 ‘고독한 화가’ 빈센트의 간절한 독백들


방대한 분량, 전문적인 회화 용어 외에도, 이 사사로운 편지글들이 읽기 힘든 이유들이 더 있다.
우선, 편지에 3개의 언어(네덜란드어, 영어, 프랑스어)가 복잡하게 혼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세 언어 중 어느 언어도 완벽히 구사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외국을 떠돌며 외국어를 독학한 탓에 외국어 문법은 물론이고 모국어 실력도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다. “빈센트가 구사하는 네덜란드어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브라반트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는 구어에 가까우며 독일어 어법에 영향을 받은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단어를 개인적인 의미를 담아 변형한다.(모이스 베이르블록)” “편지를 읽다 보면 읽기 민망할 정도로 수많은 맞춤법 오류와 문법적 오류가 눈에 띄고, 구두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이해에 방해가 되는 문장도 보인다……. 네덜란드어에 없는 영어나 프랑스어 표현을 네덜란드어로 직역하기도 하고, 남의 글을 인용할 때도 자신의 자의적 해석대로 옮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루이 로엘랑트)”
또한 빈센트는 목회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미술상인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종교, 미술(예술), 문학에 눈떴고, 집요하리만치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그 독서의 넓이와 깊이가 결코 만만치 않은 데다가, 사색의 내용들을 동생 테오와 빠짐없이 나누고 싶어서 며칠 간격으로 장문의 편지를 지치지도 않고 써내려갔기에, 부연설명 없이 둘만의 추억과 지인을 언급했거나 특정 작품의 구체적인 글귀를 인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게다가 일부 중요한 사실들은 빈센트가 테오에게조차 거짓으로 말하거나 혹은 묵언으로 의도적으로 숨기기도 했다. 가령 이제는 꽤나 유명한 그의 여러 차례의 연애 사건과 기행들을, 그는 동생에게 말하기 창피했던 것인지 편지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즈음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구절을 인용해 적거나 특정한 그림을 소개하는 식으로 시치미를 떼고 슬쩍 넘어갔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러한 공백을 채워서 읽는다면, 이 긴 편지글들은 흥미롭게 순식간에 읽힐 것이다.

밀레의 말을 계속 떠올리고 있다. ‘Je ne veux point supprimer la souffrance , car souvent c’est elle qui fait s’exprimer le plus energiquement les artistes(고통을 회피하지 않겠다. 고통이야말로 예술가의 표현력을 가장 강렬하게 끌어올려주기 때문이다).’ (……) 나 자신을 전원화가로 지칭했는데,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앞으로는 더 분명해질 거야. 내가 그 옛날에, 밤이면 광부나 토탄 캐는 사람들의 집, 불가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여기서는 직조공이나 농부들의 생활상을 관찰한 게 괜한 짓은 아니었더라. 작업 때문에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어. 온종일 농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나도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거든.
네 편지를 보니, 전시회에서 보면 대중들이 밀레의 작품에 무관심한데 이런 상황은 예술가는 물론이고 미술상들에게도 맥빠지는 일이라고 썼더구나.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런데 무엇보다 밀레 자신 이런 상황을 느꼈고 잘 알았어. 상시에의 책을 읽다가 내가 놀랐던 건, 밀레가 화가로서 첫발을 내딛던 순간을 회상하는 부분이었어.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의미는 기억난다. ‘내가 화려한 신발을 신고 부유한 삶을 사는 신사였다면 이런 무관심이 정말 괴로웠겠지만, puisque j’y vais en sabots je m’en tirerai(난 나막신을 신고 다니니까 잘 헤쳐나갈 수 있다).’
(……) 내가 밀레의 말을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도시 사람이 농부를 그리면 생김새들은 제법 근사한데, 본의 아니게 자꾸 파리 외곽 변두리가 떠오른다’던 네 편지 내용이 생각나서야. 나도 전에 종종 그런 인상을 받았거든. 그런데 그건 화가 자신이 전원생활에 충분히 깊이 뛰어들지 못해서가 아닐까? 밀레는 이런 말도 했었지. ‘Dans l’art il faut y mettre sa peau(예술에 마음과 영혼을 다 바쳐야 한다).’
_400번 편지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은 확실히 황금색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야. 아니면 잘 익은 밀밭의 깊은 색을 가진 벽지로 도배된 벽에도 잘 어울릴 거야. 이런 환경이 아니라면 절대로 걸어선 안 돼. 어두운 배경에서는 진가가 드러나지 않거든. 특히나 흐릿하고 밋밋한 배경에서는 더 볼품없어 보여. 무척 어두운 실내에서의 순간을 담은 그림이라서 말이야.
사실은 실제 장면도 일종의 금색 테두리에 들어 있었어. 난로의 열기와 불빛이 흰 벽을 가득 비췄거든. 그림에서는 잘려나갔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게 함께 비춰진 모습이 관찰자의 눈에 비친 장면에 가깝지.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이 그림은 꼭 황금색이나 짙은 동색 테두리의 액자에 넣고 감상해야 해. 이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내 말을 꼭 기억해라. 이 그림을 금색 계열 옆에 두면 빛이 전혀 없는 곳에 두어도 빛이 느껴질 거야. 또한 밋밋하거나 새까만 배경에 뒀을 때 보여지는 대리석 무늬 같은 점들도 사라지지. 그림자를 파란색을 활용해 칠했기 때문에 금색이 가장 잘 어울려.
(……)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정말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 농부들이 램프 불빛 아래서 집어먹는 감자가 바로 그들의 손으로 땅을 일구고 수확해서 식탁에 차린 것이라는 사실이었어. 손으로 하는 노동을, 그들이 정직하게 일해서 얻은 정직한 식사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같이 좀 배웠네 하는 치들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말이야. 그래서 난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서 그저 예쁘네, 잘 그렸네, 말하고 그치는 게 정말 싫다.
_404번 편지

<방직기>는 현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크레용으로 다 그린 습작이었어. 힘들었지. 방직기 가까이 앉아 있어야 했던 탓에, 비율을 측정하는 게 유난히 힘들기도 했고. 그래도 직조공 그림자라도 그려 넣었던 건, 이런 말을 하고 싶어서야. 여러 개의 널빤지를 이어붙인 때가 탄 시커먼 떡갈나무 덩어리가 회색조의 배경과 대비를 이루고, 그 한가운데 검은 원숭이 같기도 하고 난쟁이 같기도 하고, 아니면 유령 같기도 한 인물이 아침부터 밤까지 널빤지를 두드리며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방직공의 형체를 그려넣은 부분에서 널빤지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 그래, 맞아. 이건 기계 그림이야. 그런데 이걸 기계 설계도 옆에 나란히 둬봐. 내 그림에서는 확실히 유령이 느껴질걸. 사실은 전혀 기계 그림이 아닌 거야. 혹은 je ne sais quoi(뭔지 모를 무언가이지). 만약에 그 방직기를 직접 설계한 기술자가 그린 그림 옆에 내 습작을 세워도, 내 그림에서는 땀에 젖은 손으로 만져서 손때가 탄 떡갈나무의 결이 강렬하게 느껴지지. 그리고 바라보고 있으면 (방직공을 전혀 그려넣지 않았어도, 혹은 그를 아주 이상한 비율로 그려넣었더라도) 그 일꾼이 반드시 떠오르게 된다네. 설계사의 설계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일종의 한숨이나 탄식도 널빤지 사이로 간간이 흘러나올 걸세.
_라44번 편지

  작가 소개

지은이 : 빈센트 반 고흐
인상주의가 표현주의가 되는 변화의 지점, 정확히 그 과도기의 그림을 그렸기에, 선구자로서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의 쥔더르트에서 개신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화랑을 운영하던 큰아버지 덕분에 일찍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지만, 목회자가 되려고 화랑을 그만두고 교사, 서점 직원, 전도사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결국 27세에 뒤늦게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그림 공부에 열중한다. 데생을 제외하고도 유화를 900여 점이나 그렸는데, 안타깝게도 관리 부실로 많은 작품이 사라졌다.평소에 우울증을 앓던 빈센트는 1888년 아를에서 고갱과의 협업이 실패로 끝나며 첫 번째 발작을 일으켰고, 이후 계속해서 졸도와 발작 증세에 시달리다가 1890년 오베르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형을 잃은 깊은 슬픔 때문인지 테오도 지병이 악화되어 반 년 후에 사망했다. 미망인이 된 테오의 아내 요안나 봉어르가 남편의 서랍장을 꽉 채우고 있던 두 형제의 편지들을 꺼내 읽다가, 이 글들이 빈센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먼저 작품전을 기획해 개최했고, 이후 668통(다른 지인들과 나눈 편지까지 합하면 900여 통)의 편지들을 직접 번역해서 1914년 《빈센트 반 고흐의 서신집》을 출간했다. 테오와 요안나의 아들이자 화가의 동명의 조카인 V.W.반 고흐가 새로 발견된 편지들을 추가하고 보강해서 《빈센트 반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판》을 출간했고, 이후에도 프랑스 갈리마르판 등 다양한 번역출간과 연구 및 편지 발굴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목차

9-2. 네덜란드_ 헤이그 Den Haag /1883년 1월~1883년 9월
10. 네덜란드_ 드렌터 Drenthe /1883년 9월~11월
11. 네덜란드_ 뉘넌 Nuenen /1883년 9월~188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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