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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같은 그리움도
문학바탕 | 부모님 |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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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윤중일의 첫 시집. 1부 '풀잎 사랑', 2부 '커피 같은 그리움도', 3부 '버려진 미래', 4부 '시베리아 횡단하다', 5부 '길이라도 잃어버렸으면', 6부 '발로 찍는 사진'으로 구성되었다.

  출판사 리뷰

작품해설

불타는 영혼과 영감의 시인 尹中一


민용태(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스페인 왕립한림원 위원)

尹中一 시인은 “자서전”에서 술을 한 백 병쯤 마셔야 시를 잘 쓸 수 있으리라 상상한다. 자신은 술을 잘 못 마셔서 시가 잘 쓰여지지 않는다고 술회한다. 이태백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듯싶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에 홀딱 반해서 술 먹다 이백을 불러오라 한다. 그때 한참 술에 빠져있던 이백이 왕의 부름을 받고 나타나 그 자리의 현종에게 소리친다. “어어… 내 신발 좀 벗기거라!” 이리하여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썼다는 일화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안다. 그러니까 윤 시인은 이백의 술과 기개를 닮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 같다. 우리 시인 누가 이백을 흠모하지 않았으랴. 그런 의미에서 윤 시인은 누구보다 시인답다. 그만큼 불타는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감을 받아 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1. 뮤즈에 미친 예술가

윤중일 시인은 평생을 사진에 미쳐 산 예술가 중의 예술가이다. 젊어서 가난할 때 아내 모르게 아파트 반 채 값에 버금가는 그 비싼 카메라를 덜컥 사들고 온 예술에 미친 예술가이다. 그 비싼 보석으로 새를 찍고 풍경을 담으러 돌아다닌 위인이 오늘 윤중일 시인이다. 그가 예술에 미친 만큼 여자와 사랑에도 미칠 줄 아는 불타는 영혼을 가진 시인이 윤중일이다. 시인은 고백한다:

…여자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 공부를 일찍 포기한 것은 평생 후회다 여자 없이 못 살 팔자면서 결혼을 후회한다 여자 때문에 제대로 못 살아 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여자에게 배신당한 적도 상처를 입은 적도 없는데, 여자가 얄미우면서 흠모의 대상이다 여자는 해풀 같은 깨끗함과 동굴 속 같은 오리무중에 사랑스럽고 헷갈린다 헐빈한 것 같으면서 무성하고, 맑고 깨끗해서 좋은데 얼음처럼 차가운 냉정함에 갸웃한다 그럼에도 여자는 실핏줄 같은 그리움과 사랑의 화신, 여자 없이 못살 팔자면서 늘 혼자 살고 싶은 꿈을 꾼다

여기에 나오는 윤중일의 솔직함과 진솔함이 그를 진정한 시인으로 만든 장점이요 원동력이다. 그가 “여자 없이 못살 팔자”라고 하는 것은 시인의 커피향 같은 그리움이 향하는 곳이 “여자”이거나 뮤즈이기 때문이다. “커피 같은 여자”라는 시를 보자:

일 하다말고 물을 끓인다
날마다 마시는 커피
못 견딜 그리움인가
사랑도 이 같았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셔야만 하는 것
무슨 이유인가
겨울 없는 남방에서
재배되는 커피는
맛도 제각각인데
그 유별난 향기는
어디서 오는가
중독이어도 괜찮아
너도 이 같았으면

커피 맛 그 향기
날마다 맡아도
질리지도 않는
내일이면 가란찮게
또다시 생각나는
커피 같은 여자.

“날마다 맡아도/ 질리지도 않는…” 항상 사랑과 그리움이 향하는 “커피 같은 여자”가 바로 뮤즈이다. 플라톤은 시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혹은 신들리게 하는(mania) 마력을 가졌음을 그의 책 “이온(Ion)”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온이라는 이름의 시인이며 시낭독자를 길에서 만난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스승이며 항상 그의 책의 주인공)는 시와 시인이 바로 이런 자력과 같은 힘을 말한다. 시인이 시를 읊고 쓰는 것은 뮤즈로부터 이런 영감을 받다 읊조리는 것이고, 그의 시를 듣고 감동을 받는 독자도 시인으로부터 감동(신들림)을 받아 미치게 좋아하는 것. 따라서 시인이나 예술가는 다름 아닌 이런 무당이나 인기 가수 같은 신기한 힘을 가진 자라는 설명이다.
사람을 신들리게 하는 힘은 바로 사랑에서 온다. 윤중일은 사랑의 시인이다. 그는 두향과 이퇴계의 사랑 이야기 “청매 하나 두고 싶다”를 쓴다. 그 시에는 “눈 뜨면 보이는 곳 청매靑梅 하나/ 섣달그믐 꽃눈 볼록 터질 듯/ 부푼 너의 가슴” 같은 “두향杜香이 일생 가꾸던 청매화 하나를” “임지로 떠나는 서방님 퇴계退溪에게 준” 사연이 나온다. 퇴계는 두향 보듯 청매를 가꾸다 죽음에 이르러 “저 매화분에 물 주거라!”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누구라도 시간 따라 정분도 식겠지만
퇴계와 두향의 끈질긴 사랑
청매 같은 정조와 올곧은 기개
두향은 퇴계 떠난 그 자리에서
절개를 지키다 죽었다
아무라도 저와 같길 바라지
시간 되면 떨어지는 낙엽
사랑도 그렇게 식어가는 것
매화 절개 올곧기도 하거니
사는 동안 오래된 청매 하나
곁에 두고 싶은 내 마음
구름에나 걸어 두어라.

철마다 시간 따라 변하는 곳에 청매 하나를 기르는 사랑 가꾸기는 안타깝고 애처롭다. 그러나 올곧은 마음으로 더욱 깊게 영원으로 승화시킨 “얼음 같은 속살 옥처럼 맑은” 사랑의 정성이 청매로 핀다는 두향의 사랑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사랑의 시인에게 이토록 간절한 향기가 그리울 터…

2. 현실을 사는 실존 시인

그러나 윤중일은 사랑과 그리움만 먹고 사는 시인은 아니다. 그에게는 시간과 현실이라는 냉혹한 실존의 아픔이 있다. 시인에게 오늘의 세상은 무서운 총성으로 메아리친다:

소리 없는 아우성
들리지 않는 울음
세상이 온통 전쟁이다
총성도 울리지 않는데
죽음은 계속 쌓여만 가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미군 35만 명이 죽었는데
2020년 올 한해 미국은
40만 명의 국민이 죽었다
우리나라도 천삼백 명이 죽었다
어찌 이보다 더한 재앙이 있을까
어찌 21세기에 있고야 마는가
1년 동안 여행이 금지되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는 더하다
5인 이상 모든 모임 금지되니
시절이 참말로 수상해
친구끼리 만남도 꺼려진다
집에서 사무실만 왔다갔다
살아 있음이 삶 아닌 감옥이다.

아침마다 들쳐보는 신문에는 전쟁과 죽음, 코로나까지 목 앞에서 아우성이다. 눈을 감고 꿈만 먹고 살기에는 너무 끔찍한 현실이 현상으로 육박한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마스크 없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산다는 게 “감옥” 생활이다. “1년 동안 여행이 금지되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는 더하다/ 5인 이상 모든 모임 금지되니”이런 숨막히는 현실이 우리를 에워싸고 아우성이다. 윤 시인은 구체적으로 코로나를 시로 쓴다:

2020년 2월 중국 우한 시로부터 찾아온 손님
세상을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사랑하는 이와도 저만치 떨어져
입맞춤은커녕 손도 잡지 말아야 한다
견뎌야 해 참아야 해
세상이 온통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지구 이쪽에서 저쪽까지
나라마다 사람들은 죽어가고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도 죽어가고
병원도 환자도 수용할 공간 부족
어느 별 어느 하늘 이런 참혹한 그늘로
서로를 불신하며 외면한 적 있었던가
불신의 고리 끊어질 날
알 수 없는 게 더 괴롭지만
언젠가 해 뜨고 볕 쨍쨍 비칠 날 있겠지
붙잡을 순 없어도 끝끝내 이기고 살아남으라
사랑하는 사람들아 떠나지 말고.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이 판도라 상자를 열었을 때 세상의 모든 재난과 질병, 불행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 불행 덩어리 세상의 삶 중 거기 유일하게 남은 게 희망이었다는 것. 윤중일 시인은 “병원도 환자도 수용할 공간 부족/ 어느 별 어느 하늘 이런 참혹한 그늘로/ 서로를 불신하며 외면한 적 있었던가/ 불신의 고리 끊어질 날/ 알 수 없는 게 더 괴롭지만/ 언젠가 해 뜨고 볕 쨍쨍 비칠 날 있겠지”라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아직 사랑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 기독교도 신은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3.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시다

나를 아프게 하고 괴롭히는 게 어찌 코로나뿐이겠는가? 스페인의 황금세기의 위대한 시인 께베도(Quevedo)의 시구에서처럼, 나이 드니 남의 일인 듯하던 “모든 질난과 질병이 모두 나를 감싸고도는구나(No hay calamidades que no me rondan)”라고 한탄한다. 윤 시인도 나이가 드니 병원 신세를 진다. “인슐린을 맞으며”라는 시를 보자:

혈당 체크 250이라 인슐린 22단위를 뱃가죽에 찔러 넣는다
눈앞이 핑그르르 인슐린이 혈액 속으로 스미는 순간 현기증 인다
하루 식전 세 번씩에다 더러 밤늦게 한 번 더
말초혈관 발가락 끝에 피가 안 돌아 끝내 날 저물면
세포가 썩게 되는 당뇨합병증은 곧 죽음
그걸 막기 위해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참아내야 하는 것은
생목숨으로 참 못할 짓이고 내 몸뚱이에 미안하다

인간 본능인 삼대 욕망이 먹고 자고 하는 건데
나이드니 하는 것도 참 어렵구나
먹는 것마저 눈 뜨고 참아야 하는 것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과일 가게의 현란한 색들은 늘 외면
모임에서 각가지 음료와 술, 떡과 사과 고구마 삶은 옥수수는
뚝 꺾어 반 개만 먹고 참는다
못 먹고 참아야 하는 것은 하기 힘든 거보다 더 가혹하다
당뇨병은 선친이 물려준 거라지만 내 몸에 미안하다 아니
떠날 때가 한 뼘 남았으니 한 두어 뼘만 더 참아달라고 할까.

나이 든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의사의 경고가 귀에 붙어있다: “말초혈관 발가락 끝에 피가 안 돌아 끝내 날 저물면/ 세포가 썩게 되는 당뇨합병증은 곧 죽음”이라는 말! 선천적으로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유전병이라지만, “먹는 것마저 눈 뜨고 참아야 하는 것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과일 가게의 현란한 색들은 늘 외면/ 모임에서 각가지 음료와 술, 떡과 사과 고구마 삶은 옥수수는/ 뚝 꺾어 반 개만 먹고 참는다/ 못 먹고 참아야 하는 것은 하기 힘든 거보다 더 가혹하다”
정말로 구구절절이 아픈 당뇨병 환자의 고생이 묻어있다. 그러나 이런 아픔과 참음이 감동스러운 시가 되는 것은 윤 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체험 이야기의 진솔성 때문이다. 예술과 시는 진실한 마음에서 거짓 없이 우러나오는 말 자체이다. 공자께서는 “시는 한마디로 말해서 나쁘고 거짓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사무사, 思無邪)이라고 하셨다. “거짓스러운 생각을 하지 말고”,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성심”스럽다고 해서 중용의 가장 훌륭한 덕으로 보았다. 공자가 “시에서 배워야(시교, 詩敎) 참 인간이 된다”라고 한 것은 시인에게만 한 말이 아니라 모든 인간다운 인간(군자, 君子)에게 하신 좋은 말씀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시도 읽지 않고 막말이 많고 너무 어지러운 것은 말로만 유교를 찾고 공자를 너무 안 읽어서이다. 윤중일 시인의 시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런 진솔성과 성심성이다. 어떻게 보면 윤 시인은 너무 솔직하게 쉽게 시를 쓰는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동안 참고 닦아온 평범 속의 비범非凡이 무서우리만큼 조용하게 빛나고 있을 뿐.
요즘 윤중일 시인의 모습은 좀 힘들어 보인다. 나이 든다는 것이 불편하긴 한 모양이다. 걷기도 별로 편한 것 같지 않다. 최근에 쓴 “기적”이란 시를 보면, 그런 고충이 보인다:

“지하철 여섯 정거장/ 20분이면 닿는 내 작업실/ 경로대우 받으니 요금도 공짜/ 편리하고 좋기만 한데/ 택시를 타거나/ 차를 운전하고 다닌다/ 불과 1km도 못 걸어/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해/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못한/ 바보가 되어버린 나”

그러나 윤 시인을 보면 늙고 아픈 것이 더 깊고 겸손하고 훌륭한 시인으로 만드는 길인 것 같다. 위 시의 마지막 연의 “달리기는 달려가는 시간으로 밀어두고/ 다만 걸을 수 있는 기적을”이라는 시구는 그야말로 절구絶句이다! 세월과 시간이 야속하게 얼마나 빨리 달려가기에 아이러니하게 이런 말을 할까? 하상 걷는 걸음이 “걸을 수 있는 기적”임을 느끼는 순간 윤중일 시인은 무섭게 깨달은 시인이 된다:

저녁 어스름
성내천 둘레길 걷는다
더러 불 밝힌 자전거도 달리고
걷는 이들 발걸음도 바쁘다
내딛는 발걸음 힘이 넘친다
젊어서는 먼 거리 달려도 보았지
땅에서 마음 놓고 걸을 수 있기를
지구가 공전하듯
언제나 같을 수는 없지만
넘치는 행복은 바라지도 않아
달리기는 달려가는 시간으로 밀어두고
다만 걸을 수 있는 기적을.

커피 같은 그리움도

일손 멈추고 하루 몇 번씩
참을 수 없는 그리움
물을 끓인다
마시지 않으면 못 견딜
커피는 여자인가

연락할 그 무엇
기댈 곳도 없는데
커피 같은 그리움
이토록 생각나는 그대는
차라리 안개였음 좋겠네
보이지 않음 잊어질까

날마다 목이 타는
내일이면 또 생각나는
커피 같은 그리움도
때가 되면 사라지고 말아
서산에 걸린 해

차라리 붉게 물든 노을빛 하늘
한 조각 구름이나 바라보지.

2023. 10.

청매靑梅 하나 두고 싶다

마당에 매화 하나 두리라
눈 뜨면 보이는 곳 청매靑梅 하나
섣달그믐 꽃눈 볼록 터질 듯
부푼 너의 가슴 보고 싶다
두향杜香이 일생 가꾸던 청매는
임지로 떠나는 서방님 퇴계退溪에게 주었지
퇴계는 생전에 두향 보듯 청매를 가꾸다
죽음에 이르러 유언처럼 내뱉은 말
“저 매화분에 물 주거라!”고 말한 뒤 숨을 거두지
두향을 향한 애타는 그리움
하얀 꽃잎에 녹빛 돌아 청매가 되었지
두향 절개 서린 빙기옥골氷肌玉骨
얼음 같은 속살 옥처럼 맑아
그 눈빛 향기로 가득하네
오래된 청매 하나 곁에 두리라

누구라도 시간 따라 정분도 식겠지만
퇴계와 두향의 끈질긴 사랑
청매 같은 정조와 올곧은 기개
두향은 퇴계 떠난 그 자리에서
절개를 지키다 죽었다
아무라도 저와 같길 바라지
시간 되면 떨어지는 낙엽
사랑도 그렇게 식어가는 것
매화 절개 올곧기도 하거니
사는 동안 오래된 청매 하나
곁에 두고 싶은 내 마음
구름에나 걸어 두어라.

2023. 12. 18.

엄마 생각

눈빛으로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만
손과 발짓으로도 못 알아먹을 때가 더 많아
소통이 되었거나 안 될 때도 웃기는 마찬가지
웃었다 알아들었다고 웃고
못 알아들어도 웃고
엄마 소통 방식은 늘 그랬다
못 알아들어 답답할 땐
입 벌려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아주 답답할 땐 가슴 몇 번 두드리다
그리고 웃었다 화 났을 때는
쫓아오다 빗자루 내던지고
주저앉아 그만 웃었다
과도로 손발톱 자주 깎던
한겨울에도 부엌문 닫아걸고
물을 데워 목욕 자주 하던
하얀 무명치마저고리에
단정히 빗어 넘긴 가르마
피마자 기름 즐겨 바르던
은비녀 꽂은 머리 깔끔한 차림
사시사철 하얀 버선 흰 고무신
돋보기안경 애지중지 하던
엄마 그립다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밤늦도록 골무 끼고
검정 무명바지저고리 바느질하던
물레를 돌리다 실이 끊어지면
하얀 허벅지 내놓고 침 발라 실을 잇던
생김새도 키도 성격도 온통
엄마를 속속들이 빼다 박은 나
엄마의 분신으로 살아온 나날들
저 때문에 당신이 저승에서 몇 번쯤
미소 지었으면 좋겠네
벙어리 우리 엄마.

  작가 소개

지은이 : 윤중일
· 1943년 영천시 신녕면 출생· 우재愚齋(어리석은 사람이 머무는 집)·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장 역임(2002)· (사)한국불교사진협회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2010~)·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문학의집·서울 회원·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 회원· 夢村수필문학회 회장(2020~)· 월간 한국수필 신인상(2009)· 월간 문학바탕 시 신인상(2019)· 민용태 월요詩아카데미 회원(2018~)· 대구사진연구회 회원전(1976년 외)· 동아리 사진전 100회 이상 출품· 개인전 문학의집·서울 갤러리 30일간 사진전(2019) <작품명:白頭山天池> 尹中一 作 가로화면 2m 사진액자 전시 후 문학의집·서울에 기증 · 수필집 『그날도 오늘처럼』 2017, 『불편한 침묵』 2022· 시집 『커피 같은 그리움도』 2024· 강남윤아트 대표

  목차

첫 시집을 내면서 · 3

제1부 풀잎 사랑
천지의 봄꽃들 · 10
철없던 시절 · 12
오월, 그 바람이여 · 13
우짜마 좋노 · 14
이 땅에서 손잡고 · 16
풀잎 사랑 · 18
익어가는 것 · 19
자화상 · 20
존재하기 연습 · 22
커피 같은 여자 · 24
코로나 19 · 25
꽃다운 날에 · 26
말해야 하나 · 28
사랑만 있다면 · 29
이를 어쩌나 · 30

제2부 커피 같은 그리움도
저혈당 쇼크 · 34
지구가 몸살났다 · 36
커피 같은 그리움도 · 38
풀잎 향기 그리워도 · 39
하루나 이틀 · 40
회상 · 41
기적 · 42
발과 발 사이 · 44
벌을 받누나 · 46
부활 · 48
그리운 고향 · 49

제3부 버려진 미래
버려진 미래 · 52
생각 같지 않아 · 54
어제처럼 · 56
그건 불가해不可解한 일이다 · 58
깊은 인연 하나 · 59
없는 번호입니다 · 60
인슐린을 맞으며 · 62
21세기 오늘 · 64
바람아 멈추어다오 · 65
신비로운 건 여자 · 66

제4부 시베리아 횡단하다
시베리아 횡단하다 · 70
바람꽃처럼 · 73
빈들에서 · 74
청매靑梅 하나 두고 싶다 · 76
사람 구실 · 78
삼한사온 그립다 · 79
엄마 생각 · 80
가장 멀리 나는 새 · 82
낙엽 · 83
깨끗한 지구를 위해 · 84

제5부 길이라도 잃어버렸으면
날리는 게 눈뿐이랴 · 88
돌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 89
꿈과 기적의 나날 · 90
길이라도 잃어버렸으면 · 92
댓잎에 바람소리로 · 94
딸이 좋아 · 96
너는 가고 · 99
가을비 쓸쓸히 · 100
살아보니 알겠다 · 101
참회록을 쓰지 못한 나 · 102

제6부 발로 찍는 사진
봄나물 질경이 · 106
타고난 복 · 108
지구가 화났다 · 109
발로 찍는 사진 · 110
그 때 그 시절 · 112
그대 곁이라면 · 113
민물고기 조림 놓고 · 114
소리 없는 아우성 · 116

작품해설
불타는 영혼과 영감의 시인 尹中一_민용태 ·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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