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2023 뉴베리 명예상 수상작
2023 월터 딘 마이어스 명예상 수상작
크리스티나 순톤밧의
세 번째 뉴베리 명예상 수상작
벗어나고 싶은 과거와 이어진 고리를 끊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 바다로 나선
열두 살 사이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험!어둠 속에서 태어난 두 아이의 눈부신 반란을 담아낸 《어둠을 걷는 아이들》로 2021년 뉴베리 명예상을 수상한 크리스티나 순톤밧은 논픽션 분야에서도 같은 상을 받으며, 한 해에 두 개의 뉴베리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23년, 타고난 출신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바다로 떠난 여자아이의 모험을 다룬 《마지막 지도 제작자》로 또다시 뉴베리 명예상을 수상했다. 동시에 다양성을 지닌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훌륭한 책에 수여하는 월터 딘 마이어스 명예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 번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마지막 지도 제작자》의 주인공 사이는 지도 명장인 파이윤의 조수로 일한다. 도둑질과 사기를 일삼는 아빠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파이윤 사부에게는 자신의 출신을 숨긴 채. 우연히 사이의 위조 실력을 알게 된 사부는 새로운 땅을 찾는 원정에 합류해 대신 지도를 그려 줄 것을 제안하고, 아빠에게서 벗어날 기회만 엿보던 사이는 기꺼이 사부를 따라 ‘번영함’에 오른다. 하지만 번영함에서 사이의 출신을 눈치챈 ‘그레베’를 맞닥뜨리고, 밀항자 소년 ‘보’를 발견해 떠맡기까지 한다. 그레베와 보 때문에 가슴을 졸이는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신을 허물없이 대하는 귀족 아가씨 ‘리안’과 가까워진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함장의 친구로 알려진 리안은 빈민가 출신인 사이와 처지는 다르지만, 이번 원정을 계기로 더 높은 신분으로 발돋움하고 싶은 욕망이 거울처럼 닮아 있다.
리안에게서 미지의 대륙 ‘선덜랜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원정의 진짜 목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이는 원정을 방해하려는 사람들과 기어코 선덜랜드를 발견하려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한다. 선덜랜드를 세상에 드러내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공적을 세워 자신의 초라한 신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또한 절실하다. 그렇게 목숨을 건 항해를 이어 가며, 사이는 한 걸음 한 걸음 진실에 다가간다.
자유롭고 당당한 미래를 갈망하는
아이의 간절하고도 흥미진진한 모험작품 속에서 사이가 살고 있는 망콘 왕국은 수많은 나라를 정복한 강력한 국가이자, 엄격한 질서와 규범이 존재하는 사회다. 망콘의 국가 이념은 ‘꼬리는 이빨이다.’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망콘의 아이들은 과거는 곧 미래이며, 자신들은 모두 과거와 이어진 살아 있는 연결 고리라고 배우며 자란다. 모든 아이는 열세 살이 되면 ‘리니얼’을 받게 되는데, 리니얼의 고리는 한 세대의 자랑스러운 조상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시계 줄이나 팔찌로 만들어 지니고 다니는 리니얼의 고리를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고귀한 신분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에게 리니얼로 드러낼 만한 자랑스러운 조상 따위는 없다. 그저 딸을 이용할 궁리만 하는 전과자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비록 사기 행각에 이용하기 위해서였지만, 아버지가 받게 한 교육 덕분에 사이에게도 기회가 찾아온다. 지도 명장 파이윤의 눈에 들어 조수로 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이는 파이윤 사부 밑에서 일하는 내내 자신의 출신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사부가 자신의 출신을 알게 되면 애써 얻은 기회마저 잃게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출신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다시피 하는 망콘에서 사이 같은 아이가 명장의 수제자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사이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조수 일은 안룽을 떠날 자금을 모을 방편으로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사람의 필체를 똑같이 흉내 낼 수 있는 사이의 재주를 아버지가 또다시 사기 행각에 이용하려 든다. 출신은 초라하더라도 내면마저 초라해질 수 없었던 사이는 이 일로 아버지와 망콘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을 더욱 키운다.
바로 그때, 사이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여왕의 명으로 새로운 땅을 찾으러 떠나는 함선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이가 치러야 할 시험은 끝이 없다. 자신을 믿고 기회를 준 사부를 등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할 갈림길에 선 것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것인지, 양심을 따를 것인지를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사이의 여정은 우리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두운 과거가 발목을 잡고, 쉽지 않은 선택이 앞길을 가로막는 가운데에서도, 사이는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때로는 그릇된 선택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까지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사이를 어느새 독자도 힘껏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상적인 배경과 현실적인 욕망이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여정 끝에 발견할 진정한 희망사이 일행이 찾아 나선 ‘선덜랜드’는 망콘 왕국이 번성하도록 도운 용들이 왕국을 떠나 새롭게 찾은 터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가의 고향인 태국과 함께 대항해 시대 서유럽 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망콘은 왕국의 부를 축적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선덜랜드를 찾는 원정을 감행한다. 리안과 선원 대부분이 왕국의 의지에 기대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자 한다면, 파이윤 사부는 과거 정복 전쟁이 그랬듯 이번 원정이 불러올 착취와 파괴를 걱정한다. 그리고 지도 제작자로서 과거 정복 전쟁에 공헌했던 자신의 행동을 잘못이라 여기며 이번 원정을 방해하고자 한다.
사이는 그런 사부의 마음을 눈치채고도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선택을 한다. 물론 그 선택에는 어린 밀항자 보를 지키려는 뜻도 없지 않다. 파이윤 사부는 그런 사이를 책망하기보다 끝까지 믿어 주는 쪽을 선택한다. 《어둠을 걷는 아이들》의 ‘참 사부’가 그랬듯, 어린이 안에 존재하는 빛을 발견해 주고 그 빛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파이윤 사부의 선택은 틀리지 않는다. 드디어 세상의 끝에서 용들의 여왕 ‘슬레이크’와 마주한 사이는 스스로 이 원정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고, 이어질 착취와 파괴를 ‘늦추는’ 선택을 한다.
번영함의 원정은 대항해 시대의 원정을 뚜렷이 떠올리게 하지만, 오늘날 강대국이 약소국에, 인간이 같은 인간과 자연에 자행하고 있는 일들과도 그리 멀지 않다. 순톤밧은 코앞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공멸을 향해 달려가는 욕망의 질주를 멈출 힘을 어린이에게서 찾는다. 전작에서도 그랬듯 내면의 빛을 지닌 어린이와 그 빛을 발견하고 힘을 북돋는 참 어른, 그들이 서로 더불어 빚어내는 희망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의 벽을 넘어설 길은 이 책에 나오는 용의 ‘순막’처럼 현상 너머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눈,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배반하지 않을 용기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아닐까 싶다. 사이의 힘겹고도 장엄한 여정을 함께하며, 사이가 그랬듯 어린이들도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 가면서 내면에 숨은 빛을 발견하기를 기대해 본다.
열두 살이 된 안룽의 모든 조수는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적어도 그런 척하며 지냈다.) 그러나 우리가 열세 살이 되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우리가 신는 구두의 종류나 사탕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사탕의 개수 같은 작은 차이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큰 차이로 변해 갈 것이다.
“이렇게 감쪽같이 베껴 쓸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못 봤다. 글자만 베낄 줄 아는 게냐?”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보고 쓸 원본만 있으면 뭐든지 거의 똑같이 베낄 수 있어요.”
그러고는 속으로 고쳐 말했다.
‘거의가 아니라 완전히 똑같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