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배낭 둘러메고 훌쩍, 방학 대신 여행을 선택한 열세 명 아이들
라오스의 길 위에서 보낸 26박 27일학교와 학원에 치이며 공부만 하기에도 버거운 청소년 열세 명이 모였다. 중학교 1학년에서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들다는 고3을 앞둔 여고생 두 명을 포함해서다. 나이는 물론 사는 곳도 각기 다른 이 아이들이 모인 이유는 하나,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새 학년을 맞이하는 겨울방학, 쌓인 공부 계획과 불안한 마음은 잠시 놓아둔 채 아이들은 라오스로 떠났다.
967일간 세계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여행한 경험을 담은 책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의 저자로, 여행이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되는지 이미 겪어본 오래된 여행자 김향미 양학용 부부가 이들을 데리고 나섰다. 일상의 편리함에서 멀어지는 대신 불편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이 여행이지만,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삶이 진정 소중해진다는 것을 우리나라의 ‘바쁜’ 청소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는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를 오랫동안 꿈꾸고 준비해온 저자가 마련한 첫 여행의 기록이다. 인솔자가 아니라 오히려 여행 동료에 가까웠던 이들 부부와 열세 명 아이들이 라오스 길 위에서 함께 보낸 26박 27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메콩 강 물줄기를 따라 라오스 땅을 여행하는 동안 아이들이 세상과 부딪치면서 보고 느끼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생생하다.
방콕에서 시작해 국경을 넘고, 루앙프라방, 방비엥, 비엔티안 등 라오스의 주요 도시들과 팍세, 참파삭, 히늡 등 소도시들을 지나 다시 방콕에서 마무리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아이들은 숫제 날아오를 듯 가볍고 자유롭다. 이틀 치 밥값을 털어 코끼리 투어를 하고 어디에선가 자전거를 빌려 라오스의 흙길을 누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마을을 방문하고 라오스에 사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 사귄다. 힘들어 울다가도 그림 같은 경치를 만나면 탄성을 지르며 감탄하고, 사원과 시장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자연과 사람을 만난다.
이제껏 무엇 하나 스스로 해본 적 없어 겁낼 만한데도 오히려 눈빛을 빛내며 뛰어드는 모습은 아이들 안에 잠재된 자유로운 본능을 짐작하게 한다. 달랑 지도 한 장 들었을 뿐이지만, 모든 것이 느리고 부족한 라오스에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게도 이런 여행이 필요하다’고, ‘내 아이에게도 이런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고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순간들. 진짜 여행을 만나다《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여행, 스스로 숙소를 구하고 볼거리를 선택하며 직접 부딪치는 여행, 아무런 제안도 제한도 없는 여행을 통해 열세 명의 아이들이 마음껏 비상하고 자유로워지는 과정의 이야기다.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을 넘기 위해 배를 타고, 밤새 침대 기차나 슬리핑 버스를 타고 달리며, 자기 몸집만 한 배낭을 멘 채 걸어야 하는 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자고 보는 모든 것을 아이들의 자율에 맡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인위적인 프로그램을 짜지도 않았고 숙소도 미리 예약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떠나기 6개월 전 제주도에서 미리 만나 2박 3일 올레 길을 걸으며 사전 준비를 한 것이다.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피부는 그을렸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그동안 깃들어 있던 걱정 대신 라오스 여행에 대한 기대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11년 1월, 다시 만난 아이들. 아무것도 미리 준비된 것 없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학교를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있다. 아이들이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것이다. …… 아이들 스스로 하루하루 만나는 낯선 도시와 낯선 삶에 대응하면서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 말하자면 낯선 도시에서 직접 숙소를 구하고 식당을 찾고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볼거리를 찾아다니다 가끔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는, 또 그러다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그런 여행. _ 본문 중에서
저자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기로 결심했으면서도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아이들을 강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안전을 위해 제한을 둘 필요도 있었고 아이들을 어디까지 믿고 놔줘야 하는지 그 경계를 짓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충분히 기다려줘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들끼리도 서로 맞지 않아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시간의 문제였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여행에 더욱 빠져들었고 자연스럽게 ‘자신들만의 여행’을 즐겼다. 가이드를 따라 다니던 이전의 여행과는 전혀 다른, 자기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길을 누비는 진짜 여행이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학교는 여행차를 타는 것보다 걷기를 더 좋아한다는 저자를 만난 이상 열세 명 아이들의 고생길(?)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지만 아이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곳들도 잘 찾아다니고 낯선 음식 앞에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는 숙소를 찾는 것도, 길을 헤매는 것도, 기차를 놓칠까봐 헐레벌떡 뛰는 아슬아슬한 순간마저도 ‘놀이’였다. 모든 것을 신나고 재미있는 것으로 치환하는 아이들의 본능이 여행을 하며 깨어난 것이다. “그냥 실컷 놀았으면 좋겠다”는 여행 전 아이들이 바람이 이루어진 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성공적이다.
라오스 여행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담보하며 살아가던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남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할 줄 아는 힘,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용기, 바쁜 일상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를 얻었다. 꿈을 찾았고, 새로운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얻지 못했던 것을 아이들은 여행을 통해 느끼고 깨달았다.
이 여행 뒤에는 아이들을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낯선 나라로 보낼 결심을 한 배포 큰 부모들이 있다. 공부, 입시 등 버거운 짐을 짊어진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것이 전부인 보통의 부모들과는 사뭇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공부 말고도 세상에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어서, 자신이 못해본 여행을 아이들에게 시켜주고 싶어서, 사춘기를 맞아 통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를 위해 부모들은 여행을 권했다. 이제는 “라오스도 다녀왔는데 못할 게 뭐 있어”라며 호기롭게 말하는 아이들이 그저 대견할 뿐이다. 한 달 동안 훌쩍 자란 아이들이 보였다며 다른 많은 청소년들이 이런 경험을 하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이 앞다투어 달려왔다. 그러고는 팔짝팔짝 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숨 가쁘게 자기들이 구한 숙소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먼저 수경이다.
“우리 숙소 대박이에요. 방이 진짜 크고요, 풀장도 있어요.”
다른 아이들도 질세라 자기들이 구한 숙소를 연달아 자랑했다. 방이 ‘엄청’ 깨끗하고 침대도 ‘대박’ 좋다고 했다. …… 누가 보면 그곳 게스트하우스에서 고용한 임시 삐끼로 오인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날 아침 아이들은 하룻밤 묵어갈 잠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마치 모래사막에다 새로운 도시를 하나쯤 건설한 것처럼 좋아했다. 그만큼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p.70~71
“이모! 삼촌! 우리 조는요, 오늘 코끼리 탔어요!”
“대빵 재미있었어요.”
“비용이 좀 비쌌지만 그래도 많이 깎았어요.”
“그런데 망했어요. 우리 내일부터 굶어야 돼요.”
“뭐, 까짓 거, 그래도 괜찮아요.”
속사포처럼 쏟아놓는 두 아이의 무용담을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녀석들이 여행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원래 밝은 아이들이지만, 이제 어깻죽지 위로 날개 하나를 더 매단 것처럼 맘껏 비상하려 했다. 사흘 치의 비용 중에서 자그마치 이틀 치 밥값에 해당하는 돈을 털어 코끼리 투어를 해버리는 과감함이라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이 아이들에겐 자신들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아이들은 단지 미래의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현재 그들이 즐겁다면, 지금 그들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여행을 통해 뭔가를 보고 느끼고 배우기를 원하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욕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