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외로운 하루의 끝자락,
나를 편안하게 잠들게 하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마이크를 꺼내 소리를 녹음했다.
ASMR 만드는 데 쓸 소리들이었다.
남들의 평화로운 시간이 담긴 소리를 듣다 보면
나의 시간 역시 평화롭다는 착각이 들기 마련이니까.”
- 본문 중에서 -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밤,
외로움을 채워 주는 소리 ASMR
지친 하루의 끝자락, 주위는 조용하고 밤은 깊어 갑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지만, 몸을 옆으로 누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외로움을 채워 줄 무언가를 찾는 심정으로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본 상황이지요. 잠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고 있는 정원은 외로움과 불안을 ASMR로 채웁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방을 채우기 위해 듣기 시작한 ASMR. 정원은 이어폰을 빼는 순간, 누군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학교에서도 ASMR을 들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실제와 같은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 등을 들으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ASMR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 정원은 만들어진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서 직접 ASMR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얻으려고 집중한 나머지 잠과 집중력을 잃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학교생활에 집중하지 못하는 정원이 걱정스러운 담임 선생님은 ‘고요한 양로원’에서 봉사 활동을 해 볼 것을 권합니다. 자신에게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정원은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학생,
도전과 실패 속에 성장하는 10대의 내면
동생의 가출과 범죄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정원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학생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학생1’ 정도의 존재감이었다고 말할 정도였지요.
하지만 동생의 사건 이후, 정원의 삶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해당 사건이 지역 인터넷 신문에 게재되고 가담자들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학교에서 정원을 두고 수근대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정원은 집에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 태평해 보이는 동생에 대한 분노와 그런 동생을 감싸는 부모님에 대한 실망감이 정원을 괴롭힙니다. 결국 정원은 가족들과 떨어져 자취생활을 시작합니다.
작은 방에서 혼자 생활하는 10대 청소년, 학교에서 내내 이어폰을 꽂고 생활하는 중학생은 겉으로 보기에 이상하거나 한심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원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취미가 특기가 돼야 하는 세상”이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을 되새기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탐색하고, 실행합니다.
자신이 골몰하는 ASMR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을 시작으로, 담임 선생님이 권한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불면증을 가진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만든 ASMR을 들려주고 싶다는 적극적인 목표도 세웁니다. 물론 이 과정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 속에 정원은 당황하고 낙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절과 실패를 통해 정원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발견해 갑니다. 전여울 작가는 이러한 10대 청소년의 내면을 섬세하면서도 힘있게 그려 냅니다.
‘모든 게 네 탓’이라고 비난하던 마음과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자책하던 마음이
화해를 향해 열리는 순간
누군가 공들여 만든 ASMR을 통해 위안을 얻는 정원은 자신이 만든 ASMR 또한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정원은 자신을 혼란과 고통 속에 빠드린 동생 영원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떨치지 못합니다. 정원의 마음속에는 ‘모든 게 네 탓’이라는 비난이 가득합니다.
한편 정원이 고요한 양로원에서 만난 미스터 킴은 과거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자책을 합니다. 스스로를 벌주기 위해 잠을 자지 않으려 하고, 양로원 사람들과도 섞이지 않습니다. 이런 삶은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겠지요.
《너와 나의 노이즈》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잡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때의 잡음은 ASMR 제작에 사용되는 소리일 수도 있고, 언짢은 말이나 소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잡음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비난이나 자책에서 벗어나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손을 뻗을 때 새로운 국면이 펼쳐집니다. 한 가족이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던 동생과의 화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만큼 큰 의미를 가지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는 주인공 정원과 그를 지켜보는 독자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뒤숭숭한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소리를 듣고 있는 것뿐인데도 어디선가 바다 짠 내가 나는 것만 같다.
발바닥에서는 부드러운 모래 감촉이 느껴진다. 가만히 파도 소리에 집중하는데, 어디선가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사람들이 온 걸까.
소리에 집중할수록 내 몸이 정말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정작 나의 몸은 기분 나쁜 시선들이 가득한 교실에 있을지라도….
“저 혹시….”
“혹시?”
“여기서 제가 할 일 중에….”
“할 일 중에?”
“미스터 킴을 돕는 것도 포함될 수 있을까요?”
김 원장은 난데없는 내 제안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스터 킴을 돕다니요?”
“어쩌면 제가 그 분이 잠들 수 있게 돕는 방법을 알 것도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