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모른다. 나는 모른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찾고 싶었다.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삶’을.”
《훌훌》, 《지켜야 할 세계》 문경민 작가가 선보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죽음이 새삼스럽지 않은,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된 시대에 각자의 가치와 기준으로 선택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 혼불문학상 수상 문경민 작가 신간
- 한없이 절망적이고 더없이 현실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그려내는 삶의 형상들
- 희미한 생을 붙들고 살아가기만도 버거운,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바다 위로 떠오른 햇빛에 눈이 시린 새벽녘의 모습. 어제도, 그제도 똑같았을 고요하고 일상적인 광경에 이질적인 것이 섞여 있다. 세워진 지 오래인 듯 다 부서져 빛이 바랜 방벽, 그리고 부서진 벽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꼿꼿이 마주하고 선 어떤 인물이다. 적막마저 풍경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한 이곳은 대체 어디인가. 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 같기도,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한 이 인물은 대체 누구일까.
독자와 장르를 넘나들며 누군가의 ‘삶’을 꾸준히 들여다봐 온 문경민 작가의 새 소설이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시대의 화두를 주요 소재로 삼았던 저자는 이번 신간 《앤서》에서 전에 없이 커다란 시공간의 변화를 시도하며 황폐해진 미래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나로부터도, 다른 사람의 삶으로부터도 시작된 것이 아닌 서사 그 자체가 중심인 이야기’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번 작품은 상상을 자극하고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나는,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떤 이유로 계속되어야만 하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을 갈구하게 만든다. 아무리 고민해도 알 수 없고 영영 찾아 헤매기만 할 것 같은 ‘삶의 이유’를 표지 속 인물은 과연 발견했을까?
“정식 명칭은 ‘동아시아 국가 연합 셸터’, 별칭은 ‘앤서’”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가 극렬하게 부딪는 세계에서 시작되는 서사대전쟁 이후, 황폐화한 2086년의 근미래. 사람들은 인간을 압도하는 생체 병기 아르굴을 피해 높은 방벽 안 셸터에 모여 고립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희박한 때이기에 갈등과 격차는 분명하지만 거짓과 진실의 경계는 모호하다.
유이는 동아시아 국가 연합 셸터 '앤서'에서 쿠니로 18년을 살았다. 생을 유지하는 데에 딱히 미련은 없지만 좋은 사람들을 몇몇 만나 그럭저럭 살아왔고, 자연스레 기여 포인트를 쌓아 앤서의 정식 시민으로도 올라섰다. 하지만 혼자인 밤이면 여전히 과거에 시달린다. 18년 전, 공습을 받아 하루아침에 무너진 고향과 살해당한 아버지, 이 모든 일을 일으켰으면서 갑작스럽게 붕괴한 마낙 셸터, 그 후 헤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 연인 킨까지. 우울감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불어오는 바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이미 미약해진 생의 의지마저 조금씩 갉아먹는다.
그날의 진실이 응어리진 채 표류하던 어느 날,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했던 유이는 주하 중사와 재회한다. 주하 중사는 과거 발안 셸터의 사령관이었던 아버지의 부하였고, 킨과 라리를 돌보는 보호자였다. 유이는 과거의 유일한 실마리인 주하 중사를 살리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그사이 앤서의 대통령 파비언의 하이난섬으로 이주 계획이 발표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앤서 포털에 글이 업로드되기 시작한다. 18년 전 발안 셸터가 무너지기 직전에 있었던 일들이 ‘킨의 일지’라는 제목을 달고서.
선택을 마주하고 답을 내리는 일이 가능할까,
그 답(ANSWER)의 옳고 그름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하이난섬에서 보내온 킨의 일지는 잔잔하고 지루했던 앤서에 파문을 일으킨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킨과 그 시절을 함께했던 유이조차 자신의 기억을 확신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방어인지 아니면 너무 오래전의 일이어서인지, 그때의 기억이 이미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있었다. 이제 와서 킨이 자신을 드러낸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라는 것.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자신의 존재를 지워 버린 것은 둘째 치고, 함께 보살피던 어린 라리의 죽음을 내세워 이야기를 극적으로 포장한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또,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아르굴의 포악함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의도는 대체 무엇일까? 잊고 싶었지만 억지로 떠오른 과거에 답을 알 수 없는 질문까지 유이를 괴롭히는 와중에 유이는 주하 중사에게서 답을 얻는다. ‘킨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이로써 명확해졌다. 킨의 등장과 킨이 올린 일지 및 영상은 파비언 대통령의 하이난섬 진출 계획과 관련이 있었다. 하이난섬에 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 앤서가 하이난섬으로 이주하면 킨이 지키려던 것은 어떻게 되는 걸까. 반대로 킨이 끝끝내 파비언을 저지한다면 유이가 아끼는 사람들과 앤서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지키기 위해 빼앗는 자, 지키기 위해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 살기 위해 변하려는 자, 살기 위해 변하지 않으려는 자, 삶 속의 절망만을 바라보는 자, 그럼에도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자……. 또다시 삶을 대하는 수많은 태도 중 하나를 정해야 하게 된 유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
“유이야, 살아. 사는 것처럼 살아. 행복하게 살아. 사랑하면서 살아.”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은 삶, 삶의 이유를 찾아 헤매는 당신에게 전하는 메시지‘나는 왜 살아가는가?’ 열 자도 되지 않는 이 문장만큼 사람을 괴롭히는 질문이 있을까. ‘생존’은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가지는 가장 기본의 욕구이다. 그 어떤 욕구도 생존보다 우선하지 않으며 그 무엇도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의미를 주지 못한다. 《앤서》 속 인물들의 삶이 유독 야성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물론 함께 살아가던 생명체가 모조리 끝장나 버린 폐허, 내일은커녕 오늘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간혹 발견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동아줄 마냥 붙들어야 하는 지난한 삶. 그 안에서 유이와 킨, 파비언이 하는 고민은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고민 끝에 내린 모든 선택까지 정당할 수는 없는 법. 어지러운 세상에도 나름의 규칙과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물론 그 기준은 여러 이유에서 기울어지나 다른 쪽으로 옮겨 가기 십상이라 킨과 파비언이라는 두 대척점 사이에 선 유이는 마지막까지 답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인다.
‘모른다. 나는 모른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나는 모른다.’
유이는 속으로 되뇌며 가야 할 곳을 바라보았다. 하이난섬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나 그곳에서 유이가 맞이할 모든 것이 삶의 이유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_본문 302쪽
결국 유이는 먼 미래를 그리지 않는 결정을 내린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더더욱 현실에 집중하기로 한다. 모두가 그렇듯 유이도 나름의 답을 구하려 했지만 100명이 가진 100가지 삶에 동등하게 적용할 수 있는 진리가 있을 리 없다. ‘우리의 삶은 살아 내려는 수많은 의지의 충동적인 힘으로 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오로지 현재를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던 니체처럼, ‘삶의 의미는 사람과 시기, 시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함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던 프랭클 박사처럼 자신만의 삶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이유와 목적을 찾지 말고 살자. 그냥 살자.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어딘가에 닿을 것이고, 길이 막혔다면 그때 다시 고민을 해 보자’. 몰아치는 인물들의 생각에 함께 휩쓸리며 책장을 넘겨 보자. 극한의 상황에서 더욱 현현해지는 생의 의지를 들여다 보자.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붙잡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 질문은 우리의 시선을 현재에 맞춘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보편적’인 삶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만의 삶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일은 어려웠다. 발안 셸터의 상황은 좋아지는 법 없이 완만한 하강 곡선을 그렸다. 발안 셸터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장태섭 사령관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지키려고 애썼으나 멸망은 곧 닥쳐올 미래로 보였다. 발안 셸터의 식량난은 심각했다. 영양실조로 허약해진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퍼지는 전염병을 이기지 못했다. 동료들이 방벽 바깥에서 아르굴에게 목숨을 잃었고 유이가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유이는 더 많이 사랑하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죽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사랑하다가 죽고 싶었다. 죽을 만큼 사랑하고 싶었다.
일주일 뒤, 앤서 포털 메인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킨의 일지>, 18년 전 발안 셸터를 배경으로 한 2068년 9월 1일부터 9월 3일까지의 기록이었다.
(…)
<킨의 일지>는 지진처럼 앤서에 균열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