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일기장, 안경, 스마트폰, 몽당연필, 서랍 속 지우개 같은 일상적인 물건을 소재로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펼쳐 놓는다. 「물음표 일기장」은 주인공이 써놓은 일기장 속 마침표가 모조리 물음표가 되거나 곳곳에 말줄임표가 생겨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언니의 안경」은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하루아침에 안경으로 변신해 책만 읽고 사는 언니를 바라보는 동생의 이야기다. 「몽당연필에게」는 교실 책상 서랍 속에서 발견한 몽당연필이 놀라운 능력과 마음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 대신 스마트폰」은 ‘나 대신’이라는 일정 관리 앱을 사용하다가 문제에 부딪히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지우개 시인」은 학교 교무실 서랍 속에 있던 지우개가 시인의 꿈을 키워나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섯 편의 단편 은 모두 작고 일상적인 물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다정하게 귀를 기울인다.
출판사 리뷰
매일 보는 책상 위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이야기
상상력은 인간이 가진 능력 중 가장 경이로운 능력이다. 그리고 문학은 인간의 상상력이 가장 잘 돋보이는 분야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이야기를 지어내다니,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동굴에 모여 앉아 “옛날 옛날에……” 하고 꾸며낸 이야기를 즐겨 듣던 버릇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내 책상 위의 비밀』은 일기장, 안경, 스마트폰, 몽당연필, 지우개 같은 일상적인 물건을 소재로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펼쳐 놓는 청소년소설이다. 십 대에게 연필, 지우개, 공책 같은 문구는 늘 쓰는 물건이라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일상적인 물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간질간질 꿈결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다. 가장 먼저 「물음표 일기장」을 보자. 숙제로 어쩔 수 없이 써 놓은 문장의 마침표가 몽땅 물음표로 바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서 숙제를 했다? 게임을 하다가 유튜브를 봤다? 참 재미있었다?” 문장 부호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 아무렇게나 끄적인 일기가 갑자기 질문으로 가득 찬다. 대충 ‘재미있었다’고 마지못해 쓰던 일기는 이제 정말 나의 하루가 재미있었는지 고심하게 만든다. 다음 날에는 말줄임표가 나타나 일기장을 비밀로 가득 채운다. 덕분에 꾸역꾸역 쓰던 일기가 이제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 된다. 게다가 매일 일기를 써오지 않는 친구 민호가 사실은 누구보다도 글쓰기에 대해 단단한 철학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글쓰기 싫을 땐 누군가 써놓은 글을 읽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된다. 윤동주의 시가 아름답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일기장의 문장 부호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평범하고 밋밋하던 일상은 놀랍도록 달라질 수 있다. 「지우개 시인」에서는 교무실 책상 서랍에 굴러다니던 지우개가 뜻밖에도 시를 쓰고 싶어 한다. 글자를 지우기만 하는 지우개가 시를 쓴다고? 그건 ‘시인’ 선생님이 단어를 썼다 지웠다 하며 시를 쓰는 동안 지우개가 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에 대해 생각하던 지우개는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외로움과 괴로움의 차이는 뭘까, 그늘이 그림을 그린다는 건 무슨 뜻일까, 지우개도 시가 될 수 있을까. 지우개는 잘못 쓰여진 글자를 지우는 일밖에 할 수 없는데 시인이 되는 게 가능할까? 하지만 꿈꾸고 간절히 바란다면 어떤 일도 불가능하지 않다. 상상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소망과 믿음이 중요한 법이니까.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
그곳에 담긴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
「언니의 안경」은 책을 읽는 게 너무 좋아서 안경이 되어 버린 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매일 방 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던 고등학생 언니가 갑자기 안경이 되다니. 엄마, 아빠, 동생은 놀라고 어쩔 줄 몰라 하지만 언니는 안경이 되어도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다. 안경다리를 이용해 책장을 넘기며 독서 삼매경에 빠진 언니. 가족들은 이제나저제나 돌아오길 기다리지만 언니는 묵묵히 책을 읽고 급기야 소설을 써서 등단까지 한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나고 열 권의 책을 내도록 언니는 여전히 안경이고, 점차로 말수가 줄어든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 버린 그레고리 잠자(카프카의 「변신」)와 현대의 은둔형 외톨이를 떠올리게 하는 언니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슬픔과 안쓰러움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동생이 안경을 통해 바라본 세계가 점차 빛을 잃어가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몽당연필에게」에서는 과학실 폭발 사고로 죽은 아이가 교실 책상 서랍 속에서 연필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으스스한 이야기이다. 기다란 새 연필이 몽당연필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단어와 문장과 이야기가 쓰였을까. 죽은 아이의 혼이 깃들어 있긴 하지만 몽당연필도 연필이다. 그래서 몽당연필은 소멸하기 전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나 대신 스마트폰」은 일정 관리 어플이 주인공을 돕다가 결국은 과도하게 통제하고 제멋대로 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마트폰의 ‘나 대신’ 앱이 주인공 상우의 선택과 책임을 대신하려고 나서면서 도리어 주인공의 자율성과 가능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상우는 과학만능주의에 빠지는 대신 자기 자신의 진짜 주인이 되는 길을 찾는다.
이처럼 『내 책상 위의 비밀』에 담긴 이야기들은 일상적인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또 모두 1인칭 화자를 내세워 슬픔과 기쁨, 안타까움과 불안 같은 화자의 감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지우개나 몽당연필처럼 서랍 속에서 잊혀진 채 존재하는 아주 작은 사물들에게서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것은 보통 여린 마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 소중히 여기고 다정히 바라보는 태도가 담겨 있다. 한 편 한 편 읽어 가노라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공책 위에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일,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는 일, 책을 읽고 시를 감상하는 시간, 옆 사람을 가만히 관찰하고 이해해주는 일 등 내향적이지만 다정한 움직임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쓰고 싶은 말이 없으면, 진짜 쓰고 싶은 사람이 쓴 글을 보는 거야. 지금처럼.” 나는 시를 다시 읽었다. 진짜 쓰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언니는 안경이 되고 나서 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아서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책상 위에 있었다. ‘나도 하루 정도 안경이 되어 텔레비전만 보면 어떨까.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아도 되니까.’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옆에 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혜련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공부했고, 동서문학상과 KB창작동화제에서 수상했습니다. 책상 앞에서의 상상과 글쓰기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만나 다섯 편의 짧은 소설을 쓰고 첫 책에 담았습니다.
목차
물음표 일기장
언니의 안경
나 대신 스마트폰
몽당연필에게
지우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