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거침없는 에너지와 폭발하는 언어로 욕망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세태에 저항하며 올해로 시력(詩歷) 35년을 맞이한 김언희의 여섯번째 시집 『호랑말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10번으로 출간되었다. 1989년 등단 이후 일상적인 풍경에 노골적 시어, 비속어, 적나라한 성적 표현 등을 뒤섞어 그로테스크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시인은 발표하는 시집마다 문단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청마문학상, 박인환문학상, 이상시문학상, 시와사상문학상을 거머쥐는 등 한국 문단의 독보적인 존재로 활동해왔다.인간의 욕망을 기계로 치환해 고통과 쾌락이 육체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확인했던 첫 시집『트렁크』(세계사, 1995)에 이어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에서 ‘임산부나 노약자, 심장이 약하거나 과민 체질인 사람’은 읽지 않기를 권할 정도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도발적인 언어를 펼쳐 보였던 시인은 이후 출간된 세 번의 시집을 거치는 동안 ‘끝 간 데 없’이 자극의 강도를 높이며 이번 시집 『호랑말코』에 도착했다.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시집의 제목처럼, 총 50편의 시 속에서 그는 “핸들러가/개”(「어질리티(Agility)」)인 유희적 언어를 통해 터질 듯한 고통 속 감각의 세계를 또 한번 선보인다.백시(白柹) 혹은 관시란껍질을 벗겨서 꼬챙이에 꿰어 말린 감을 칭하는 말껍질을 벗겨서 꼬챙이에 꿰어 말린 여자는 그럼뭐라고 불러야하지?―「관시(串柹)」 부분
금보다 비싼 걸 똥으로 싸지르는 향유고래의 금요일, 물구나무를 서서 오줌을 갈기는 덤불개의 금요일, 내 오줌으로 나를 침례하는 금요일, 깨물 게 따로 있지, 네년 땜에 인생 좆됐어, 뒤통수를 맞는 금요일, 너무 깊이 물어 박힌 이빨이 빠지지 않는 금요일, 동종 포식의 금요일, 흐릅흐릅 뱀을 삼키는 돼지 주둥이의 금요일, 콧등치기 면발처럼 돼지 콧등을 후려치는 뱀 꼬리의 금요일, 섞을 수 없는 살은 없어, 우리 모두 다 함께 익어가는 번철 위에서, 제가 저를 겁탈하는 말미잘의 금요일,―「성(聖)금요일」 부분
먹먹한 밤에는먹먹한 손에 먹먹하기 짝이 없는 돌을 쥐고서걷는다 걷는다 걸어서 밤의 검은 선반 위에 밤의 돌멩이를올려놓는다 먹먹함으로 두 귀가먹먹해지는 밤―「걷는 사람」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언희
1989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트렁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뜻밖의 대답』 『요즘 우울하십니까?』 『보고 싶은 오빠』 『GG』 등이 있다. 청마문학상, 이상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시와사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