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연행과 통신사행은 하나의 세계관에서 수립된 두 정책에 따라 수행되는 조선의 외교방식이다. 알다시피 조선은 성리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화이관에 기초하여 대외정책을 수립하였다. 중국을 섬겨야 할 큰 나라로, 그 밖의 나라를 오랑캐라 간주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구체화한 정책이 바로 사대교린 정책이다. 곧 연행은 사대, 통신사행은 교린을 위한 외교 행차로, 이는 당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에 부합코자 한 것이다.
원중거의 『화국지』는 견문록 중에서 가장 방대한 텍스트로, 가히 견문록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화국지』의 특징은 독립된 텍스트로 이루어진 견문록이라는 점이다. 통신사행록에서 견문록이 독립된 텍스트로 이루어진 경우는 『화국지』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견문록이 단순히 통신사행록의 한 부분으로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일본에 대한 지식의 총체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원중거의 『화국지』는 조선후기 통신사행을 통해 저술된 견문록의 역사적 전개에서 최대의 성과를 거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소위 동도를 지키는 일은 수신과 의례를 중시여기고 욕망을 억제하며 성인의 도를 따르며 유교적 이상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지난한 길이다. 조선왕조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한 핵심적 국가과제였지만,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더구나 동도와 부국강병이라는 개념은 양립하기 어렵다.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주요 기반 산업에서 등에서 생산력을 비상히 끌어올리고 적극적인 통상정책을 펼쳐 상대국과 교역에서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경쟁하여야 한다. 그 이익으로 무기를 구매 또는 제조하고, 군사를 길러 강병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 길은 동도에 어긋나는 것임은 물론 동도의 훼손이 불가피한 과정이다. 동도서기론은 실상 이렇게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훈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울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주로 조선후기 여행기록을 살피고 있다. 『홍대용 연행록의 글쓰기와 중국 인식』(2007), 『주해 을병연행록 1, 2』(2020) 등을 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