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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보는 법
너머학교 | 청소년 |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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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흥미로운 사진과 예술 작품을 함께 보며 우리의 시선과 앎이 맺고 있는 관계를 다양한 차원에서 생각해 보는 책이다.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이자 예술평론가 김남시의 첫 저작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철학과 예술에 대한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부터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까지 '본다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저자는 우리의 눈이 카메라처럼 외부 대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여, 앎과 그 앎에 영향을 준 공동체의 지식 체계가 '본다는 것'과 어떻게 관련 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간다. 1515년 알브레히트 뒤러가 사람들에게 들은 대로 그렸던 코뿔소의 피부는 중세 기사의 갑옷과 꼭 닮아 '아는 대로 본다'는 말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

반면 앎이 제대로 보는 것을 막는 사례도 무척 많다.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는 이집트 문자와 중국 문자의 기원이 같음을 증명하려 했던 영국 학자의 시도나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다고 밝혔으나, 백여 년 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도 같은 사례이다.

<본다는 것>은 망원경이나 사진기, 현미경 등 도구들로 인하여 이전과 다르게 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고체계도 달라졌음을 보여 준다. 더 많이 보게 되고 더 많이 알게 되었으나 그로 인해 더 자유로워진 것인지 묻는다. 또한 다른 사람과 거의 동시에 '함께' 볼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한 사물의 앞뒷면을 동시에 볼 수 없으며, 보려면 다른 행동을 멈추어야 하는 시선의 숙명은 어떤 고민거리를 던지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고 한다. '십대를 위한 인문학 너머학교 열린교실' 시리즈의 8번째 책.

  출판사 리뷰

본다는 것은 앎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이자 예술평론가 김남시 선생의 첫 저작


『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진과 예술 작품을 함께 보며 우리의 시선과 앎이 맺고 있는 관계를 다양한 차원에서 생각해 보는 책이다.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이자 예술평론가 김남시 선생의 첫 저작이다. 한병철 선생의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번역하며 처음 한국에 소개한 김남시 선생은 현대 서양철학과 미학 이론 비평, 예술 평론 등에 걸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철학과 예술에 대한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부터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까지 ‘본다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저자는 우리의 눈이 카메라처럼 외부 대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여, 앎과 그 앎에 영향을 준 공동체의 지식 체계가 ‘본다는 것’과 어떻게 관련 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간다. 1515년 알브레히트 뒤러가 사람들에게 들은 대로 그렸던 코뿔소의 피부는 중세 기사의 갑옷과 꼭 닮아 ‘아는 대로 본다’는 말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 반면 앎이 제대로 보는 것을 막는 사례도 무척 많다.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는 이집트 문자와 중국 문자의 기원이 같음을 증명하려 했던 영국 학자의 시도나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다고 밝혔으나, 백여 년 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도 같은 사례이다.
『본다는 것』은 망원경이나 사진기, 현미경 등 도구들로 인하여 이전과 다르게 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고체계도 달라졌음을 보여 준다. 더 많이 보게 되고 더 많이 알게 되었으나 그로 인해 더 자유로워진 것인지 묻는다. 또한 다른 사람과 거의 동시에 ‘함께’ 볼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한 사물의 앞뒷면을 동시에 볼 수 없으며, 보려면 다른 행동을 멈추어야 하는 시선의 숙명은 어떤 고민거리를 던지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고 한다.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넘치는 시각적 자극 속에서 자라난 우리 십대들에게 제대로 보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해 주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왜 필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 줄 것이다. 삶을 구성하는 말의 새로운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십대를 위한 인문학 너머학교 열린교실’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이다.

눈과 뇌 사이에서 무언가가 작동한다 - 앎이 없으면 봄도 없다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 자명종을 보고, 재미없는 수업시간에는 창문 밖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카페에서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그만 들여다보라는 부모님의 뒤통수를 ‘째려보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자명종이, 스마트폰이 무엇인지, 그 친구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어떨까? 이 질문만으로도 ‘앎’과 ‘봄’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이로부터 시선에 대해 아주 많은 흥미로운 생각할 거리가 나온다.
『본다는 것』은 앎이 없어서 볼 수 없었던 여러 사례를 통해 앎, 지식체계가 본다는 것의 전제조건임을 보여 준다. 유럽에 처음 코뿔소가 왔을 때 어떻게 보였는지를 알게 해 주는 흥미로운 그림이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들어서 그린 코뿔소. 이 코뿔소는 중세의 기사처럼 두꺼운 앞가리개 같은 것을 차고 갑옷의 대갈못 같은 무늬가 있는 두꺼운 표피를 갖고 있다. 13세기부터 15세기에 그려진 서양의 해부도들은 사람의 내장기관을 동그란 원 몇 개로 달팽이처럼 그려 놓았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가 아는 것의 의지해서 무엇인가를 본다.
그렇다면 알면 제대로 보는 것일까? 김남시 선생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앎이 제대로 보는 것을 막는 사례 또한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18세기 존 니덤이라는 영국 학자는 중국 문자가 이집트 문자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이시스의 흉상에 그려진 문자를 중국어와 대비시켜 해석하려고 했다. 중국의 문명이 유럽보다 오래되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생긴 일이었다. 또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달 표면을 보고, 울퉁불퉁한 그림을 그리자 모든 이들이 그럴 리가 없다며 반박했다. 달은 희고 매끈하며 아름다운 여신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무려 백여 년이나 걸렸던 것처럼 우리의 선입견과 관점은 새로운 것을 ‘보고서도’ 고집스럽게도 이어지는 것이다.

아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서 - 나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가 함께 본다

『본다는 것』은 이처럼 앎의 체계(패러다임, 혹은 사유체계)가 우리의 눈과 뇌 사이에서 해석하고 있음은 시선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우선, 관습에서 벗어나 보기. 이를 자극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펼쳐온 것이 바로 예술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그림「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파이프는 진짜 파이프가 아니라 캔버스에 그려진 물감덩어리라는 것을 보라는 의도였다. 우리의 시선은 구름이나 껌 자국 등 어떤 것을 보더라도 무엇과 닮았다, 무엇의 ‘재현’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바라보아 왔고 고대에서 중세까지 예술의 기본 바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하는 글을 봄으로써 우리는 파이프도 보고 물감덩어리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졌고,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부터 피카소를 비롯한 현대 미술의 미니멀리즘 이야기는 ‘본다는 것’의 풍부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또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지문이나 얼굴을 보고도 운명을 척척 알아맞히는 주술사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뿐만 아니라 별을 보고 날씨를 읽어 낸 항해사나 나뭇잎을 보며 사냥감이 어디로 갔는지 읽어 낸 사냥꾼들처럼 인류는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 왔으며, 이는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서양 중세의 믿음처럼 ‘신의 언어’를 읽는 신비라기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이며, 셜록 홈스처럼 부단히 관찰하고 노력한 결과 얻어진 능력이니 우리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물론 그러려면 나의 시선과 앎이 어떠한지, 그것이 공동체와 역사에서 비롯되었으며 변화해 왔다는 점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다르게 보기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진기와 망원경은 시선을 어떻게 바꾸었나

시선이 앎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것은 공동체와 뗄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짚어 보아야 할 또 한 가지가 시각 도구, 매체이다. 자연은 신의 창조물이며 눈에 보여야 한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앞에서도 말했듯이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하늘의 별을 관찰하고 별의 개수가 10배는 많다는 것, 그리고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다고 말한 것은 거의 백 년 동안이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하나의 예가 말을 그린 작품들이다. 문명이 만들어지면서부터 말을 길들이고 타 왔던 사람들은 말이 전속력으로 달릴 때 네 다리를 쫙 펴고 공중에 떠 있다고 믿었고 고대 그리스부터 19세기까지 사람들은 말을 그렇게 그려 왔다. 그러나 연속 사진을 찍어 본 결과 절반만 맞았다. 공중에 떠 있을 때가 있으나 그때 네 다리는 구부려 모아져 있었던 것이다. 이 사례는 시선이 역사적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사진 이후 말 그림을 다시는 예전처럼 그릴 수 없게 되었다는 단절이 생겼다는 것도 분명히 보여 준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을 더 많이 보게 되었고 심지어 지구의 모습까지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과연 세상을 다 본다고 믿었던 시대의 사람들보다 행복해졌을까? 카메라로 심령사진을 찍고 증명하려 하는 시도들이나 비디오카메라에만 찍히는 유령 이야기를 영화로 보며 더욱더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실은 더 불안해진 게 아니냐고 저자는 묻는다. 흔히 받아들이듯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보는 것이 결코 정말 잘 알고 잘 보게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함께 잘, 본다는 것의 의미

마지막으로, 『본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 가진 숙명을 생각해 본다. 한 번에, 동시에 앞뒷면을 볼 수 없으며 무언가 보려면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 보고 다 보았다고 할 수 없기에 더 많이 보고 더 자주 보며 세상을 호기심으로 채워 가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의 숙명은 생각할 것이 아주 많다. 몇 년 전 뉴욕 포스트 1면에는 충격적인 사진이 실렸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져 들어오는 열차를 보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죽음 앞에 놓인 사람을 구해 주는 대신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충격과 수치심은 사람이라면 다른 이의 고통을 보기만 해서는 안 되며 보기를 멈추고 움직여야 한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보는 것은 분명 즐거움이나 슬픔이나 어떤 감정으로 연결된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이나 시리아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사진을 볼 때 안타깝게 여기고 연민을 느껴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것으로 그쳐 버린다면 이 사진들을 보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한 자족감만을 남기게 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바로잡으려고 작은 실천이라도 한다면 어떨까?
김남시 선생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첨단 기기들이 가져온 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인 측면은 물론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하자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가 거의 동시에 보고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 오늘날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만을 보아야 했던 시대와는 다른, 보다 민주주의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한편으로 누군가 나의 사진을 찍고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인간으로 꼭 필요한 자기 자신만의 시선으로 자신을 볼 시간과 공간을 빼앗기고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은 자율성을 침해함은 물론 더 나아가 치명적인 공격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소통’이라고 했던 발터 벤야민을 인용하며, 이제 눈을 들어 하늘을, 옆에 있는 사물이나 사람을 차분하게, 그윽이 바라보자고 한다. 그 시선이 갖는 아우라를 경험하며 자신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함께.

너머학교 열린교실 - 생각교과서 시리즈

‘너머학교 열린교실-생각교과서’ 시리즈는 십대 청소년들과 삶을 구성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나누고,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스스로 구성하는 데 바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되었다. 생각한다는 것, 탐구한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 느낀다는 것, 읽는다는 것, 믿는다는 것 등의 말에 담긴 의미를, 먼저 공부하고 배운 대로 살고 있는 저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십대들과 나누자고 했다. 학문 분야로 말하면 과학, 예술비평, 역사, 인권, 고전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 이야기이자 과학자, 역사가, 시민운동가, 평론가 등으로 살아온 흥미진진한 삶의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펼쳐지며 아이들과 나누는 명실상부한 열린 교실이 될 것이다.
첫 번째 책 『생각한다는 것』은 ‘2009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저작발굴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으로,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책따세)’의 2010 여름방학 추천도서에 선정되어 청소년을 위한 좋은 철학 입문서로 인정받았다. 뒤이어 출간된 『탐구한다는 것』 역시 호응을 받으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2010 제7차 청소년에게 좋은 책’ ‘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2011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뽑은 어린이 청소년 책’, 경기도 교육청, 서울시 교육청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 『기록한다는 것』『읽는다는 것』(2011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느낀다는 것』『믿는다는 것』『논다는 것』 역시 꾸준한 호응을 받으며 십대를 위한 인문학 책 시리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 앞에 있는 책상을 보거나, 창문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경우는 이 낮은 단계의 지각과는 달라요.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시신경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책상’ 또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낮은 단계의 시각적 지각을 위해서는, 우리 신체에 달려 있는 눈이 생물학적으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 눈의 시신경을 작동하게 하는 어떤 자극이 ‘책상’이나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와는 다른 어떤 지적인 작용이 더 있어야 할 거예요. 그게 무엇일까요? 앎이겠지요.

13~15세기에 출간된 해부학 서적 중에 사람의 내장 기관을 다섯 개의 달팽이 껍질 모양으로 그려 놓은 삽화가 실려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내장 기관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지요. 왜 그럴까요? 현대인의 내장 기관이 그 당시 인간의 내장 기관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기 때문일까요? 현대 문명의 영향으로 당시 인간에게는 없던 새로운 내장 기관이 생겨났기 때문일까요? 한편으로는 당시의 드로잉 기술이 세밀하고 복잡한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할 수 있을 만큼 발달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내장 기관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역사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문자는 의미를 지칭 또는 지시하는 기호라고 말합니다. 문자를 ‘읽는다’는 건 문자의 형태를 ‘본다’는 걸 전제하지만, 그러한 ‘봄’은 눈에 보이는 문자의 형태에 머무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의미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죠. 비유하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다고나 할까요? 손가락은 우리의 시선을 달로 유도해 주지만 달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손가락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작가 소개

저자 : 김남시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예술학 전공 조교수로 있다. 베를린 훔볼트대학 문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본다는 것』(2013), 『광기, 예술, 글쓰기』(2016) 등이, 번역서로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2015), 칼 슈미트의 『땅과 바다』(2016) 등이 있다. 문화 및 매체이론을 연구한다.

  목차

기획자의 말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우리 눈은 카메라와 다르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사이에서
우리의 시선을 바꾼 도구들
‘잘’ 본다는 것
무엇을, 어떻게 보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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