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오늘 점심 때 뭘 먹었더라?”
-뇌는 기억하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 무언가를 찾으러 부엌에 갔다가 “내가 뭘 찾고 있었지?”하며 머리를 긁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득 없이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불현듯 찾으려 했던 물건이 기억나지 않았는가?
《기억한다는 착각》은 오랫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기억에 대한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으며, 기억의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흔히 우리는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스스로를 탓하지만, 25년 넘게 기억의 작동 방식을 연구해온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저자 차란 란가나스는 “곧이곧대로 기억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라는 질문 대신 “우리는 왜 기억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독자를 기억의 놀라운 세계로 안내한다.
● 사건의 경계선—우리는 왜 방금 전 일을 잊어버릴까?
● 기억의 도식—우리는 왜 익숙한 패턴을 따를까?
● 정향 반응과 정보 격차—우리는 왜 호기심이 생길까?
● 긍정 편향과 회고 절정—우리는 왜 젊은 시절을 자주 떠올릴까?
● 부정성 편향과 푸시폴 효과—우리는 왜 가짜 뉴스에 취약할까?
● PTSD와 트라우마—어떤 기억은 왜 잊히지 않고 계속 떠오를까?
나를 바보로 만들기도 하고, 때론 천재로 만드는 기억의 이상한 작동 원리
-어떤 기억은 오래 기억되고, 어떤 기억은 금방 잊히는 이유
우리가 몇 시간 전에 먹은 점심 메뉴는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아주 오래전 유행가 가사는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기억은 본질적으로 선택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인생의 경험을 모두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 중 극히 작은 일부만이 우리의 기억에 포착된다. 그렇기에 뇌는 아주 신중히 기억해야 할 경험을 선택한다. 그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맥락’과 ‘도식’이라는 틀이다.
우리 뇌는 덩어리를 지어서 기억한다. 특정한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의 장소와 상황, 감정과 맥락을 함께 ‘사건의 경계선’이라는 덩어리째로 저장한다. 만약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한다면, 뇌는 새로운 맥락을 인식하며 이전 방에서의 기억을 흐리게 만든다. 이처럼 뇌는 맥락을 기준으로 묶어서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에 장소가 바뀌거나 다른 상황이 끼어들면 바로 직전까지 생각했던 대상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도식’은 일종의 정신적인 틀로, 반복되는 패턴이나 구조를 이용해 우리가 익숙한 환경에서 쉽게 정보를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중요한 공통 요소를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비슷한 상황에서 재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주문을 할 때 뇌는 매번 기억을 따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되는 패턴을 파악해 ‘카페에서 주문하기’ 도식으로 저장한다. 이렇게 공통 요소를 도식으로 통합하면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차이점을 의미 있게 기억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우리 뇌는 음악의 반복적인 운율과 형식, 체스 게임에서 이뤄지는 말들의 패턴, 장소의 구조, 이야기 구조 등 다양한 패턴을 도식으로 이용한다.
어제 먹은 점심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특별할 게 없는 수많은 점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유행가 가사를 까먹지 않는 이유는 음악이 매우 효과적인 도식이어서 멜로디를 듣는 순간 몇십 년 전 만들어놓은 ‘사건의 경계선’ 안으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망각은 기억력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뇌가 의도한 효율적인 정보 처리 매커니즘인 것이다.
기억은 서랍 속에서 꺼내어 보는 사진이 아니다
-기억한다는 착각이 밝혀내는 기억의 진실
우리는 보통 기억이 뇌라는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저장했다 꺼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억의 실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통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기억은 사진이나 기록처럼 정확하지 않고, 훨씬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뇌는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매번 정보를 새롭게 재구성하는데, 놀라운 점은 우리가 기억할 때와 상상할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기억과 상상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증거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단순히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량의 맥락과 되살려낸 정보를 출발점으로 삼아 그럴듯한 과거를 상상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 시점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기억이 변형되기도 한다. 우리가 현재의 인식과 감정을 반영해 과거를 ‘다시 쓰고’ 있다는 의미이다.
기억의 이런 특징은 때론 기억을 왜곡시키고 거짓 기억을 만들게 하기도 한다. ‘기억이 정확하고 고정불변할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배신하는 결과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이런 기억 시스템이야말로 단점이 아닌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사진처럼 정확한 기억보다 과거의 기억을 변형시킬 수 있는 점이 ‘생존’에 훨씬 더 유리했다는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를 반영해서 기억을 갱신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신뢰했던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현장을 목격한다면, 앞으로 그의 말을 회의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기억 갱신이 없다면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을 조정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다. 유동적 기억 시스템은 다가올 위험을 회피하고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가 진화시킨 가장 적극적인 생존 방식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기억하고 학습할 수 있을까?
-호기심을 가진 인간이 살아남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동물들은 ‘정향반응’(파블로프는 이 반응을 ‘무슨 일이야? 반사’라고 불렀다)을 보인다. 새로운 자극을 받은 동물은 동공이 커지고, 혈관이 수축되며,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신경조절물질이 순식간에 분비된다. 우리 뇌 역시 ‘정향반응’에 따라 예상가능한 익숙한 정보보다 예상치 못한 정보에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사이의 차이, 즉 ‘정보 격차’가 발생할 때 호기심이 자극된다. 호기심이 자극되면 우리는 갈증이나 굶주림과 같은 불편함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정보 격차’를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호기심이 충족될 때 뇌는 보상으로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도파민의 분비는 다시 학습 의욕과 동기 부여를 불러온다. 정보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습득하는 과정에서 기억 역시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결국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보는 기억에 더 오래 남고, 지루한 정보는 쉽게 잊힌다.
저자는 우리의 뇌 속에서 이뤄지는 이런 작용을 이용한 효과적인 학습법을 추천한다. ‘실수 기반 학습’은 도전과 실수에서 배운다는 아주 간단한 원칙이지만 뛰어난 효과를 보장해준다. 뇌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반복 암기하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답을 도출해내고자 할 때 훨씬 활발하게 작동한다. 정답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오답을 내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기억 능력을 훨씬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실수 기반 학습’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호기심을 유발하고 학습한 기억을 ‘인출 유발’하면서 학습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보관하게 만든다.
저자가 강조하는 또 다른 지점은 ‘수면’이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뇌는 낮에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기억을 응고화시키는데, 이는 스스로 시험을 치르는 효과를 낸다. 잠을 줄이고 공부를 하는 것보다 밤에 깊은 잠을 자거나 낮잠을 자는 것, 아니면 하다못해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학습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기억은 어떻게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헤쳐나가며, 미래를 상상하는가?
-기억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나 자신을 알게 된다
우리가 어떤 기억을 가리켜 ‘진실’이라거나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억의 작동 방식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기억은 거짓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기억은 본질적으로 ‘상상력이 가미된 재구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며, 각자의 경험과 해석에 따라 다르게 재구성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기억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고,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 그것이 기억의 본질이다. 기억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어떻게 기억을 활용할 수 있는지 답을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을 뇌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 차란 란가나스는 우리 뇌에서 작동하는 유동적이고 변화가능한 기억의 메커니즘이야말로 창의력의 원천이 되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기억한다는 착각》은 뇌과학, 심리학을 넘어 자신의 기억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모든 독자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기억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끔 도와줄 것이다.

“어떤 방에 들어갔는데 애당초 왜 들어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건 기억에 문제가 생긴 탓이 아니다. 기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건의 경계선’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정상적인 결과다.”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는 특정한 시기, 즉 열 살부터 서른 살 사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의 기억이 이렇게 우세한 것을 ‘회고 절정’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사람들에게 살면서 겪은 일을 회상해보라고 요구할 때 분명히 드러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나 책, 음악에 대해 줄줄 이야기할 때에도 간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하나의 인간으로 형성되는 그 시절에 들은 노래나 그때 본 영화에는 그 사람이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과 그 사람 자신을 연결시켜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