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46년 6월, 최남선이 조선에 관한 상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저술한 문답서.
출판사 리뷰
편찬 및 발간 경위
1937년 1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160회에 걸쳐 『매일신보(每日新報)』에 강토편(疆土篇), 세시편(歲時篇), 풍속편(風俗篇) 등 16편 456항목의 ‘조선상식’을 연재한 바 있다. 이 원고를 토대로 광복 후인 1946년 6월 『조선상식문답』을, 1947년 12월 『조선상식문답 속편』을 새로 집필했다.이 책들은 한국에 대한 여러 지식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출간하였다.
구성과 내용
해방 후 최남선은 자신의 저술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데 주력했다. 1945년에 『국민조선역사』, 1946년에 『조선독립운동사』, 『쉽고 빠른 조선 역사』, 1947년에 『성인 교육 국사 독본』 등이 출판되었다. 『조선상식』은 1946년 6월에 출판되었는데, 국호, 지리, 물산, 풍속, 명일(名日), 역사, 신앙, 유학, 제교(諸敎), 어문 으로 이루어진 10장에 172항이 문답체로 구성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3장은 조선의 국호, 지리, 물산으로 자연적 조건에 해당하는 장이다. 제1장 국호편에는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다양한 용어의 기원과 의의 및 대한의 유래, 서양과 이웃 여러 나라의 국호, 칭호의 종류와 유래 등 10항목이, 제2장 지리편에는 조선의 위치 · 면적 · 해안선 · 도서 및 삼천리의 유래, 행정상의 구획 등 23항목이, 제3장 물산편에는 조선의 자원, 동식물, 광산, 쌀 · 인삼 · 과실 · 목축 · 목재 · 광물질을 비롯한 산물 등 25항목이 서술되었다.
제4~5장은 조선의 풍속과 명절 등 문화에 관한 내용이 분야별로 나누어 서술되었다. 제4장 풍속편에는 흰옷 및 두루마기, 망건 등 의복의 유래와 신선로, 약식 등의 음식, 백날, 돌, 관례, 장가, 동성 혼인, 삼년상, 윷, 편쌈, 널뛰기 같은 풍속 등 26항목이, 제5편 명일편에는 설, 대보름, 제웅, 부럼, 답교(踏橋) 등 각 민속 명절의 유래와 놀이, 행사 등 18항목이 서술되었다.
제6장 역사편에는 한국 역사의 기본적인 체계와 특징, 민족성, 당파성과 사대성, 고쳐야 할 병폐 등, 최남선이 갖고 있는 역사 인식이 서술되었다. 구체적으로 조선 역사의 개의(槪義)와 대강, 조선의 민족 문화, 한국 역사의 특징, 전통의 연면(連綿)함, 일본과의 비교, 영광과 치욕의 시기, 한국의 민족성, 당파성과 사대성의 변(辯), 고쳐야 할 병통, 비탄처(悲嘆處), 이민족 압제 하의 최대 고통점, 조선 연대표, 이씨 조선 열조표 등 16항목이 서술되었다.
제7~8장은 조선의 문화와 관련해서 신앙, 유학 등이 소개되었다. 제7편 신앙편에는 고유 신앙과 단군 신앙, 대종교, 『정감록』, 등 남조선 사상, 동학(천도교), 유사 종교 등 11항목이, 제8편 유학편에는 유교의 전래, 성리학 이외의 학파, 유현(儒賢)과 서원, 유교 교육 기관, 유교가 조선에 미친 영향 등 10항목이 문답체로 풀이되어 있다.
제9~10장은 불교, 기독교, 도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와 한국어 관련 내용이 소개되었다. 제9장에는 불교의 전래, 이차돈(異次頓)의 순교, 불교의 영향, 대표적인 승려, 조선의 억불 정책, 불교의 본산과 종파, 도교의 전파, 기독교의 전래, 천주교의 의의, 기독교 순교 미담, 각 기독교파의 전래 및 영향, 이슬람교 등 18항목이, 제10장 어문편에는 한국어의 언어학상 지위와 연원 · 구성 내용, 훈민정음의 연원과 특색, 국문의 보급 과정 등 15항목이 서술되었다.
이 책은 최남선이 ‘조선 지식의 지름길’을 제시하는 방안으로 집필했다. 평이한 문체로 서술되었으며, 분량은 많은 편이 아니지만, 내용을 보면 조선학 즉 한국학 관련 주제 전체가 간명하게 압축되어 소개되었다. 전문적 연구와 더불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글쓰기의 산물이다. 또한 이 책과 『조선상식문답 속편』은 사실상 하나의 책이다. 전자는 일반 문화적 내용을 다루었다면, 후자는 보다 고급 문화를 주제로 다루었다.
이 책의 내용은 역사, 지리, 문화, 종교, 문학, 언어 등 한국학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등 모든 것에 대해 묻고 답하는 방식인 점에서 한국학 백과사전이라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최남선의 여러 저술 가운데 특히 인기가 높아 여러 쇄가 거듭되어 출판되었고 후대에도 계속 간행되었다. 1965년에 일본어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1972년에 삼성문화문고 제16권으로, 1997년에는 민속원에서 출간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작가 소개
지은이 : 최남선
시인, 출판가, 문화운동가 등으로 활약하며 근대 초기 우리 문학 및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대대로 잡과 합격자를 배출한 중인 집안의 영향 속에서 최남선은 어린 시절부터 신문명과 관련된 서적들을 접할 수 있었다. 독학으로 한글을 깨치고 7∼8세 무렵에는 한문을 배워 중국어로 번역된 신문명 서적을 읽었다. 13세가 되던 해인 1902년에는 경성학당에서 일본어를 배워 일본어로 된 신문과 잡지를 통해 서구의 근대 풍경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15세가 되던 해인 1904년 대한제국 황실유학생에 선발되었다. 일본 도쿄에 있는 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서 유학했고 이듬해 집안 사정으로 인해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1906년에 재차 일본 유학길에 올라 와세다 대학 지리역사과에서 공부했지만 1907년 3월 학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바로 돌아오지 않고 이듬해인 1908년 8월에 귀국했다. 약 2년 3개월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의 신문물, 특히 출판에 큰 자극을 받았다. 1908년 일본에서 인쇄 기구를 들여와 경성에 신문관(新文館)을 설립했다. 이 신문관에서 발간한 잡지가 한국 최초의 근대 잡지인 ≪소년≫이다. ≪소년≫이 한일강제합병 이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된 뒤에도 ≪붉은 저고리≫, ≪아이들 보이≫, ≪새별≫, ≪청춘≫ 등의 잡지 출판을 이어 갔다.잡지 출판 외에 조선의 고서적을 발굴 출판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일본이 조선의 고서를 출판한 데 따른 충격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1911년 조선광문회를 설립하며 조선의 고서를 자주적으로 발굴하고 출판해 널리 보급하고자 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조선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에 단군에 대한 연구 등으로 확장되었다.계몽운동에 대한 탐구와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열망은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행동에 옮겨지기도 했다. 그는 당시 민족대표 33인 또는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했다. 이에 최남선은 3.1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 2년 8개월의 수감 기간 동안 최남선은 1920년대 자신이 추구할 작업의 기초를 다졌는데, 그것을 출감 후 <단군론>(1926), <불함문화론>(1927) 등으로 구현해 냈다. 이 작업들은 역사학과 민속학과 관련된 작업들이었는데 <심춘순례>, <백두산 근참기> 등의 현장 답사 기행문 등과 병행했다. 이는 조선적인 것의 기원을 찾으려는 일련의 작업들이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주간 잡지 ≪동명(東明)≫(1922)을 발행하고 ≪시대일보(時代日報)≫를 창간하는 등 지속적인 출판운동을 펼쳤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민족 운동가로서의 면모는 1927년 변화의 양상을 맞이했다.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 최남선은 친일 성향으로 변모했다. 일제의 기관지인 ≪매일신문≫에 적극 참여하고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1939년에는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해방을 맞이하고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이 발효되면서 최남선은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러나 서대문형무소에서 지낸 수감생활은 짧았다. 그는 곧 보석으로 풀려났고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부에 의해 무력화되면서 그의 친일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방기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에도 우리 역사에 대해 연구했으며 1951년 해군전시편실 고문을 지내고 1952년 육군대학에서 역사를 강의했다. 1955년 뇌일혈로 쓰러진 후 투병하다가 1957년 10월 10일, 향년 68세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