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와 동시대에 활동하며 비교되었던
여성이자 유대인, 철학자 라헬 베스팔로프의 『일리아스』에 대한 독창적 해석
혼란스러운 시대, ‘전쟁에 맞서는 라헬 베스팔로프만의 방식’
호메로스의 인물들을 통해 인간사의 갈등과 방법론을 고찰한 문학 에세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새로운 호메로스 읽기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와 동시대에 활동하며 비교되었던 여성이자 유대인, 철학자 라헬 베스팔로프(Rachel Bespaloff, 1895-1949)의 『일리아스에 대하여』가 국내 첫 소개된다. 이 책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일리아스』에 관해 출판된 가장 흥미로운 작품 중 하나”라고 언급했던 작품이다. 라헬 베스팔로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대한 독창적인 논의를 전개시킨 이 책을 “전쟁에 맞서는 자신만의 방식”이라고 불렀다.
근래 국내에는 40년 만에 『일리아스』가 재번역되는 등 서양 고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전운이 감돌고, 인종, 문화, 계급 등 양극화가 심화되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서 고전에 대한 관심을 비추어볼 수 있겠다. 『일리아스에 대하여』는 문학과 철학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 사이의 연관성을 도발적이고 충실하게 보여주면서 호메로스의 폭넓은 예술세계를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세계대전에 휩싸인 유럽의 베스팔로프가 고찰했듯, 고전을 새롭게 읽어나가며 총체적 난국에 빠져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시대의 다면적인 문제점들을 성찰하고 타개하는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대한 독창적 시론(詩論)살인자는 비로소 어린 시절과 죽음을 짊어진 인간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그는 노인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슬며시 밀어냈다. 두 사람 모두 생각에 잠겼다….” 나는 여기에 『일리아스』의 가장 아름다운 침묵이 있다고 생각한다. 트로이 전쟁의 악다구니도, 인간과 신 들의 고함도, 우주의 굉음도 빨려 들어가는 절대적 침묵 말이다. 우주의 생성이 이 미세하고 감지되지도 않는 것에 걸려 있다. 그것은 순간이지만 영원하다.
「Ⅲ 헬레네」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라헬 베스팔로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주로 성장했다. 제네바 음악원에 들어가 활동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고 그 후에는 주로 쇠렌 키르케고르, 가브리엘 마르셀, 앙드레 말로 등을 탐독하며 독학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라헬 베스팔로프는 프랑스에서 맨 먼저 하이데거를 읽은 사람 중 하나였으며 레프 셰스토프, 장 발과는 사상적, 개인적 친분 관계에 있었다. 1930년대에 실존주의와 현상학 분야의 선도적인 철학자로 활동하며 1938년 첫 책 『전진과 분기(Cheminements et Carrefours)』를 발표했다.
1943년 발표된 『일리아스에 대하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에서 온 유대인 난민이라는 저자의 개인적인 배경, 문학적, 철학적 관심 그리고 전쟁이라는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역사적 배경은 “모욕은 단지 신체와 영혼에 해를 가하고 파괴만 하는 게 아니다. (…) 피해자는 자기를 추하게 여긴다. 힘의 사태를 둘러싼 기만으로 독기를 품은 굴종이 이렇게까지 삶의 내밀함을 갉아먹은 적이 또 있었을까”라는 대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은 호메로스의 시를 라헬 베스팔로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여 인간사의 갈등과 그 방법론에 관해 고찰해낸 작품이다. 어쩌면 이는 해답을 과거에서, 지혜를 고전에서 찾는 힘찬 여정이다. 저자는 헥토르, 헬레네, 테티스 같은 『일리아스』의 등장인물들을 소재로 갈등, 평화주의, 그리고 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일리아스』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타난 전쟁의 재현, 그리고 호메로스의 시에 나타난 신과 인간의 관계와 성경에 나타난 신과 인간의 관계를 비교, 분석해낸다.
시몬 베유의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 대한 응답힘은 과하게 쏟아낼 때에만, 지나친 남용을 통해서만 드러나고 알려진다. 이 지고의 분출, 이 죽음의 섬광 속에서 계산, 우연, 역량은 인간 조건에 도전하기 위해 하나가 된다. 한마디로, 힘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 아킬레우스가 아름답고 헥토르가 아름다운 이유는 힘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오직 전능의 아름다움만이 아름다움의 전능이 되어 인간을 그 자신의 붕괴와 멸절에까지 온전히 동의하게 한다. 힘에 자신을 내어주는 이 절대적 굴종이 숭배 행위에 있다. 힘은 이렇듯 『일리아스』에서 삶의 궁극적 현실이자 궁극적 환상으로서 나타난다.
「Ⅰ 헥토르」
제2차 세계대전이 임박하자 라헬 베스팔로프는 고교생이던 딸과 함께 『일리아스』를 다시 읽으면서 책으로 발전시킬 만한 사유의 단초들을 메모했다. 저자는 당시 시몬 베유도 『일리아스』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제로 글을 썼다는 건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두 사람이 유대인 출신부터 프랑스에서의 경험, 비슷한 시기 미국으로의 이주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는 점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전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보면, 베유와 베스팔로프 두 지성은 전쟁 중인 양측을 동등한 연민으로 묘사하고 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도덕적 가르침을 얻으려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리아스에 대하여』는 1939년에 발표된 시몬 베유의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 대한 베스팔로프의 응답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두 작품은 2005년 ‘전쟁과 일리아스(War and the Iliad)’라는 제목으로 함께 묶여 영문판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두 작품은 함께 자주 논의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차이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베유는 ‘힘’을 일리아스의 진정한 영웅, 진정한 주체로 간주하고, “힘에 종속된 모든 사람을 사물로 만든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베스팔로프에게 ‘힘’은 더 복잡하다. 죽음을 경멸하며 번뜩이는 넘치는 생명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신성하고, 힘을 스스로의 폐지와 그것이 만들어낸 바로 그 가치들의 말살로 몰아가는 맹목적인 충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혐오스럽다. 시몬 베유가 힘을 절대적으로 단죄한다면, 라헬 베스팔로프는 힘을 어떤 절대성, 단죄당하지 않고 스스로 단죄하는 절대적 운동으로 본다.
베유의 작품은 ‘힘’이 그 관심의 중심에 있고, 베스팔로프의 작품에서는 존엄성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은 진정한 영웅 헥토르로 구현된 저항에 진정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 모두 승자와 패자를 넘어서는 힘의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라헬 베스팔로프에 집중하면 헥토르도 이기지 못하고, 아킬레우스도 이기지 못한다. 둘 다 하나의 존엄성과 다른 하나의 잔인함이라는 차이에도 둘 다 그들 자신 안에 존재의 덧없음을 갖고 있다.
영원한 실존적 순간들 차분해진 전쟁터, 서로 몇 보 거리에 두 군대가 마주 보고 서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단판싸움을 기다린다. 이 대목, 『일리아스』의 정점에서 이 대목은 일시적 중지, 관조의 순간 중 하나다. 여기서 생성의 매혹은 그치고 격렬하기 그지없는 행동의 세계가 고요함 속으로 가라앉는다. 전사들이 미쳐 날뛰던 평원이 헬레네와 늙은 왕의 눈에는 평온한 정경으로 비칠 뿐이다.
「Ⅲ 헬레네」
『일리아스에 대하여』는 주관성과 초월성, 도덕적으로 중요한 신이 부재하는 우주에서의 인간의 자유와 윤리적 선택에 집중하고 있는데 베스팔로프는 키르케고르를 인용하여 『일리아스』의 실존적 ‘순간들’, “생성의 휴지기”를 강조한다. 호메로스가 프리아모스의 입을 빌려 전쟁에 대한 헬레네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장면이나 프리아모스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가 만찬을 마친 뒤 서로에게 감탄하는 장면 등이다. 전쟁 말고는 대안이 없는 비극적인 시대와 장소에서 “한순간 홀연히 솟아올라 영원해지는” 순간, 바로 ‘개인’의 지고한 순간들이라 할 수 있다. ‘순간’ 속에서 그 자체로 압축된 실존 전체가 자유의 가능성에 대하여 열리고 미래로 향하는 것이다.
고통과 상실은 헥토르를 벌거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