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작가 이경혜가 5.18 당시 희생된 어린이와 청소년 인물들의 이야기를 작은 책 한 권 한 권으로 펴내는 ‘광주 연작 시리즈’를 시작한다. 작가는 80년 ‘서울의 봄’ 당시 대학생으로 서울역 시위에 참여하고 5.18로 인해 인생의 경로가 크게 바뀌었다고 고백한다.「그는 오지 않았다」는 이미 제목에서 주인공 인호의 비극을 드러내준다. 이 이야기는 5.18 희생자인 박인배라는 실존인물의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이 복고풍 사랑 이야기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것은 사악한 국가폭력 때문이다. 5.18은 그 자체로도 비극적인 역사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을 어떤 방식으로 짓밟고 망가뜨렸는지는 차마 헤아리기 어렵다. 이제 막 첫사랑에 빠지고 존경할 만한 어른도 만나고 희미하게나마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갖게 된 소년이 거리에서 총에 맞아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국가가 한 개인의 평범한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한 소년의 소박한 꿈도 이루어주지 못하는 국가에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그런 홍장인이 크게 소리 내 웃는 모습을 인호도 딱 한 번 보았다. 며칠 전, 갑자기 전화를 받고 나갔다 온 홍장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웃으며 외쳤던 것이다.“나, 아들 생겼어요! 나를 꼭 빼닮았어요!”
그러던 어느 봄, 인호는 숨바꼭질을 하다가 커다란 참나무 뒤에 숨었는데 어디선가 사과 냄새 같은 향기가 났다. 쪼그려 앉아 나무 둥치께의 키 큰 풀들을 들춰 보니 은방울꽃 무더기가 숨어 있었다. 하얗고 조그만 방울 같은 꽃봉오리들이 조르르 달려 달랑거리는 은방울꽃은 키가 새끼손가락만큼밖에 안 되는 작은 꽃이었다. 차마 건드릴 수도 없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인호는 친구들에게도 알려 주지 않고 혼자만 그 꽃들을 보러 다녔다. 짓궂은 친구들이 함부로 짓밟거나 마구 따서 소꿉장난 반찬으로 써 버릴까 봐서였다.
“둘이 동갑인디 내외하지 말고 친구로 잘 지내랑께.”오 여사의 주책스런 말에 순미는 얼굴이 빨개졌다. 왜 저런 말을 한담, 무안했다. 그러나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인호를 보자 순미는 갑자기 그에게 관심이 가고 마음이 설다. 남자지만 자기처럼 부끄럼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남 같지 않은 그 느낌이 좋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경혜
이야기란 어떤 영혼이 작가의 몸을 통로로 삼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으며 글을 씁니다.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쓴 글로는 소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그 녀석 덕분에』 『그들이 떨어뜨린 것』 『새똥』이 있고, 허난설헌과 허균의 시를 번안하고 해설을 붙인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 『할 말이 있다』, 일기 중독자에 대해 쓴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북유럽 신화를 새로이 쓴 『에다』 등의 에세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