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의 대중영화와 영화 문화가 근대 대중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어왔는지 살펴보며,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 ‘매혹’과 ‘선전성’이 강한 영화들을 중심으로 영화와 국가의 통치성 사이를 추적한다. ‘매혹’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관객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창출하는 것이었다면, ‘선전’은 이를 통해 국가가 전달하는 메시지였다. 영화는 대중을 유혹하면서도 ‘국민화’에 복무했다. 또한 인기 있는 대중문화라면 그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영화의 일부로 만들었다. 연극, 악극, 무대, 쇼, 무용, 대중소설, 수필, 외국의 영화, 라디오 드라마 등 시대마다 떠오르는 매체들에서 주목받았던 많은 요소가 영화의 일부를 이루었다.한국의 이러한 영화 문화는 식민 지배와 박정희 독재라는 폭압적인 체제 안에서 약 반세기를 지속했다. 관객을 매혹하던 다양한 것들은 국가 이데올로기를 넘어 자율적으로 성장하기 힘들었다. 태생적으로 가난했던 제3세계 국가이자 식민주의, 전쟁, 독재와 같은 정치체 아래에서 생산될 수밖에 없었던 조선/한국 영화의 조건은 이 ‘매혹’에 덧붙여진 선전과 정치적 메시지를 만나게 하는 강력한 배경이었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의 역사와 영화의 역사가 겹치는 순간에 영화가 어떻게 대중과 조우하여 어떤 정치를 만들어냈는지 탐구한다.1장 영화의 ‘매혹’과 식민지의 선전영화1930-40년대 전시체제라는 역사적 상황은 조선인을 제국의 일부로서 호명하게 했고, 그것이 때로는 ‘조선적인 것’이라는 차이 혹은 차별이 드러나는 문화로, 때로는 차별의 감각을 무화한 ‘내선일체의 상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호명에 표면적으로는 조선인도 자신을 ‘조선의 미’를 가진 객체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연출하며 화답했다. 또한 영화나 무대를 만들어내면서 이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정체성에도 극단적 변화가 동반되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극이나 영화에 사상을 ‘착상’시켜 관객들을 주체화하는 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이런 극을 만들어내는 경험 그 자체가 창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신체에 흔적(identification)을 남겼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각종 정치적 선전에 악극과 영화가 동원되는 방식은 비록 그 주체가 ‘한국인’으로 옮겨졌으나 주체화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2장 반공-엔터테인먼트의 탄생해방 직후부터 영화인들은 영화 매체가 국가 건설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식민지 시기 영화 신체제와 같은 국가 주도의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에는 여러 가지 기반 시설의 파괴로 인한 위기의식과 전쟁으로 체화된 반공 의식까지 가미되어 영화 재건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영화인들은 영화산업을 국가 주도의 기간산업으로 키울 것을 제의했다. 이러한 논의의 전면에는 위기에 빠진 한국의 영화산업을 재건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영화산업이 정부의 원조를 통해서만 재건될 수밖에 없었던 산업으로서의 취약성과 그로 인해 국가를 위한 영화를 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부정적 결과가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황금기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기업화 논의들과 맞물리면서, 대한민국 영화계 특유의 국가 지원을 기반으로 한 상업영화의 제작이라는 형태로 귀결되었다.
3장 악극, 할리우드를 만나다: 탈식민과 냉전 사이1950년대 악극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기본적으로는 민족적 엘리트 담론에 의해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이나 유럽의 리얼리즘 영화들과 같은 ‘세계 영화’의 문법을 습득하지 못한 ‘도태된’ 영화라고 평가되어왔다. 악극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식민성과 이것이 영화에 투영되면서 나타나는 기술적 후진성, 미적 완성도의 부재, 식민지 시절을 떠올리는 지나친 신파성과 패배주의 등은 고급한 민족문화를 꿈꾸던 엘리트가 규정한 민족문화에서 계속해서 배제되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일색일소’를 부르짖으며 일상적 차원에서 탈식민을 주장하던 시기였지만, 실제로는 식민지 시기에 형성되었던 문화들이 아직도 상당수 대중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고 이를 활용한 영화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