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가 한때 살았던 곳이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오래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오래된 미래를 찾아 라오스로 떠난 여정, 그 길 위에서 우리가 가야 할 노동의 방향을 찾아본다. 그리고 이제는 노동의 종말 시대를 맞게 된 대한민국의 잊힌 노동의 기억을 더듬어 보며 다시 삶을 짓는 일로 나아가는 법을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 노동과 삶이 서로를 감싸고, 속도보다는 감도에 닿는 세상을 들여다보며 오래전 잃어버린 삶의 온도를 되찾길 바란다.라오스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이곳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15만 원이라면, 라오스에서는 5천 원 정도. 공무원 초임의 월급도 15~20만 원 선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가 700만 명쯤, 내수가 많지 않으니 공장에서 생산되는 건 맥주가 유일하다시피, 대부분의 물품은 수입에 의존했다. 휘발유 가격은 우리와 비슷했다.그렇다면, 라오스 사람들은 우리보다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경제적 기준으로 보면 오래전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같은 휴대폰을 들고 다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었다. …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라오스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가?일과 노동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기 전에, 먼저 이곳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 짧은 시간 동안 단편적으로나마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행이란 결국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일이 아닐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만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정문 위에는 ‘Arbeit Macht Frei(노동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라는 구호가 붙어 있다. 나치는 이를 강제노동을 정당화하는 문구로 사용했지만, 노동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노동이 모든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가?1980년대 한국에서 모심기 하루 품삯은 4,000원이었다. 물론 계절노동이었기에 열흘 정도 지속될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고된 일이었다. 반면, 서울의 인력사무소를 통한 일용직 노동자 하루 임금은 약 15만 원. 직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손발을 움직여야 하는 일의 대가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농촌의 인구가 급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삯은 조금씩 오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그러나 욕망의 상승 속도는 임금보다 훨씬 빠르다. 라오스 사람들이 여유롭게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그만큼 욕망에 덜 노출되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결국 돈은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고, 누구도 그 욕망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욕망의 한계를 스스로 깨닫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빠르고 편리한 생활 속에서 우리는 느리거나 불편했던 시절을 쉽게 잊어버린다. 욕망을 충족하는 데 익숙해진 삶에서는, 욕망이 덜했던 때를 쉽게 그리워할 수도 없다. 어쩌면 낯선 환경에 처해야만 비로소, 그 시절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 아닐까.
몇 해 뒤인 1977년 7월, 노동 현장에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터진다. 일명 ‘동일방직’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섬유 제조업체인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은 회사 측이 대의원 선거를 치르며 저지른 부정과 비리에 반발하고 나선다.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시위하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경찰과 진압대는 무차별적으로 주먹과 곤봉을 휘두르고 똥물까지 끼얹는다. 경찰과 폭력배를 앞세워 여성 노동자들을 짓밟은 회사 측은 시위 주동자와 적극 가담자들을 무더기 해고한다. 이 사건은 비인격적인 대우와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려 온 노동자들이 더욱 거세게 분노를 터뜨리며 생존권 보장과 근로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노동 현장은 변화해 왔고, 무작정 상경하듯 도시로 들어와 직업을 갖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이제 돌아다보면 흘러간 강물처럼 허무하듯 지나쳐 버린 세월이지만 그렇게 한 시대의 격랑을 헤쳐 나왔다. 못 배운 한을 풀려고 밤잠을 줄여 고입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공장 생활 3년 차, 중매로 만난 총각과 결혼하면서 ‘공순이’ 생활을 마감했다.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아직 자식들을 도와주어야 했기에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마감할 수 없다고 했다. 아니, 그보다는 집 안에 있으면 하루가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것, 그녀의 이야기는 그렇게 처음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의 삶 속에 이 땅의 현대사가 함축되어 있는 셈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창환
이십여 년, 푸른 제복을 벗고서야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다시 여러 해가 지나서야 산은 오르는 공간이 아닌 들어가는 공간으로 다가왔다.들로 산으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 철 따라 만나지는 나무며 꽃과 풍경들이 말을 걸어오기도 했고 내가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길에서 주운 사금파리로 금을 그어 놀았던 어린 시절처럼 길이 끝나고 나면 그 길에서 주운 이야기들을 펼쳐 놓으며 다시 여행을 시작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