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신령은 종차별과 성차별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세계관 속에서 여성, 퀴어, 성노동자, 정신장애인, 비인간 동물, 서툰 외국어 사용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과 호흡하며 부단한 연대 활동을 이어가는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샤먼’ 정홍칼리가 3년만의 신작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이번 책을 계기로 ‘홍칼리’ 대신 ‘정홍칼리’라는 새 이름을 택한 그는 말 그대로 자기 존재와 정체성의 흔적인 여러 ‘이름들’을 유영한다. 《틈새 연대기》는 강간을 당한 뒤 무작정 한국을 뜨게 된 그가 해방인지 추방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여정에 오르며 겪게 되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는 처음으로 떠난 인도에서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끼며 자신이 구조의 질서에서 밀려났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방인의 신분으로 세계 곳곳을 표류하며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문제 삼는 질문들을 날카롭게 다듬어나간다. 질문의 대상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문명을 떠받치는 뿌리 깊은 인간중심주의, 그리고 그 안에서도 핵심이 되는 남성중심의 가부장 국가권력, 사람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서구중심주의(오리엔탈리즘)와 백인중심주의. 그 구조와 질서는 이곳 한국 땅을 넘어 지구 구석구석을 지배하며 인간/비인간 소수자들을 추방한다.그리하여 그는 ‘일종의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국에 대한 낭만과 자본주의적 친절함으로 포장된 여행 상품 뒤에 어떤 ‘권력’과 ‘억압’이 흐르고 있는지 스케치하기로 한 것이다. 가난한 이방인 여성으로서 차별의 ‘틈새’를 지나며 건져 올린 그 이야기들은 한계 없이 이어지는 소수적 정체성으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타자와 조우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가는 여정이다.떠돌이, 창녀, 귀신 들린 몸, 반동분자, 관심종자, 빨갱이, 꼴페미, 무당, 미친년…… 이것은 폭력에 저항한 자국이고, 살아남으려 했던 흔적이다. 그리고 낙인은 더 이상 나에게 수치심과 두려움을 주지 못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낙인에 눌리던 수천억의 넋들이 나와 함께한다. 이 책도 나 혼자서 쓰지 않았다. 넋들의 한을 풀려고, 동시에 내 억울함을 풀려고 썼다.
이 책은 단순히 떠남을 찬양하는 여행기가 아니다. ‘방황하다 정착하는’ 성장기도, 대안 공동체를 찾아 희망을 말하는 르포도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흘렀던 몸의 증언이자 밀려난 몸의 연대기, 이어 쓰는 연대다.
혼자서만 신이 된 구름 같은 자유는 허상일 뿐이다. 나는 하늘 위의 구름이 아니라, 사회에 발 딛고 뒹구는 정치적 존재다. 언제나 흐름 속에 놓인 정치적인 몸이다. 그러므로 나의 해방은 나만의 몫이 아니다. 사회적 치유 없이는 나의 회복도 없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홍칼리
억울한 넋을 기록하는 무당. 구천을 떠돌다 북한산 끄트머리 마을에 머물고 있다. ‘미신’이라 불린 감각으로 저항한다. 문장에 넋 싣기, 피부에 부적 새기기, 콩 불리기, 만트라로 주술 걸기, 집회에서 넋 풀기 등 각종 비방으로 정상성의 망령을 태운다.책 《붉은 선》, 《신령님이 보고 계셔》,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등을 기록했고, 만트라 앨범 《해방당굿》, 《지구넋모심굿》, 《마녀들의 허밍》을 지었다.굿당의 위치는 이 책의 문장 사이, 당신의 침묵 아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