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가만히 듣고 있던 은명도 곧 조신하게 움직였다. 손에 들고 있던 비단보자기의 매듭을 풀고 그 안에 준비된 화려한 모란을 달빛이 쏟아지는 물결에 띄워 보냈다. 두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달님의 힘이었을까. 잠시 후 은명이 눈을 뜨니 한결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에워쌌다.
“소원을 비셨습니까?”
“스승님과 제가 연을 맺게 하여 주십사…….”
은명은 흘긋 바라본 서율에게서 순간적으로 냉랭한 기운이 뻗어 나옴을 놓치지 않았다.
“……빌었을까 겁이 나셨습니까?”
“그걸 농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서율이 기막혀하자 은명은 몸을 돌려 그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어둠 속에서 서율의 시선을 강하게 붙들고 야무지게 대답했다.
“스승님께서 저를 헷갈리게 하지 말아 달라 빌었습니다.”
“헷갈리게 하다니요?”
“헷갈리게 하지 마십시오. 어찌나 언변이 좋으신지 스승님의 말씀에 제가 결심했던 것들을 줏대 없이 홀딱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반년이 넘도록 말입니다. 잔인하고, 못되고, 이기적인 철부지라 하셔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상대를 위해 제 마음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그런 요상한 행동, 저는 하지 않을 겁니다.”
“공주 자가, 대체…….”
“마음이 열리면 어찌할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하면 저도 묻겠습니다. 그러다 제가 내일 죽으면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스승님이야 신하 된 도리로 공주가 죽었으니 조금 안타까워하다 마시겠지요. 하지만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다 제 마음을 부정한 채 죽어야 하는 저는 얼마나 후회되고 억울하겠습니까?”
“비약이 지나치십니다.”
“그래서 저는 스승님을 향한 이 마음을 접을 수가 없습니다. 응답해 달라, 돌아봐 달라, 떼쓰지 않겠습니다. 오늘 밤 이후로 제 감정을 고백하여 스승님을 자극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절대로 의빈이 되지 마십시오. 스승님같이 훌륭한 인재가 의빈이 되는 건 저도 반대입니다.”
서율은 답답한 마음을 표할 길이 없었다. 그럼 어쩌자는 거냐고 울컥 한마디가 튀어나올 것 같은데 깜찍하게도 공주는 해답마저 알아서 읊었다. 그것이 비록 어이없고 기가 차는 답일지라도.
“저는 저대로 드러내지 않고 스승님을 연모할 테니, 스승님께서는 지금까지처럼 제게 흔들리지 마시고 한결같은 마음을 지키십시오.”
“자가!”
“마음껏 저를 미워하십시오. 싫어하십시오. 하나 제 마음을 강요하진 마십시오. 제 마음은 제 것입니다. 살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그 말, 꼭 지키고 싶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 오늘 뵙고자 한 것입니다.”
-2권
작가 소개
지은이 : 서은수
출간작《공주, 선비를 탐하다》《윈터 블루스》《고백의 이유》《설렘의 기억》《헤어지는 날》그리고 《동백꽃 핀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