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작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다정한 시선과 균열을 비트는 상상력으로 한국 청소년문학의 독보적인 감수성을 선보여 온 작가 최상희의 장편소설 『늪지의 렌』(창비청소년문학 137)이 출간되었다. 유전자 조작 시술이 상용화된 미래, 발작을 일으킨 청소년들이 시민들을 해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소집령이 내려지고, 시설에 끌려간 열다섯 살 렌과 아이들은 믿을 수 없는 폭력을 마주한다.
간결하고도 힘 있는 문장이 생생한 감각을 전하며 폭력의 잔인하고도 섬뜩한 본질을 짚어 내는 한편, 렌과 아이들의 우정이 만들어 내는 다정하고 단단한 연대의 힘은 더없이 특별하다. 지난겨울 우리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권력을 눈앞에서 목도했고, 그 잔혹하고 어두운 밤을 이겨 낸 것은 두려움을 넘어 연대하는 용기 덕분이었다. 엄혹한 밤을 지나 한 줌의 빛으로 나아갈 모든 이들에게 자신 있게 권하는 소설이다.
출판사 리뷰
“갑자기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 세상에 숨을 곳은 없었다.”
잔혹한 밤을 이겨 낼 다정하고 아름다운 연대의 힘
소집령이 떨어졌다.
이 세상에 우릴 위한 안전한 곳이 있을까?어느 날 유튜브에 뜬 한 동영상. 얼핏 영화 촬영 현장인 듯 보이는 그 영상은 평범한 지하철역을 배경으로 마치 좀비물처럼 한 남학생이 시민들을 해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 뒤 전국 곳곳에서 청소년들이 갑자기 괴력이 생긴 채 돌변하여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윽고 정부는 13세에서 19세까지의 청소년들에 소집령을 내린다. 사고를 예방하고 청소년들을 ‘치료’하겠다는 명목으로, 무장 군인들이 지키는 외딴 시설에 모이게 된 아이들.
열다섯 살 렌도 소집령을 피해 가지 못했다.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소지품을 뺏기고 아이들에게 주어진 건 짙푸른 셔츠와 바지, 그리고 칫솔과 수건, 담요뿐. 아이들은 한 방에 수십 명이 배정되어 식사 시간도, 이동도 제한된 생활을 하게 된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이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며 무의미하고 폭력적인 훈련을 거듭하는 사이 낙오된 아이들은 어디로 끌려갔는지 모르게 사라지고, 같은 방의 누가, 언제 발작을 일으켜 서로를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 렌은 이곳에서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폭력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작지만 다정한 손길끔찍하고도 잔혹한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하는 건 다름 아닌 특별한 친구의 존재다. 시설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만난 위령은 두렵고 긴장된 속에서도 순식간에 분위기를 말랑하게 풀어 버리는 매력의 소유자다. 또래보다 큰 키와 덩치를 타고난 탓에 밖에서는 따돌림을 받았다는 위령은 남들과 다른 눈동자를 한 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렌은 위령의 눈을 들여다본다. 위령은 피하지 않는다. 이상하다는 표정도, 궁금해 죽겠다는 기색도, 꺼리는 눈치도 없다. 그런 식으로 렌의 눈을 바라보는 사람은 엄마 말고는 없었다. 어쩌면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89면
서로에게 의지해 불안을 견디던 중 렌과 위령은 뜻밖의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조별로 경쟁을 붙이며 땅을 파라는 대령의 명령에 아비규환이 된 운동장, 렌을 향해 달려드는 삽을 피하도록 누군가 도와준다. 빠르게 사라진 그 아이의 눈은 한쪽은 푸르고 한쪽은 갈색인, 렌과 같은 오드 아이다. 이후 만나게 된 그 아이는 나기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늪지’에서 왔다고 말한다. 평균적이지 않다는 공통점으로 렌과 위령, 나기는 금세 가까워진다. 나기의 고향에 대해 듣게 된 렌과 위령은 도시의 문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남다른 능력이 있는 듯한 늪지의 사람들 이야기에 놀라워한다. 자신과 같은 눈을 가진 아이를 처음 만난 렌은 혼란스러워하는데……. 렌과 늪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직 한 줌 빛이 있어
세상은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한편 아이들 사이에서는 발작을 일으키게 된 원인이 유전자 조합 시술인 넥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소문이 돌며 동요한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12면)이라는 모토로 ‘더 좋은’ 유전자를 배합하고자 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프로젝트, 소설은 이에 대해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아이”(82면)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를 정해 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질문을 던진다.
늪지 출신인 나기와 그와 닮은 눈을 가진 렌, 남다른 덩치를 가진 위령은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술을 받지 않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따돌림당하던 아이들이었다. 주류로부터 차별받던 아이들, 작고 연약해서 괴롭힘당하던 아이들은 하나둘 렌과 위령의 무리에 모여들며 서로를 다독이고 탈출을 꿈꾸기 시작한다.
질서와 보호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박탈하고 잔인한 폭력을 정상화하는 사회는 소설 속뿐만 아니라 지난겨울 우리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잔혹하고 어두운 밤을 이겨 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한 줌의 빛을 향한 믿음이었다. 렌과 위령, 나기의 맞잡은 손이 파헤쳐 가는 이 이야기는 연대와 우정으로 어둠을 밝히는 간절한 희망을 담았다. 기나긴 밤을 지나온 모두에게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와 의지를 전하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너는 내가 본 가장 멋진 1인 시위자야. 렌은 시위자가 뭐냐고 물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항해서 싸우는 사람이라고 조는 대답했다. 렌은 그 말을 마음에 들어 했다. 시위자. 그와 동시에 시위가 무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모르긴 해도 천국은 아닌 것 같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상희
『그냥, 컬링』으로 비룡소 블루픽션상, 『델 문도』로 사계절문학상, 단편 「그래도 될까」로 제3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하니와 코코』 『마령의 세계』 『속눈썹, 혹은 잃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 소설집 『바다, 소녀 혹은 키스』 『B의 세상』 『닷다의 목격』 『우주를 껴안는 기분』, 에세이 『숲과 잠』 『살구의 마음』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