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존재하지는 않아도 머물고 싶어
이 밤과 이 거리 속에 남고 싶어”
들리니, 너무 미워해 미안하다는 후회
느껴지니, 모두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
그냥 떠날 수 없는 영들과
그냥 보낼 수 없는 하나-혼자들이
투명한 파도처럼 함께 껴안은 슬픔
내가 세상과 작별하는 날, 따돌린 친구가 유서를 남겼다
엄마는 아빠와 이별을 선언했다
친구와 가족…… 너무 사랑해 함부로 굴었던
존재들을 향한 뒤늦은 안부
교실 유리창, 빈방 책꽂이, 서점 책갈피……
삶과 죽음 사이에
남겨진 영원을
지키는 빛과 그림자
죽음 뒤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
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성장한다 역사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작품들로 ‘페이지 터너’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김서진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 <내가 죽은 다음날>이 여름방학처럼 찾아왔다. 1993년 KBS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돼 20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하다 2013년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발표한 김서진 작가가 10년 구상 끝에 선보이는 높은 가독성과 깊이 파고드는 여운을 간직한 역작이다.
<내가 죽은 다음날>은 제목이 지시하듯 죽음 이후에도 밝아오는 아침처럼 여전히 계속되는 삶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 때문에 그냥 떠날 수 없는 영들과 소중한 존재의 죽음이 제 탓이 아닌데도 자신의 잘못인 양 슬픔을 껴안고 버티는 하나-혼자들이 투명한 파도처럼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
김서진 작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작품을 처음 시작했지만 “감당이 안 되는 큰 비극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헛된 바람을 상상하는 것”이어서 가슴속에 묻어두어야 했다. 그 10년 동안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성장한 <내가 죽은 다음날>은 가장 가까운 타인인 가족과 친구에 대해 우리가 더 늦기 전에 건네야 할 안부를 묻는다. 우리 모두에게 지금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말로 지옥인가, 천국인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의 시선에서 우리로 모이는 저마다 품은 후회의 반성문
산 자와 죽은 자의 못다 한 고백이 오래된 책갈피처럼 서로에게 스미다“내가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교복을 입은 영정 사진 속에서 내가 웃고 있다.”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인 나연은 ‘도둑 누명’을 쓰고 따돌림을 당해 자살 시도를 한 친구 은수의 병문안을 다녀오던 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다. 늦잠을 자고 항상 술에 찌든 새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차용증서’를 「메밀꽃 필 무렵」 사이에 숨긴 날이기도 하다.
빛과 그림자에 휩싸여 눈을 뜬 나연에게 30년 전 백화점 아르바이트하러 간 이튿날 그곳이 붕괴되면서 영으로 떠돌고 있는 기훈이 제 주위를 맴돈다. 부모의 슬픔과 갈등, 가장 믿었던 친구들의 오해와 배신 속에서 “매일매일의 습관 같은” 후회만 반복하는 나연에게 기훈은 유일한 조력자가 돼 영의 시선으로 못다 한 생을 복습하듯 동행한다.
남아 있는 사람과 떠나지 못하는 영이 교차하는 구심점에 서점이라는 공간이 있다. 기훈의 대학 동창이자 연인인 현주는 오래된 책처럼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현주에게 나연과 책을 사러 왔던 엄마가 우연히 찾아오고, 재작년에 암으로 아내를 잃고 여섯 살짜리 딸아이를 홀로 키우는 술 취한 남자가 단골이 된다.
이 남자는 사실 주인공인 나연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라는 반전을 품고 있는데, 30년 전 죽은 기훈의 억울한 죽음을 끌어안고 살아온 현주가 죄를 고백하게 하고, 죄인이 새로운 삶을 향해 함께 한 발짝 내디딜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결말은 기존 청소년 소설과 달리 삶의 지독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진실 하나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초라한 어른들”의 반성문 같은 결말을 품은 <내가 죽은 다음날>은 마치 후회와 상처의 페이지를 열지 못하는 삶은 죽음과 마찬가지이고, 펼치는 순간 또 다른 생이 된다고,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진정한 작별을 통해서만 비로소 삶의 다음 페이지를 향해 성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죽음보다 깊게 숨었던 어린 상처들의 기척
열여덟, 여학생들의 내밀한 일기가 보여주는 성장통의 진실<내가 죽은 다음날>은 나연이 영이 된 시선으로 가장 친했던 친구들의 숨겨진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스튜어디스가 꿈인 지영, 늘 거울을 달고 사는 혜라, 점쟁이인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은수,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성아, 학교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민재……의 이야기는 주변인물로 소비되지 않고, 십대 특유의 방황과 서툰 마음, 상처를 숨기기 위한 거짓말로 죽음만큼 힘겨운 현실을 보여준다.
지영은 사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억압을 받고 있고, “자신이 겪는 가정폭력을 철저하게 숨기고 거만한 얼굴로 친구들을 대하는” 슬픈 거짓말을 숨기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은수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가족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 나연의 가족과 처음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다이어리 앱, 팬픽, 커뮤니티 댓글을 통해 상처를 숨긴 채 “혼자라는 사실”만 끌어안고 있는 십대들의 내밀한 아픔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하지만 나연은 죽어서도 오해받고 용서받지 못한다. <내가 죽은 다음날>은 십대의 내면 풍경을 향해 쉽사리 화해의 손길을 건네지 않고 아픈 성장통을 직시한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거짓말로 외치는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솔직한 문장으로 통과한다.
내가 떠나온 이곳이 지옥일까, 남겨둔 저곳이 지옥일까
성장의 오디세이를 통해 오늘, 여기 우리에게 건네는
마음의 천국과 지옥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내가 죽은 다음날>은 이렇듯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오늘, 여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일 내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떠난 이곳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이곳을 지옥으로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곳에 가둔 건 나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일까. 더 늦기 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 어떤 사과와 다짐을 건네야 할까…….
읽는 내내 이러한 질문을 품게 하는 <내가 죽은 다음날>은 세월에 잊힌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와 감옥 같은 교실에 갇힌 아이들의 목소리를 밑그림으로 열여덟 살에 영원히 머물게 될 주인공의 죽음 이후, 비로소 시작되는 마음의 성장 오디세이를 통해 우리의 마음 또한 한 뼘 자라게 한다.
30년 동안 영의 세계를 살았던 기훈이 떠나기 전 나연은 고백한다. “나는 나이가 어려서 추억도 조금밖에 없어요.” 그 고백에 기훈은 “추억이란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깊이가 아닐까. 내가 절대로 놓지 않는 거,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 있는 거.”라며 작별인사를 건넨다. 나연은 “만약 다음 세상이 또 있다면 나를 찾아주세요. 내가 별로 좋은 아이는 아니지만……. 나를 기억해주고, 내 옆으로 와주세요.”라며 처음으로 타인에게 진심어린 위로의 부탁을 건네다.
<내가 죽은 다음날>은 죽음, 어쩌면 모든 끝의 이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간절한 희망의 풍경이다. 오해와 거짓말로 얼룩진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기억하지 않아 내가 만든 지옥에 갇혀 하루하루 힘겨운 삶과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 투명한 위로를 건넨다. “새처럼 날아 전봇대 위에 오르기도 하고, 아주 먼 곳을 다녀오기도 하지만 주로 내 가족, 친구들 옆에 있”고, “햇빛 속에, 빗방울 속에, 달그림자 속에……” 머무는 그리운 이름들의 기척을 알아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