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꿈처럼 반짝이던 여름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향할 시간이에요.
낯설지만 따뜻했던 여름 별장, 웃음으로 가득했던 휴가의 순간들!여름은 가장 뜨겁고 자유로운 동시에 많은 걸 기억하게 한다. 여름이 ‘기억 미화’의 계절로 불리는 이유 역시 더위를 피해 소중한 사람들과 휴가를 떠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의 끝에서》는 이렇게나 보내기 싫은 계절의 끝자락을 단정한 글과 수채화로 담아낸 책이다.
무더운 여름날,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났던 아이는 다시 익숙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너무 즐거웠던 여름이 찰나에 지나가 버린 탓일 테다. 집을 향해 한참을 달린 아이와 가족들은 잠시 옆길에 들어서서 피크닉을 하며 다시 한번 여름의 추억을 나눈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선 그 길에서 환상적인 밤 풍경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보내는 어떤 계절의 끝에는 필연적으로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해 만드는 마음의 풍경이 있다. 그리고 아쉬움을 누른 채 그걸 잘 들여다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목적지를 향해 곧장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리게 함께 걷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 뜨거운 계절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아주 명료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특별한 시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감정에 관해 말하고 싶다면, 꼭 이 책과 함께이기를 바란다. ‘보내는 계절’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계절’의 끝, 그 무한한 사잇길을 이 책의 사랑스러운 주인공들과 함께 걸어 보기를.
여름을 떠나보낼 결심다 커보니 알겠다. 어린 시절 오매불망 기다려 왔던 방학이라는 게 단순히 ‘쉼’의 시간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느긋한 공기나 유난히 밝은 햇살, 낯선 집에서 보내는 밤처럼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던 것들. 방학은 그런 낯섦에 기대어 마음이 자라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 책은 여름방학의 끝을 맞이한 아이의 시선을 좇는다. 큰 사건이나 명확한 갈등이 있지 않지만, 우리는 아이가 자라는 중인 여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그 성장의 시간을 지켜본다. 단정한 글과 종이 곳곳에 번져나가는 수채화는 우리를 그림책의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 한 가운데서 그의 시간이 자라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행지에서 떠나올 때 우리는 ‘마음은 아직 그곳에 있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아이도 마찬가지인 듯 보인다. 문을 닫고, 별장을 둘러보고, 가방을 챙겨 나오며 여름과 작별하지만, 마음은 아직 그 공간 속에 머물고 있다. 그렇게 언뜻 아이의 행동과 대사에 묻어나는 작별의 기색들은 여름의 여운이 되어 고스란히 우리 마음에 닿는다. ‘슬펐지만, 슬프다고 말하지는 않을’ 거라던 아이의 표현은 그러한 기색들을 잘 이해하게 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어린 독자만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어떤 ‘끝’을 경험해 본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는 비로소 여름을 떠나보낼 다짐을 한다. 억지로 털어버리거나 일상을 위해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느낀 뒤에 다다른 수용이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배움이고, 어른들에게는 오래전 배웠지만 자주 잊히는 감각이다. 그러니까 여름이 끝나간다는 건 단순히 놀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마음이 조금씩 자라 다음 계절로 향할 준비를 해간다는 뜻이 아닐까. 여름의 끝, ‘끝의 감각’이라는 건 우리에게 그런 의미가 되어 준다.
옆길로 돌아가는 용기끝은 언제나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찾아온다. 이 책은 그런 순간을 한 아이의 시선으로 묘사한다. 익숙한 장소를 떠나 다시 돌아가는 길목, 한 가족이 짐을 싸고, 문을 잠그고, 이웃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는 평범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물리적인 귀가가 아니라 마음의 균형을 다시 세우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의 방향은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으니까. 그리고 어떤 마음은 곧장 수긍되지 않고, 또 어떤 변화는 잠시 옆길로 새야만 비로소 받아들여지는 법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바로 그 ‘옆길’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이 장면이 순식간에 이야기의 감정선을 바꾸어 놓는다. 인물들의 움직임에 숨을 불어 넣는 장치이기도 하다. 익숙한 길을 벗어나 잠시 멈춘 자리에서야 사람들은 진짜 서로를 바라본다. 말을 아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따뜻함을 나눈다. 이것은 아쉬움을 달래는 위로의 방식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자라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느끼는 이 여백은 서두르지 않는 감정의 공간을 만든다. 때로는 무언가를 지나치지 않고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옆길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은 하나만 있지 않다. 빠르게 가야 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선택은 종종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데서 시작되는 법이니까. 그 길에서 우리는 삶의 진짜 가치들을 다시 발견하고,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느낀 감정들은 어른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스민다. 누군가에게는 끝맺음이 다른 누군가에게 시작이 될 수 있듯, 계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은 모든 세대를 향해 있다. 문득 삶이 너무 바빠서 옆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면 그 ‘옆길’을 따라 한번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제야 마음의 준비가 되었어요계절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날씨로, 하나는 상황으로 기억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다만, 이 모든 게 우리의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두 가지의 방식은 궤를 함께한다. 《여름의 끝에서》의 경우에는 후자다. 여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한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정리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하는 데에는 아이의 감각이 있다.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마음이 천천히 괜찮아지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마음 깊은 곳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게 꼭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미 다 자라버린 어른들도 함께 누구에게나 있는 ‘끝을 이해하게 되는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거다.
무언가를 끝낸다는 건 달리기의 결승선을 끊는 것과는 달라서, 그렇게 하기 전 일련의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아이는 처음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피크닉, 별이 뜬 밤, 엄마에게 만들어 준 화관 같은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마음을 변화시킨다. 이 책은 그 변화를 대단한 사건이나 교훈을 통해 보여주지 않는다. 새삼스럽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발화 방식과 단편적인 장면을 통해 그저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하기를 택한다. ‘아직 안 돼’라는 감정이 어떻게 ‘이제는 괜찮아’로 바뀔 수 있는지 일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여름의 끝에서》는 ‘기다려 주는 책’이다. 우리에게 속도를 재촉하지 않으며, 책장마다 쉼표처럼 감정을 두고 간다. 그렇게 매 페이지를 곱씹으며 마지막에 가닿으면 ‘준비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책은 결코 끝나지 않는 여름을 붙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끝났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연습이자, 그 끝에 서 있는 스스로를 따뜻하게 다독이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어떤 계절이든, 어떤 감정이든, 결국에는 다 지나간다는 사실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