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끝을 향한 사유는 언제나 시작을 부른다. 『보통의 종말』은 인간 존재가 마주하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 ― 삶은 왜 지속되어야 하며, 절망 속에서도 무엇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가 ― 를 언어로 탐구한 기록이다. 이 책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다. 철학적 물음과 문학적 형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태어난, 사유의 실험이자 존재의 고백이다.
본문 속 문장은 낯설고도 강렬하다. “우주로 돌아가 지구를 물어뜯자”, “인간성이 파도처럼 흘러간다”, “사유가 표범처럼 다가온다”와 같은 구절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균열 속에서만 드러나는 진실을 압축한 언어다. 이 언어들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우리가 잊고 있던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불러낸다.
저자는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니체와 불교의 사상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무너짐과 파괴를 직시하면서도 다시 살아내야 한다는 니체적 의지, 모든 것은 흘러가고 사라진다는 불교적 무상의 자각이 그의 글 속에서 교차한다. 이로써 『보통의 종말』은 절망과 희망, 끝과 시작, 허무와 의미가 동시에 작동하는 사유의 장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은 개인적 고백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고독과 불안, 단절과 상실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의미를 찾고자 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독자는 이 언어들을 따라가며, 자신의 삶 속에서도 ‘보통의 종말’을 마주하고,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보통의 종말』은 절망을 응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기록한, 드문 사유의 여정이다. 철학과 문학이 만나 탄생한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다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묻는 언어의 증언이다.
출판사 리뷰
『보통의 종말』은 단순한 시집의 범주를 넘어,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형식을 교차시키려는 기획의 산물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작품집은 ‘종말’을 세계의 파국이나 단순한 소멸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말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탐색하며, 그 과정에서 절망과 희망, 무너짐과 시작의 긴장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보통의 종말』은 현대시가 흔히 지향하는 감각적 정서의 표출을 넘어, 존재론적 탐구를 수행하는 하나의 철학적 기록으로 자리매김한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핵심 주제는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이다. 시인은 고통과 상실, 고독과 불안이라는 실존적 조건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한다. 그러나 그 직시는 단순한 허무주의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종말은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으로 제시되며, 무너짐 속에서만 발화하는 희망, 단절 속에서만 드러나는 새로운 언어가 강조된다. 이러한 양가적 진실은 니체적 삶의 의지와 불교적 무상의 통찰이 결합된 형태로 드러난다. 니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망을 뚫고 삶을 긍정하는 힘이 강조되고, 불교의 시선에서는 모든 것이 흘러가고 사라지는 무상 속에서 고통을 껴안으며 진실에 도달하는 사유가 나타난다.
『보통의 종말』의 언어는 단순한 시적 장식이 아니라, 철학적 탐구의 매개이다. “인간성이 파도처럼 흘러간다”, “사유가 표범처럼 다가온다”, “우주로 돌아가 지구를 물어뜯자”와 같은 구절은 감각적 은유를 넘어, 존재의 본질적 체험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한다. 파도, 표범, 우주와 같은 이미지들은 모두 역동적이면서도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세계의 무상성을 드러낸다. 형식적으로는 산문시와 서정시의 경계를 오가며, 시적 울림과 철학적 서술이 긴밀히 결합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서정이 아니라, 언어를 통한 사유의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집의 독창성은 철학적 사유가 단순한 배경지식으로 머무르지 않고, 작품의 내적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 있다. 니체적 사유는 기존 가치의 붕괴와 그 속에서도 다시 삶을 긍정하려는 태도로 드러나며, 불교적 사유는 무상·고통·집착의 문제를 통찰하면서 언어 속에 스며든다. 흥미로운 점은 두 철학 전통이 상충하기보다, 서로를 보완하며 긴장 속에서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보통의 종말』은 서구적 비극 의식과 동양적 무상 사유가 교차하는 장으로 자리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 현대시는 종종 감각적 이미지의 축적이나 개인적 감정의 표현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와 달리 『보통의 종말』은 문학과 철학의 결합을 통해 시가 사유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절망과 희망, 끝과 시작, 허무와 의미가 동시에 작동하는 언어의 장은 독자에게 단순한 감상의 경험을 넘어,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이는 한국 현대시의 지평 속에서, 문학적 서정과 철학적 성찰을 긴밀히 결합한 시도의 의미를 갖는다.
『보통의 종말』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탄생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부정이나 허무가 아니라, 절망을 뚫고 삶을 긍정하려는 의지의 흔적이다. 언어는 여기서 고통과 무너짐을 증언하는 동시에, 다시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건네는 매개로 기능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한 개인의 고백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직면한 실존적 질문을 공유하게 한다. 종말을 직시할 때만 가능한 시작, 무너짐 속에서만 솟아나는 희망 ― 그것이 『보통의 종말』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통찰이다.

“의식의 극단이 요동치다
소리 없이 사라지고
사선(死線)의 경계가 몰아친다
사유하라!
모든 것을 사유하라!
저 악마가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지만,
나는 그곳에서 삶을 본다!
인식을 본다!”
“정의될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 한다면
모든 사람은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네
밤에만 대화를 하기로 하자
좋은 꿈을 꿔보자
언어에는
낮이 없음을 기억하자”
“살아라!
그리고 모든 것을 하라!
모든 무거운 짐이
우리를 속이고 있음을 기억하라!
너무나 가벼운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윤동하
1997년에 태어나 철학과 바둑학을 공부했다.스무 살 무렵, 인간과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계기로 철학적 사유에 깊이 발을 들였다. 2021년 사유의 단상을 수집한 『강력한 호소』를 시작으로 『형이상학과 지혜』, 『모순의 시』, 『철학자의 악보』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그의 사유에는 두 가지 축이 교차한다. 하나는 니체로부터 이어받은 삶의 비극성에 대한 직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려는 의지이며, 다른 하나는 불교가 전하는 무상(無常)과 고통의 자각 속에서 집착을 버리고 존재의 진실을 발견하려는 태도이다. 이 두 전통은 상충하지 않고 긴장 속에서 서로를 보완하며, 그의 글 전반에 독창적인 색채를 부여한다.현재 그는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독창적인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언어는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통로이자 사유가 확장되는 장이다. 그는 언어를 통해 인간이 마주하는 불완전함과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도 다시 살아내야 하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러한 시도는 개인적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사유로 확장되어 동시대 독자들에게도 성찰의 계기를 건넨다. 나아가 그의 글은 문학이 철학적 탐구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라는 양가적 조건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목차
머리말 7
헛된 희망 13
드러나다 16
고백 18
대지의 말 20
별에게 22
별의 목격 24
자신 26
자연에게 27
여행자의 자질 29
심연으로 31
비워내는 것 32
우리의 하늘 34
작은 생명에게 36
무엇이 다르니 38
삶으로 39
떠내려간다 41
괜찮지 않다 43
죽음 45
실존 47
모순의 숲 49
중독과 무기력증 52
최단 경로 54
새벽녘 57
無를 목격하다 60
새로운 감각의 이중성 62
죄가 없다 65
세계는 돌아온다 68
쓰나미 70
말하라 73
처단 75
항성의 기억 78
반데르발스 80
허상 83
다짐 85
선언문(꿈에게) 88
사라진 영혼으로부터 91
우주인 93
꿈속에서 98
오아시스 100
다만 나 자신에게 104
천 개의 폭포 사이로 106
죽음 앞에 서서 109
보통의 종말 111
예술가의 숙명 114
마지막 편지 116
안식 118
유산 119
작심 121
악마의 초대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