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2025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일반지원사업 선정작
막새, 소년병이 되다《나는 염알이꾼입니다》는 2025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일반지원사업 문학 분야 선정작이다.
부모를 모두 잃고 절구 할아범 손에 이끌려 관아에서 살게 된 막새는 같은 처지의 명수 형과 다정한 여진족 소녀 모린 누나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모린 누나는 압록강 너머로 떠나고, 조선에 대대적인 징집령이 내려 명수 형과 막새도 전쟁터로 향하지만 곧 헤어지고 만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전쟁에 참가한 막새는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 압록강을 건넌다. 몸이 아픈 친구까지 업고 죽을힘을 다해 압록강을 건넌 막새는 기진맥진해 정신을 잃고 만다.
남의 말을 엿듣는 사람이 되라고? 나중에 정신을 차린 막새는 조선 군대의 최고 지휘자인 도원수, 강홍립의 눈에 들어 시중을 들게 된다. 도원수 가장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며 막새는 명나라와 후금의 전쟁에 낀 조선의 처지에 대해 깨닫는다. 막새는 나랏일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철부지 소년이었고, 면천첩을 받아 노비 신분을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에 더더욱 전쟁의 명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약소국의 설움을 알게 되고 더불어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를 이끌어야 하는 장군의 무거운 고뇌에도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전투 끝에 포로로 잡힌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후금군에게 갔다가 그리웠던 모린 누나와 명수 형과 재회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모린 누나와 명수 형은 낯선 사람이 되어 있고, 모린 누나는 막새에게 염알이꾼(몰래 남의 사정을 살피고 조사하는 사람)이 되어 보라는 뜻밖의 제안을 하는데…….
막새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꿈꾸던 통역사가 될 수 있을까?
염알이꾼 막새, 희망을 전달하다《굿바이, 미쓰비시》 《오빠는 하우스보이》 등 역사의식이 분명한 청소년 소설을 발표했던 안선모 작가가 이번에는 광해군 시절 소년병 이야기, 《나는 염알이꾼입니다》로 돌아왔다. 이 작품에는 광해군 시절, 조선의 실상이 드러나 있다. 전쟁에 동참하라고 압박하는 명나라와 원한이 없다면 화해하자는 후금 사이에서 이미 예전에 명나라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광해군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의 난감한 처지는 장군에게로, 다시 백성에게로 옮겨 가며 고단함이 가중된다. 징집령에 늙은 부모 대신 어린 아들이 나서고, 험한 일은 한 적 없는 손이 고운 선비까지 차출된다. 역사 강의를 듣다가 미시사에 빠지게 됐다는 작가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무심히 지나쳐 간 백성들의 수많은 사연을 보듬는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만드는 것은 결국 작은 물줄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인간 개인이나 소집단의 삶을 탐색하는 작업은 참으로 매력적인 역사 탐구 방법이지요.
-작가의 말 중에서
백성들의 구구한 사연이 더해지다 보면 결국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독자의 마음속에는 조선의 힘겨운 상황이 절로 그려진다.
또한 이 작품은 조선 시대 신분제 사회의 맹점을 비판한다. 주인공 막새는 부모를 모두 잃고 양인에서 노비로 전락한다. 명수는 아버지가 양반이었지만 어머니는 노비였기 때문에 노비가 되었다. 신분의 굴레에 갇힌 이들은 꿈을 펼칠 수도 없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항변하지 못한다. 그래서 노비 신분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막새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향한다. 면천이 되면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한 채.
막새는 처마 끝에 놓는 기와를 뜻한다. 그렇기에 막새가 없으면 지붕이 완성되지 않는다. 안선모 작가는 고아 소년이자 노비인 주인공에게 막새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막새처럼 꼭 필요한 존재로 세상에 거듭나기를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품의 마지막, 막새는 자신의 꿈보다 대의를 위한 선택을 한다. 어린아이 막새에서 청소년 막새로 훌쩍 발돋움하는 순간이다. 전쟁 통에도 우정은 깊어지고 희망은 피어난다. 우정과 희망을 딛고 순박하고 호기심 많던 막새는 성장의 길로 들어선다.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밝고 긍정적인 막새가 그 성정 그대로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응원하게 된다.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 민초들의 삶을 뜨겁게 추적한 작가의 집념은 그래서 이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간 작은 물줄기들의 목소리가 책장을 덮은 뒤에도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그 처마 끝에 놓는 기와, 막새 말하는 거죠?”
“그래, 그 처마 끝 기왓장 맞다.”
“그런데 왜 막새라고 지었어요?”
“지붕 위에 아무리 많은 기와가 있다고 해도 막새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라는 의미지.”
“쳇, 정말 그런 뜻으로 지은 것 맞아요? 노비 이름은 그냥 눈에 띄는 대로 아무렇게나 짓잖아요. 지붕 위 막새가 눈에 띄어서 그렇게 지었으면서.”
모린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막새의 손에 쥐여 주었다. 막새의 가슴이 널뛰기하듯 또다시 쿵덕거렸다.
“교역소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꽤 많지만 이게 너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서 사 왔어.”
모린이 막새의 손에 쥐여 준 건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말 두 마리였다.
“교역소에서 만난 네 또래 여진족 아이가 깎아 만든 말이야. 그 애는 이걸 팔아서 먹고사나 보더라. 작고 가냘프지만 강인해 보였어. 그 아이를 보는데 네가 생각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