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무대 밖으로 흘러나온 대화들, 무대와 삶을 이어 주는 질문들
배우, 연출가, 무대감독, 수어통역사, 관객까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무대를 살아 내는
창작자 스물한 명의 예술과 노동, 신념의 기록『무엇을, 어떻게, 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한국 공연 예술의 전환기를 통과하며 마주한 무대 위와 아래의 사람들을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코로나 팬데믹, 연극계 미투, 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진 사회적 격변 속에서 예술가들은 묻는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질문은 무대 밖의 우리에게도 닿는다.
“왜 예술의 값을 책정하는 일은 이렇게 어려울까.”
“배우는 연기로 말한다면, 관객은 무엇으로 말할까.”
“예술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 할까,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할까.”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한 배우 성수연은 현장에 몸담은 예술가이자 동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전하는 기록자로서 동시대를 증언한다. 그가 만난 사람은 무대 위 자리를 구성하는 배우와 연출가뿐 아니라 무대감독, 관객, 수어통역사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을 지탱하는 이들이다.
모든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연재한 웹진 『연극in』 인터뷰를 바탕으로 2025년 1월, 혼란한 시기에 다시 만나 근황과 변화된 사유를 나누었다. 단행본에서는 두 차례의 인터뷰를 모두 담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창작을 둘러싼 각자의 시간이 어떻게 새로 쓰이고 있는지를 포착하고, 예술가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하고 이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에는 최대 4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자리한다. 기록이 쌓이는 동안, 예술의 자리 또한 살아 움직인다. 지원금 구조, 공연장의 생태, 관객의 태도… 『무엇을, 어떻게, 왜』는 이 변화의 단면을 붙잡아 시대의 증언으로 남긴다.
사진작가 김신중의 작업과, 성수연이 덧붙인 프롤로그·에필로그가 더해져 각 인터뷰는 한 편의 단막극처럼 펼쳐진다. 조명과 숨소리, 여운이 느껴지는 페이지들 속에서 우리는 연극의 현장을 넘어 퀴어, 페미니즘, 장애, 기후변화 등 동시대의 물음을 마주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왜』는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난다. 허공에 던져진 질문에 누구도 대신 답해 주지 않지만, 그 여백 속에서 새로운 질문이 일렁이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 시대의 창작자들과 함께, 그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우리의 삶은 지금, 어떤 무대 위에 서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왜
우리를 무대로 이끄는 물음들『무엇을, 어떻게, 왜』는 배우이자 창작자 성수연이 지난 몇 해 동안 한국 공연 예술이 통과한 급격한 전환기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팬데믹과 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무대를 붙잡아 온 창작자들은 어느 순간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이 어디서 비롯되고 어떻게 변화하며 어떤 책임을 품게 되는지를, 현장을 살아 낸 사람들의 언어 그대로 담아낸다. 단순한 인터뷰집을 넘어, 예술이 작동하는 조건과 생태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보여 주는 동시대의 증언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21~2024년 웹진 『연극in』에 실린 대화를 바탕으로, 2025년 초 다시 만나 진행한 두 번째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여러 해에 걸쳐 쌓인 시간의 결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번져 나오며, 한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흔들리고 갱신되는지 또렷하게 드러난다. 배우와 연출가뿐 아니라 무대감독, 수어통역사, 관객 등 무대를 지탱하는 다양한 자리를 담아낸 점도 이 책만의 폭과 깊이를 만든다. 현장의 공기를 섬세하게 담은 사진작가 김신중의 이미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더해진 인터뷰들은 한 편의 단막극처럼 흘러가며 독자는 페이지마다 호흡과 조명을 느끼듯 각자의 무대를 마주하게 된다.
시간은 이 책의 중요한 구조이자 질감이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기마다 창작자들은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었고, 그때의 무게와 고민은 지금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이 책은 그 변화의 궤적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포착한다. 창작자가 어느 위치에 서 있었고, 무엇을 향해 걸어가려 했는지, 한 시기의 연극계가 품은 집단적 풍경과, 각자가 걸어가는 속도의 차이가 지형도처럼 드러난다. 독자는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며, 한 인물이 방향성을 찾아가는 순간들, 때론 미세하게 흔들리고 과감하게 돌파하기도 하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인터뷰의 형식 또한 이 책에서 새로운 색을 띤다. 질문과 답변의 도식에서 벗어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서로에게 응답 없는 질문을 건넨다. 문장 사이사이에 잠긴 정적, 흔들리는 공기의 결은 지면에 남지 않지만, 질문이 질문을 부르는 뜨거움과 살아 있음은 또렷하게 스며 있다. 질문이라는 행위 자체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이 책은 그 조용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는가
타인의 시간을 기꺼이 기다리고,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하여저자 성수연은 동시대 창작자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어떻게 작업하며, 그 일을 왜 이어 가는지 듣고자 이 프로젝트에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터뷰 속에서 그는 질문하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감각과 사유 또한 함께 드러낸다. 대화가 “아플 정도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상대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일”, 내 세계를 내어주며 “잠시 무방비해지는 일”이라는 말처럼, 그의 관심은 무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기록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책에 등장하는 스물한 명의 창작자는 저마다 다른 궤적을 따라왔지만, 예술과 삶에 대해 단단한 질문을 품는다는 점에서 한결같다. 팬데믹 속 연이은 공연 취소를 겪으며 “연극은 왜 있어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 이가 있고, 비거니즘, 퀴어,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토대로 무대에서 할 수 있는 말을 고민하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게 하는 연기’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또 다른 이는 관객으로서 무엇으로 말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각 인터뷰에서는 한 사람이 작업 세계를 어떻게 구성해 왔는지, 특정한 선택과 오랜 집요함이 어떤 장면을 만들어 왔는지 또렷하게 드러난다. 조심스럽지만 강렬한 고백부터 장광설까지, 이들의 목소리는 제각각의 속도와 리듬으로 이어진다.
사진 작업을 맡은 김신중은 음악과 공연 현장을 오가며 인물의 호흡을 포착해 왔다. 그의 렌즈는 인터뷰 문장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온도, 말과 말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여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각 장을 살아 있는 장면으로 일으켜 세운다. 창작자의 얼굴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마주하도록 돕는 그의 사진은, 이 책에서 인터뷰와 함께 숨 쉬는 또 하나의 대화다.
예술가들의 질문은 결국 무대 밖을 사는 우리의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퀴어, 페미니즘, 접근성, 기후변화 등 동시대의 물음들은 이들의 경험과 고민을 통해 새로운 경계로 확장된다. 『무엇을, 어떻게, 왜』는 경계를 허문 그 자리에서 질문이 새롭게 피어오르는 여백을 건네며, 우리 각자가 서 있는 무대를 천천히 돌아보게 한다.

박용우_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땐 악역을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거의 안 해 봤죠. 주로 굉장히 평범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그게 콤플렉스일 때도 있었어요. 배우로서 너무 모범생, 바른 청년 이미지인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땐 평범한 것은 매력이 없다고도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평범함도 매력일 수 있고,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다행히 이후에는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해 보게 됐고, 악역도 해 봤어요. 그러다 이번에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하며, 악역 혹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인간들의 매력과 존재감만이 관객을 사로잡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아주 선한 인물의 선함 또한 엄청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이전엔 어떤 개성이나 강렬함이 있어야 관객들의 시선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은 사실 다 알아본다는 것을 느꼈어요.
(박용우|언제든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면)
성수연_이 만남을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냥 ‘이반지하와의 대화 기록’으로 할지, 현대미술가, 작가, 음악가, 다매체 예술가 같은 역할들을 다 나열할지.
이반지하_그렇게 나열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더라고요(웃음). 시대별로 혹은 정권별로 예술계에서 많이 쓰는 용어가 있는데, 박근혜 정부 땐 ‘융복합’이었어요. 그때 모든 지원 사업에서 융복합 이야기를 하는데, ‘진짜 다 하는 융복합 예술가’는 좋아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더라고요. 요즘은 보통 현대미술가, 작가 정도로 말해요. 아주 정직하게는, 저는 제가 장르라고 생각해요. (중략)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는 방식은 자본주의적 속도로 보면 어리석고 오래 걸리는 방식이지만, 저는 일부러 계속 그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퀴어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제가 한마디로 정리해서 설명해 주길 원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계속 복잡하게, 천천히 습자지에 물들이듯 얘기해요. 사실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요. 사람들은 정답을 원하는데. “트랜스가 뭐야? 남자에서 여자가 되는 거야?” 이럴 때, “응. 그런 거야.” 하면 쉽겠죠. 성별에 대한 기존 관념이 어쩌고저쩌고하면 듣는 사람이 너무 피곤하잖아요. 그러니 유통이 더딜 수밖에 없죠.
(이반지하|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