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관계를 연구하는 ‘회사원 인류학자’ 알렉스 정은 지난 2년간 273명을 인터뷰해 우리 시대 관계의 지형을 네 가지 페르소나로 분류했다. 21세기 제인 에어, MZ 개츠비, 골방의 파수꾼, 생계형 테나르디에라는 이름 아래, 고전 문학의 인물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친밀성과 거리, 욕망과 계산을 드러내는 관계의 캐리커처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은 1인 가구와 온라인 환경을 중심으로 변화한 관계의 속도와 방식, 매력 자본과 유사성이 관계의 양과 질을 어떻게 가르는지를 분석한다.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과 AI까지 확장된 친밀성의 풍경 속에서, 관계가 곧 삶이 된 시대에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출판사 리뷰
21세기 제인 에어, MZ 개츠비
골방의 파수꾼, 생계형 테나르디에
― ‘회사원 인류학자’가 발굴한
우리 시대 관계에 관한 가장 내밀한 초상
“나는 지난 2년간 관계를 주제로 273명을 인터뷰했다. 이들과의 대화를 토대로, 관계의 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21세기 제인 에어, MZ 개츠비, 골방의 파수꾼, 생계형 테나르디에. 이들은 우리가 많이 접한 책과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페르소나이다.
즉 네 가지 분류는 관계의 보편적이고 특수한 양상을 토대로 그린 캐리커처다.
이를 통해 우리 시대 관계의 거친 뿌리부터 나뭇잎의 세밀한 양상까지 담았다.”_‘프롤로그’에서
1. 회사원 인류학자, 우리 시대 관계 지형을 탐험하다
― 21세기 제인 에어, MZ 개츠비, 골방의 파수꾼, 생계형 테르디에로 살아간다는 것
알렉스 정, 그는 낮에는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인류학자로 변신한다. 우리 시대 관계 지형의 내밀한 지층을 탐구하고자 야근이 없는 날에는 거의 매일 밤마다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이 책 《페르소나 인터뷰》는 그렇게 지난 2년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도권 1인 가구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쓰여졌다. 이들과의 대화를 토대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관계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21세기 제인 에어, MZ 개츠비, 골방의 파수꾼, 생계형 테나르디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 문학의 인물들을 페르소나로 삼아 관계 방식을 유형화한 것이다.
우선, ‘21세기 제인 에어’들은 자신의 삶도 관계도 ‘의미’로 꽉 차 있다. 시시껄렁한 인간관계에 들이는 시간과 돈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타인이란, 대부분 자신의 ‘기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존재다. 대학 때 조별 과제를 증오했으며, ‘나, 쟤랑 손절할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들은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받는 부정적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자기계발에 투자한다. 그러면서도〈비포 선 라이즈〉같은 영화를 보면서 기적 같은 ‘자만추’가 찾아오길 열망한다.
다음 관계 유형은 ‘MZ 개츠비’.《위대한 개츠비》의 21세기 버전이다. 그들은 불특정 다수의 관심과 사랑을 끝도 없이 갈구한다. 소설 속 개츠비가 그랬듯이, 화려한 파티를 열고, 물주 노릇을 자처한다. 공짜 밥과 술이 인기를 슈퍼챗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의 개츠비는 소셜 미디어를 자신의 인기를 채집하는 터전으로 삼는다. 그들에게 일단 관계는 양이다. 십년지기 친구라든지, 관계의 진정성, 이런 것들에는 전혀 가치를 못 느낀다.
세 번째 유형은 ‘골방의 파수꾼’이다. 그들에게 관계 자체는 소음이다. 자유에 대한 걸림돌이다. 그들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언제 침입할지 모를 세상을 단단히 차단한다. 편의점에서 사 온 술과 안주를 깔아 놓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시청하면서 인생을 배운다. 그들에게 술은 조용하고 절대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친구다. 때론 나무위키를 둘러보면서 지식 공유를 실천하기도 한다. 소위 ‘방구석 전문가’들이 많다.
마지막 관계 유형은 생계형 테나르디에다. 소설《레 미제라블》의 테나르디에 부부가 이들의 페르소나다. 이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체리피킹’이 주특기다. 그들에게 관계는 철저히 생계 수단이자 삶의 밑천이다. 그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 이를테면, 명예나 기품, 에티켓, 양심, 철학과 같은 것들을 극히 싫어한다. 이들은 대개 ‘프레너미(frenemy)’인 경우가 많다. 앞에서는 둘도 없는 친구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언제든 뒤통수를 치고 등 뒤에 비수를 꽂을 생각으로 가득하다.
어떤가? 이 네 가지 관계 유형을 보면서 주위 누군가의 얼굴이 문득 떠오르지 않는가. 급격히 지각 변동 중인 오늘날 친밀성의 영역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지, 그 실마리를 《페르소나 인터뷰》에서 잡아챌 수 있을 것이다.
2. 오로지 온라인에서 관계를 맺고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
― 나의 하루를 전시하고, 남의 인생을 구경하며 삶의 빈 곳을 채운다
오늘날 관계 양상과 지형을 가장 크게 바꾼 토대는 무엇인가? 바로 ‘온라인’이다. 우선은 온라인은 다방면에서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를 매개해주는 역할을 한다. 각종 데이팅앱이 대표적이지만, 만남 주선이 주목적이 아닌 플랫폼도 관계 형성 기능을 할 정도로 그 영향이 광범위하다. 가령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익명 게시판 서비스 B. 이 서비스는 원래 해당 회사에 다닌다고 인증받은 회원들이 뒷이야기를 하는 직장인 버전의 ‘대나무 숲’이다. 하지만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한 직장인들의 ‘핑크빛 오작교’가 된 지 오래다. 사회적 지위나 소득을 대충 가늠할 수 있어서, 직장인들 사이에는 유사 결혼 정보 서비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온라인을 매개로 한 만남은 ‘관계의 빠른 회전율’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대해선 다소 엇갈린 반응들이 상존한다. 이 자체를 긍정하는 이들은 “누가 맥도날드 가서 스테이크 기대하나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거죠.”라며 되려 반문한다. 또 다른 이는 “온라인에서의 즉석 만남에 길들면, 오프라인에서 장기적인 관계나 호흡이 금방 지겨워져요, 재미가 없어지죠.”라고 답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관계를 숙성시키는데 필요한 참을성이나 인내심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 관계 전반에 미친 온라인의 영향은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라인의 인연을 온라인에서만 한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를 의아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오히려 “만나서 딱히 무엇을 더 하려고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굳이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호감을 주는 누군가의 행동과 모습, 그들이 남기는 콘텐츠를 지켜보는 소위 ‘관찰잼’이 쏠쏠하다고. 또 어떤 이들은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같은 정당을 지지하고 시사적인 흐름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나누면서 위안을 얻는다.
그중 몇몇은 오프라인 관계에서는 일절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온라인에서는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낸다. 그들에게, 온라인은 ‘자기표현의 캔버스’다. 여기서 보이는 모습은 철저히 기획된 장면들의 연출이다. 나의 정체성을 맘껏 꾸밀 수 있는 무대인 것이다. 이들에게 온라인은 오프라인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재와 같다. 하루 평균 온라인에 5시간 이상 접속한다는 30대 직장인 M은 온라인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요. 그리고 이렇게 분리되니 오프라인에서 친구가 없거나 관계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덜 해요.” 급기야 AI의 등장으로 온라인 챗봇과 교감을 나누는 사람도 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한없이 서투른 감정을 AI에게는 쉽게 표현한다. 내 말을 무한 긍정으로 경청해주는 챗GPT를 삶의 동반자로 여긴다.
이 책 《페르소나 인터뷰》에서 잘 보여주듯, 온라인은 우리 시대 관계 전반을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오프라인 만남의 접점을 넘어 관계 전반의 성격과 욕망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인간의 관계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 중이다.
3. 매력 자본과 삶의 유사성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망의 양과 질
― 한 사람의 관계란 그의 시간과 공간, IT 기술의 역량까지 더해진 총체적 산물
앞서 말했던 네 가지 관계 유형을 아울러서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매력 자본’이다. 세부 요소에는 외모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 재력, 사회적 지위와 권력, 명성이나 권위 등이 있다. 어떤 매력 자본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에 따라, 관계의 양뿐만 아니라 관계의 양상도 달라진다.
가령 MZ 개츠비의 경우는 돈이라는 매력 자본을 다량 보유한 사람이다. 이들의 주된 관계는 돈으로 샀다고 해도 무방하다. 즉 부유함을 바탕으로, 재력이라는 엄청난 힘을 수단으로 관계를 형성한다. 가난한 개츠비는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력의 등락은 관계의 등락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기존에 없던 자본을 획득하는 경우, 관계의 양상이 확 바뀌기도 한다. 이를테면, 미진한 외모 자본을 업그레이드 한 21세기 제인 에어의 경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지금까지 안 하고, 많은 시간을 낭비했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신분 상승’을 경험하면서, 인생이 장밋빛으로 바뀌었단다. 주위에서 쏟아지는 구애의 시선에 온몸이 따끔거릴 정도라고.
그렇다면, 매력 자본이 많으면 많을수록, 관계의 만족도는 올라가는가?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 매력 자본과 관계의 만족도는 서로 비례하지는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양한 매력 자본을 골고루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인간관계의 진정성이나 방향성, 질적인 측면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았다. 반면 외모나 돈과 같은 매력 자본의 한 측면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행복하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속된 말로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도 있듯이,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하는 가장 큰 변수는 ‘유사성’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별도의 커다란 노력 없이 친해진다. 행위예술가와 투자은행 전문가가 서로 친해질 수 있을까? 어쩌다 한번은 식사 자리나 술자리에서 만날 수 있지만, 지속적인 관계 유지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계일수록 비슷한 생활환경, 비슷한 사고방식, 비슷한 경제적 위치를 전제한다.
이처럼 관계는 여러 변수의 종합적인 결과물이다. 한 사람의 관계는 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최근 IT 기술의 역량까지 더해진 총체적 산물인 것이다. 그러니 일종의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슨 목적과 이유로, 또 어떠한 방법으로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서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 달라진다. 관계가 곧 삶이고 삶이 곧 관계다. 《페르소나 인터뷰》에는 바로 이런 우리 시대 관계에 대한 숱한 고민과 지혜가 담긴 목소리들로 시끌벅적하다.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삶과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수많은 통찰을 가져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자와의 인터뷰]
Q1.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인가요?
A. 이 책은 “우리는 왜 이렇게 관계에서 지치고, 외로워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람이 변해서라기보다, 관계를 둘러싼 조건과 구조가 너무 빨리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관계의 명징한 모습을 글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Q2. 이 책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핵심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지표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돈, 외모, 학벌, 직업, 팔로워 수, 관계의 숫자까지, 관계를 설명하는 대상은 무수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량적, 정성적 대상들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특정 유형의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매일 직면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Q3. ‘관계 양극화’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이 양극화는 왜 지금 더 심해졌다고 보시나요?
A. 관계 역시 자원처럼 분배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시간, 돈, 에너지, 매력 자본의 격차가 이제는 관계의 양과 질까지 결정합니다. 누군가는 너무 많은 관계로 지치고, 누군가는 아예 관계 바깥으로 밀려납니다. 이 간극이 지금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지나친 간극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4. 넷플릭스, 유튜브, 데이팅앱, AI 같은 기술이 관계를 ‘대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현상을 위기라고 보시나요, 진화라고 보시나요?
A. 저는 이를 도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적응이라고 봅니다. 관계가 너무 비싸지고, 어렵고, 그로 인한 상처가 커지다 보니 사람들은 덜 위험한 방식으로 연결을 선택합니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왜 그곳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피하여 찾은 대상이 실제 우리의 관계를 완벽하게 대체할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Q5. 책 속 페르소나 중에서 저자 본인과 가장 닮았다고 느낀 인물이 있나요?
A. 거의 모든 인물 안에 제 모습이 조금씩 있습니다. 관계를 계산해 본 적도 있고,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대신 살아본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타인을 해부한 책이 아니라, 저 자신을 포함한 동시대에 대한 자화상에 가깝습니다.
Q6. 이 책을 읽고 “정말 내 이야기 같다”고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그 반응은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위로보다는 정직한 관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잘못 읽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이게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느낄법한 내용이다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Q7. 이 책은 관계를 ‘지켜야 하는 도덕이나 규범’이 아니라 ‘조건과 구조’의 문제로 바라봅니다. 왜 그런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셨나요?
A. 관계를 도덕의 문제로만 설명하면, 항상 누군가는 실패자가 됩니다. 하지만 조건과 구조를 함께 보지 않으면 지금 벌어지는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관계 양극화 같은 개념도 관계를 하나의 삶의 조건이자 사회적 구조의 일환이라고 보기 때문에 등장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가 옳은가”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묻고 싶었습니다.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보다는 상황과 배경, 맥락을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Q8. 그런데도, 이 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희망인 것 같습니다. 저자가 끝까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일까요?
A. 관계는 고정된 운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지금의 선택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작지만 의식적인 선택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9. 이 책을 덮은 독자에게 하나만 남았으면 하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나는 지금 누구와 어떤 조건에서, 어떤 관계를 살고 있는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관계는 나를 살게 하는가, 소모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나의 삶과 관계를 잠깐 반추하면서 잠시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1세기 제인 에어, 그들은 내심 로맨스를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로맨스를 회피한다. 왜일까? 로맨스 대상은 너무 직접적이고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까이 오지마~”를 연발하며 애써 외면한다. 그들은 대신 잔잔하고 아름다운 〈비포 선 라이즈〉 같은 영화를 열 번 보면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의 느낌을 상상한다. 직접적인 구체성, 과도한 클로즈업을 두려워한다. 대신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관계를 책이나 영화로 배운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의 마인드로 독학에 매진한다. 아름답고 추상적인 말만 가득할 뿐 딱히 구체적인 실체는 없다.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와 인생을 공부한다. 이를테면, 위키피디아로 사랑을 배웠다면 어떨까? 나무위키로 인생을 배웠다면 어떨까?
그들은 인간관계에 들이는 시간과 돈을 대단히 아까워 한다. 의미 없는 모임에 나가서 시간 낭비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다소 천하다고 생각한다. 행여나 이들은 원치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자리에 나가서 힘겹게 귀가하면, “기 빨렸다”면서 다시는 그런 자리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만큼 부정적인 에너지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자기계발에 매진한다. 관계나 타인으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발전에 투자한다. 때로는 특정한 주제를 깊게 파기도 한다. 미움받아도 괜찮고, 이상한 사람과 말은 섞지 말아야 하며, 관계보다는 나의 마음속 목소리를 들으라 한다. ‘Follow your heart.’ 제인 에어들의 첫번째 경구다.
그는 자신을 ‘진짜 한국 남자’라고 소개한다. 아니, 세상에 가짜 한국 남자도 있나? 그는 언뜻 미국 교포 같은 분위기가 난다. 탈-제인 에어를 선언한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33세 한석준은 거대한 포부부터 읊는다. 그는 한국 남성의 매력을 알려주고 싶단다, 전 세계 여성들에게.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는 자신을 진정한 한국 남성의 매력을 가진 ‘진짜(original)’라고 강조한다. 국가대표를 자처한다. 자랑스러운 Made in Korea이다. 그는 이태원과 해방촌, 녹사평을 돌아다니며 외국인 여성을 만난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여성은 교포 여성이다. 그녀들은 한석준을 가리켜, 전형적인 한국인의 매력과 세련된 국제 감각을 함께 갖췄다며 좋아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알렉스 정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인류학을 공부했다. 저서로는 《소비자와 기업의 행복한 연결, ESG 커뮤니케이션》(공저, 2023),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까지》 (2021)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특수한 ‘관계’를 말하다
감사의 글
1장 21세기 제인 에어
1. 21세기 제인 에어, 그들은 누구인가?
2. 협업과 조화는 에너지 낭비 · 생산성의 걸림돌
3. 높은 수준의 아비투스, 놓치지 않을 거예요
4. 인생은 밸런스 게임이 아니다
2장 MZ 개츠비
1. MZ 개츠비, 그들은 누구인가?
2. 제발 우러러 봐줄래, 나의 세계를
3. 거침없는 F워드로 완성되는 고졸 성공신화
4. 공짜 술과 밥은 관계를 위한 슈퍼챗
5. 빼앗긴 영광은 달콤한 과거만큼 쓰다
3장 골방의 파수꾼
1. 골방의 파수꾼, 그들은 누구인가?
2. 온라인과 전기 없인 못 살아
3. ‘방구석 전문가들’의 기쁨과 슬픔
4. 관계는 불행의 씨앗, 불필요한 책임의 시작
4장 생계형 테나르디에
1. 생계형 테나르디에, 그들은 누구인가?
2. 너희는 내 돈벌이의 가장 든든한 밑천
3.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스피커들
4.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위험하다
5장 나는 온라인에서 의미를 찾는다
1. 온라인에서 관계, 기회의 땅인가? 거대한 실망인가?
2. 나는 소망한다, 캡틴 아메리카를
3. 나의 팬들을 위한 독백 서비스
4. 매일 그의 하루는 기획 의도대로 전시된다
5. 남의 인생을 구경하면서, 내 삶의 빈 곳을 채운다
6장 관계와 매력 자본
1. 매력 자본이란 무엇인가?
2. 얘들아, 정신과 가지 말고, 성형외과 가
7장 라이프 스타일 : 비슷한 삶, 비슷한 관계
1. 인생을 닮아가는 관계
2. 결혼 후 바뀐 나의 인간관계
3. 관계는 종합 예술이다
에필로그 관계 양극화, 그리고 양보다 질
Research summ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