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동물이 살 만한 곳이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갈비사자 바람이’를 구조한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가 만들어가는 공존의 방식“사람에게 불친절한 동물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관람의 공간에서 존중의 공간으로,
동물원이 싫은 수의사가 동물원에 남아 이룬 것들2023년 여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영상이 있었다.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실내 동물원의 좁은 공간에서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사자의 모습이었다. ‘갈비사자’로 불리던 열아홉 살의 늙은 사자는 구조되어 7년 만에 실내 동물원을 나와 흙을 밟고 바람을 쐴 수 있게 되었고, ‘바람’이라는 이름을 얻어 청주동물원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 사자를 구조한 이가 바로 김정호 수의사다.
바람이 구조 이전에도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의 구조와 치료, 멸종위기종 보존에 힘써 ‘수의사계의 이국종’이라 불린 김정호 수의사는 보호자 없는 공공 영역의 동물을 치료해주고 싶어 동물원 수의사가 되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가 입사할 당시 청주동물원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전국의 동물원 가운데 호랑이사가 가장 좁았고, 새 먹이 주기 체험이 있었고, 방문객 수를 늘리기 위해 희귀동물을 들여왔다. 동물원에 살던 염소가 새끼를 낳아 개체수가 늘면 나이 든 염소는 팔려갔다. 부실한 진료 환경, 관람자의 요구에 맞춘 프로그램들은 동물들을 힘들게 했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동물들이 사람의 잘못으로 고통스럽게 살다가 일찍 죽는 게 아닌가, 늘 미안했다. 동물원이 싫었고,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때문에 힘들어진 동물들은 사람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당장 동물원을 없앨 수 없다면 갈 곳 없는 동물들의 보호소가 되기를, 구조된 야생동물의 자연 복귀를 돕는 치료소가 되기를 바랐다. 진료사육팀장이 되면서 김정호 수의사는 사람에게 불친절한 동물원, 동물을 위한 동물원을 만들기로 했다.
2018년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구조한 웅담 채취용 사육곰 세 마리를 데려오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시멘트투성이였던 곰사에 흙을 깔고, 여우사에는 풀이 무성하도록 내버려뒀다. 물새장은 내부 관람로를 없앴다. 외래동물이 자연 감소하면 같은 종을 데려오는 대신 그 공간을 허물어 남아 있는 동물이 더 넓게 살도록 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에 청주동물원은 동물복지에 앞장서는 동물원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2024년 국내 1호 거점동물원 선정 등의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졌다. 동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동물의 삶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에 주목하자, 세상이 달라졌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동물원 동물부터 멸종위기 야생동물까지,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애쓰는 수의사의 간절한 기록전국의 동물원에는 수만 마리의 동물이 살고 있다. 지금 그 동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방치된 고통을 줄여주는 일, 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 덜 불편하게 하는 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게 동물을 살펴봐달라는 연락이 오면 마다하지 않고 가는 이유다. (133쪽)
김정호 수의사의 진료는 동물원 동물에 그치지 않는다. 웅담 채취용 사육곰을 구조한 뒤에는 다른 곰 농장을 먼저 찾아가 갇혀 있는 곰들의 상태를 묻고, 바람이가 살던 실내 동물원에 남겨진 동물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진료 봉사에 나서기도 한다. 거점동물원 수의사로서 상주 수의사가 없는 충청·강원 지역 동물원의 동물과 인근 시골 마을의 동물 검진은 물론 황새복원 사업을 담당하는 예산황새공원과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의 황새까지 모두 그의 진료 영역에 있다. 전국의 동물들을 진료하며 고단함을 자처하는 이유는 단 하나, 동물들이 살아 있는 동안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야생동물들은 질병과 부상이 야생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아픈 곳을 숨긴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저자는 그런 동물들의 고통을 미리 알아채고 제때 치료해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수의사의 일이라 여긴다. 생물학 실험실의 냉동고에서 살아남은 거북이부터 좁디좁은 실내 동물원의 사자와 호랑이, 식당의 구경거리로 살아온 사육곰까지, 다양한 동물들을 구조하고 치료한 그간의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김정호 수의사는 많은 동물을 만나고 치료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면서도 “타자로서 동물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느끼는지 감히 안다고 할 수 없어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동물을 환자로만 대하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무덤덤한 그의 글에는 동물을 향한 숨길 수 없는 다정함, 조금이라도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동물을 위해 하는 일이라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일이다”
사자에게 햇빛과 바람을, 올빼미에게 고요의 순간을
동물이 평범한 하루를 보낼 때, 사람도 평온하다“사람 살기도 힘든데 무슨 동물까지 챙기느냐?”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동물이 살 만하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물음에 부정적으로 대답하기는 누구든 힘들 것이다. 동물을 대하는 마음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91쪽)
김정호 수의사는 시골 마을 동물 의료봉사를 가던 날, 불임수술(중성화수술)을 하기 위해 포획 틀에 넣어둔 고양이들이 안쓰러워 꺼내주고 싶다는 마을 어르신들을 보며 그 마을에 살고 싶어졌다고 회고한다. 동물을 다정히 대하는 동네, 우연히 들어온 동물에게 자리를 내주는 마을이라면 분명 낯선 이방인에게도 손을 내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영구 장애를 얻은 야생동물들을 청주동물원에서 보호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장애인 방문객, 열악한 환경의 개인 동물원에서 나이 든 동물을 데려왔다는 기사에는 응원 댓글을 달아주는 노령층 독자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보며 소외된 동물의 보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확장될 것이라 믿고, 동물을 위해 하는 일이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일임을 확신한다.
동물도 사람도 모두 행복한 세상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김정호 수의사는 동물원이 야생동물 서식지가 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갈 곳 없는 동물들의 안식처인 생츄어리가 되기를 꿈꾸기도 한다, 이런 상상 끝에 결국 김정호 수의사가 바라는 것은 동물이 자기만의 일상을 오롯이 누리며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세상이다. 저자는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물의 안부를 묻고 동물을 이해하며 끝까지 책임지는 돌봄을 실천하는 중이다. 그 돌봄이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많은 애를 써야 하고, 기쁨은 잠깐이며, 오래 슬프고 종종 그립다”고 토로하면서도 이 또한 수의사의 일이라 받아들이는 김정호 수의사의 태도에서, 우리는 세상 모든 존재가 편안함에 이르길 바라는 그의 깊은 진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전시 동물이 나이 들거나 장애를 갖게 되면 방문객에게 잘 보이는 앞쪽 방사장이 아닌, 그보다 더 좁은 뒤쪽 공간에 갇혀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동물원에는 어리고 건강한 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사람처럼, 생명이라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를 거친다. 우리는 어쩌면 암묵적으로 동물들의 후반부 삶, 아프고 나이 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모른 체해왔는지도 모른다.
- <프롤로그>
사육곰 농장의 반이와 달이가 온 이듬해, 우리 동물원은 곰사 개선 비용으로 국비가 포함된 2억 원을 받았다. 입사 이래 처음 받는 큰돈이었다. 시멘트 바닥에 누워만 있던 동물원 곰들의 환경도 덕분에 좋아졌다. 이후 호랑이, 여우, 산양, 수달, 늑대, 삵 등 야생동물 방사 훈련장을 갖추게 되었고, 실내 동물원에 살던 사자 바람이와 독수리 하늘이를 데려올 수 있게 한 보호시설들이 들어섰다. 그 시작은 반이와 달이가 우리 동물원에 온 일이었다. 사람들은 청주동물원이 곰들을 구조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곰들이 청주동물원을 구한 것이다.
- <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케이지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