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토마스 만 단편 전집 시리즈 3권. 열차 사고, 야페와 도 에스코바르가 치고받은 사연,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 수록되어 있다.
출판사 리뷰
작품 해설
〈열차 사고〉
윤순식
한 화자가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 겪는 짧은 ‘사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화자는 여행하는 내내 열차의 흔들림과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사고가 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는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죽음이 다가온다고 상상하며, 머릿속에는 이미 큰 재난이 벌어진 듯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사고’는 단지 열차가 갑자기 멈추면서 다른 객차와 가볍게 충돌한 정도이고, 승객들은 놀라기는 하지만 금세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평온한 분위기로 돌아간다.
〈열차 사고〉는 제목과 달리 비극적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사고 가능성에 과도하게 불안해하는 인간 심리를 다루며 풍자하는 경쾌한 단편이다. 화자는 사고를 문학적으로 상상하고, 비장한 감정에 몰입하고, 자신의 죽음을 미리 연출하지만, 정작 실제 사고는 미미한 충돌에 불과하여 승객들은 곧 일상적인 대화로 돌아간다. 이 대비는 인간이 현실 그 자체보다 자기 감정과 상상이 만들어낸 세계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토마스 만은 이러한 과장된 불안과 자기 연민을 가볍게 비틀어, 죽음을 둘러싼 ‘문학적 포즈’와 예술가적 감수성의 과잉을 희화화한다. 화자의 극도로 예민한 반응과 사고의 실상 사이의 간극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의 상상과 공포에 사로잡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거대한 감정적 동요도 결국은 일상의 소음 속으로 흩어진다는 인간적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결국 이 작품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인식의 왜곡과 인간 마음의 연약함을 주제로 한 작은 심리극이자 유머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토마스 만의 전체 작품들과 연관 짓는다면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기술 문명 속 현대인의 과민성, 충격, 신경적 반응성이다. 토마스 만은 부르주아적 삶의 나약함과 신경질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내면에서는 병들어 있는 인간의 초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1924년 발표한 작품, 《마의 산》의 병·건강·문명 비판을 준비하는 문제의식과도 연결된다. 〈열차 사고〉는 그래서 단순한 사고담이 아니라 근대적 주체의 병리학적 초상화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병이 아니라 병에 대한 공포가 인간을 병들게 한다”는 통찰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야페와 도 에스코바르가 치고받은 사연>
김륜옥
이 단편은 원래 빈의 유력한 일간지 <신자유 신문Neue Freie Presse>의 1910년 크리스마스 특집을 위한 주문에 따라 그해 11월에 집필되었다. 하지만 실제 첫 발표는 1911년 2월에 발간된 뮌헨의 <남독일 월간지Sddeutsche Monatshefte>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1914년에 베를린에서 출판된 토마스 만의 첫 단편집 《신동. 단편집Das Wunderkind. Novellen》에 묶여 나온 바 있다. 여기에 함께 실렸던 다른 6편의 작품들은 〈신동Das Wunderkind〉, 〈산고(産苦)Schwere Stunde〉, 〈예언자의 집에서Beim Prompheten〉, 〈어떤 행복Ein Glck〉, 〈일화Anekdote〉, 〈열차 사고Das Eisenbahnunglck〉이다.
작품의 서사는, 사춘기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와 이를 지켜보는 주요 인물들의 관전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띤다. ‘사내다운’ 면모를 둘러싼 자존심에 휩쓸려 싸움을 벌이는 청소년들은 (작품명에서 언급된) 독일인 야페와 스페인인 도 에스코바르이지만, 서사의 내적 관심은 서술자 ‘나’와 그의 친구 조니로서, 이들이 실질적인 ‘주인공’인 셈이다.
지금까지 토마스 만의 전체 작품에서 문학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단편으로 남아있지만, 사실 여기서 토마스 만 문학 특유의 자전적인 핵심 요소로서의 주요 모티프와 서사적 주체, 즉 궁극적으로는 자전적 작가 토마스 만 자신의 의식과 심리가 매우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그의 전체 작품에서 가장 기본적인 바탕을 이루고 있는 동성애 모티프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생각과 갈등이 핵심적인 요소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토니오 크뢰거〉에서 주인공이 동경하던 한스 한젠은 조니로 다시 등장하고 있을뿐더러, ‘남자답지’ 못한, 혹은 ‘여자 같은’ 발레 마이스터 프랑수아 크나크는 이름까지 그대로 옮겨졌다. 또한 ‘남성적이자 여성적인’ 존재의 대명사 “아모르”로 비유되는 조니는 바로 다음 해에 발표될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미소년 타치오를 상당히 선취하고 있다. 서술자 ‘나’는 싸움의 당사자들보다 사실상 조니의 존재와 자신의 혼란스러운 성역할 의식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드러냄으로써 토마스 만의 전 작품을 이끌어가는 핵심 요소로서의 성적 갈등과 함께 그런 문제의식의 문학화를 환기시킨다.
이 작품에서 언급된 유럽의 시대적 위기 역시 상당히 현실적이다. 이 소설이 집필되고 발표되던 시기의 유럽은 곳곳에서 영토 분쟁으로 전운이 가득했다. 특히 작품이 발표되기 직전, 즉 1911년 봄에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북아프리카 모로코 남부의 항구 아가디르를 둘러싸고 일어난 분쟁이 대표적이다. 독일 소년 야페가 상대적으로 약한 체질에도 불구하고 소위 ‘북구의’ 냉정한 정신력으로 제압해 낸 도 에스코바르가 겉멋에 찬 스페인 소년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로망스어를 쓰는 남구의 라틴계 국가라는 점에서 분명 연관성이 있다. 실제로 아가디르 분쟁이 프랑스에 유리하게 마무리됨에 따라 독일 내에서 팽배하던 반 프랑스 정서는 곧 다가오는 1차 세계대전으로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단편에 내재된 복합적인 요소는 더욱 흥미롭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김현진
나르시스의 시선: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병과 죽음, 사랑을 동일한 범주로 그려낸 토마스 만의 초기 미학적 사고를 결산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에로스적 욕망은 무엇보다도 보는 행위를 통해서 생겨나고, 그것은 시각적 환상을 통해서 그려진다. 투철한 삶의 태도로 시민적 삶을 영위하며 작가로서 명성을 날려 온 중년의 남자 아셴바흐가 여행에서 마주친 한 소년에게 이끌려 순식간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그를 그처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시선의 교류이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몰락의 첫 단계부터가 산책 중 공동묘지에서 만난 한 “범상치 않은 모습의 낯선 남자”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시작된다. 이 남자는 아셴바흐에게 불현듯 여행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앞으로 이어질 사랑의 죽음의 세계로 가는 여행의 출발점이 된다. 그 낯선 남자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눈앞에는 원초적인 자연의 이미지로서 무질서와 혼란의 세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시각적 상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그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무의식적 욕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잠깐 동안 마주친 이러한 환상은 지금까지 지탱해 온 모든 삶을 무너뜨리고, 사랑과 죽음의 세계를 향해 가는 여정의 신호탄이 된다. 그것은 질서도 경계도 없고 자아와 타자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합일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가 바라본 시각적 이미지는 아직 아버지의 법을 알지 못하는 아이가 어머니와의 결합을 꿈꾸는 유아기적인 상상의 세계와도 같다.
그에게 이미 오랜 전에 잊혀졌던 그러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인물인 타치오란 소년과의 관계는 언어가 전혀 없는 완전한 시선만의 관계이다. 그러한 시선의 교류는 아셴바흐가 죽는 순간까지 이루어지는데, 여기에서 시선에 의해 야기된 에로스적 욕망은 동성애의 성격을 지닌다. 타치오가 눈길과 함께 보낸 나르시스의 미소, 즉 “자기 자신의 영상을 향해 팔을 뻗는 저 오묘하고 매혹적이며 매혹을 당한 미소”를 보았을 때 아셴바흐의 사랑은 극에 달한다. 불현듯 보게 된 시각적 환상이 아셴바흐의 에로스적 욕망을 자극했다면, 그러한 욕망은 미소년 타치오와의 이러한 시선의 관계를 통해 극단적인 상태에 이른다. 명부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자 헤르메스와도 같이, 바닷물 속을 들어가 그에게 손짓하는 타치오를 바라보며 아셴바흐는 마침내 죽음을 맞게 된다. 이처럼 시선의 교류를 통해 분출된 에로스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 주인공은 그가 그토록 투철하게 지켜온 시민적 질서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랑과 방종, 무질서, 죽음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시각적 만족으로서만 표출되지만, 주인공을 죽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이 소설에서 시선과 시각적 환상, 에로스, 동성애는 죽음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아셴바흐는 죽음과 속임수와 질병과 에로스의 도시 베네치아로부터 도주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그것은 자크 라캉이 말한 바, 거울 속에 비친 허구적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바라보고 환호하는 아이를 연상시키는 ‘상상적 주체’의 회귀로 생각할 수 있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토마스 만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평론가. 독일 북부의 뤼베크에서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기말의 암울한 데카당스 분위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일찍부터 문학,?예술,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다. 1891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보험회사에서 잠시 근무했고, 뮌헨으로 이사 가 1933년까지 살았다. 이때부터 집필 활동을 시작했고,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 등에 심취했다. 1898년 단편집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발표하고, 1901년 《부덴브로크가》를 출간하여 작가로서 자리를 잡는다. 이어 1903년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등을 집필한다. 1905년에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그해에 장녀 에리카 만을 얻는다. 1911년에는 휴양지에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서거 소식을 듣고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발표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 10월에 600쪽이 넘는 방대한 논문집 《비정치적인 사람의 관찰》을 완성하는데, 여기서 그는 세계대전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다. 그러나 차츰 이러한 경향에서 멀어져 나중에는 민주주의와 시민계급을 옹호했고, 이러한 세계관이 반영된 대작 《마의 산》을 1924년 발표, 소설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으며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1933년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난과 위대함’이라는 제목으로 국외 강연 여행 도중 히틀러의 집권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껴 귀국을 포기한다. 이후 스위스에서 《요셉과 그 형제들》을 집필하여 1943년에 4부작을 완성한다. 1936년에는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1938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보내는데, 여러 강연과 연설로 바쁜 와중에도 1947년 음악과 독일에 관한 소설이라 할 만한 《파우스트 박사》를 내놓는다. 1952년 미국에서 스위스로 거처를 옮기고 3년 후인 1955년 취리히에서 영면한다.
목차
차례
《토마스 만 단편 전집》 제3권을 펴내면서/김륜옥 7
열차 사고/윤순식 11
야페와 도 에스코바르가 치고받은 사연/김륜옥 2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김현진 59
작품 해설 201
역자 소개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