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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수레
좋은땅 | 부모님 | 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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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영국 왕 마그누스가 내각으로부터 거부권 행사와 대국민 연설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으며 시작되는 희곡이다. 허수아비 왕이 되기를 거부한 왕과 내각의 대립, 그리고 사적인 소동이 겹치며 권력과 책임, 정치의 본질이 드러난다. 상연 당시 군주제를 옹호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킬 만큼 정치적 논쟁을 촉발한 작품이다.

작가는 긴 서문을 통해 금권정치가 정치를 망친다는 점과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짚는다. 국민의 정부와 국민을 위한 정부, 그리고 국민에 의한 정부의 의미를 되묻고, 발명가의 사례를 통해 자본 권력이 공공의 가치를 어떻게 훼손하는지를 보여 준다.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현실 정치의 모순을 폭로하며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출판사 리뷰

영국 왕 마그누스는 어느 날 오전, 궁으로 찾아온 총리와 내각 장관들을 맞이한다. 이들은 왕에게 거부권을 사용하지 말고 국민을 상대로 연설하지도 말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각이 총사퇴하겠다는 최후통첩까지 내민다. 허수아비 왕 노릇이 하기 싫은 왕은 장관들과 설전 끝에 저녁까지 답하겠다고 말한다. 오후에 왕은 정부 오린시아의 방을 찾는다. 잠시 머리를 식히러 왔다가 사랑싸움이 심해지는 바람에 몸싸움까지 벌이다가 비서에게 들키고 만다. 이래저래 심사가 헝클어진 왕은 곧 내각에 뭐라고 답할까?
이 희곡이 상연되자 작가가 민주주의보다는 군주제를 옹호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작가는 오해를 바로잡고 자신의 정치관을 밝히기 위해 긴 서문을 써야 했다. 먼저 세습군주가 선출된 총리보다 자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과, 정치를 망치는 것은 금권정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어서 국민의 정부와 국민을 위한 정부는 가능하나, 국민에 의한 정부는 성인에게 선거권을 쥐여 준다고 해서 실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친구 개티가 발명한 파손 방지 기계가 ‘파손 주식회사’의 방해로 사장되는 사례를 보여 줌으로써 금권정치의 폐해를 고발한다.
결국 이 연극을 통해 작가는 좋은 정치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실 정치의 모순을 폭로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민주주의와 통치의 민낯을 드러내는 버나드 쇼의 파격 정치풍자극
국민에게 선거권을 쥐여 준다고 해서 대의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버나드 쇼의 《사과수레》는 민주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풍자희곡이다. 작품은 국왕과 내각의 갈등이라는 설정을 통해 ‘국민에 의한 정부’라는 이상이 실제 정치에서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쇼는 군주제를 옹호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선거, 여론, 자본, 언론이 결합할 때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고 변질되는지를 극적인 대화 속에 녹여 냈다.

이 작품은 1929년 초연되었을 때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작가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긴 서문을 덧붙여야 했다. 이는 《사과수레》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텍스트임을 보여 준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 확고한 신념을 지닌 듯 보이지만, 그 신념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권력 앞에서 타협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과 독자는 ‘현명한 통치’란 무엇인지, 그리고 정치적 책임은 어디에 귀속되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이 작품을 쓰던 1928년 말 이전, 버나드 쇼는 ‘지적인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안내서(1928년)’를 썼으며 노벨 문학상(1925년)을 받았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데다 ‘성 조앤(1923년)’ 이후 희곡을 쓰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그가 창작력을 잃은 건 아닌지를 의심하던 때였다. 그런 차에, 쇼의 작품 ‘므두셀라로 돌아가라(1923년)’를 처음으로 연출한 연극 기업인인 배리 잭슨 경으로부터 제안이 왔다. 다음 해인 1929년에 몰번에서 쇼의 연극을 드높이기 위한 연극페스티벌을 시작하겠다면서, 새 작품을 써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몰번은 런던에서 서북서쪽으로 2시간, 버밍엄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구릉지대인 몰번 언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쇼 부부는 몇 년 전부터 몰번의 단골 방문객이었다. 매년 봄이면 이곳을 찾아 온천을 즐기고 휴식을 취했다. 조용한 온천 마을의 분위기가 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즈음 쇼에게 그곳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주기적으로 찾아가 쉬던 마을에서 자신의 연극을 해마다 상연하기 위한 축제를 시작하겠다는데, 창작력이 아직 메마르지 않은 작가에게 이보다 더 솔깃한 제안이 있을까?
결국 그는 6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연극이 먼 미래의 일을 담았다는 언질이 주어지지만, 영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뻔히 드러난 작품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차라리 군주제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담았으니, 그 군주가 능력과 교양을 갖추고 자비롭기까지 하다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군주는 도대체 어떻게 길러낸단 말인가? 쇼가 가입한 페이비언 협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노력으로 여성 참정권 법이 통과된 게 지난 7월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모든 성인이 참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겨우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영국 여성들이 이 투표권을 처음으로 행사하려면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벌써 민주주의의 한계를 봤다고 했으니, 진단이 일러도 너무 이르다는 비난이 쏟아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아직 민주주의라는 말도 들어 보지 못한 인류 대다수의 처지에서 보자면,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고갱이인 표현의 자유란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작가가 할 말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의 쇼 선생이 어떤 분인가? 그로선 눈에 뻔히 보이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양원제라고 하지만 상원은 귀족의 집단이니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가진 실권도 별것 없다. 산업혁명 이후 민간에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바람에 귀족이든 평민이든 유능한 인재는 정치계에 입문하려 들지를 않는다. 실권을 가진 하원은 어떤가? 자리를 탐하는 어중이떠중이가 너무 많다. 이들은 국리민복보다는 다음 선거에 관심이 더 많으며, 국민의 소리보다는 대기업의 요구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책임질 일, 즉 나라의 미래를 위해 큰 계획을 세우는 일은 자꾸만 뒤로 미루고, 인기에 영합하거나 금권정치에 길들기 십상이다. 그러니 쇼로선 성인 선거권에 의한 민주주의, 즉 대의민주주의의 실현은 사기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과연 어느 누가 민주주의가 매우 취약한 제도라는 쇼의 주장을 성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옮기고 나서’에서

서문

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바다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바다는 어떤 면에서 민주주의와 꽤 비슷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다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다를 싫어하여 바닷가에 있거나 바다 위에 있을 때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은 바다를 사랑하여 바다에 들어가 있거나 바다 위에 있거나 바다를 바라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어떤 이들은 바다를 영국의 자연스러운 영역이자 가장 확실한 방벽으로 여기지만 다른 이들은 도버해협에 터널을 원합니다. 그러나 바다에 관한 확실한 사실들은 우리가 바다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가지든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제가 바다가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해도 여러분 중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바다는 때때로 격렬하게 사나우며 항상 예측할 수 없으며 바다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바다를 가장 덜 신뢰한다고 말해도, 여러분은 즉시 제가 바다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바다의 적이라고, 바다를 없애려 한다고, 수영을 불법으로 만들려 한다고, 우리의 해운업을 망치려 하고 모든 해변 휴양지를 황폐화시키려 하고 영국 해군을 해체하려 한다고 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이 바닷물 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고 말해도 여러분은 그것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이거나, 여러분을 물고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는지를 저에게 분노해서 따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 제가 민주주의에 대한 몇 가지 불편한 사실들을 말씀드릴 때도 바다의 경우와 똑같이 분별력 있게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민주주의는 때때로 격렬하게 사나우며 늘 위험하고 믿을 수 없으며 실제 정치가로서 민주주의를 잘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가장 덜 신뢰한다고 말해도, 여러분은 즉시 저를 베니토 무솔리니의 사주를 받은 첩자라고 비난하거나 제가 노년에 이르러 골수 왕당파로 변했다고 선언하거나, 여러분의 투표권을 빼앗아서 의회와 선거권, 언론의 자유, 공개 집회, 배심원 재판을 끝장내려 한다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더더욱 여러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저를 중세 군주제와 봉건제의 옹호자라며 세 번의 열렬한 환호를 보내서도 안 됩니다. 저는 그런 터무니없는 것들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자든 왕당파든,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도든, 공산주의자든 파시스트든,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어떤 힘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과 싸우려 하든 그것을 발전시키려 하든 우리는 그 힘의 본질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민주주의의 위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그 위험에 대비하고는, 우리가 대비할 수 없는 위험들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 정부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피통치자의 동의에 의한 정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행히도 민주주의 정치가들이 우리 자신의 동의로 우리를 통치하려고 할 때 그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전혀 통치받기를 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지방세와 국세, 임대료와 상속세를 참을 수 없는 부담으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잠자리에서 살해당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려면 정부가 얼마나 작을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질문은 우리가 ‘살아간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전까지는 답할 수 없습니다. 미개인들도 어떻게든 살아갑니다. 제멋대로인 아랍인들과 타타르인들도 살아갑니다. 이 문제에서 유일한 원칙은 살아가는 문명화된 방식이 개인적 행동의 방식이 아니라 집단적 행동의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집단적 행동은 개인적 행동에 비해 더 큰 정부를 필요로 합니다.

이제 우리의 문제로 들어가 봅시다. 우리는 자신을 통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효과적인 현대 정부에 필요한 막대한 권력과 재정을 절대군주나 독재자에게 맡긴다면, 그러한 권력자는 대단히 뛰어나지 않은 한 어느 정도 미쳐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대단히 뛰어난 권력자는 찾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현대 정부의 일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엔 너무 큽니다. 만약 우리가 우수한 사람들의 위원회나 의회에 의지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과두정치를 수립하고 권력을 남용할 것입니다. 우리의 딜레마는 무리를 이룬 인간이 자신을 통치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가 말했듯이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될 만큼 아주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통치받을 필요가 있으면서도 우리의 통치자를 통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통치자들은 자기네 양심 외에는 어떠한 통제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통치받는 우리도 우리가 가진 통제 권력을 남용하기 쉽기 때문에 우리의 무지와 우리의 열정, 우리의 사적이고 즉각적인 이익은 대단히 빼어난 자격을 갖춘 통치자들의 지식과 지혜, 공공정신, 미래에 대한 사려와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파손 주식회사’라는 명칭은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놀라운 천재, 고(故) 알프레드 워윅 개티의 말로에서 착안한 것이다. 나는 처음에 그를 희곡 작가로 알게 되었다. 그는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었는데 만성 과민증을 앓고 있었다. 아니, 나중에 드러난 바로는 그런 재능을 타고난 것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심하게 느꼈고 자신의 감정을 강렬하게, 때로는 화산처럼 폭발적으로 표현했다. 나는 그가 극작가로서 큰 성과를 내기에는 충분히 냉철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몇 년간 그를 보지 못하다가, 그가 매우 중요한 발명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회의적이어서 그 발명이란 것이 그저 실현 불가능한 설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우리의 친구 헨리 머레이가 내 태도에 너무나 화를 내는 바람에, 나는 그를 달래기 위해 그 대단하다는 발명을 직접 확인해 보는 데 동의했다. 단, 개티가 그 과정에서 분별 있는 사람답게 처신하겠다고 약속하는 조건이 붙었다. 개티는 품위 있게 약속을 지켰다. 한 엔지니어가 나에게 개티의 기적 같은 발명을 설명하는 동안 그는 침묵을 지켰고 짧은 성명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성명서에는 개티의 계획을 채택하면 당시 우리가 전쟁 중이던 중부 제국들을 압도할 만큼의 인력을 산업 현장에서 빼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물론 그가 옳았다. 우리가 낡은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이미 잃은 것은 그의 안을 실행하는 데 들었을 엄청난 비용보다도 더 크다. 하지만 전쟁이 진행 중이던 당시에는 돈도 추진력도 없었다. 집하장은 템스강 선창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도면으로만 남아 있고, 개티는 무덤에 누워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믿는다. 그것들을 상상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계장치까지 발명한 사람이 거절당했음에도 무너지기는커녕 “보잘것없는 한 연극의 소재가 되어 주기만 한다면 내 기계적 쓰레기들이 모두 사라져도 좋다!”라고 외칠 수 있었던 사람에게는 분명 위대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이 작은 역사가 개티의 경험이 실제로 어떻게 ‘파손 주식회사’와, 그리고 동력장관의 비통한 외침의 배경이 되었는지를 설명해 줄 것이다. ‘파손 주식회사’의 ‘파손’이란 이름 자체가 파손되기 전까지는 이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제1막

셈프로니우스 비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선 왕도 권리를 잃는다고들 하지요. 아버지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선 남자가 제정신을 잃고 죽는다는 것을 알아냈고요.

마그누스 왕. 그런데 왕이란 게 뭡니까? 부자들이 왕을 우상으로 세워 놓고는 희생양이자 꼭두각시로 삼아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이 선택하지요. 국민은 항상 부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거든요.

프로테우스 총리. 왕이 언론을 동원해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어요. 연설하고 다니고 있고요.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어제 새 상공회의소 개관식에서 국왕의 거부권이야말로 부패한 입법 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어막이라고 하셨거든요.

마그누스 왕. 헌법적 문제란 게 뭐지요? 국왕의 거부권을 부인하는 겁니까? 아니면 내가 거부권의 존재를 국민에게 상기시키는 점에만 반대하는 겁니까?
니코바르 외무장관. 저희가 말하는 바는, 총리가 조언한 경우가 아니거나 총리가 읽고 승인한 말이 아니고는 왕이 헌법에 관한 어떤 것도 국민에게 상기시킬 권리가 없다는 겁니다.

프로테우스 총리. [전적으로 불쾌하지는 않은 듯] 좋습니다, 전하. 제가 어떤 바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바보는 아니길 바랍니다. 제가 항상 제 성질을 유지하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억눌러야 할 성질이 얼마나 많은지 전하께서 알게 되더라도 놀라지는 않으실 겁니다. [몸을 곧추세우고는 인상적으로 웅변조가 된다] 지금 이 순간 제 역할은 전하께 제 성질이 아니라 내각의 성질을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외무장관과 재무장관, 내무장관이 전하께 말씀드린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가 전하의 정부를 운영해 나가려면, 전하께서 저희의 의견이 아니라 전하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연설을 하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희의 입법 활동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이 우리 내각의 공로가 아니라 전하의 공로라고 암시하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희가 실수와 다툼만 일삼고 있는 동안 거대 기업의 정치적 침범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는 단 하나의 보루가 전하의 거부권이라고 국민에게 말씀하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일들은 최종적으로 금지되어야 합니다.

프로테우스 총리. 전하께서 저희와 의견이 다를 때는, 그 의견을 혼자만 간직하고 계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그누스 왕. 그것은 나에게 너무 무거운 책임이 될 것 같군요. 만약 여러분이 국민을 낭떠러지 끝으로 이끌고 가는 것을 내가 본다면 국민에게 경고도 못 한다는 말입니까?

마그누스 왕. 아니에요. 우리는 가난과 고난을 없애지 못했어요. 우리의 대기업가들이 없앤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자본을 가난과 고난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 다시 말해 노동력이 싼 해외로 보낸 덕분이지요. 우리는 그 자본 덕분에 들어오는 이익으로 편안하게 살고 있어요. 우리는 이제 모두 숙녀와 신사가 되었습니다.

보아네르게스 상무장관. 전하, 저도 웃는 사람들과 함께해야겠습니다. 저 역시 전하만큼 초콜릿 크림에 반대합니다. 초콜릿 크림은 제 체질에 맞지 않거든요. 하지만 영국에서 혁명이라니요!!! 그런 생각은 머리에서 지워 버리십시오, 전하. 설령 전하께서 트래펄가 광장에서 대헌장을 찢어 버리고, 스미스필드에 불을 질러서 하원 의원들을 모두 태워 버린다 해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마그누스 왕. 나는 영국에서의 혁명을 생각한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는 나라들을 생각한 것이에요. 그 덕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만약 그들이 조공 바치기를 멈추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그런 일은 전에도 있었거든요.

프로테우스 총리. 만일 전하께서 순전히 헌법적인 문제를 개인적 추문으로 덮으려 하신다면, 저희도 그 진흙을 되던져 주는 것은 충분히 쉬운 일입니다. 이 갈등에서는 저희가 도전자입니다. 무기를 선택할 권리가 전하께 있습니다. 만약 추문을 선택하신다면 저희도 그것으로 맞서겠습니다. 저로서는 전하께서 그렇게 하시면 유감스럽겠지만 말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빨랫감을 공개적으로 세탁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착각하지는 마십시오. 터놓고 말하자면 점 하나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마그누스 왕. 왕에게는 훌륭한 인격이라는 사치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흠 없는 청과상을 수백만 명이나 배출했지만 흠 없는 군주는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종교 파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들을 공평하게 다스리려면 나는 어떤 종파에도 속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들은 모두 자기네 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신론자로 여깁니다.

마그누스 왕. 왕에게는 훌륭한 인격이라는 사치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흠 없는 청과상을 수백만 명이나 배출했지만 흠 없는 군주는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종교 파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들을 공평하게 다스리려면 나는 어떤 종파에도 속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들은 모두 자기네 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신론자로 여깁니다. 내 궁정에는 완벽히 존경받을 만한 아내들과 어머니들이 여러 명 있는데, 이들은 타락한 여자로 소문나는 것을 묘한 자랑거리로 여깁니다. 왕의 정부라는 평판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실현하여 불쌍한 군주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만 빼고는 거의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 그들과 나란히 있는 존재는 정말로 파렴치한 여성들입니다. 이 여성들은 자기들의 평판을 너무 조심스럽게 지키는 바람에, 유혹에 넘어갔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불같이 화를 내며 부인합니다. 사실은 그런 유혹을 전혀 받아 본 적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따라서 모든 왕은 난봉꾼으로 여겨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왕의 인기 중 상당 부분이 이 평판 덕분이므로 왕은 이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인하면 국민이 크게 실망하기 때문입니다.

프로테우스 총리. 이런 끝없는 바보짓을 참을 수 없습니다. 국민이 진지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축구와 다과뿐인 나라의 총리가 되느니 차라리 개가 되는 편이 낫겠습니다. 모두 전하께 아첨이나 하세요. 당신들에게 어울리는 거라곤 그것뿐이니까요. [그가 방을 뛰쳐나간다].

막간극

오린시아. 아, 전하는 눈이 멀었어요. 눈이 먼 것보다 더 심해요. 취향이 얕아요. 하늘이 장미를 내미는데 전하께선 양배추에 매달려 있어요.
마그누스 왕. [웃으며] 아주 적절한 비유군요, 내 사랑.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장미 없이 살 것과 양배추 없이 살 것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당하면, 양배추를 잡지 않겠어요? 게다가 이런 늙고 결혼한 양배추들도 모두 한때는 장미였어요. 당신같이 젊은 사람들이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남편들은 그걸 기억하지요. 남편들은 아내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해요. 더구나 당신이야말로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할 테지. 남자가 아내에게 싫증나서 떠날 때, 그녀가 미모를 잃었기 때문인 경우는 전혀 없다는 걸 말이에요. 종종 새 연인이 옛 연인보다 더 나이 들고 못생긴 경우도 있으니까.

오린시아. 저에게 여신의 일을 주세요. 해 드릴게요. 전하께서 저와 왕권을 나누시기만 하면, 몸을 낮추어 왕비의 일이라도 하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해서 위대해진다고 우기지는 마세요. 위대한 일이 찾아오면 그들이 위대하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위대한 일이 찾아오지 않아도 그들은 똑같이 위대해요.

오린시아. 한마디로 황금 같은 순간이 왔을 때, 즉 천국의 문이 당신 앞에 열렸을 때, 돼지우리에서 나오기를 두려워하시는군요.
마그누스 왕. 내가 만약 돼지라면 돼지우리가 나한테 맞는 곳이지요.

반하탄 미국대사. [격려하듯] 아, 저라면 그렇게 보지 않겠습니다. 더구나 아무것도, 심지어 우리의 친애하는 옛 영국조차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진보입니다, 아시죠, 전하, 진보, 진보!
마그누스 왕. 우리는 당신네 국기의 또 다른 별로만 살아남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개성의 작은 파편에 매달립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우리가 합병되어야 한다면, 아니, 잠긴다고 하셨던가요? 우리 중 일부는 끝까지 헤엄칠 겁니다.

왕비. [조용히]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훌륭한 황제가 될 거예요. 우리가 이 미국인들을 문명화시킬 거예요.
마그누스 왕. 우리 자신도 아직 문명화시키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들을 문명화시켜요? 그들은 우리를 단순한 인디언 부족으로 보게 되었어요. 영국은 그저 보호구역이 될 거예요.
왕비. 말도 안 돼요, 여보! 그들은 우리가 천성적으로 자기들보다 우월한 걸 알아요. 궁정에서 그들의 부인들이 행동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들은 왕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반면, 우리 영국 귀족 여성들은 예의를 간신히 지켜요. 그나마 얼굴이라도 비출 때는 말이에요.
마그누스 왕. 글쎄, 여보, 나는 당신을 기쁘게 하려고 많은 일들을 하지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들 말이오. 결국 당신을 즐겁게 하려고 미국 황제가 되겠지요.

마그누스 왕. 그렇다면 정치에 남은 유일한 영국인인 나는 완전히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까?
프로테우스 총리. [무뚝뚝하게] 그렇습니다. 우리 입장을 빨갛게 칠한다고 우리가 겁먹을 거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음만 먹으면 저도 전하의 입장을 까맣게 칠할 수 있습니다. 명백히 말씀드리면 우리는 전하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합니다. 거부하신다면 저는 영국이 절대군주제가 되어야 하는지 입헌군주제가 되어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묻겠습니다. 우리 장관들은 모두 그 점에 동의했습니다. 사퇴는 없을 겁니다. 불참한 정부 구성원들의 편지는 받았고, 참석한 분들은 직접 말할 겁니다.

프로테우스 총리. [매우 시무룩하게] 그래서 의회에 들어가면 그다음엔 뭘 하실 건가요?
마그누스 왕. 여러 가능성이 있어요. 나는 당연히 정당을 만들려고 노력할 거요. 아들인 로버트 왕은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하원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은 정당의 지도자를 총리로 지명해야 할 겁니다. 당신을 지명할 수도 있고 나를 지명할 수도 있지요.
아만다 체신장관. [국가를 한두 소절 휘파람으로 불어서 우울한 침묵을 깬다]!!
마그누스 왕.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가 공개적으로 서로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속 시원한 일일 테지요. 당신들은 나에 대해 진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국민에게 한 번도 말할 수 없었어요. 왕에 대한 진정한 비판은 불가능하니까. 나 역시 당신들의 여러 능력과 인격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할 수 없었고. 그 모든 자제, 그 지겨운 가식, 그 병적인 은폐가 끝날 겁니다. 우리의 새로운 관계를 나만큼이나 당신들도 즐겁게 기대하길 바랍니다.

마그누스 왕. 그러니까 결국 내가 사과수레를 뒤엎지는 않았군요, 니코바르 씨.
니코바르 외무장관. 원하시면 언제든 뒤엎으세요. 저는 관심이 없으니까요. 정치에서 손을 떼렵니다. 정치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나간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조지 버나드 쇼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비평가이자 극작가이다. 20세에 런던으로 와서 1884년 페이비언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곧 책, 미술, 음악, 연극 등의 평론가를 거쳐 희곡작가가 되었다. 1925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인간과 초인(1903)》, 《피그말리온(1913)》, 《지적인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 자본주의 안내서(1928)》, 평론집 《쇼에게 세상을 묻다(Everybody’s political what’s what, 1944)》 등이 있다.

  목차

옮긴이 서문

희곡
일러두기
등장인물
제1막
막간극
제2막

서문

옮기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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