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기후변화는 오랫동안 숫자와 사실로 설명 가능한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져 왔다. 원인을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해결책 또한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 세력이 적지 않은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논의할 때조차 기후를 지키기 위해 경제를 희생할 수 없다는 우려가 가장 먼저 터져나왔다.
트럼프와 그를 추종하는 MAGA 연합, 유럽의 극우 그리고 한국 정치권의 기후를 후퇴시키는 움직임까지. 극우 정치 세력은 현 체제의 모순이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 정책을 반대하는 과격한 행동으로 정치적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는 이러한 기후 정치의 배후에 감춰진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뿌리를 추적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저자 박지형은 기후 부정이 어떤 세계관과 역사적 사유의 전통, 그리고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추적하며 기후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기술 중심주의와 국가주의적 개발 논리를 비판한다. ‘나쁜 생각’이 과학과 정책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기후위기를 외면하는 태도가 개인과 집단의 심리나 자본주의적 성장 신화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따라가며, ‘나’만을 중심에 둔 존재론적 제국주의를 넘어 공존과 책임의 생태 윤리로 나아갈 필요성을 제안한다.
출판사 리뷰
- 왜 기후위기는 과학이 아닌 정치의 문제가 되었는가?
- 왜 극우는 기후를 위기로 인정하지 않는가?
- 트럼프와 MAGA 연합, 유럽의 극우, 윤석열… 그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은?
기후변화는 오랫동안 숫자와 사실로 설명 가능한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져 왔다. 원인을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해결책 또한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 세력이 적지 않은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논의할 때조차 기후를 지키기 위해 경제를 희생할 수 없다는 우려가 가장 먼저 터져나왔다.
트럼프와 그를 추종하는 MAGA 연합, 유럽의 극우 그리고 한국 정치권의 기후를 후퇴시키는 움직임까지. 극우 정치 세력은 현 체제의 모순이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 정책을 반대하는 과격한 행동으로 정치적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는 이러한 기후 정치의 배후에 감춰진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뿌리를 추적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저자 박지형은 기후 부정이 어떤 세계관과 역사적 사유의 전통, 그리고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추적하며 기후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기술 중심주의와 국가주의적 개발 논리를 비판한다. ‘나쁜 생각’이 과학과 정책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기후위기를 외면하는 태도가 개인과 집단의 심리나 자본주의적 성장 신화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따라가며, ‘나’만을 중심에 둔 존재론적 제국주의를 넘어 공존과 책임의 생태 윤리로 나아갈 필요성을 제안한다.
기후위기는 왜 ‘부정’의 대상이 되는가
이 책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반복해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설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이 정치적으로 부정되고, 왜곡되고, 지연되는지를 묻는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통해 오늘의 기후 현실을 ‘불과 물’의 재난으로 묘사한다. 폭염과 산불, 홍수와 침수는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징후다. 그럼에도 사회는 중병을 진단받은 환자처럼 현실을 부정하거나 미루려 한다.
여기서 저자는 기후위기를 “커먼즈의 위기”로 규정한다. 기후는 모두의 공동 자산이지만, 그 파괴의 책임과 피해는 결코 대칭적이지 않다. 문제는 이 구조적 불균형이 단순한 정책 실패로 환원된다는 데 있다. 저자는 기후위기를 둘러싼 갈등을 과학 대 비과학의 구도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세계관의 충돌로 읽는다. 기후위기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성장 중심의 경제 질서와 소비 중심의 삶, 자연을 수단화해온 오랜 사유를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정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기후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재난은 책임 소재와 상관없이 낮은 곳으로 향한다. 낮은 곳에 피해가 집중된다는 것은, 물난리가 저지대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과 같이 물리적 현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물리적 현상으로 시작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계층 사다리의 낮은 곳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은 기후 재난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모두의 문제로 말하지만 실제 피해는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그 불균등은 사회적 구조와 분명하게 맞물려 있다. 이 지점에서 기후위기는 커먼즈의 위기가 된다. 대기와 기후는 모두의 것이지만, 파괴의 책임과 피해의 분배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계층 사다리의 아래쪽에 위치한 사람들, 불안정한 주거에 놓인 이들, 충분한 안전망을 갖지 못한 집단이 기후 재난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불균형을 구조로 보지 못하는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세계관, 성장을 멈출 수 없다는 신화, 소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두는 사고가 만든 구조는 ‘나쁜 생각의 생태학’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사유는 기후위기를 체제의 결과가 아닌 외부의 위기 혹은 기술로 해결 가능한 문제로 축소시킨다.
기후 제국주의와 오래된 지배의 논리
원자력 확대와 대형 댐 건설 등 기후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기술 중심주의와 국가주의적 개발 논리를 어떠한가. 저자는 이러한 정책들이 기후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기존 권력 구조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기술은 중립적 해결책이 아니라, 특정한 세계관과 결합해 작동하는 정치적 장치다. 책은 기후위기의 역사적 뿌리를 로마 제국에서 신자유주의에 이르는 ‘오래된 제국’의 확장 속에서 찾는다. 자연을 지배와 수탈의 대상으로 삼아온 사유는 산업 공화국과 기업화된 경제를 거치며 지구 커먼즈 전체를 식민화했다. 기후위기는 그 장기적 구조의 귀결이다.
저자는 ‘나ego’를 중심에 둔 존재론적 제국주의를 넘어, 타자와 공존하는 생태 윤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기후 대응은 전문가의 영역에만 맡겨질 문제가 아니라, 커먼즈의 회복과 책임의 재분배를 포함하는 정치적 과제다. 기후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세계관의 전환을 요구한다.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설교하는 책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왜 그 앎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지, 어떤 생각의 생태계 안에서 그 경고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지형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탄소순환을 연구하는 환경생태학자로 국제학술지 의 부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후변화 교과서>와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공저자,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사 등 다양한 기후변화 관련 활동을 진행해왔으며, 저서로 『스피노자의 거미』와 『재난문명: 경제·환경·기후 복합위기와 탈성장 대안』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 불과 물
1. 기후 제국주의 ― 나쁜 생각의 생태학
2. 극우와 기후위기 부정
3. 끌 수 없는 불, 버릴 수 없는 물
4. 흐르지 않는 강
5. 오래된 제국과 해방의 생태학
6. 기후 민주주의
에필로그 ― 에골로지에서 에콜로지로
감사의 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