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는 제주4·3을 ‘과거의 눈물’로 소비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시인은 국가의 비수 앞에 학생복조차 입어보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난 아이들의 시린 눈동자를 직시하며, 70년 전의 비극을 우리 곁의 ‘현재형 고통’으로 소환한다.
이 기록은 슬픔의 전시가 아니다. 주홍빛 테왁보다 뜨거운 불구름 속을 헤엄쳐 건너온 여인들의 고백은, 연민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생을 밀어 올린 주체적 역사의 증명이다. 시집의 탁월함은 성급한 위로나 단정으로 사건을 매듭짓지 않는 데 있다.
이해받기보다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며 작동하는 언어. 기억의 외딴집에 유폐되었던 진실을 마당으로 불러내는 시인의 문장은, 4·3을 과거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거대한 종소리가 된다. 당신이 알고 있던 제주4·3은 이 시집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출판사 리뷰
★ 제주4·3의 불바다를 건너온 여인과 아이들, 비극을 ‘살아낸 역사’로 증언하다!
★ 천둥의 밤을 건넌 이들만이 아는, 서늘하고 단단한 생존의 유대!
★ 닫히지 않은 괄호, 제주4·3을 과거의 박물관에서 현재의 언어로 끌어내다!
▶ 빼앗긴 이름과 부서진 조각들, 울음조차 배우지 못한 ‘철’ 없는 아이들4·3의 불길은 가장 연약한 영혼들부터 삼켰다. 시인은 국가가 휘두른 비수 앞에 학생복을 입어보지도, 사랑을 고백해 보지도 못한 채 산산조각 난 아이들의 시린 눈동자를 직시한다. 그들은 울어야 할 철(계절)에 울음조차 배우지 못한 채 사라졌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섬의 들판을 웅웅거리는 바람의 흥얼거림 속에 유령처럼 서성인다. 시인은 이 박제된 비극을 연민으로 소비하는 대신, 우리 곁에 여전히 숨 쉬는 '현재형의 고통'으로 소환해낸다.
철 따라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 철을 잃어버린 아이들 / 노래를 잃어버린 새처럼 / 사랑을 잃었어 / 소년을 잃었어 / 학생복을 잃었어 / 어린 손가락을 뚫고 나갔어 / 물어뜯긴 철없는 산산조각
〈철을 잃은 아이들〉 중
기억의 외딴집에 유폐되었던 이 아이들을 봄날의 마당으로 불러내는 것은 시인의 의무다. 부서진 삶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핥아 올리는 시인의 문장은, 잊힌 존재들을 역사의 주연으로 다시 세워놓는다.
▶ 불속을 건너온 여자, 기죽지 않고 타오른 생의 의지이 시집은 단순히 울기 위해 쓰인 기록이 아니다. 홀로 던져진 허허벌판에서 자식의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주홍빛 테왁보다 뜨거운 불구름 속을 헤엄쳐 건너온 여인들의 고백이다. 시인은 그들의 삶을 ‘비극’이라는 박제된 단어에 가두지 않고, “한 숟갈 먹으면 살아지려나”라고 묻는 생존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기죽지 않고 스스로를 불태우며 생을 밀어 올린 여인들의 목소리는 4·3을 ‘살아낸 역사’로 치환하며,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적 심판이자 인간의 존엄을 시적 영역 안으로 기어이 획득해 낸 결과물이다.
나 불붙게 산 여자 / 불 속 건너온 여자 / 세상천지 혼자여도 / 기죽지 않고 불탔어 불 // 나 풀 한 포기 없는 허허벌판에서 헤엄친 여자 / 아무도 없어서 / 이리저리 불 속에 살아 / 주홍의 테왁보다 더한 불구름에 산 여자
〈나 불붙게 산 여자〉 중
▶ 참혹한 겨울을 살아낸 이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별빛 같은 문장이번 시집의 탁월함은 4·3을 노골적인 단정이나 설명으로 종결시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찢겨진 존재들의 언어는 종결되지 않은 채 시간적 여운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해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계속 작동하기 위해 존재하는 허영선의 언어는, 독자가 지닌 해석의 편향을 흔들며 4·3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라는 나직한 고백은 모진 세월을 함께 버틴 이들만이 나눌 수 있는 서늘한 유대감의 증표다. 답답한 가슴을 삭이려 “담배를 배우라”던 어른들의 비통한 위로마저 시로 껴안으며, 시인은 참혹한 겨울을 버틴 모든 존재에게 별빛 같은 헌사를 건넨다. 사라져가는 기억을 끝내 진술하려는 시의 의무는 4·3의 진실이 더 이상 외딴집에 갇혀 있지 않도록 문을 박차고 나가는 해방의 종소리가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허영선의 시업은 하나의 경이에 이른다.
▶ 역사적 복권과 생의 복원, 두 권으로 완성된 4·3의 입체적 지도《법 아닌 법 앞에서》와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는 제주 4·3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법정’과 ‘삶의 현장’이라는 두 축으로 재구성한다.
《법 아닌 법 앞에서》가 국가 폭력에 의해 훼손된 명예와 존엄을 법적으로 복원하는 ‘증언의 기록’이라면,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는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존재들의 내면과 생명력을 응시하는 ‘생의 기록’이다. 두 시집은 민족과 역사라는 조건에 묶여 있으면서도,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의 리듬과 이미지를 통해 우리 의식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진실을 붙들고 있는 시의 진술이 어떻게 오늘날의 우리를 깊게 떨리게 하는지 증명해 낸다.

―아까짱아,
나 여기 곱았젠 마라
―우리 언니 멍석에 안 곱아수다
순간 마당의 내가 한 발에
달려온 시퍼런 그들에게 그랬어
그들은 순식간에 빙빙 멍석을 열고
언니를 모래밭으로 끌고 갔어
- 〈고백〉 중에서배고파 죽은 막내의 흥얼이
아침의 싸락눈으로 온다
그건 어린 심장이 견딜 수 없는 일
(......)
막내의 흥얼이 바람의 노래로 온다
밥을 먹으면 살아지려나
한 숟갈 먹으면 살아지려나
- 〈바람의 흥얼〉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허영선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뿌리의 노래》 《해녀들》, 산문집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역사서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등이 있다. 제주4·3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김광협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5 시인의 말
제1부
14 양하꽃 -춘자에게
16 모자 쓴 여자
18 섬의 한 여인은
20 죽음은 죽음이어서 무섭지 않고
22 굴이 울다 -차경구
24 모래밭에 누워서
26 수리대처럼 내 생은
28 누룩으로 지낸 한철
29 동백의 전언
31 멸치 떼
32 붉은 것들! -김연옥
34 고백
36 불칸쇠 -김순혜
38 용강 강갑춘
40 밋밋, 살다 보니 눈이 녹아서 -부순여
42 발의 말 -김순여
43 그늘 없는 사람
44 절대 그 밤을 모르지
46 실과 바늘을 진 어머니는
47 울다 보면 시간이 너무 짧아서 -김이선
49 꿈
50 그녀에게
52 어떤 증언 -홍춘호
54 양 할머니의 활주로
55 꽃베개 -양중윤
57 동백할망 고송당
58 풀 뽑는 방식
제2부
60 병풍 소풍 -김옥택
62 철을 잃은 아이들
64 바람의 흥얼
66 선홍의 바다, 탁발하듯 소리치는-북촌 애기무덤 앞에서
68 검은 밥 -한옥자
70 올케에게 -변영수
71 천둥을 기다리며
74 별에게
77 얼굴을 찾아서 -김옥녀
79 사라진 아이들
82 눈보라와 여인과 아이들
84 아무도 그곳에 없었네
86 푸케 씨의 저녁
88 그 겨울의 색동저고리는 -김옥자
90 당신은 누구십니까
92 알항 같은 내가 옹기를 지고
94 사월에 쓰는 편지
제3부
98 동백, 그게 그러니까
99 남매 생존기
101 어느 살아난 아이
102 그날, 수업 시간
104 북촌 이야기
105 꼴레이불 한 장 -문철부
107 모래이불 덮고서
109 나의 소년은 -김명원
111 그 겨울의 식량
112 어느 잃어버린 마을에서는
113 아무도 없는 아이
115 동산은 아직도 나를 보내주지 못하고
117 삼발이를 쓰려거든
119 아이가 아이에게 전하는 눈의 말
124 우리들의 전언
126 호적을 찾아서
130 기름떡
132 아이들을 위한 애가
제4부
136 슬픔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138 콩죽을 끓이며
140 비양도 미역에 대한 기억
142 그해 가을 녹하지, 아버지 일기
144 기수역
146 바람의 흙을 떠난 언어는 -김시종 시인
148 밀라이
150 사이공 강가의 부레옥잠
152 산다는 건 -비학동산
154 푸른 새벽과 검은 새벽 사이 -백합을 찾아서
156 검은 바다 건너서 부르는 노래
160 통증보다 더한
161 입 다문 말 -오계숙
제5부
164 물에 드는 시간에 -해녀 한 장만
166 왈락 -해녀 양병생
169 나 불붙게 산 여자 -해녀 정자
172 구태여 말할 일인가
174 고래와 아기와 해녀와
176 너는 내 등을 타고 나는 파도를 타고 -해녀 오홍자
179 비정한 모살판의 그대를 만나 -해녀 오순아 2
181 피난의 별
182 타다만 동백
184 생존
185 세상 가장 선명한 신호
187 문턱
189 순간들
190 동백의 기초
191 사리의 시간엔
193 휴
194 가오리에게
196 오래전 사랑
197 우리가 걷고 싶은 길은
201 [에필로그] 시의 당신들에게, 시 밖의 당신들에게
213 김시종(재일 시인) | 해명海鳴의 여운 같은 진동, 경악하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