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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생각
황금알 | 부모님 |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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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김환식의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인물의 ‘생각’이 생生의 모든 국면을 두루 떠도는 거대한 서사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시집에서 ‘생각’은 단순한 감정적 잔여물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 시간과 기억, 슬픔과 회한, 풍경과 존재를 잇는 전차원적인 주체로서 한몸을 이루며 시편 전반을 관통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이 ‘생각’을 인간처럼 걷게 하고, 말하게 하며, 고통을 느끼게 하고, 늙게 하고, 잊게 한 뒤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에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은 점차 결집하며, 시집 전체를 이끄는 하나의 윤리적 중심으로 수렴된다.

  출판사 리뷰

김환식의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인물의 ‘생각’이 생生의 모든 국면을 두루 떠도는 거대한 서사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시집에서 ‘생각’은 단순한 감정적 잔여물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 시간과 기억, 슬픔과 회한, 풍경과 존재를 잇는 전차원적인 주체로서 한몸을 이루며 시편 전반을 관통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이 ‘생각’을 인간처럼 걷게 하고, 말하게 하며, 고통을 느끼게 하고, 늙게 하고, 잊게 한 뒤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에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은 점차 결집하며, 시집 전체를 이끄는 하나의 윤리적 중심으로 수렴된다.
김환식은 단순히 잃어버린 것을 기록하는 시인이 아니다. 그는 상실을 인간 삶의 본질적 구조로 재해석한 시인이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인간은 상실을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견디는 방식은 윤리와 미학의 문제로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시집에서 상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끝내 함께 살아가야 할 조건으로 제시된다.
김환식의 시세계를 통해 상실을 견디기 위한 ‘생각’이라는 존재가 탄생했다. ‘생각’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이 시학은 독창적이며, 현대시에서 중요한 성취로 평가받을 만하다. 사물을 감정의 대리인으로 삼는 이미지 미학,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애도의 윤리, 그리고 노년의 시간철학을 정교하게 엮어낸 이 시집은, 현대시 안에서 개성적인 시인으로서 ‘김환식표’라는 이름을 붙여도 부족함이 없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필)

생각의 탄생과 윤리의 시학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필)

들어가며; 사무침의 미학과 ‘생각’이라는 존재론

김환식의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인물의 ‘생각’이 생生의 모든 국면을 두루 떠도는 거대한 서사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시집에서 ‘생각’은 단순한 감정적 잔여물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 시간과 기억, 슬픔과 회한, 풍경과 존재를 잇는 전차원적인 주체로서 한몸을 이루며 시편 전반을 관통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이 ‘생각’을 인간처럼 걷게 하고, 말하게 하며, 고통을 느끼게 하고, 늙게 하고, 잊게 한 뒤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에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은 점차 결집하며, 시집 전체를 이끄는 하나의 윤리적 중심으로 수렴된다.
이 ‘생각’은 흔히 말하는 심리적 단위가 아니다. 그것은 시인이 구축한 독자적인 존재론적 장치로서 작동한다. 어떤 시에서는 노루나 돌고래, 낙타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또 어떤 시에서는 의자나 바람, 장독대나 난전의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이처럼 다양한 형상과 사물, 풍경으로 변주되는 ‘생각’의 표류가 곧 이 시집의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 동력이다. 시인은 이 생각을 매개로 상실과 그리움, 나이 듦의 자의식, 기억의 탈각, 자연과 존재의 겹침, 죄의식과 회한, 덧없음의 철학을 한 올씩 엮어낸다. 결국 이 시집은 고통을 품은 인간의 내면을 ‘생각’이라는 알레고리로 외화한 장엄한 서사시라 할 수 있다.
헤겔이 말한 ‘외화外化, Entaußerung’는 이념, 곧 정신이 자기 자신을 외부로 드러내며 자신과 대립하는 형식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주체는 외부 세계와의 분리를 거쳐 다시 자기 내면으로 귀환하며, 대립과 통합을 경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김환식의 시편들 역시 하나의 외화 과정을 거친다. 육체성을 획득한 ‘생각’은 자연과 사물, 타자의 형상을 빌려 외부로 나아갔다가 다시 내면으로 돌아오는 경로를 반복한다.
이를 불교적으로 진술하자면, 고苦와 업業, 식識, 무상無常, 연기緣起의 관점 속에서 ‘생각’은 다시 여과되는 과정을 거치며,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 그리고 언어는 한층 두터워진다. 김환식의 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감정의 서정을 넘어 사유의 밀도를 획득한다. 이 시집이 보여주는 것은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슬픔을 통과한 이후에도 사유가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는 언제나 ‘생각’이라는 존재가 놓여 있다.

‘아비의 상실’이라는 기원

‘생각’은 가장 생동감 있는 육체를 갖는다. 맨발로 달리고, 돌고래처럼 울부짖고, 싸락눈 소리를 듣고,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신체를 갖는다. 「맨발의 생각」 「그리움」 「거룩한 행로」 「그 의자」 「빈자리」 등에서 시인은 반복적으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비극적 체험을 끌어낸다. 특히 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업고 며칠째 포구를 떠도는 장면은, 시집 전체에 흐르는 정서의 원형을 제시한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돌고래보다 못난 아비”라고 낮추며, 자책의 정조를 말없이 누적한다. 생각의 육체는 바로 이 자책에서 탄생한다. 시편들의 ‘생각’은 슬픔을 견딜 수 없는 한 인간이 자책의 고통을 받아들이며, 원점으로 거슬러올라가는 행위는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윤리적 책임으로 작동하면서 제2의 몸으로 생성된다.


그 애가 앉았던
그 의자
그 식탁 앞에 그대로 두고
아내와 나는 마주 앉아
처음인 듯 생뚱맞게 저녁을 먹는다
밥 한술 떠먹고
의자
한 번 쳐다보고
그 애가 즐겨 먹던
문어 다리 하나 썰어놓고
우리는 번갈아
문어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또,
의자
한 번 쳐다보고

그래도
그 식탁 앞엔
빈 의자 하나
- 「그 의자」 전문

김환식의 「그 의자」는 표면적으로는 한 가족의 식탁 풍경을 그린 짧은 서정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한 상실의 서정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부재가 어떻게 하나의 ‘존재’로 작동하는지를 극도로 절제된 형식으로 구현한 시다. 이 시의 중심에는 사람이 아니라 의자가 놓여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부재한 의자가 시의 모든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 작품에서 시적 긴장은 사건이나 서사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긴장은 오직 사물의 배치, 시선의 반복, 행위의 리듬에서 생성된다. 이 점에서 「그 의자」는 김환식 시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부재의 현존화’ 기법이 가장 순도 높게 응축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의자」에서 핵심은 ‘의자’보다 ‘그’라는 지시어다. ‘그’는 특정 대상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하는 말이다. 즉, 이 의자는 아무 의자가 아니라 이미 누군가의 기억 속에 깊이 침윤된 의자다. 이 시 제목에서부터 시는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 의자를 알고 있는가.’라는 이 질문은 곧 윤리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왜냐하면 ‘그’라는 말은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관계의 지속을 전제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떠난 존재는 사라졌지만, 그 존재가 앉았던 의자는 여전히 ‘그 의자’로 불린다. 이는 관계가 물리적으로 단절되었음에도, 기억의 차원에서는 종료되지 않았음을 선언하는 언어 행위다.
이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형식적 특징은 반복이다. “밥 한술 떠먹고/ 의자 한 번 쳐다보고/ 문어 다리 하나 썰어놓고/ 문어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또/ 의자 한 번 쳐다보고”라는 반복적 구문은 시의 리듬을 형성한다. 이때 반복되는 음성적 요소인 ‘한’의 울림은 정서적으로 ‘恨’을 연상시키지만, 과도한 감정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절제된 거리를 유지한다. 이 반복은 단순한 리듬이 아니라 의례다. 의례란 감정을 과잉으로 분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삭제하지 않기 위해 인류가 오랫동안 선택해온 형식이다.
김환식은 이 시에서 울지 않는다. 대신 밥을 먹고, 고개를 들고, 사물을 바라본다. 애도는 폭발이 아니라 생활 속에 침윤된 리듬으로 나타난다. 이 반복 구조는 슬픔을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지 않는다. 슬픔은 이 시에서 일상의 동작 속에 고정된 지속 상태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시의 슬픔은 쉽게 소진되지 않고 오래 남는다.
「그 의자」에서 문어 다리와 의자는 단순한 병렬 관계가 아니다. 두 사물은 상호교환적으로 작동한다. 문어 다리는 ‘그 애가 즐겨 먹던’ 음식이며, 의자는 ‘그 애가 앉았던’ 자리다. 하나는 기억의 미각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의 공간이다. 문어 다리는 현실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반면 의자는 비어 있음에도 가장 강한 존재감을 획득한다. 이 역전은 현실과 비현실,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사물들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연대하며, 떠난 존재를 호출하는 환영의 장치로 기능한다.
이 지점에서 김종삼의 ‘부재와 현존의 시적 존재론’을 소환할 수 있을 듯하다. 박선영(「부재不在의 무게와 현존現存의 무게」-김종삼의 시적 존재론, 돈암어문학회, 2016.)은 김종삼 시에 대해, “부재를 암시하는 시적 형식이 인간에게 부과된 불가항력적 운명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내면 깊은 곳에서 출렁이는 비극적 정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김환식의 「그 의자」 역시 부재를 통해 현존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김종삼의 시적 존재론과 연대하고 있다. 그러나 김환식의 시에서 부재는 초월적 지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현실의 “문어 다리 하나”와 “그 의자”는 초월로 도피하지 않고, 생활의 한복판에 그대로 놓인다.
그리하여 의자는 누군가 앉아 있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강한 존재감을 획득한다. 이는 김환식 시세계 전반에서 반복되는 존재론적 역설이다. 존재는 물리적 점유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집중되는 자리에서 발생한다. 빈 의자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이며, 대체 불가능성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의자는 끝내 치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이때 의자는 가구가 아니라 기억의 신체가 된다.
이 시에서 인물들은 계속해서 의자를 ‘쳐다본다’. 그러나 이 쳐다봄은 관찰이 아니다. 그것은 확인 행위다. 여전히 거기에 있는지, 여전히 비어 있는지, 여전히 사라졌는지를 반복해서 확인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의자를 보면서도 끝내 의자에 손을 대거나 치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정서적 미련이 아니라 윤리적 태도다. 의자를 치우지 않는다는 것은 부재를 지우지 않겠다는 선택이며, 그 선택은 곧 책임의 지속을 의미한다.
이처럼 「그 의자」는 감상적인 애도의 시가 아니라, 상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사유를 담은 작품이다. 김환식은 슬픔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슬픔을 가장 오래 살아 있게 만든다.


눈만 뜨면
해바라기처럼 웃었다
늘 그랬다
그리고, 해바라기처럼
그 자리를 맴돌다 훌쩍 돌아앉았다
그게 일상의 전부였다

살가운 아침햇살이 커튼을 열고
면경 같은 창가에 앉아
가끔은, 묵은 새치를 뽑았다
생각하면
코끝이 시큰거릴 뿐이었다
아치로웠다
손을 잡으면
뼈만 남았던 생각들이 왈칵 
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부정맥 같은 숨소리가
수시로 한 옥타브씩 오르내리고
헤픈 눈물은 스스로 고집을 피웠다
돌아보면
휑뎅그렁한 생각의 빈자리들 
골이 깊어도
너무 깊었다
- 「빈자리」 전문

김환식의 「빈자리」는 상실을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의 문제로 견인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슬픔은 마음속에 머무는 정서가 아니라, 숨의 리듬을 교란하고 눈물을 통제 불가능하게 만드는 생리적 사건으로 형상화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애도를 사유나 태도의 차원이 아니라, 몸의 차원에서 임계점까지 밀어올린 밀도 높은 작품이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각의 육체화’다. 생각은 더 이상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뼈만 남은 상태로 묘사되며, 손을 잡는 순간 눈물을 쏟는 신체적 존재로 변형된다. 이는 상실이 기억이나 회상의 차원을 넘어, 신체에 새겨진 흔적이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기억은 생각에 남고, 생각은 다시 몸에 남는다. 이 연쇄 속에서 상실은 결코 과거형으로 정리되지 않고, 현재형의 고통으로 지속된다.
「빈자리」는 「그 의자」와의 연대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그 의자」에서 부재는 사물에 고정되어 외부에 배치된다. 의자를 치우지 않는 선택은 부재를 지우지 않겠다는 윤리적 태도이며, 상실을 외부에 두어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완충 장치다. 그러나 「빈자리」에 이르면 이 완충 장치는 붕괴된다. 부재는 더 이상 사물에 머물지 않고, 생각과 몸의 내부로 스며든다. 이 이동은 단순한 표현상의 변화가 아니라, 상실을 감당하는 방식의 변화다.
이 시에서 윤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눈물은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고, 숨은 스스로 리듬을 잃는다. 화자는 더 이상 선택의 주체로 남아 있지 않으며, 상실은 통제 가능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감당해야 할 신체적 현실이 된다. 이 지점에서 김환식의 시는 중요한 정직성을 획득한다. 그는 상실 이후의 삶이 언제나 윤리적 품위만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애도는 때로 태도가 아니라 붕괴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자기연민이나 감상으로 기울지 않는다. 상실을 미화하지도, 초월로 밀어 올리지도 않는다. 대신 상실이 어떻게 사물에 남고, 끝내 몸에 새겨지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이 점에서 「빈자리」는 김환식 시집의 존재론을 한 단계 더 깊은 층위로 견인한 작품이다.
결국 「빈자리」는 단순한 결핍의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가 남긴 흔적이며, 상실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자국이다. 이 시에서 빈자리는 삶을 흔드는 신체적 현실이며, 애도는 윤리에서 생리로 이행한다. 따라서 「빈자리」는 김환식 시세계에서 상실의 가장 깊은 국면을 보여주는 핵심 시편이며, 그의 시가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상실 이후 인간 존재를 끝까지 사유하는 시학임을 증명한다.


늦은
저녁
식탁 위에
그 아이
좋아하던
옥돔
한 마리
구워놓고
내외는
마주 앉아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그리움」 전문

김환식의 「그리움」은 제목과 달리 그리움을 직접 말하지 않는 시다. 이 작품은 ‘그립다’라는 감정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며, 감정의 표출이나 설명을 철저히 배제한다. 대신 늦은 저녁 식탁 위에 놓인 옥돔 한 마리와 그 앞에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라는 최소한의 장면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바로 이 절제된 장면 속에서 이 시는 김환식 시세계에서 가장 깊은 감정의 층위를 건드린다. 이 작품에서 그리움은 정서가 아니라 하나의 장면으로 존재하며, 감정은 말이 아니라 생활의 형식으로 정물화 된다.
시의 시간 배경인 ‘늦은 저녁’은 중요하다. 저녁은 하루의 활동이 끝난 이후이며, 내면적으로 응집되는 공간적으로 외부로 피할 수 없는 시간대다. 특히 늦은 저녁은 고요와 피로, 그리고 감정이 스스로를 감출 수 없게 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식탁 위에 놓인 옥돔은 축제의 음식이 아니라, ‘그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이며, 부재한 존재를 대신하는 감정의 매개체다. 이 음식은 과거의 기억을 호출하는 사물이며, 식탁은 삶의 지속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삶이 결여된 자리를 드러낸다. 이 역설 속에서 시의 정조가 형성된다. 중요한 점은, 이 옥돔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는 먹는 행위를 묘사하지 않고 ‘구워놓고’라는 상태에서 멈춘다. 이 멈춤은 사물이 기능을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강한 의미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그리하여 옥돔은 그리움을 보존하는 장치가 된다. 이때 그리움은 마음속에서 출렁이는 감정이 아니라, 식탁 위에 놓인 하나의 무게로 전환된다.
이 작품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점은 화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는 ‘내외’라는 표현을 통해 그리움이 공동의 감정임을 분명히 한다. 이 상실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함께 감당해야 하는 상실이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시선은 위로나 설명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있으며 같은 상실 앞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선이다. 이 장면에서 그리움은 더 이상 감정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된다.
김환식 시에서 침묵은 언제나 윤리적 선택이다. 이 시에서도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감정을 소비하지 않기 위한 자발적 절제다. 그리움은 말해질수록 가벼워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리움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생활의 깊은 층위에 남겨둔다. 침묵은 감정을 숨기는 방식이 아니라, 감정을 오래 견디게 하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그리움」은 애도의 윤리를 정교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그리움」은 「그 의자」와 「빈자리」 사이에 놓인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그 의자」가 부재를 사물에 고정한다면, 「빈자리」는 그 부재가 신체로 침윤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둘 사이에서 「그리움」은 부재가 관계 속에 머무는 방식을 제시한다. 의자도, 몸도 아닌 식탁이라는 공동의 공간에서, 부재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그리움은 개인적 고통이 아니라, 관계를 지속하게 만드는 윤리적 힘이다.
결국 「그리움」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감정이 어떻게 삶의 태도로 변환되는지를 보여주는 시다. 옥돔 한 마리, 말 없는 저녁, 마주 앉은 두 사람이라는 최소한의 장면 속에서 그리움은 소진되지 않고 관계 속에 고요히 남는다. 이 시에서 그리움은 울음이 아니라 침묵이며, 고백이 아니라 식탁이며, 개인의 정서가 아니라 공동의 감당이다. 그렇기에 이 시는 슬픔 이후의 삶을 다루는 시다. 감정을 크게 말하지 않을수록, 그 감정은 더 오래 살아남는다.

왜 ‘죄책’은 윤리의 핵심이 되는가

김환식의 시집에서 윤리는 규범이나 교훈의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이 시집에서 윤리는 판단이 아니라 과정이며,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 방식이다. 특히 「맨발의 생각」과 「거룩한 행로」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윤리의 핵심 구조는 ‘되돌아봄-죄책-돌봄’이라는 삼각 구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 구조는 김환식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적 운동이며, 상실 이후의 인간이 어떻게 다시 인간일 수 있는지를 사유하는 틀이다.
일반적인 윤리 이론에서 죄책은 흔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다뤄진다. 죄책은 인간을 위축시키고, 행동을 마비시키며, 자기 파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환식의 시세계에서 죄책은 파괴적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죄책은 윤리를 작동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다. 「거룩한 행로」에서 화자가 죽은 새끼를 업고 떠도는 어미 돌고래 앞에서 자신을 “돌고래보다 못난 아비”라고 규정하는 장면은 이 시세계의 윤리적 핵심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자기 규정은 자학이 아니라, 윤리적 기준의 재설정이다. 그는 자신을 쉽게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윤리의 자리에 선다. 이때 죄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죽은 새끼를 부둥켜 업은
어미 돌고래 한 마리가
며칠째 포구를 떠돌고 있다

불현듯, 내가
돌고래보다 못난 아비라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돌고래만큼 품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돌고래만큼 사랑해 주지 못해
더 미안할 뿐이다

죽은 새끼를 부둥켜 업고
며칠째, 제주 바다를 떠도는
어미 돌고래의 거룩한 행로
바다가 내 생각을 흔들고 있다
- 「거룩한 행로」 전문

「거룩한 행로」는 김환식 시집 전체에서 윤리적 정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시 이전의 작품들이 상실을 사물과 신체의 차원에서 견디는 방식에 집중했다면, 이 작품은 상실을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업業이라는 관점에서 정면으로 사유한다. 다시 말해, 김환식의 시는 여기서 서정의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업으로서의 윤리적 질문의 단계로 진입한다. 이 시의 결정적 특징은 상실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존재인 어미 돌고래라는 점이다. 시인은 자신의 슬픔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의 행위를 응시함으로써, 인간의 윤리를 되묻는다. 이 전환은 김환식 시세계의 사유가 가장 높은 긴장도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시의 첫 연에서 “며칠째 포구를 떠돌고 있다”라는 진술은 단순한 상황 설명이 아니다. ‘며칠째’라는 반복적 시간은 자연의 애도가 일회적 감정이 아니라 지속되는 행위임을 드러낸다. 중요한 점은 이 시간성이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미 돌고래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무엇을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저 떠돈다. 이 떠돎은 무력함이 아니라 애도의 형식이다. 목적 없는 반복은 자연이 선택한 윤리적 태도다.
이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동사는 ‘업다’인데, 업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보호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죽은 새끼는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어미 돌고래는 그 무게를 끝까지 짊어진다. 업는다는 행위는 결과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지속하며, 효율과 생존의 논리를 거부하고, 떠나보내는 대신 함께 떠도는 선택으로 윤리적 의미를 획득한다. 이 윤리는 인간 사회의 도덕규범과 다르다. 그것은 보상도, 구원도, 해결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관계의 마지막까지 업으로 감당하겠다는 태도만을 보여준다. 김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연을 윤리의 기준으로 호출한다.
시의 중반부에서 화자는 “불현듯, 내가/ 돌고래보다 못난 아비라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감정의 폭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윤리적 전환의 순간이다. 여기서 눈물은 상실의 슬픔 때문이 아니다. 눈물의 원인은 자연의 행위를 기준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업의 자각이다. “돌고래보다 못난 아비”라는 표현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윤리의 기준을 인간이 아닌 자연의 행로로 옮겨 놓는 선언이다.
이어지는 “돌고래만큼 품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돌고래만큼 사랑해 주지 못해/ 더 미안할 뿐이다”라는 반복 구절에서, 미안함의 대상은 끝내 특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식일 수도 있고, 과거의 자신일 수도 있으며, 인간 일반일 수도 있다. 이 모호성은 미안함을 개인감정의 차원에서 끌어올려, 존재가 짊어져야 할 업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여기서 미안함은 후회나 자기연민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무게를 윤리적으로 감당하려는 태도다.
제목에 쓰인 ‘거룩함’은 종교적 개념이 아닌, 이 거룩함은 초월에서도 오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끝까지 견디는 태도에서 발생한다. 어미 돌고래의 행로가 거룩한 이유는 죽음을 부정하지 않고, 상실을 해결하려 하지 않으며, 관계를 끝까지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윤리다. 김환식은 이 윤리를 자연의 행위에서 발견하고,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따라서 이 시에서 거룩함은 신의 속성이 아니라, 존재의 태도다.
시의 마지막에서 “바다가 내 생각을 흔들고 있다”라는 구절은 결정적이다.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바다는 화자의 업을 일깨우는 공간이다. 바다는 판단하지 않지만, 인간의 생각을 흔든다. 여기서 흔들림은 혼란이 아니라 윤리적 각성이다. 생각이 흔들린다는 것은, 기존의 자기 합리화가 무너지고 새로운 기준이 서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시의 행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행로가 언젠가 하나의 매듭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감이다. 업처럼 반복되는 떠돎은 영원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그 매듭은 해결이나 구원이 아니라, 다음 생의 태도를 향한 이행일 것이다. 김환식은 여기서 희망을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대신 업을 감당하는 윤리가 어떻게 다음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조용히 암시한다.
「거룩한 행로」를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김환식 시에서 윤리는 자연의 행위를 앞에 두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수 있는 능력이며, 그 부끄러움을 외면하지 않고 업으로 끌어안는 태도다. 상실은 피할 수 없지만, 업을 견인하는 태도 속에서 고통을 감내할 때 인간은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그래서 「거룩한 행로」는 김환식 시집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깊게 흔들리는 작품이다.


언덕길을 내달리던
맨발의 생각이
힐긋힐긋 머뭇거리고 있다

쫓겨가던 한 마리 어미 노루처럼
두고 온 젖먹이가
눈에 밟힌 것이다

눈시울엔
주렁주렁 서러움을 매달고

불현듯
숨 가쁘게 오르던 능선에 멈춰서서
오던 길을 서럽게 돌아보고 있다
- 「맨발의 생각」 전문

김환식의 「맨발의 생각」은 그의 시세계에서 하나의 기원 신화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생각’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걷고 멈추고 돌아보는 신체적 존재로 처음 출현한다. ‘맨발’이라는 설정은 상실 이후의 무방비 상태를 상징하며, 세계와 직접 접촉하는 존재의 조건을 드러낸다. 이 시에서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작동하지 않고, 몸의 움직임으로 윤리를 예고한다.
이 작품의 핵심은 ‘되돌아봄’이다. 일반적으로 되돌아봄은 회상이나 반추로 이해되기 쉽지만, 이 시에서 되돌아봄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행위의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간절함으로 나타난다. 달리던 존재가 능선에서 멈추고 돌아보는 장면은 이 시의 중심 이미지이며, 윤리가 마음속 결심이 아니라 몸의 형태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멈춤은 속도와 관성이 지워버린 질문을 다시 복원하는 행위다.
이 시에서 윤리는 좋고 나쁨을 가르는 판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를 다시 품으려는 태도에서 발생한다. 이 작품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미래 지향적 윤리가 아니라, “뒤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후방 지향의 윤리를 제시한다. 되돌아봄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방향을 재설정하는 몸의 움직임이며, 과거를 애도하거나 자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관계를 다시 떠안는 형식으로 전환된다.
‘맨발’이라는 신체 조건은 이 윤리를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신발이 세계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보호 장치라면, 맨발은 고통을 직접 감내하는 상태다. 따라서 이 시에서 윤리는 상처를 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상처를 감수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되돌아봄은 고통을 완충하지 않으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선택이다.
결국 「맨발의 생각」은 김환식 시집 전체에서 ‘되돌아봄의 윤리’가 발생하는 출발점이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앞으로 달릴 수 있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용기와, 뒤에 남겨진 존재의 흔적을 감내할 준비를 포함한다. 이 작품에서 생각은 처음으로 하나의 신체가 되며, 윤리는 처음으로 하나의 움직임이 된다. 그래서 「맨발의 생각」은 김환식 시세계의 윤리적 원형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시편이다.

기억의 사막과 ‘사유의 우화적 구조’

사막은 이 시집에서 중요한 대지적 상징으로 출현한다. 바람에 출렁이는 모래 언덕은 실제로는 “바다였던 사막”이라는 문장으로 시간의 이중성, 기억의 되살아남, 존재의 탈바꿈을 상징한다. 사막은 건조하지만 갈증은 기억을 되살리고, 오아시스는 만질 수 없지만 사유는 그것을 현실처럼 느끼게 한다. 시인은 이 사막을 고유의 기억의 장치로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화하여 불러온다.


-<중략>


사막을 떠도는
눈먼 낙타는
애꿎은 모래 언덕 길을
몇 번이나 술래처럼 오고 갔을까

손금을 보듯
훤한 골목길을
눈먼 낙타처럼, 나는
날마다 그 길을 맴돌고 있다

먼 산을 바라보거나
천장을 쳐다보거나
그저, 눈먼 낙타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눈앞의 오아시스도
운명처럼 못 보고 지나치는
그 눈먼 낙타처럼
오늘도, 그 길을
생각은 징검징검 순례하고 있다
- 「눈먼 낙타처럼」 전문

김환식의 「눈먼 낙타처럼」은 노년의 삶을 비극이나 체념으로 묘사하지 않고, 반복과 지속의 형식으로 긍정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눈먼 낙타는 결핍의 이미지이지만, 동시에 사막이라는 극한의 공간을 끝내 통과해 온 생존의 형상이다. 노년은 상실 이후의 잔여 시간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계속 걷는 시간으로 재정의된다.
이 작품의 핵심 구조는 반복이다. 눈먼 낙타는 같은 길을 ‘술래처럼’ 오고 간다. 이 반복은 무의미한 방황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견디는 형식이다. 술래처럼 맴도는 움직임에는 승리도 패배도 없고, 오직 지속만이 있다. 반복은 퇴행이 아니라, 자기 삶의 윤곽을 끝까지 더듬는 윤리적 태도로 읽힌다.
시의 중반부에서 화자는 눈먼 낙타와 자신을 겹쳐 놓는다. 사막은 더 이상 낯선 공간이 아니라, ‘훤한 골목길’로 전환된다. 이는 노년의 시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길을 다시 걷는 시간임을 보여준다. ‘손금을 보듯’이라는 비유는 삶의 숙명이 이미 형성되어 있음을 암시하며, 노년이 선택의 시간이 아니라 확인의 시간임을 드러낸다.
이 시는 노년을 성취의 단계로 미화하지 않는다. 노년의 시선은 더 이상 전방에 고정되지 않으며, 위와 멀리를 동시에 응시하지만 어떤 전망도 약속하지 않는다. 이 응시는 목표를 향한 시선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자세다. 이 지점에서 김환식은 노년을 방향 없는 응시를 감당하는 시간으로 정직하게 제시한다.
“눈앞의 오아시스도 못 보고 지나친다”는 설정은 이 작품의 가장 아픈 진실이지만, 절망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오아시스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더 이상 약속에 기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노년은 희망을 상실한 시간이 아니라, 희망의 환상에서 벗어난 시간이다.
후반부에서 “생각은 징검징검 순례한다”는 진술은 이 작품의 윤리적 결론을 제시한다. 몸은 같은 길을 맴돌지만, 생각은 순례한다. 순례는 목적지보다 과정에 의미를 두는 이동이다. 반복은 외형상 제자리걸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사유는 한 걸음씩 이동한다.
결국 「눈먼 낙타처럼」은 노년의 삶을 가장 담담하고도 윤리적인 방식으로 긍정하는 작품이다. 보지 못하지만 멈추지 않는 존재, 목적지는 없지만 계속 걷는 존재의 형상을 통해 김환식은 말한다. 삶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존재는 여전히 순례 중이라고. 반복은 퇴행이 아니라, 견딤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 작품은 시집 후반부에서 삶이 어떻게 끝까지 계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한 증언이다.


곱게 늙고 싶은데
행여, 부끄럽게 늙을까 봐
자꾸 주책이 앞서간다
가벼운 실수도 체면을 옭아매는 것이다
주체하지 못한 나잇값이
대접받기를 포기한 체
닭 쫓던 똥개처럼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늘어난 백발보다
밝은 혜안은 없을 것이다
미쳐 웃음거리란 사실도 잊고
그냥, 빈주먹을 움켜쥐고 살아가려 한다
그런 생의 행로에 곱게 물든
단풍이 화려하다

오가던 길을 되밟고 싶어
신발 끈을 졸라맨다
무시하고 지나친 교차로와 횡단보도
그리고, 그 계곡의 출렁다리와
잃어버린 기억의 먼 산그림자가
꾸역꾸역
생각의 눈썹을 붉게 헐뜯고 있다
- 「회상」 전문

김환식의 「회상」은 시집의 종결부에 놓일 작품으로서, 시집 전반을 관통해 온 ‘되돌아봄의 윤리’가 가장 인간적인 얼굴로 드러나는 시다. 이 작품에서 회상은 과거를 미화하거나 정리하는 감상적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가장 솔직한 응시이며 삶을 다시 현재형으로 점검하는 행위다. 그래서 회상은 종결이 아니라, 다시 걷기 위한 윤리적 준비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 시는 노년을 도달의 상태로 그리지 않는다. 노년은 여전히 불안정한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한다. “곱게 늙고 싶은데 행여, 부끄럽게 늙을까 봐”라는 진술은 바람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으며, 노년의 윤리를 단정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자기연민도 영웅적 성찰도 없다. 오히려 삶의 후반부에 접어든 존재가 감당해야 하는 자기 인식의 곤혹스러움이 정직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의 중요한 미덕은 자기 미화의 거부다. 화자는 스스로를 희화화하며, 체면과 존엄을 내려놓는다. 이는 자기비하가 아니라, 자기 환상을 벗겨내는 방식이다. 노년의 지혜를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겠다는 태도 또한 이 시의 핵심적 정조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혜안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작품 전반을 지배한다.
그러나 「회상」은 자기 부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화자는 ‘빈주먹’을 움켜쥐고 살아가겠다고 말하며, 집착을 내려놓는 방향으로 삶의 태도를 새롭게 정립한다. 이때 회상은 후회가 아니라, 집착을 덜어내는 인식의 과정으로 작동한다. 삶은 더 이상 성취의 목록으로 평가되지 않고, 다만 통과된 시간의 총량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작품에서 자연은 인간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 자연은 제때 물들고 제때 떨어질 뿐이며, 인간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시집 전반에서 반복되어 온 자연 윤리를 다시 한 번 환기하며, 삶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후반부에서 화자가 다시 길을 되밟고 싶어 신발 끈을 졸라맨다는 장면은 이 작품의 윤리적 결론을 상징한다. 회상은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사유가 아니라, 다시 걷기 위한 몸의 준비다. 되돌아봄은 여전히 현재의 행위로 이어질 수 있으며, 삶은 끝났다고 단정되지 않는다.
결국 「회상」은 이렇게 말한다. 곱게 늙는다는 것은 품위 있게 마무리되는 삶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통과할 줄 아는 삶이라고. 이 시에서 회상은 종결이 아니라 재출발의 형식이며, 김환식 시세계에서 윤리가 다시 생활의 차원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그래서 「회상」은 시집을 닫는 작품이면서도, 동시에 시집 전체를 다시 열어젖히는 작품이 된다.

나가며

김환식 시집의 가장 큰 성취는 ‘생각’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세웠다는 점이다. 현대시에서 ‘자아’는 대체로 화자 혹은 시적 자아라는 최소한의 기능에 머무르지만, 김환식은 ‘생각’을 인간과 분리된 하나의 존재로 구축했다. 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심리적 자아와 존재적 자아를 분리했다는 점이다. 그는 화자, 즉 인간과 ‘생각’, 곧 확장된 존재라는 두 개의 층위를 분명히 나누어 놓는다. 심리적 고통과 상실의 압력은 ‘생각’이 담당하고, 화자는 관찰자이자 기록자로 남는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시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분리된 자아의 시학이며, 동시에 확장된 자아에 대한 하나의 존재론적 모형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상실 이후의 삶을 수용하고 견디기 위한 문학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상실을 겪은 인간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그 고통을 온전히 감당하기 어렵다. 김환식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생각’이라는 대체적 자아를 만들어낸다. 이 장치는 문학을 위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삶을 지탱하는 장치다. 그는 시를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버티고 직시하며, 그 과정에서 문학의 영토를 깊고 넓게 확장했다.
세 번째로 헤겔의 ‘외화外化, Entaußerung’ 개념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생각, 곧 정신은 자기 자신을 외부로 드러내고 그 외부와 대립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한다. 외화된 상태를 통과한 주체는 다시 자기 내면으로 귀환하면서 대립과 통합을 경험한다. 김환식의 시편들 역시 이러한 경로를 따른다. 육체성을 획득한 ‘생각’은 자연과 사물의 형상을 빌려 외부로 나아갔다가, 다시 내면으로 돌아오는 운동을 반복한다. 이 귀환의 과정은 무상無常과 연기緣起 등의 불교적 사유를 거치며 여과되고, 그 결과로 생성된 ‘생각’은 몸과 마음, 언어가 하나로 통합된 ‘몸’을 이룬다. 이 ‘몸’은 직접적인 시적 발화에서 환상계의 사유에 이르기까지 도달하며, 슬픔과 고통, 상실을 밀도 있게 품어 시를 풍요롭게 경작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사물과 자연, 풍경을 감정의 주체로 전환하는 시적 미학이다. 김환식의 시에서 사물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감정을 대신 발화하는 주체로 존재한다. 자연과 풍경 역시 마찬가지다. 바다는 울음이 되고, 사막은 기억의 탈색이 되며, 능금의 향기는 어머니의 노동으로 환원된다. 빈 의자는 부재의 형상이고, 돌고래는 죄책의 윤리이며, 뻐꾹뻐꾹 울음은 시간의 반복으로 기능한다. 이는 이미지의 윤리학이라 부를 만한 미학적 성취이며, 김환식 시의 분명한 독창성이다.
김환식의 시는 비탄의 시가 아니라 ‘견딤의 시’다. 그는 감정을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 감정을 제어하고, 사물 뒤로 물러나 몸을 낮추며, 말 대신 ‘생각’을 앞세운다. 그 결과 그는 ‘아주 작게, 아주 조용히 말하는 서정’을 이룬다. 그러나 이 조용함은 결코 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강렬한 감정이 응축된 상태다. 그의 애도에는 눈물도 절규도 격정도 없다. 대신 견디는 방식의 슬픔이 있고, 그 속에서 ‘조용한 애도의 시학’이 전개된다. 그는 아마도 그 과정에서 ‘아련한 기적 소리’(「그리움」)를 들었을 것이다.
현대시에서 상실은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이지만, 감정의 분출이나 서사의 과잉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김환식의 시편들은 분명한 변별성을 지닌다. 침묵에 기초한 그의 애도는 현대시 안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성취라 할 만하다. 식탁과 의자, 능금, 포구, 저녁과 새벽, 사막과 바다 같은 그의 시적 소재들은 일상적이지만, 그 발화가 도달하는 존재적 깊이는 매우 깊다. 그는 생활의 영역에 머무는 소재들을 존재의 심연으로 끌어올린다. 이 경계의 해체가 바로 김환식 시의 특출한 힘이다.
김환식은 단순히 잃어버린 것을 기록하는 시인이 아니다. 그는 상실을 인간 삶의 본질적 구조로 재해석한 시인이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인간은 상실을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견디는 방식은 윤리와 미학의 문제로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시집에서 상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끝내 함께 살아가야 할 조건으로 제시된다.
김환식의 시세계를 통해 상실을 견디기 위한 ‘생각’이라는 존재가 탄생했다. ‘생각’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이 시학은 독창적이며, 현대시에서 중요한 성취로 평가받을 만하다. 사물을 감정의 대리인으로 삼는 이미지 미학,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애도의 윤리, 그리고 노년의 시간철학을 정교하게 엮어낸 이 시집은, 현대시 안에서 개성적인 시인으로서 ‘김환식표’라는 이름을 붙여도 부족함이 없다.

맨발의 생각

언덕길을 내달리던
맨발의 생각이
힐긋힐긋 머뭇거리고 있다

쫓겨가던 한 마리 어미 노루처럼
두고 온 젖먹이가
눈에 밟힌 것이다

눈시울엔
주렁주렁 서러움을 매달고

불현듯
숨 가쁘게 오르던 능선에 멈춰서서
오던 길을 서럽게 돌아보고 있다

그리움

늦은
저녁
식탁 위에
그 아이
좋아하던
옥돔
한 마리
구워놓고
내외는
마주 앉아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거룩한 행로

죽은 새끼를 부둥켜 업은
어미 돌고래 한 마리가
며칠째 포구를 떠돌고 있다

불현듯, 내가
돌고래보다 못난 아비라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돌고래만큼 품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돌고래만큼 사랑해 주지 못해
더 미안할 뿐이다

죽은 새끼를 부둥켜 업고
며칠째, 제주 바다를 떠도는
어미 돌고래의 거룩한 행로
바다가 내 생각을 흔들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환식
1995년 『시와반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 그는 시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삶의 사각을 반추하려 애를 쓰고, 일상의 흔적에서 사유의 깊이를 찾으려고 열정을 쏟는 시인입니다. 절제된 시어들의 그 울림은 더 크고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버팀목』 『붉은 혀』 『참, 고약한 버릇』 『천년의 감옥』 『낙인』 『물결무늬』 『낯선 손바닥 하나를 뒤집어놓고』 『산다는 것』 등 9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는 시집이란 시인의 내면을 기록한 생의 이력서라면서, 열 번째 시집인 『맨발의 생각』을 가슴에서 꺼냈습니다. 그가 시인의 길을 걸어온 이력은 남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지방공무원을 시작으로 코스닥 상장기업인 ㈜한중엔시에스를 창업하였고, 대통령상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였으며, 경영학박사, 경영지도사로서 코넥스협회장과 중진공 대경연수원 명예원장을 역임했습니다.그는 시인으로서 모든 대상을 예술의 본질로 삼고 시인의 길을 언제나 걸어가고 있습니다.

  목차

1부

맨발의 생각·12
그리움·13
거룩한 행로·14
싸락눈·15
생각이 터질 것 같은 밤·16
아픈 생각·17
정월 초닷새·18
그 의자·20
낯선 포구·21
갈대·22
빈자리·24
우연처럼·26
저녁 풍경·28

2부

서글픈 수다·30
사막·31
게으름·32
투망·33
고비사막·34
수상한 게걸음·35
추파·36
순교·37
시월·38
시작·40
의자·41
옛 모습·42
순례·43
팽·44
함구·45
휴식·46

3부

봄·48
눈먼 낙타처럼·49
뻐꾹뻐꾹·50
얼떨결에, 밟힌 생각·52
또, 하나의 그릇·53
숨바꼭질·54
도둑질·56
바깥세상·58
오월, 아침·59
순간·60
자꾸자꾸 미안해서·62
섣달그믐·63
하직 인사·64
참, 아득했던 시절·65
순교·66
먼 산·67
좋은 세상·68

4부

협박·70
고집·71
통곡의 방·72
기분 좋은 날·73
아침햇살·74
사냥꾼·76
산불·77
늦은 가을, 기념사진·78
그리움·79
십일월 초하루·80
욕심·82
얄궂은 가을·84
간이역·85
고뿔·86
봄비·87
회상·88

해설 | 김영탁_생각의 탄생과 윤리의 시학·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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