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잔인할 수 있는 모녀라는 관계
사랑한 만큼 상처 주지만 결국 서로에게 돌아오는
딸과 엄마의 낯설지 않은 이야기
◆ 애거사 크리스티 타계 50주기 기념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1952년에 발표한 『딸은 딸이다』는 엄마와 딸 사이의 특별한 유대와 복잡한 내면세계를 통찰한 소설이다. ‘여자의 삶’과 ‘사랑의 잔인함’을 주제로 써내려간 6편의 특별한 컬렉션에 포함된 이 작품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외동딸과 살아가며 자기연민에 빠진 엄마와 모정 그 자체를 의심하게 된 딸을 통해 사랑해서 미워하는 모녀관계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애증으로 얼룩진 고약하고도 위태로운 모녀의 갈등과 화해는 영원히 딸 혹은 영원히 엄마일 수밖에 없는 여자의 내면을 심도 있게 그려낸다.
엄마와 딸의 강력한 결속을 뒤흔드는
인간으로서의 본능과 욕망젊어서 남편과 사별한 앤 프렌티스는 딸 세라와 함께 런던에서 살아가는 사십대의 여성이다. 앤은 당차고 아름다운 딸이 대견하면서도 앞으로 혼자가 될 자신의 삶에 대해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 그러던 중 딸이 여행을 떠난 사이, 아내와 아이를 잃고 외롭게 살아가던 리처드 콜드필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앤은 세라가 축복해줄 거라 믿고 조심스럽게 재혼 소식을 알리지만, 세라는 강하게 반대한다. 그후 세라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쓰던 리처드가 인내심을 잃고 폭발하게 되자, 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결국 앤은 리처드를 포기하고 세라를 선택한다. 이렇게 앤은 자신의 사랑(행복)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을 치른 뒤에야 예전의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돌아온 삶은 예전 같을 수 없었다.
느긋하게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앤은 매일 밤 파티에 나가고 쉼없이 사람들을 만나는 바쁜 생활을 하는데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느끼는 불행한 여자로 변해가고, 딸에 대한 마음에도 급속히 냉기가 드리운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망쳤다고 날 미워해요.
그리고 난 내 인생을 망쳤다고 엄마를 미워하고요!”엄마와 딸 사이에는 가족애나 여자로서의 동지애 외에도 기대감, 애착, 시기심, 질투, 실망, 분노, 원망 등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흐른다. 세라는 엄마와 자신의 삶에 누군가 끼어드는 것이 싫어 “유치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행동했고, 그 결과는 엄마에게 잔인할 만큼 커다란 상처를 안겼다. 앤의 마음에 남은 ‘자기희생’이라는 각인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을 불러일으켜 그녀를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희생은 “자신을 불사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단 시작되면 끝까지 계속해서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라를 위해 희생했다고 믿는 앤에게는 오직 자식을 위하는 마음뿐이었을까? 그럴 리 없다. ‘두번째 봄’을 꿈꾸다 좌절한 앤의 마음속에는 자식에게 매인 삶이 아닌, 자식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해지려는 여자로서의 욕망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욕망은 어쩌면 모성보다 훨씬 강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앤은 오직 딸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다고 외치며, 리처드와 딸 세라가 반목하는 상황에서 도망친 자신 또한 인정하지 못한다.
“전 행복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있었어요―거의 다 갔는데―” 앤의 목소리는 자기연민으로 떨렸다. “그런데―모든 걸 포기해야 했어요.”
“그래야 했나?”
앤은 이 질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전 모든 걸 포기했어요―세라 때문에!” _본문 274~275쪽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모녀의 밀착한 삶과 불가피한 희생을 다룬 1부, 황폐해진 모녀의 삶을 그린 2부, 심리적으로 완전히 멀어진 모녀가 감정을 폭발하듯 충돌하는 3부로 이어진다. 특히 불행한 결혼생활에 낙담한 세라가 완전히 변해버린 엄마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퍼붓고, 앤이 숨겨왔던 본심을 드러내며 딸에게 독설을 내뱉는 3부 말미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압도적이다. 작가는 지루한 공방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모녀를 더이상 도망칠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 자신들을 똑바로 보게 세우고 진실을 토해내게 만든다. 참담하기까지 한 이 장면은 딸과 엄마에서 여자 대 여자, 인간 대 인간으로 변하는 순간이자 딸도 엄마도 결국은 본능에 지배받는 나약한 인간임을 확인시키는 신랄한 순간이다.
“엄마는 불행했고―나 역시 그렇게 되길 바랐어요. 솔직히 말해봐요, 엄마. 내 결혼생활이 비참하다는 걸 알고 속이 후련하진 않았나요?”
앤이 갑자기 격정적으로 외쳤다.
“그래, 가끔은 그랬다! 인과응보라고 느꼈지!”
모녀는 무자비하게 서로를 노려보았다. _본문 318쪽
딸이자 엄마로서 인간 애거사가 경험했던
모든 불안과 고뇌소수의 인물로 드라마틱한 서사를 꾸려가는 이 소설에는 앤과 세라 모녀 외에 개성 강한 두 노부인이 등장한다. 앤의 오랜 친구이자 심리학자인 로라, 그리고 앤의 집 하녀인 이디스다. 작가를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는 로라는 냉철하고 직설적인 조언으로 자기연민에 빠진 앤을 바로세우고, 인생의 진리를 모두 경험으로 통달한 듯한 이디스는 미숙하고 철없는 세라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역할을 한다. 각각 지성과 감성을 대변하는 듯한 두 노부인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과 처세에서 우리는 딸의 지혜, 여자의 지혜, 나아가 엄마의 지혜를 배운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닮은 듯 다른 인생관에는 실제 민감한 나이의 외동딸을 둔 중년에 재혼을 결심했던 애거사가 품었을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딸과 엄마 사이의 심리를 집요하게 성찰한 애거사가 내린 결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원망과 애증이 뒤엉킨 민감한 모녀관계를 통해 본능을 넘어설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신랄하게 확인시켰음에도 이 작품의 결말은 아주 따뜻하고, 단순하며, 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과 달리 “딸은 영원히 딸”이라 할 것이다. 아마 여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한 줄에 세상 모든 모녀가 경험으로 터득하는 타당하고 마땅한 진리가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딸이자 엄마로서의 애거사가 가졌던 불안과 고뇌를 엿보게 하는 이 소설은 세대를 뛰어넘어 이 땅의 모든 여성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메리 웨스트매콧 컬렉션’ 시리즈 소개‘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로 못다 한 이야기
미스터리로 남은 실종 사건 후 사유와 삶이 담긴
인간 애거사의 가장 사적인 컬렉션
봄에 나는 없었다 | 딸은 딸이다 | 두번째 봄 | 사랑을 배운다 | 장미와 주목 | 인생의 양식
‘메리 웨스트매콧 컬렉션’은 애거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벗어나 새로이 도전한 문학의 정점으로,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여섯 편의 장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과 믿었던 남편의 외도에 큰 충격을 받고 11일간 행방이 묘연해지는 등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애거사 크리스티는, 실종 사건으로부터 4년이 지난 1930년부터 1956년까지 ‘인간’, 특히 ‘여성’의 삶을 주제로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추리소설 작가로서 이미 명망이 높았던 그녀는 독자들의 혼동을 우려해 필명으로 작품을 출판했고, 이는 본인의 뜻에 따라 비밀에 부쳐졌다.

마흔한 살이 되자 한 사람의 미래가 통째로 걸린 일이란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인생은 사람들이 막연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탄력적이고 유연했다.
“진실을 부정하지 마.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 갈 동반자는 세상에 딱 하나,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그 동반자와 사이좋게 지내야 해. 자신과 사는 법을 배워. 그게 답이야.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