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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허호준
제주 출생. 1989년부터 2025년까지 언론사 기자로 4·3의 진실을 밝히는 데 천착해온 동시에 연구자로서 그 의미에 주목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제주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객원연구원으로 연구 및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주요 저서로는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2023, 2023세종도서교양부문 선정),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 같은 시대를 다르게 겪은 두 사람의 삶에 관하여』(2026),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 100개의 장면으로 마주하는 그날들』(2026)을 비롯해 『그리스와 제주, 비극의 역사와 그 후』(2014), 『4·3, 미국에 묻다』(2021) 등 꾸준한 저술 작업을 이어왔으며, 『현대 사회와 제노사이드』(공동, 2005), 『20세기의 대량 학살과 제노사이드』(공동, 2006)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고, 제주4·3연구소가 펴낸 『무덤에서 살아나온 4·3 수형자들』(2002), 『그늘 속의 4·3』(2009), 4·3 여성생활사인 『4·3과 여성』(전5권) 등 4·3 생존 희생자들의 육성을 담아낸 여러 구술집 작업에도 참여했다.특히 2023년 출간한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는 4·3의 실체와 그 진실을 알기 위한 입문서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며 4·3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정확한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있고, 2024년 대만에서 『濟州 四·三, 跨越默, 讓相走向世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 되기도 했다.오랜 시간 연구와 취재를 통해 4·3의 진실을 꾸준히 드러낸 노력으로 2022년 제주4·3평화재단이 주는 제1회 4·3언론상 본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25년에는 제주시 구좌읍을 무대로 다랑쉬굴 사건의 비밀을 간직한 인물과 사건을 추적하여 기억과 기록을 날줄과 씨줄로 엮은 4·3르포가 제13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선정되었다.
*컬러 화보 *책을 펴내며 *출처 및 참고문헌
001 | 19450923 / 일본군이 기록한 ‘제주도 건국준비위원회’ 결성
002 | 19450928 / 제주도 주둔 일본군, 항복의 순간
003 | 19451006 / 일본군 무장해제, 또 다른 격변의 시작
004 | 19451109 / 미군 제59군정중대, 제주에 오다
005 | 19460801 / 제주‘도’(島)에서 제주‘도’(道)로
006 | 19460823 / 콜레라, 원자탄 이상의 공포
007 | 19461022 / ”태평양의 지브롤터”, 미국 언론인이 본 제주
008 | 19461214 / 입법의원 거부의 파장, 중앙과 다른 제주의 독자적 결정
009 | 19470111 / 해방공간의 권력형 부패, 복시환 사건의 전말
010 | 19470216 / 후생식당 앞 한 끼를 구하려는 사람들
011 | 19470223 / 제주 민전 결성, 31절을 앞둔 공개 결집
012 | 19470301 / 미 제6사단 정보보고서로 본 3·1절 발포사건
013 | 19470310 / 민관 총파업, 분출된 제주사회의 분노
014 | 19470314 / 포고문, 저항을 폭동으로 규정하다
015 | 19470412 / ‘이승만 절대 지지’, 탄원서를 보낸 이유
016 | 19470524 / 밀항, 죽기를 각오하고 삶을 구하다
017 | 19470907 / 백색테러와 그 배후
018 | 19471104 / 유엔 총회에 소환된 제주도 군사기지설, 미소의 설전
019 | 19471121 / 제주도 민정장관 비망록에 등장한 도지사의 독선
020 | 19471118 / ”제주는 조선의 작은 모스크바”, 서청이 규정한 ‘붉은 섬’
021 | 19471213 / 정의를 요구하는 민심의 경고
022 | 19480123 / “제주도 좌파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023 | 19480304 / 냉전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 유엔조위 대표의 인식
024 | 19480314 / 두 건의 고문치사,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다
025 | 19480403 / 1948년 4월 3일 새벽
026 | 19480418 / ‘제주도 작전’ 문서가 보여주는 미군정의 개입
027 | 19480429 / 사령관 하지의 4대 진압 지침
028 | 19480429 / ‘평화협상’을 속속들이 파악한 미군정
029 | 19480430 / ‘4·30평화협상’, 김익렬의 의지와 미군정의 전략
030 | 19480501 / 빈약한 무기, 과장된 무장대의 실체
031 | 19480501 / 도지사 박경훈 재임명을 카드로?
032 | 19480505 / ‘5·5대책회의’, 강경 진압으로 돌아서다
033 | 19480510 / 그리스와 제주, 서로 닮은 비극
034 | 19480515 / 미군 고문관이 가리키는 작전 지도
035 | 19480515 / 선거를 피해 중산간으로 오른 주민들
036 | 19480515 / 하산의 길, 평화와 비극의 갈림길
037 | 19480521 / 기마경찰과 구덕을 멘 여인
038 | 19480524 / 510 선거 실패의 파장
039 | 194805 / 일본도를 잡고 있는 대대장
040 | 19480606 / ”상공에는 미군기, 해상에는 미군함”
041 | 19480607 / 브라운 대령 이름으로 뿌려진 하산 촉구 삐라
042 | 19480608 /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뿐!”
043 | 19480610 / 행정명령 제22호, 재선거의 무기한 연기
044 | 19480616 / 제주는 조선의 축도판, ”무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045 | 19480618 / 한밤중에 일어난 제11연대장 피살
046 | 19480621 / ‘강성의 무모한 이력’, 미군정이 선택한 지휘관 조건
047 | 19480702 / 제주도는 울음의 바다,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다”
048 | 194807 / 농업학교 수용소의 ‘포로 아닌 포로들’
049 | 194807 / 제11연대 지휘부의 기념 사진
050 | 194807 / ‘육지 사는 제주사람들‘의 애끓는 청원
051 | 19480803 / 사진으로 남은 젊은 경비대원들의 마지막 순간
052 | 19480814 / “그는 양민의 원적이었소”
053 | 19481017 / “통행금지 위반자는 총살”, 제9연대장의 포고령
054 | 19481108 / 서청, 무슨 짓을 해도 처벌 받지 않는 존재
055 | 1948 1117 / 계엄령, 이승만은 ‘조속한 진압’을 명령했다
056 | 19481120 / 1948년판 보도지침의 등장
057 | 19481122 / 미군 보고서가 기록한 ‘마을 방화’의 실체
058 | 19481128 / 국가의 폭력을 희석시킨 무장대의 폭력
059 | 19481206 / ‘제9연대 ‘작전 보고’에서 ‘학살’을 읽다
060 | 19481218 / 임시군사고문단장 로버츠의 격려 서한
061 | 19481220 / ‘군복 입은 극우’ 서청을 태운 열차
062 | 19490108 / 소련 잠수함 출현설의 실체와 과장의 배경
063 | 19490121 /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 제주는 비명을 외쳤다
064 | 19490125 / 미해군 함대의 제주 기항 이면
065 | 19490220 / 도두리 학살 현장에서 침묵한 미 고문관들
066 | 194902 / 한겨울 돌성 쌓기에 동원된 주민들
067 | 19490322 / 제주는 사(死)의 정적(靜寂)
068 | 194903 / 민간인 위장부대
069 | 194903 / ‘한라산 호랑이’라 불리던 연대장
070 | 19490409 / 주한미국특별대표 무초의 냉전 논리
071 | 19490409 / 제주를 찾은 이승만의 일성, 한라산 구경
072 | 194904 / 산에 있는 동포들에게 고함, 살려준다는 거짓말
073 | 194904 / 주정공장 수용소를 찾은 이승만의 훈시, “과거를 잊으라”
074 | 19490510 / 1949년 5월 10일 재선거
075 | 19490514 / 유엔위원단이 본 파괴와 연출된 ‘정상화’
076 | 19490518 / 성대한 개선식, 도민들의 감사장
077 | 19490525 / 노루를 진상하고 평화를 연출하다
078 | 19490607 / 유격대 사령관 이덕구의 마지막
079 | 19490613 / 군서청의 폭압과 정부의 안일함, 도지사 김용하의 고민
080 | 194907 / ‘수형인 명부’가 증언한 국가폭력
081 | 19490919 / 중국 장제스 정부, 제주를 폭격기지로 요청하다
082 | 194909 / 밀항, 일본, 가족, 편지
083 | 19491002 / 미국 문서에만 남은 제주비행장 249명 집단 처형
084 | 19481013 / ‘궤멸적 성공’의 기록, 무초의 외교문서
085 | 19491128 / 미군 고문관의 눈에 비친 군경서청이 뒤엉킨 제주
086 | 195001 / 제주도 보도연맹 결의문의 역설
087 | 19500419 / ‘공비 아지트 발견’과 ‘부락경비’가 말하는 표창장의 의미
088 | 19500815 / 한국전쟁 시기 ‘자위대’ 임명장에 남은 주민 동원의 흔적
089 | 19500830 / ‘부당함으로 불이행’, 계엄군 명령을 거부한 경찰서장
090 | 19501121 / 미대사관 문서로 본 한국전쟁 초기 무장대 소탕 계획
091 | 195001 / ”승만의 죄는 천 번 참수해도 죄가 남을 터”’
092 | 195101 ‘ / 주한미공보원이 분석한 43의 영향
093 | 19510910 / 전과 획득 기념사진을 남긴 모슬포경찰서 특공대
094 | 19521209 / 세금보다 무거운 헌금, 토벌비용에 짓눌린 도민들
095 | 195301 / 미군이 설계한 ‘무프티 작전’의 전모
096 | 19530401 / 쌀과 대두를 포상금으로! 굶주림을 겨냥한 삐라 살포
097 | 19540921 / 한라산 개방일과 ‘금족령’의 실체
098 | 19551101 / 쌀과 옷을 찾던 산에 남은 5명의 무장대
099 | 19570402 / 마지막 ‘산사람’, 그는 평범한 농민이었다
100 | 19570809 / “제주도민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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