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무척이나 일상적인 소재로 한껏 상상력을 펼쳐나가는 동화. 준이네 식구들은 특별 할인 기간을 이용하여 새로운 냉장고를 구입한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펭귄표'라는 특이한 상표의 냉장고이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크기도 적당하여 만장일치로 결정한 상품이다.
그런데 냉장고를 설치한 뒤부터 무언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방금 전에 사 넣어놓은 고등어가 없어지는가 하면, 아이스크림 통의 아이스크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냉장고 어딘가에선 달그락달그락 작은 소리까지 들려온다.
어느 날 한밤중에 목이 말라 일어난 준이가 이상한 소리의 정체를 밝히려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뜻밖에도 그 안에서는 펭귄 한 마리가 굴러 떨어진다. 한쪽 손에는 아직 갉아 먹다 남은 오이를 든 채...
어렵사리 펭귄에게 묻고 물어 알아본 결과, 냉장고 펭귄은 냉장고에만 사는 특수한 종류의 펭귄으로, 보통 때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 산다고 한다. 거기에 덧붙여 펭귄은 펭귄표 냉장고가 차가운 것은 전기 때문이 아니라 펭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차가운 공기를 만드는 기계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엄마, 이번 생일엔 케이크 대신 수박을 통째로 사주세요.”라고 부탁했을 때도“냉장고에 안 들어가니까 안 돼.”라고 간단히 거절해버렸다.한밤중에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서 냉동식품이 다 녹아 엉망이 돼버린 적도 있다.“18일까지라고 씌어 있으니까… 오늘까지겠네? 이 특별 할인.”엄마는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했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잘 들리게끔 말하고 있다.“그렇다면!”아빠가 갑자기 신문을 탁, 소리 나게 접었다. 나와 엄마는 나란히 아빠 얼굴을 쳐다보았다.“이 참에 새 걸 사자.”“정말? 그래도 돼?”엄마는 대번에 싱글벙글.“야호!”나도 손뼉을 짝짝짝.
그런데, 다음 날 사건이 일어났다.저녁때 엄마가 부엌에서 나를 불렀다.“잠깐만 준이야, 고등어 못 봤니?”“고등어라니, 무슨?”“왜 있잖아, 고등어 말야. 생선. 아까 요 앞 슈퍼에서 사왔거든. 지금 요리하려고 하는데 안 보이잖아. 분명 여기다 넣어뒀는데.”엄마는 냉장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안을 휘젓고 있었다.“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엄마?”“그래, 그렇겠지. 네가 생선 따윌 가져갈 리가 없지.”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래도 참 이상하네.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내가 깜빡 하고 슈퍼에 그냥 두고 왔나?”결국 고등어는 찾지 못했고, 그 날 저녁은 계란찜을 먹었다.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이봐, 문을 열 때는 노크 정도는 하는 게 예의라는 것도 모르시나? 아이구, 아파라.”펭귄은 허리께를 문지르면서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어, 어, 어떻게 우리 집 냉장고에 펭귄이 들어 있는 거지?”“뭐라구? 웃기는군. 이건 우리 집이야. 잘 봐. 이렇게 문패도 붙어 있잖아.”펭귄은 날개를 흔들며 문 쪽의 펭귄 상표를 가리켰다. 그러고 나서 새치름한 얼굴로 오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사각.“그럼 생선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도…”“그래, 바로 이 몸이지.”펭귄은 쉽게 인정했다. 사각사각사각.